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의 고충, 김태우의 명연기와 제작비 압박

 

드디어 이름과 얼굴만 잠시 등장하던 이순신(김석훈)이 옥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면이 등장했다. 하지만 KBS <징비록>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전투장면이 그다지 정교하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장군들의 얼굴과 육성으로 전투장면을 가름해온 건 KBS 사극이 늘 해왔던 관습이긴 하다. 제작비에 대한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전신을 찍고 거기에 CG를 얹으려면 지금 현재 <징비록>의 제작비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징비록>의 전체 제작비는 고작 110억 원으로 이건 과거 <불멸의 이순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징비록>이 겨우 110억 원을 들여 임진왜란이라는 소재를 다루겠다고 나선 것은 이 사극을 전쟁 스펙타클이 아닌 정치 사극으로 그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의 승리로서가 아니라, 류성룡(김상중)의 고군분투와 선조(김태우)의 잘못된 일련의 선택들 그리고 왕을 둘러싼 동인 서인 간의 붕당 등이 만들어낸 비극으로서 임진왜란을 다루겠다는 의도.

 

하지만 임진왜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청자들의 이순신에 대한 갈증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에 대한 일종의 참회록에 가깝다. 그러니 끝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당하기만 하는 조선의 상황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당시의 조선 백성들이 그러했을 법한 이 답답함을 풀어줄 한 줄기 희망으로서 이순신을 기다리게 된 것.

 

여기에 김태우가 그리는 선조라는 인물에 대한 섬세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갈증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유약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기까지 한 우매한 왕.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면서도 끝없이 명분만을 세우는 왕. 그래서 뒤늦게 백성들이 왜적에 의해 도륙당한 후에 겨우 눈물 몇 방울 흘리며 자책이나 하는 왕. 무엇보다 중차대한 시기에 혼자만 도망치는 왕의 모습은 지금의 대중들에게 혀를 차게 만든다.

 

김태우가 선조 연기를 더 실감나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순신이나 곽재우(김영기)의 승전보를 보고 싶어하게 된다. 이것은 <징비록>이 처한 딜레마다. 적은 제작비로 정치 사극을 그리려 했던 <징비록>은 그 정치가 그려내는 무능함에 대한 답답증 때문에 이를 풀어내줄 스펙타클을 기대하게 되었다.

 

선조가 임진강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싸워 패전하는 장면은 그래서 몇 마디 대사로 처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보여줬고, 이순신의 옥포 해전도 일방적인 화포 공격으로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무너지는 왜군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단 한 척의 배도 단 한 명의 병사도 다치지 않았다는 대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장면으로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김태우에 의해 실감나게 재연된 선조의 무능함을 계속 접하는 시청자들은 그 분통터지는 모습 때문에 심지어 왜군측을 응원하고 싶어질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선조를 위시한 당대의 정치인들의 모습이 지금 현재의 실망스런 정치와 맞닿아 생겨난 정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는 걸. <징비록> 제작진의 미간에 골이 깊어지는 이유다.

 

<화정>이 흥미로워지는 지점, 욕망하는 존재들

 

차승원이 연기하는 광해군은 무엇이 다를까. MBC 월화 사극 <화정>이 다루고 있는 광해는 최근 들어 수차례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재평가됐다. 역사에서 광해군은 사후에 이 붙여졌고 죽었을 때 붙는 묘호도 갖지 못한 왕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최근 다뤄지는 광해군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화정>의 광해군이 여타의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일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존재로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정>에서 광해군은 어린 정명공주(허정은)에게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세자저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어린 공주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는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을 마시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선조에게 이를 거부하며 그는 외친다.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어찌 그토록 소자를 미워하셨습니까. 나는 전하와 다른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접니다. 아버지.” 즉 공주와 사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광해군의 모습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광해군의 이런 모습은 <화정>이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화정>은 형제와 남매로 엮어진 사적인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최종환)의 관계가 그렇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돕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영창대군(전진서)을 제거하려 해 오히려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신은정)의 숨겨진 생존본능을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광해군에 의해 내쳐진다.

 

임해군은 결국 역모로 붙잡히게 되지만 그를 믿어준 광해군 때문에 명나라 사신단 앞에 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준다. 장자인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광해군의 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주려 한 것. 이를 고맙게 여긴 광해군이 사적으로 임해군을 찾아가 자신도 그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임해군은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털어놓는다.

 

부왕의 장자는 나였으니까.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네가 보위에 오르면 날 세제로 삼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음 자리는 나였을 터. 날 그렇게 내칠 줄은 몰랐다.” 형제로서 눈물을 흘리던 임해군 역시 그 왕좌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즉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왕좌라는 욕망 앞에서 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광해군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까지 냉혹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정>은 광해군을 그리면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다루고 있다. 왕좌를 놓고 벌어지는 제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용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분출은 그래서 사적인 관계의 살가움과는 사뭇 다른 광해군의 모습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시간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광해군의 책사 역할인 김개시(김여진)의 이 말은 <화정>이라는 사극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 사극이 드러낼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선조의 내우외환, 통지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나

 

새롭게 시작한 MBC 사극 <화정>은 광해군(차승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광해군의 비극을 낳은 선조(박영규)로부터 시작된다. 임진왜란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하고,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도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파천을 거듭한 왕. <화정>에서 광해군이 선조의 사후에 그토록 불안정한 집권 속에서 가까운 이들까지 숙청해버리는 일을 하게 된 건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앉히고도 든든한 지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정(사진출처:MBC)'

독살이 의심되는 선조의 죽음 앞에서 광해군은 그 숨겨놓았던 울분을 토해낸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면서 왜 자신을 그렇게 밀쳐내려 했는가 토로하며 죽어가는 선조에게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왕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선조가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던 이유가 자신이 아버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또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얻은 세자 광해군. 반대로 왕이지만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는 선조. 선조의 질투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는 것.

