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 날’, 아이조차 도구로 삼는 비정한 세상에 대한 풍자

유괴의 날

도대체 누가 이 아이의 진짜 보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니TV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에서 명준(윤계상)은 로희(유나)를 유괴했다. 유괴할 위인이 못돼는 마음 약한 사람이지만 병원에 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집 앞까지 갔고,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고는 쓰러진 로희를 엉겁결에 집으로 데려왔다. 유괴처럼 보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유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유괴범이다. 

 

딸의 수술비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유괴의 목적은 결국 돈이다.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이는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유괴범 명준은 깨어나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을 아빠라 여기는 로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결국 딸처럼 로희를 챙기기 시작한다. 로희에게서 자신의 진짜 딸의 모습이 겹쳐보였을 게다. 여기서 그의 모습은 유괴범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로희는 금세 명준이 자신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리고 이를 추궁하자 역시 마음 약한 명준은 사실을 토로하고 자수를 한 후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한다. “집으로 보내 줘”라고 애원하는 로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의 그것이지만, 이 영민한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걸. 그는 유괴된 아이지만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아이가 됐다. 

 

부모는 누군가에게 살해됐고 그 집안은 아이를 찾기는커녕,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서를 찾아 항의의 뜻을 전한다. 유산상속 문제까지 겹쳐져 아이는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아이의 몸에 있는 주사바늘 자국들은 이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고, 이 유괴를 부추겼던 명준의 아내 혜은(김신록)은 아이의 아빠가 유명한 의사로 ‘천재 아이 프로젝트’ 연구를 해왔고 로희가 그 연구대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저 첫 번째 질문을 하게 된다. 누가 진짜 이 아이의 보호자라고 할 수 있을까. 로희라는 한 아이를 세워두고 <유괴의 날>은 그 질문을 던진다. 친아빠라는 사람은 연구에 미쳐 딸 로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인물이고, 진짜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로희를 그 연구의 성공 사례로 여긴 모은선(서재희) 같은 다른 어른들은 그 아빠에게 수십 억씩 투자했다. 

 

로희는 한 아이이고 소중한 생명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물론 이 어른들에게는 그게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겠지만)’ 천재 아이 프로젝트를 위한 대상이고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어쩌다 유괴범이 된 명준은 로희에게는 이러한 비정한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자가 된다. 부모는 모두 살해됐지만, 로희가 살아있어 연구를 계속 이어가려는 저들은 이 아이를 잡으려 하고, 명준은 자신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수하려 하지만 로희를 지켜줄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아이와 약속을 한다. “내가 끝까지 지켜줄게.” 

 

경찰의 추적과 저 투자자들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청부업자들의 위협 속에서 명준은 로희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칼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끝내 로희를 지켜낸다. 기막힌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유괴범이 한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보호자라니. 자신의 딸을 위해 유괴를 선택했지만 차마 로희를 돈의 수단이자 도구로 삼지 못하고 심지어 딸처럼 여기게 된 명준과, 부모가 죽었어도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로희를 납치하려는 투자자들 중 과연 누가 진짜 유괴범일까. 

 

경찰들은 명준이 명백한 유괴범이고 나아가 로희의 부모까지 죽인 살인범이라고 예단하지만 냉철한 강력계 형사 박상윤(박성훈)은 그런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인물이다. 대단히 ‘특이한 유괴’라고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상윤의 시선은 그래서 이 사건이 말해주는 진짜 진실(누가 진짜 유괴범인가 하는)을 시청자들이 따라가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어느덧 유괴범 명준과 유괴된 아이 로희가 서로 손을 잡고 그들을 좇는 무리들로부터 도망칠 때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이들의 도주의 끝에 적어도 작은 희망 같은 걸 보게 되기를. 진짜 어른 같은 어른과 아이 같은 아이가 서로를 마주하고 웃게 되기를. (사진:ENA)

'펜트하우스', 사람은 없고 작가가 만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죽고 또 죽고... 벌써 몇 명이 죽은 걸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매회 인물이 죽어나간다. 드라마 시작부터 헤라팰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 의해 추락 사망하는 민설아(조수민)로 문을 열었다. 민설아가 떨어질 때 전망엘리베이터를 탄 심수련(이지아)은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민설아는 이 주상복합의 상징처럼 세워진 헤라 조각상 위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다.

 

아마도 이런 시작은 <펜트하우스>가 거대한 욕망의 표상처럼 보이는 헤라팰리스가 민설아 같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에 그런 의미를 담기보다는 이곳에 살아가는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이 벌이는 폭력들을 병치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 폭력들은 지독할 정도로 상투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걸 이용해 더 큰 돈을 벌고(물론 여기에도 서민들의 피가 깔려 있다), 불륜과 향락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만의 네트워크 속에서 아이들도 실력이 아닌 핏줄과 연줄에 의해 성패가 갈라지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 심지어 능력으로 그 곳에 들어오려는 민설아 같은 인물은 감히 그 세계를 넘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이유라고 하면 저들이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저지르는 폭력의 연속은 그들의 악행을 태생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다. 없는 이들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밟히는 이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오윤희(유진)의 트로피를 빼앗고 그가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천서진(김소연)은 심수련의 남편 주단태(엄기준)와도 불륜에 빠지는 '도둑년'이다. 하지만 주단태는 더한 인물이다.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를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 하고, 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기를 심수련에게 친딸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자 그 산소호흡기를 자신이 떼어버린다.

