<시그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 시즌2 가능성

 

이토록 완벽한 엔딩이 있을까.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새드엔딩을 그리지도 않았다. 이재한(조진웅)은 죽지 않고 차수현(김혜수)에게 돌아왔지만 김범주(장현성)를 살해한 후 실종되었다. 이렇게 과거가 바뀌자 박해영(이제훈)과 차수현의 미래도 바뀌었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총에 맞아 사망한 박해영은 되살아났고, 형의 누명이 이재한에 의해 밝혀지면서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차수현과 함께 했던 미제사건 전담팀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전혀 다른 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재한의 생사가 궁금한 그였다. 그는 이재한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했고 그 길에서 차수현을 다시 만났다.

 

드라마는 쉽게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대신 이재한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요양병원을 찾아가는 박해영과 차수현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정도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재한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가능성 또한 드라마는 버리지 않고 열어두었다.

 

왜 이처럼 쉽게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또 그렇다고 새드엔딩을 보여주지도 않았을까. 아마도 해피엔딩을 마지막회에 갑자기 보여주는 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지금껏 달려온 그 간절함의 기조를 상당부분 뒤집을 위험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의 메시지는 마지막회에 담겨진 포기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그 엔딩에 있지 않은가. 섣부른 해피엔딩은 현실의 무수한 미제사건들에 대한 간절함까지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마치 드라마가 모든 걸 해결해준 것 같은.

 

그래서 끝까지 해피엔딩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시그널>은 세 사람이 모두 살아있다는 희망의 뉘앙스를 남겼다. 그 희망은 또한 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즌2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재한이 병원에서 창밖을 보다가 뒤돌아서는 모습과 그 옆에 놓여진 무전기는 지금 바로 시즌2로 이어져도 아무 손색이 없는 엔딩이었다. 그만큼 작가도 시즌2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는 느껴졌다.

 

시즌2에 대한 의지가 작품의 엔딩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 시즌2가 어려웠던 건 배우들이 모두 여기에 대한 동의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PD는 그 의지를 이미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제훈은 일찌감치 시즌2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조진웅과 김혜수가 의지를 드러낸다면 시즌2는 기정사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지상파드라마가 시즌2를 요구받았어도 실현시키지 못했던 반면 tvN은 시즌제를 해왔던 점도 <시그널>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응답하라> 시리즈 등은 시즌제를 통해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았던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방송사가 외면할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시그널> 시즌2에 대한 요구는 이 드라마가 그토록 꿈꿔온 미제사건들의 해결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절함은 어찌 보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뛰어넘는 무전기 설정을 시청자들이 허용한 이유이기도 하고, 이대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지 말고 이 드라마가 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그널>의 시즌2를 열망하며 그로 인해 이 땅의 많은 미제사건들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만드는 간절함은 그러니 애초에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이기도 한 셈이다

최고였던 <응팔>, 남편 찾기는 결국 독이 됐다

 

도대체 왜 이런 아쉬운 결말을 맺게 된 것일까. tvN <응답하라 1988>18회까지 모두가 최고의 드라마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가족드라마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응답하라 1988>만큼의 성취를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 지상파의 가족드라마들과 비교해보라. 늘 비슷비슷한 패턴에 묶여 어딘지 식상해지거나, 패턴을 벗어나려 자극적인 갈등만을 보여주는 막장이거나. 그것이 작금의 지상파 가족드라마의 현실이 아니던가.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 1988>은 지금까지 안이하게 제작되어 왔던 가족드라마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엮으면 참신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80년대의 추억과 감성, 가족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웃 가족들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공동체적인 정, 부모 자식 간에 세대 갈등보다는 소통을 보여주었던 것이 <응답하라 1988>이라는 가족드라마였다. 어딘지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식상해 보이는 느낌들을 이 드라마는 경쾌한 구성과 연출로 세련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응답하라 1988>이 평균시청률 17.6%(닐슨 코리아)라는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가족드라마답게 중년 시청층에서부터 젊은 세대들까지 저마다의 소구점들을 찾을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응답하라 1988>이었기 때문이다. 성동일과 김성균, 최무성, 류재명으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를 위한 헌사가 있었고, 라미란과 이일화, 김선영으로 대변되는 어머니 세대를 위한 헌사도 있었으며, 당대를 살았던 청춘들을 통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기적 같은 시청률과 화제성이 가능했을 게다.

 

하지만 재미 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다던 남편 찾기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애초에 신원호 PD<응답하라 1988>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응답하라> 시리즈가 빼놓지 않고 해왔던 남편 찾기콘셉트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재미 요소라고는 해도 이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환(류준열)과 택이(박보검)를 사이에 두고 어느 쪽이 덕선(혜리)의 남편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과열 양상을 보일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드라마 초반부터 정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어차피라는 표현 속에는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찌감치 덕선의 미래 남편으로 그를 점찍게 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택이가 점점 전면으로 나오면서 멜로의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혹남택(혹시 남편은 택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어남택(어쩌면 남편은 택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혹시어쩌면이라는 표현 속에는 택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환이 미래 남편이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한 주를 쉬고 돌아온 19회에서 결국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물론 사람의 관계란 알 수 없는 것이고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의 관계란 그렇게 마음대로 변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작품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응답하라 1988>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엔딩으로 갈 것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그동안 가슴앓이를 줄곧 해온 정환이 그 주인공이 아니고, 늘 보살핌을 받았던 택이가 주인공이라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가족드라마로서의 <응답하라 1988>은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로서 해피엔딩을 보여줬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로서의 <응답하라 1988>은 아쉬움이 남는 새드엔딩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택이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일 수 있으나, 줄곧 시청자들의 감정 선은 정환에게 맞춰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환이 왜 그렇게 선선히 물러났는가에 대한 이유라도 밝혀주길 바라던 시청자들은 그것조차 사라진 마지막회에서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88>. 어쩌다 이런 아쉬운 결말에 이른 것일까.



