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와 63호 가수, 이것이 '싱어게인'만의 오디션의 매력

 

"누가 이기든 지든 패배자를 심사위원분들로 만들자." JTBC 오디션 <싱어게인> 3라운드인 라이벌전에서 가장 관심을 집중시킨 63호 가수와 30호 가수의 대결무대에서 30호 가수는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렇게 호기롭게 각오를 밝혔다. 그 말은 둘 다 잘 해서 이런 대결을 하게 만든 심사위원들을 오히려 더 곤혹스럽게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사실 3라운드의 대진은 이승기가 한 마디로 표현한 것처럼 '잔인'했다. 2라운드에서 팀을 이뤄 함께 했던 이들을 이제는 라이벌 대결 구도로 세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싱어게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63호 가수와 30호 가수는 2라운드에서 남다른 우정과 팀워크로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 팀이었다. 그러니 이 대결이 잔인하게 느껴질 밖에.

 

하지만 심사위원을 패배자로 만들겠다는 30호 가수의 말처럼, 이들의 대결은 두 사람의 대결이 아니었다. 이문세의 '휘파람'을 선곡해온 63호 가수는 자신이 항상 감성적인 발라드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왔고 피해왔다며 이번 무대가 30호 가수와의 라이벌전이 아니라 자신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무대라고 말했다. 

 

63호 가수는 마치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듯 '휘파람'에 특별한 편곡을 더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불러내는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담담하게 불렀지만 갈수록 고조되는 감성들이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고, 그것은 김이나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유희열 심사위원의 말처럼 원곡의 향기 그대로 불렀지만 오롯이 그의 노래처럼 들렸다. 

 

이 정도로 좋은 무대를 앞서 선보였으니 그와 대결하는 30호 가수는 긴장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63호 가수와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결을 선택했다. 1,2라운드에서처럼 기타를 갖고 나오지 않은 데다 선곡이 심지어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이었다. 그는 자신이 포크 가수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가수라며 공식에 따른 음악보다 자기 색깔을 담아보겠다고 했다. 과연 이 곡을 그가 어떻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선곡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 시작과 함께 30호 가수는 자유롭게 리듬을 타기 시작하더니 이 곳이 오디션 무대라는 게 무색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심사위원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그 무대는 강렬한 록비트에 강약을 조절해가며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30호 가수만의 그루브가 매력적이었고, 유희열이 "족보 없는 무대"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만의 텐션을 보여준 무대였다. 

 

굉장히 정제된 음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멋진 퍼포먼스라 하기도 애매한 동작들이었지만 몰입해서 부르는 30호 가수만의 집중력은 그 모든 것들을 매력으로 바꿔 놓았다. 김이나는 "나 안해"라고 외쳤고 유희열은 "재 뭐야?"하고 신기해했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이 처음 나왔던 것처럼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 호불호가 갈린 심사위원 때문에 30호 가수가 지고 63호 가수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승패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이긴 63호 가수보다 진 30호 가수의 잔상이 더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싱어게인>만이 가진 오디션의 특별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승패가 취향에 따라 갈리긴 하지만 그것보다 다시 무대에 선다는 그 각오가 만들어내는 승패와 상관없는 무대들의 향연. 그것만으로도 <싱어게인> 무명가수들의 참가의 의미가 충분한.(사진:JTBC)

<슈스케6> 곽진언의 해석력, 서태지라고 해도 거침없다

 

첫 마디 나올 때 헤드폰을 벗었어요. 이 리얼한 목소리 정말 듣고 싶었거든요. 이 노래가 끝났을 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소격동에 가보고 싶었어요.” <슈퍼스타K6> 서태지 미션에서 곽진언이 부른 소격동을 들은 이승철은 심사평에서 그 한 마디로 특별했던 감흥을 전해주었다. 이승철은 심지어 이 노래 다시 서태지씨가 곽진언씨와 리메이크 해야 되지 않나 생각했다고까지 말했다.

 

'슈퍼스타K6(사진출처:Mnet)'

김범수는 곽진언군은 미쳤어요. 미친 음악쟁이에요라고 말했고 윤종신은 리메이크는 이렇게 하는 거에요라며 전혀 팬덤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통기타 부르는 식으로 불러버렸다고 극찬했다. 백지영 역시 제가 돈이 많으면 그 돈을 다 드리고라도 지금 진언씨가 저한테 그려준 그림을 사고 싶다고 표현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폭풍칭찬을 하게 만들었을까. 곽진언이 재해석한 소격동은 원곡이 가진 일렉트로닉을 빼고 오로지 통기타와 첼로 같은 어쿠스틱한 사운드 위에 마치 느릿느릿 골목길을 걸어가며 추억을 되짚는 듯한 곽진언의 읊조리는 목소리로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소격동의 멜로디 라인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 가사가 주는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곽진언 특유의 저음에 깔린 울림이 남다른데다가 듣는 이를 깊게 노래에 몰입시키는 그 힘이 작용한 덕분이다. 사실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은 날카롭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곽진언이 부른 것처럼, 그리고 이승철 심사위원이 표현한 것처럼 그 골목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노래는 아니었다.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보다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이 더 괜찮게 느껴지고, 또 서태지 스스로도 아이유 덕분에 살았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노래는 목소리가 주는 따뜻한 감성이 중요한 곡이라는 걸 곽진언을 통해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이유는 그 차가운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에서 마치 얼음 위에 눈이 녹아내리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얹어 소격동을 완성했다.

