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추앙한 제주의 삼춘들

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유독 노동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이 계속 해서 물밑으로 뛰어들고, 새벽부터 열리는 경매장에는 생선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빈다. 어시장에는 억척스럽게 생선 대가리를 치는 이와 배고픈 이들의 시장을 달래주는 순댓국을 끓이는 이, 생선에 뿌려줄 얼음을 나르는 이, 한편에서 야채 등을 파는 이와 커피를 파는 이들이 뒤엉켜 소란하다. 어시장 바깥에는 좌판을 늘어놓고 작업복 같은 옷들을 파는 이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겉보기엔 없어보여도 알짜배기 시장 상인들의 돈을 유치하려 일일이 인사를 다니는 은행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래서 제주에서 온 몸으로 부딪쳐 살아가는 이들의 땀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양복을 차려 입고 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은행 지점장 한수(차승원)는 속 빈 강정이다. 제주에서 하루하루 노동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보기엔 서울 가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골프 유학을 보낸 딸과 아내 때문에 등골이 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다. 그가 생선 대가리 쳐서 건물 올린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한 은희(이정은)의 마음을 등쳐 돈을 빌려보려 한다. 도시 삶의 절박함이 우정, 첫사랑까지 이용해먹게 만든 한수는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하면서도 선뜻 은희가 부친 돈을 다시 되돌려준다. 그리고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억척스럽게 제 길을 열어온 은희를 보며 자신도 새 출발에 용기를 얻는다. 

 

어려서 동석(이병헌)이 좋아했지만 뭍으로 돌아가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선아(신민아)는 오랜 우울증 때문에 이혼도 당하고 아이까지 빼앗긴다. 절망감에 제주 바다로 뛰어들지만 해녀들이 그를 구해내고, 자꾸만 우울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동석은 작은 빛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 우울증으로부터 선아를 구원해낸 힘은 놀랍게도 동석이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 물건을 팔러 다닐 때 녹음해 틀어놓곤 하는 소리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노동의 소리가 우울의 늪으로부터 선아를 삶의 일상으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공주 대접을 받는 미란(엄정화)과 무수리 취급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온 은희의 에피소드에도 노동에 대한 헌사가 깃들어 있다. 우연히 은희의 일기장에 자신을 나쁘고 이기적이며 이중인격자라고 쓴 걸 보게 된 미란이 절교선언까지 하게 됐던 갈등은, 은희가 미란이 일하는 마사지샵을 찾아와 마사지를 받으면서 풀린다. 돌처럼 굳어버린 은희의 등짝에서 미란은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를 느끼고, 역시 야무진 미란의 손길에서 은희는 그 역시 공주처럼 살아오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낀다. 그 어떤 말보다 서로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난 등짝과 손길이 그 자체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던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에 아이를 덜컥 갖게 되어 부모가 된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 때문에 갈등이 폭발한 그들의 부모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의 이야기에서도 자식 하나보며 자신을 희생해온 이들의 노동이 겹쳐지며 화해의 물꼬를 트고, 도시에서 온 깍쟁이에 헤픈 여자라는 소문과 물질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때문에 해녀들로부터 배척당하던 영옥(한지민)은 그 욕심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언니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해녀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동하는 이들이 가진 삶의 경륜이나 생명력 같은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아마도 제주를 굳이 그 배경으로 삼은 뜻 역시 그 척박한 섬의 만만찮은 삶을 살아낸 이들이 치열한 노동을 통해 갖게 된 강인한 생명력을 추앙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량도 별로 없지만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옥동(김혜자)이나 춘희(고두심) 같은 삼춘들이 마치 이 모든 인물들을 넉넉히 품고 있는 제주할망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글:PD저널, 사진:tvN)

어려운 시국, '미나리'는 잔잔해서 더 큰 위로를 줬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개점폐업 상태였던 주말 극장가가 활기를 띠고 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봄철이고 코로나19의 백신접종이 시작된 것도 그 원인일 수 있지만, 영화 <미나리>의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주말에만 이 영화를 보기 위해 20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물론 여기에는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다 앞으로 오스카 수상 역시 유력시된다는 <미나리>에 쏟아진 해외의 찬사가 일조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차치하고라도 <미나리>는 그 작품 자체가 이 어려운 시국에 주는 큰 위로로 입소문이 퍼져가고 있다.