 

선조의 무능함이 어떤 비참한 결과로 국가를 이끄는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징비록>에서의 선조의 모습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해온 일련의 잘못된 선택들을 하나하나 아프게도 꺼내 놓는다. 파천을 그토록 반대하는 류성룡(김상중)을 결국 좌천시켜버리고,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신각(박경환)을 상관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참수시킨다. 뒤늦게 그 사실은 안 선조는 이를 되돌리려 하지만 이미 형은 집행된 후였다.

 

무능한 왕을 대신해 승전보를 가져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왕의 그늘 바깥으로 밀려나 있던 인물들이다. 전라좌수사로 바다를 지켜 왜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이순신 장군이 그렇고(그는 심지어 무고를 당해 훗날 백의종군하게 되지 않던가), 의병으로 분연히 일어나 전세를 바꾸어버린 곽재우 장군이 그렇다. 이렇게 되니 왕에 대한 지지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조가 이순신을 질투했다는 얘기가 그저 풍문만은 아니라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중요한 건 왜 이 무능한 왕 선조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두 사극에서 동시에 다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두 사극에서 선조는 중심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극들이 갖고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의 어떤 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토록 무능한 왕의 실정이 지금 현재 사극의 어떤 배경이 되고 있는 걸까.

 

<화정>의 김이영 작가가 밝힌 것처럼 사극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 때문에 굳이 그 시점의 이야기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이다. 선조의 시대가 전쟁과 정쟁으로 피폐된 나라 살림과 이로 인해 굶주리는 백성들의 시대로 기록된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화정><징비록>은 그런 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면 통치자의 자격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왕은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한 사람의 무능함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

 

<징비록>, 류성룡보다 강한 이순신의 존재감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이 주인공인건가. KBS <징비록>의 주인공은 이 제목의 책을 쓴 류성룡(김상중)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가면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갈증이 깊어진다.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이순신 역할을 누가 연기할 것인가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거북선 건조를 선조(김태우)가 후원한 걸로 알고(사실은 류성룡이 왕의 이름으로 보낸 것) 이순신이 감사의 서신을 보내온 장면에서 잠깐 등장한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귀를 쫑긋 세운 건 그래서다.

 

'징비록(사진출처:KBS)'

지주들만 배를 채우고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과 이를 바로 잡지 못하는 왕과 신하들, 전운이 감돌고 있음에도 나라살림이 엉망이라 축성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 심지어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꺼냈다. 수군을 폐지하자는 건 고스란히 바닷길을 열어주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발끈한 이산해(이재용)는 이를 매국이라고까지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 혼돈의 시기에 당파나 왕,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는 인물은 류성룡이 유일하다. 그러니 그는 선조가 반대한 거북선 건조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에게 왕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었던 것. 모두가 당파로 인해 이순신을 등용하려 하지 않을 때도 유일하게 그를 지지한 인물이 바로 류성룡이다.

 

그래서 <징비록>은 이렇게 백성들의 안위와 왜세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진 소신 있는 정치가 류성룡을 다루는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대중들에게 더 희구되는 인물은 아무래도 이순신인 것 같다.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징비록>이 다룰 수밖에 없는 임진왜란이라는 소재에 걸맞는 스펙터클로서 이순신만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벌어지는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인 실패가 있었고 어째서 외세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냉엄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정치적인 대결구도와 왕과 신하의 역학관계가 드라마의 주 골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런 정치적인 입장과 대결에 일종의 혐오를 느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지금 현재의 정치 현실 안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흔하게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TV 뉴스만 들여다보면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정치인들의 공방을 드라마를 통해서 또다시 보기 싫은 까닭이다.

 

대신 대중들이 드라마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이순신 같은 희망이다. 무능한 정치인들이 서로의 이권을 두고 다투고 있을 때 묵묵히 바다를 지키기 위해 준비에 준비를 다하는 그런 인물. 이순신에 대한 열망에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판타지적인 해소에 머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긋지긋해도 그 식상한 정치를 아프게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현재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어떤 해결의 실마리나 대중들의 각성을 이뤄내는 일은 이순신이라는 정해진 영웅담의 쾌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징비록>이라는 책은 그래서 써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순신이라는 인물로 빨려 들어가는 건 그만큼 작금의 현실이 당대의 임진왜란 직전처럼 서민들의 마음을 실망감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오죽 지긋지긋하면 들여다보고 싶지 않겠는가. <징비록>에서 류성룡의 정치보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희망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데는 이런 대중들의 헛헛한 정서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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