 

나아가 곽진언은 이 원곡의 차가움 자체를 덜어내고 아예 아날로그가 주는 따뜻함으로 노래를 재해석했다. 실로 놀라운 건 그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그 어떤 외침보다도 더 강하게 듣는 이의 가슴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곽진언을 통해 소격동이라는 곡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는 건 백지영 심사위원이 표현한대로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그려낸 그 그림이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감성으로 이 곡을 새롭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윤종신 심사위원이 원곡자에게 이 곡이 참 좋은 노래입니다 라고 알려주는리메이크였다는 말은 아마도 그래서 서태지에게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서태지는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스스로 자신을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싱어 송 라이터이자 프로듀서라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자신이 만든 곡을 반드시 자신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부를 수 있는 가수를 통해 들려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격동프로젝트는 그의 성공적인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 아이유가 살려냈고 곽진언은 완성시킨 느낌이다.

 

아이유의 무엇이 대선배들을 극찬하게 하는가

 

서태지는 정규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아이유 덕분에 잘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자신을 보컬리스트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면서 프로듀서라 생각한다며 내 노래를 남이 부르면 어떨까를 항상 생각하고 아이유를 떠올렸다고 했다. “10대들에게 영향 미친 건 아이유 덕을 많이 봤다. 아이유를 업고가고 싶다. 나는 아이유 초기 음악을 많이 들었다. ‘’, ‘마시멜로는 댄스가 아니라, 락킹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유의 보이스 컬러는 보물이다. 여자싱어에서 기적이다. 나보다 아내가 더 팬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유(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이유는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되살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즉 본래 김창완의 곡인 너의 의미를 아이유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거기에 김창완이 자청해 피처링을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만큼 아이유가 재해석해놓은 너의 의미가 김창완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너의 의미를 부르기도 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서로에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김창완은 아이유를 나의 청춘이라고, 또 아이유는 김창완을 나의 미래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제 가요계는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미 정규3모던 타임즈에서 최백호, 양희은 등과 작업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신구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성의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느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의 목소리는 서태지의 표현대로 보물이다. 통기타 하나 들고 목소리로만 승부해도 충분할 만큼 깊고도 잔잔한 아날로그적 정서가 그녀에게서는 묻어난다. 물론 그녀의 스펙트럼은 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까지 훨씬 폭이 넓지만.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비롯해, ‘꽃갈피앨범에 수록된 리메이크곡 거의 대부분이 부활된 것은 마치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공존시키는 그녀의 마법 같은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나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또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은 그렇게 흘러간 노래에서 소환되어 우리 앞에 다시 그 명곡의 얼굴을 드러냈다.

 

아이유는 초창기 시절부터 지켜주고픈 아저씨 팬들을 양산했던 가수였다.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단단한 가창력은 아저씨 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으로 어떤 이미지적인 효과 덕분이었다면 지금은 가수라는 본분으로서 아저씨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그녀를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만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무엇이 이 어린 소녀에게 이토록 원숙하면서도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 걸까. 영락없는 소녀의 톡톡 튀고 밝은 모습 이면에서 느껴지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은 아마도 그녀가 살아낸 현실의 무게감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그래서일까. 김창완이 너의 의미의 말미에 도대체 넌 나한테 누구니?”라고 피처링한 것처럼, 그녀의 노래를 들은 이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넌 도대체 누구니?

 

아이유로 선 공개된 서태지 소격동’, 그 반응은?

 

서태지의 소격동프로젝트가 아이유의 목소리로 선 공개됐다.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계속 이슈가 됐던 서태지인지라,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디 노래는 얼마나 괜찮은지 들어보자는 조금은 뒤틀린 심사에, 그래도 서태지니 기대된다는 기대감이 얹어져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뉜다.

 

'소격동 프로젝트(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그렇다면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어떨까. 먼저 늘 새로운 장르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줘 왔던 서태지라는 존재감만큼의 특별한 새로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조용히 읊조리듯 부르는 발라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팝에서는 이미 여러 가수들에 의해 시도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인 것을 떠나서 음악 자체로만 들어보면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담고 있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서태지가 예전에 불렀던 발라드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향수와 추억이 만져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묻혀진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트렌디하고 세련된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유가 먼저 소격동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7,80년대의 음악을 불러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기 식으로 잘 풀어내는 아이유가 아닌가. 아이유가 부르는 소격동은 그래서 마치 이미 예전에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이유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는 심지어 일렉트로닉이 가진 차가움마저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부조화는 그래서 소격동이라는 곡이 가진 이중적인 특징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그 이중적인 특징이란 가벼운 발라드 감성처럼 느껴지면서도 소격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대적 정조가 주는 무거운 비감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온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이 곡의 가사를 거꾸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즉 앞에서부터 들으면 마치 연인이 옛 추억을 되밟는 듯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지만, 뒤에서부터 가사를 되짚어보면 과거 소격동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대적 정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음악적 감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되돌아보는 과거란 심지어 시대적 아픔마저도 하나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영화 <써니>에서 시위대가 광장에서 전경들과 부딪치는 80년대의 최루탄 뽀얀 풍경 위에 조이(Joy)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가 흐를 수 있는 것처럼.

 

소격동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것이 과거 서태지가 해왔던 파격적인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듣기 좋으면서도 정서를 건드리는 꽤 괜찮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잘못된 홍보 마케팅으로 신곡에 대한 괜한 호들갑이 만들어낸 논란 같은 것이 없었다면, 노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역시 서태지라는 소리를 들을 법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괜한 예능 단독 출연 사실로 만들어진 서태지에 대한 논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아직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과연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명량>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처럼, 서태지는 과연 시끄러운 논란마저 긍정적인 화제로 바꿔낼 수 있을까. 시선은 이제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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