 

죽은 민설아의 사체를 그가 사는 동네로 옮겨 유기하고 그 집에 불까지 내 자살로 위장한 주단태는 그 지역에 재개발이 이뤄질 거라는 정보를 얻고는 그 사건으로 가격이 폭락한 그 집을 되 사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일이나, 사체를 유기하는 일, 나아가 자신이 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펜트하우스>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그들에 의해 불쌍한 약자들은 억울하게 죽어나간다. 그걸 보며 분노하는 시청자들은 심수련이나 오윤희 같은 인물들이 그들에게 처절하게 응징하고 복수하는 걸 보고 싶어진다. 김순옥 작가가 지금껏 해왔던 '가족 복수극'의 클리셰들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이 가족복수극의 계획된 '공분의 스토리텔링 틀 속'에서 다소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조상헌(변우민)은 허무하게 자기 집 2층에서 추락사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윤태주(이철민) 역시 육교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매회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살인, 사체유기 등)하다 보니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적 설정들이 하나의 게임처럼 둔감해진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차츰 누가 죽어도 그리 놀랍지 않은 느낌이 되어버린다. 드라마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더 많은 죽음들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이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인물들은 그래서 작가가 고안해 놓은 자극의 틀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준다. 개연성은 자극에 가려지고 갈수록 현실감을 잃어간다. 사실 이렇게 계속 어이없는 죽음들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개연성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개연성도 없고 인물들도 소모될 뿐,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펜트하우스>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함 혐오와 죽음에 대한 경시 같은 그림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어 앉아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는 건 자극적인 스토리와 이를 통해 얻어지는 시청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극과 시청률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가치들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저 스토리이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아니다.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를 에둘러 알려주는 공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게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시청률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건 돈 냄새다. 돈이 되면 뭐든 용서된다는 것. 그건 <펜트하우스> 속 헤라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드라마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복수극의 형태로 그려내려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은 마치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생각처럼 돈이 되면(시청률이 되면)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라이프’ 조승우, 악역 같은데 단순 악역이 아닌 이유

이제야 왜 조승우가 이런 역할을 맡았는지 이해가 간다. 이수연 작가의 전작이었던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는 황시목이라는 검사 역할을 연기했다. ‘첫 번째 나무’라는 뜻의 ‘시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의 숨겨진 적폐들을 드러내는 중심 역할을 해냈다. 그는 어느새 이수연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로 다가온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수연 작가의 새 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라는 상국대학병원 신임사장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어딘가 의아하게 다가왔다. 구승효는 사학재단을 인수해 실상을 병원으로 수익을 내려는 화정그룹이 그 ‘의료 서비스 사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 병원에 온 인물이다. 그는 만성 적자의 원인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료센터를 지역병원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파견 보내려 한다. 그것이 경영적으로 유리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반발한다. 그것은 병원을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논리’로만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 이 과정을 보면 시청자들로서는 구승효가 악역이고 의사들은 그 악과 마주해 대적하는 인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승효가 병원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찾아낸 의사들의 비리는 이런 단순한 선악 구도를 깨버린다. 

암센터에서 발견된 약물투여 오류(?)로 인한 환자의 사망을 사실상 덮어버린 의사들의 비리가 드러났던 것. 그리고 그런 일은 예외적으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자주 벌어지는 일들이란다. 그런데 구승효가 이 사건을 추궁하자 암센터장인 이상엽(엄효섭)이 하는 변명이 흥미롭다. 그는 갑자기 전공의들의 근무여건을 꺼내들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승효는 그것이 치졸하고 비겁한 변명이라고 일축한다. 전공의들의 근무여건을 핑계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 구승효는 그렇게 바쁜 전공의들을 위해 이상엽 암 센터장은 무얼 했냐고 묻는다. 골프채 잡을 시간에 그들을 도울 수도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막연히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고 그러니 그들의 행위는 정의롭고 선할 거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대목이다. 그들 역시 그런 숭고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심지어 환자의 생명을 앗아간 잘못을 덮어버리기도 한다는 것. 

또 이 집단 역시 어디 출신이냐를 따져가며 누군가를 왕따 시키기도 하는 그런 부조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주경문(유재명)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유일하게 상국대학병원 출신이 아닌 주경문은 죽은 병원장 이보훈(천호진)의 천거에 의해 흉부외과 센터장을 맡아 일해오고 있었지만, 병원장이 죽고 나자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다른 센터장들에 의해 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 

결국 <라이프>가 다루려 하는 건 그래서 이제 파업 결정이 내려진 의사들이 정의롭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경영주들은 부정하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들은 때론 생명 앞에 고귀한 그 직업정신을 드러내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개인적 욕망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병원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만 그 잘못된 관행들에 의해 억울하게도 환자가 난데없는 죽음을 맞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잘못은 숨겨진 채. 