너무 빨리 터트린 해피모드, 오히려 불안감 키워

 

MBC <그녀는 예뻤다>는 너무 일찍 갈등 요소들을 해결해버렸다. 즉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갈등요소는 김혜진(황정음)이 지성준(박서준)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가짜 김혜진 역할을 해온 민하리(고준희)가 지성준을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친구인 김혜진과의 우정 때문에 갈등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고, 그 와중에 김신혁(최시원)의 김혜진에 대한 우정 같은 사랑이 들어갈 여지가 생겼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하지만 너무 빨리 지성준이 김혜진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이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모든 갈등요소들은 사라져버렸다. 민하리는 그래서 일종의 자숙모드에 들어갔고 친구인 김혜진을 위해 뭐든 해줄 것 같은 우정을 과시하는 존재가 됐다. 김신혁은 김혜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됐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요소를 모두 일찍 해결해버린 드라마가 할 수 있는 건 지성준과 김혜진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밖에 없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애정을 과시하고 행복감을 드러낸다. 사실 해피엔딩을 그리려했다면 여기서 드라마가 끝나는 게 맞다. 본래 이야기란 위기와 절정을 넘으면 결말로 끝맺음을 하는 게 정해진 룰이다. 그런데 <그녀는 예뻤다>는 이 갈등 요소가 이미 11회에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16부작인 이 드라마는 앞으로도 3회가 더 남았다.

 

도대체 이 3회나 되는 분량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갈등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 두 사람의 애정행각만 내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들이 만드는 잡지 더 모스트가 판매율 1위를 달성하지 못하면 폐간될 수 있다는 위기가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해피모드에서 결국은 더 모스트가 폐간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튄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 갈등이 사라진 드라마가 할 수 있는 갈등요소란 해피엔딩을 새드엔딩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너무 행복한 모습이 불안하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은 드라마의 공식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데서 나오는 추측이다. 누군가 병에 걸리던지, 아니면 사고를 당하던지 하는 그런 위기요소가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드라마가 남을 분량을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것이다.

 

조성희 작가가 새드엔딩으로 심지어 논란까지 있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작가라는 사실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불안요소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일종의 충격요법처럼 갑자기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당하면서 끝나는 엔딩을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목격한 시청자들이라면 당연한 불안일 수밖에 없다.

 

초반에 그토록 짜임새 있게 흘러가던 드라마가 어쩌다 후반에 와서 이런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게 됐을까. 너무 일찍 해피모드로 흘러버린 감이 없지 않다. 결국 이 드라마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밋밋한 해피엔딩으로 끝내던가 아니면 충격적인 새드엔딩의 반전을 보이던가. 물론 그 어느 쪽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별그대> 새드엔딩 가능성 희박한 이유

 

<별에서 온 그대>의 엔딩은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그 결과는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흘러온 흐름을 통해 들여다보면 조심스럽게 그 결과의 가능성들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 <별에서 온 그대>가 그린 것은 궁극적으로 그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모든 것을 빼앗은 소시오패스 이재경(신성록) 같은 인물이 들어있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또 그의 위협을 받는 천송이(전지현)를 초능력으로 보호해주는 도민준(김수현)이 있어 슈퍼히어로물의 판타지가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장르는 멜로,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다.

 

천송이와 도민준의 밀고 당기는 감정 놀이가 그 중심에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판타지적인 즐거움을 목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새드엔딩은 이 작품이 흐름 상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것이 지금껏 이 작품에 몰입해온 시청자들의 흥취를 깨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일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는 또한 두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이재경 같은 소시오패스의 위협이나 이휘경(박해진) 같은 애정의 라이벌은 겉으로 드러난 장애물일 뿐 근본적인 장애물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이 두 사람이 외계인과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과거 <ET> 같은 외계인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질적인 존재들의 우정이나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뱀파이어와 소년의 사랑을 그린 <렛미인>이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같은 여러 종족이 뒤엉킨 사랑이야기를 다룬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같은 부류.

 

과거 제거되어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이 사랑의 대상으로 고민되는 것은 지금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에 돌입해 있다는 징후다. 다른 존재들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다양성으로 존중된다. 그러니 <X> 같은 존재들도 어떻게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며 공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궁극적으로 이 이질적인 존재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또 장애를 극복하거나 혹은 감수하는가를 보여준다. 인간과의 신체접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도민준이 천송이와 키스를 하고, 또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위험에도 떠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 사랑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도민준은 그래서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이 결국은 희생을 전제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외계인과 인간으로 극화되어 있지만 사실 이건 우리네 인간들의 사랑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 각각의 인간들은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정부분을 희생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도민준은 이미 그 희생을 보였고 그 희생의 대가로서 일어날 수 있는 징후들을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그는 점점 능력을 상실해간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천송이가 도민준에게 자신을 다시 초능력으로 띄워달라고 요구하지만 도민준은 그녀를 띄우는 걸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물론 그 장면은 마치 남자의 성적 능력 상실을 패러디한 것처럼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사랑이 가진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늙어 간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눈을 감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사랑이다. 도민준이 살아온 4백년의 시간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낼 무한한 시간들 속에서 그와 그녀가 만난 그 짧디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이 없었다면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은 실로 양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질적인 개념이다.

 

그러니 도민준이 <ET>처럼 천송이와의 이별을 고하고 제 별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렛미인>처럼 훗날 어떤 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걸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 속에 담겨진 비극적인 요소는 그래서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더욱 삶이 누군가의 사랑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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