 

먼저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나리>의 서사가 굉장히 극적이라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 아칸소의 외딴 곳으로 이주한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의젓한 큰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이 농장을 꿈꾸며 정착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그래서 도시의 복잡한 풍경 자체는 등장하지도 않고, 미국 조용한 시골 마을이 영화 내내 채워지고 그 곳에서 농장을 시작하며 쉽지 않은 그 과정들을 이 영화는 잔잔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아나간다. 물론 그 담담함을 지루하지 않게 채워주는 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는 인물들과 그들을 통해 미소 짓게 만드는 따뜻한 유머들이다.

 

맞벌이를 하는 이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챙겨주러 이 낯선 땅 미국으로 오게 된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는 사실상 이 영화의 제목이자 메시지를 은유하는 '미나리' 같은 존재다. 할머니지만 전혀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의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들은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도 삶의 지혜가 느껴지고 때론 가족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우리네 엄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엿보게도 만든다.

 

이 잔잔하고 소박한 영화가 어째서 미국에서조차 그토록 호평과 찬사를 받았는가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잔잔함과 소박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감염병 하나도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글로벌 사회의 거창한 역설 속에서, 마치 미국 내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들 모두)들처럼 거대한 용광로 속에 들어가 적응해 살아가는 작디작은 로컬문화가 주는 매력과 힘이 <미나리>에는 넘쳐난다.

 

미국 같은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는가의 저 토양을 내려다보면 그렇게 어디선가 낯선 땅으로 넘어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타인 또한 이롭게 하며 살아온 이민자들이 보인다.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줘." <미나리> 속 순자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이들 이민자들은 미나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물론 <미나리>에는 미국 사는 딸을 위해 고춧가루며 참기름이며 멸치까지 바리바리 싸갖고 오면서, 동시에 화투를 챙겨와 손주와 같이 치는 그 정이 많으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엄마 순자가 등장한다. 그의 유쾌함과 강인함과 따뜻함은 실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당연하고 미국인들조차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가 됐을 게다.

 

또한 <미나리>는 굳이 낯선 땅에 서게 된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낯설어 고된 환경을 맞이하게 된 이들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으로 1년 넘게 이 낯선 환경을 버텨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낼 것이고, 우리만이 아닌 주변까지도 살려낼 것이라는 걸, 저 어디서나 잘 자라고 누구나 건강하게 해준다(돈을 벌게 해준다는 그런 게 아니라)는 물가에 피어난 푸릇푸릇한 풀이 말해주고 있으니.(사진:영화 '미나리')

'리틀 포레스트', 한 끼에 담긴 위대한 생명에 대하여“배가 고파서.” 오랜만에 시골로 돌아온 혜원(김태리)에게 절친인 은숙(진기주)이 왜 돌아왔냐고 묻자 혜원은 그렇게 말한다. 물론 은숙은 혜원이 시험에도 떨어지고 남자친구와도 소원해져 내려왔다는 걸 눈치 챈다. 취업도 어려운 답답한 청춘들의 도시 생활이 혜원이 귀향한 이유처럼 등장하지만, 영화는 그런 현실 이야기는 좀체 하지 않는다. 대신 진짜 배가 고파 보이는 혜원이 한 끼 한 끼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는 일에 집중한다.한 겨울 그 눈길을 헤치고 처음 엄마가 떠나버린 고향의 빈 집을 찾았던 혜원은 그 차가운 집에 난로를 피우고 눈밭을 헤쳐 그래도 실해보이는 배추를 뽑아와 된장국에 밥을 지어 맛나게도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치우기 전에 밀가루를 반죽해 숙성해두고 눈을 치운 후, 수제비에 배추전을 부쳐 먹는 혜원의 모습이 이어진다. 처음 봤던 그 차갑기 그지없던 집은 혜원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온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혜원도 마찬가지다. 웃음기 없던 그는 그 곳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먹으며 오래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기를 찾기 시작한다.사실 극 영화라고 하기에 <리틀 포레스트>가 가진 이야기 구조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특별하게 벌어지는 사건이 있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나영석 PD의 <삼시세끼>에서 봐왔던 킨포크 라이프와 먹방을 영화 버전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단순한 시골집에서의 삶과 밥 지어 먹기가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그건 어쩌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희구하는 것이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단 며칠 있다 가겠다던 혜원은 겨울에 그 곳에 들어왔다가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에 떠난다. 그저 1년 정도를 그렇게 지내는 것이고 또 거기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혜원은 그 곳에서 챙겨먹는 음식을 통해 엄마(문소리)와의 교감을 갖게 된다. 아빠가 아파 시골에 왔다가 아빠가 돌아가시고도 계속 그 곳에서 지냈다는 엄마.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떠나버린 엄마.그 엄마에 대한 막연한 원망이 있지만 혜원은 자신이 해먹는 음식에서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때, 혹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늘 엄마는 특별한 음식으로 혜원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다. 음식을 홀로 챙겨먹는 혜원은 그래서 그 1년 동안 스스로 엄마가 했던 삶을 똑같이 체험하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이해해간다.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의 온기는 항상 그 곳에 남아 혜원이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어깨 너머로 배운 요리는 도시생활에서 ‘배고팠던’ 혜원을 살려내고 있었다.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그 엄마의 온기가 깃들어 있는 시골집, 그리고 그 곳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이야기를 병치시킨다. 봄이면 돋아나는 쑥과 고사리를 챙겨와 음식을 해먹고, 가을철 떨어진 밤으로 달달함을 채우며, 감을 달아 곶감이 익어가는 겨울을 기다린다. 엄마와 이 시골을 둘러싼 자연은 그래서 동일한 존재로서 혜원을 채워준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나 자신을 둘러싼 자연 같은 생명력을 되돌아보게 한다.겨울에 다시 도시로 떠난 혜원은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양파가 익어갈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인 재하(류준열)가 양파재배에 빗대 혜원이 ‘아주심기’를 하려는 것이라 말했듯 혜원의 귀향은 그래서 단지 도시로부터의 도망이 아닌 자연과 생명력으로서의 정착의 의미를 담아낸다.그래서 영화는 묻는다. 여러분에게도 ‘리틀 포레스트’가 있냐고. 그것은 단지 귀향하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어디에 있든 당신 앞에 있는 한 끼와 그걸 챙기는 자연으로서의 몸을 하나의 생명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느냐는 질문. <리틀 포레스트>가 가진 단순한 이야기가 의외로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사진:영화'리틀 포레스트')