그러니 구승효라는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가 드디어 드러난다. 그는 사학재단을 인수해 병원으로 돈을 벌려는 자본의 전면에 선 부정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원이 가진 비리들을 끄집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영적인 선택을 하는 구승효 같은 사장도, 또 입만 열면 환자의 생명을 운운하는 의사들도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은 없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사장의 선택이 옳고 어떤 면에서는 의사들의 선택이 옳다. 

그래서 애초에 이수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이 드라마는 마치 몸에 항원이 들어와 항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 아니라, 항원–항체 반응으로 상보적인 결과가 나오는 그 과정을 담는다는 것이다. 왜 구승효 역할에 조승우여야만 했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구승효라는 인물만큼 병원이 가진 양면을 온전히 드러내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비밀의 숲>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라이프>에서도 온전히 드라마의 중심에 서 있다. 병원이라는 시스템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주는 역할을 맡은.(사진:JTBC)

‘라이프’, 강력한 항원 조승우 vs 만만찮은 항체 이동욱

놀랄 만큼 입체적이다. 병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이 아니라, 그것이 병원 밖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생명을 살린다는 그 의사의 본분을 담는 병원이 또한 자본이라는 괴물의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킨다.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가 이토록 입체적으로 병원을 보여준 적이 있던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가 담아내고 있는 병원이다. 

구승효(조승우)는 물류센터 사장으로 화정그룹이 인수한 상국대학병원을 맡게 되면서 각 과별 경영실적부터 챙겨본다. 가장 적자 폭이 큰 과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그리고 응급과. 그 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지방병원 파견 근무’ 제도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세 과를 모두 지방으로 파견 보낸다는 통보를 내린다. 파견 근무를 시키면 임금을 해당 지방병원이 해결하게 할 수 있고 정보 보조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영자로서는 병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경영적 선택인 셈이다. 

대신 구승효는 돈 되는 센터를 건립하려 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이 그것이다. 화정그룹 임원 회의에서 구승효는 병원 환자 기록을 계열사인 보험사에 팔려고 한다. 그것이 직접적인 보험사 수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회장은 병원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관심이 있는 건 서산에 있는 땅이다. 그 곳에 병원 센터 건립이라는 명분으로 땅을 매입하라고 구승효에게 지시한다. 물론 병원의 돈으로. 그러자 구승효는 회장에게 거꾸로 제안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 건립에 돈을 투자해달라고. 확실한 ‘캐시 카우’이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하지만 이 곳은 그냥 물건 파는 기업이 아니다. 병원이다. 의사들은 만만찮은 반발을 일으킨다. 특히 파견이 결정된 세 과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의사들이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곳에서 ‘환자를 돈 줄로만 보는’ 새 경영진을 질타한다. 그런데 그 곳에 나타난 구승효는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반발을 오히려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몰아붙인다. 지방 같은 소외 지역에서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구하는 게 의사의 소임이 아니냐는 것.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지내오던 상국대학병원은 원장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공교롭게도 등장한 총괄사장 구승효에 의해 병을 앓기 시작한다. 구승효는 마치 몸에 침투해 들어온 항원처럼 상국대학병원 전체를 아프게도 뒤 흔든다. 그러자 그 동안 나서지 않던 예진우(이동욱)가 일어나 구승효에게 질문을 던진다. “흑자가 나는 과는 그럼 파견대신 돈으로 된다는 뜻입니까? 지원금을 낼 수 있으면 안가도 된다 그겁니까?” 그 질문은 본래 정부에서 요청한 건 지원금인데 구승효 사장이 파견을 얘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 제기이고, 또한 이 문제가 결국은 적자와 마이너스로 불리는 과들을 퇴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구승효는 그 질문이 영 기분 나쁘다. 어딘지 만만찮은 반발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내 게시판에 ‘파견 3과 = 적자 3과’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인도적 지원이 아닌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라는 글이 그것이다. 구승효라는 ‘항원’이 들어오자 드디어 예진우라는 ‘항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승효과 예진우의 항원-항체 반응처럼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는 <라이프>는 그래서인지 그 과정을 통해 병원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 곳은 우리들에게는 아플 때 찾아가 병을 고치는 곳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실제의 병원은 사업체이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버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이 바로 병원의 실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대결구도를 선악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 예진우가 선이고 구승효가 악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단지 현재의 병원 시스템 안에서 예진우가 맡은 역할과 구승효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수술실을 찾은 구승효가 거기서 쪽잠을 자고 있는 주경문(유재명)에게 덮을 것을 챙겨주고 나온다. <라이프>가 구승효를 이런 인물로 굳이 그리는 건 이러한 문제들이 구승효라는 악인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병원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강력한 항원으로 등장한 구승효과 만만찮은 항체로 맞서는 예진우. 두 사람의 대결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가 막연히 바라봤던 병원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병원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병원이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를 보게 될 지도.(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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