<화장>, 이러니 임권택 감독을 거장이라 부를 수밖에 

 

<화장>의 이야기는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일상적이다. 누구나 접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물론 그것을 관통해서 바라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경륜과 연륜이 쌓여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 들어가야 이 일상적으로까지 보이는 삶과 죽음은 비로소 그 민낯을 드러낸다.

 

사진출처:영화 <화장>

오상무(안성기)가 화장품을 파는 대기업의 상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마케팅 부서 상무인 그는 화장품을 팔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결정하느라 고심한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뇌종양이 재발해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오상무의 삶이란 헌신적이다. 밤에는 아내를 위해 힘겨운 병수발을 하고 낮에는 회사에서 상무로서의 일을 한다.

 

마치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듯한 그 얼굴에서는 그가 영위하는 것이 삶인지 고통인지를 알 수 없는 무표정이 묻어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상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래서 더 깊은 슬픔과 허망함이 묻어난다. 삶이라는 게 결국은 버텨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 추은주(김규리)가 새로 회사에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풋풋한 젊음에 대한 욕망을 그는 먼 거리에 상상하며 흘끔흘끔 훔쳐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추은주를 상상하거나 만나면 느껴지는 그 생명력은 아내에게 돌아오면 깊은 죽음의 그림자로 덮여버린다.

 

생명력이 꽃밭 같은 미적 즐거움을 준다면, 죽음은 추한 냄새로 다가온다. 아내를 병수발하며 갖은 오물들을 다 받아내면서 오상무의 삶은 그 죽음의 냄새와 가까워지고 그럴수록 아름다운 생명력을 표징하는 듯한 추은주에 대한 욕망 또한 피어난다. 생사와 미추의 세계는 이렇게 오상무라는 한 인간의 양쪽을 잡아당긴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추은주가 미와 생명을 표징하고, 아내가 추와 죽음을 표징하지만 그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와인으로 표상되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이 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추은주는 당장 미적인 존재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결국은 화장품처럼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반면 아내는 추한 모든 삶의 일면들을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진면목이 전해주는 어떤 아름다움 같은 걸 느끼게 된다.

 

미추의 세계가 뒤집어지는 건 죽음이라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귀결을 우리가 어깨 한 쪽에 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가? 그건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화장(化粧)이 화장(火葬)이 되는 순간 이 숨겨졌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래도 누군가의 화장(火葬)을 마치고 나온 인간들은 다시 화장(化粧)을 하고 삶으로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걸맞게 실로 놀라운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다. 물론 이 이야기의 근간은 저 소설가 김훈 원작에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것을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끌어낸 건 임권택 감독의 공이다. “영화라는 것은 나이만큼 살아낸 세월에서 쌓은 경험들이 누적된 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고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임권택 감독은 말했다. <화장>은 그 삶의 경험치들이 아니면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깊이를 담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숨 쉬듯 내놓을 수 있다니. 거장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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