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친구들', 뻔한 복수극에 불륜 치정극으로 가는 걸까

 

"진짜 힘든 건 지금부터"라는 주강산(이태환)의 의미심장한 말은 곧바로 범죄로 이어졌다. 바에서 주강산이 건넨 술을 마신 남정해(송윤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깨어 보니 그는 침대에서 옷이 벗겨진 채 누워 있었고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주강산은 상의를 드러낸 모습으로 "깼냐"고 물었다.

 

JTBC 금토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됐다. 남정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주강산에 의해 그의 가정이 파탄 위기에 내몰리는 것. 아마도 대학시절 죽은 교수와 관련이 있을 법한 이 인물은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한 모양새다. 그렇게 성폭력을 당한 남정해에게 주강산은 계속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고, 병원까지 찾아와 큰 소리로 "사랑한다"며 "사귀자"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날 밤 옷이 벗겨진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남정해의 사진으로 그를 협박하고 그가 무시하자 이제는 남정해의 남편 안궁철(유준상)에게 그 사진을 보냈다. 주강산의 목적이 바로 이 남정해와 안궁철 부부를 파경으로 만들려는 것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설정은 납득이 안 되는 면이 있다. 마치 이 시퀀스는 남정해가 부적절한 관계를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3회의 부제 역시 '부적절한 관계'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남정해가 당한 건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성범죄다. 술에 무언가를 타서 마시게 하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벌어진 범죄.

 

그러니 안궁철(유준상)처럼 아내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이는 남편에게 남정해가 굳이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그대로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남정해는 정신과 의사다. 누구보다 성폭력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상처와 거기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잘 알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다소 무모하게 보이는 주강산이라는 인물이 놓은 허술한 덫에 빠져드는 걸까.

 

<우아한 친구들>에서 안궁철은 갑자기 돌연사한 친구 천만식(김원해)과 아내 남정해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의심하는 만식의 아내 명숙(김지영)의 이야기에도 아내를 찾아가 그 상황을 그대로 털어놓을 정도로 아내를 믿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남정해가 우울증을 가진 천만식과 함께 봉사를 다녔던 것에 대한 오해라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신뢰를 보인 안궁철 역시 사진 한 장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부부간의 신뢰가 이런 위기 상황을 맞아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정해가 주강산의 유혹에 진짜로 사랑하게 되는 그런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그저 어느 날 벌어진 성범죄를 이렇게 숨기고 덮으려 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덫에 남정해가 빠져드는 설정은 작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된 설정 같은 느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마치 커다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이를 숨기고 오히려 가해자의 덫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답답함과 불편함을 안긴다. 그건 마치 성범죄 역시 그저 범죄이고 그러니 경찰에 신고해 법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자극적인 전개가 시청률은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래서는 공감 가는 드라마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사진:JTBC)

‘마녀의 법정’의 사회적 의제 vs ‘사랑의 온도’의 사적 멜로

사실 액면으로만 봤을 때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토록 차갑게 식어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사회>, <닥터스> 같은 작품을 통해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고, 작년 <또 오해영>에 이어 <낭만닥터 김사부>로 스타덤에 오른 서현진과 신인배우답지 않게 급성장하고 있는 양세종이 출연한 작품이다.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 괜찮은 반응을 이끌었다.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고 드라마의 색깔에 맞게 따뜻한 연출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서현진, 양세종, 김재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그 인물의 섬세한 심리변화를 제대로 표현해줘 잔잔하면서도 결코 약하지 않은 극적인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해줬다. 

반면 KBS <마녀의 법정>은 방송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기대감을 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정도윤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낯설었고, 물론 전광렬이나 김여진의 출연이 드라마에 무게감을 주었지만 주인공들인 정려원이나 윤현민은 <사랑의 온도>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배우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첫 회에 6.6%(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이 나온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첫 회에 좋은 인상을 남긴 <마녀의 법정>은 2회에 9.5%의 시청률로 반등했고 4회만에 최고 시청률 12.3%를 찍었다. 그리고 줄곧 월화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사랑의 온도>의 추락과 <마녀의 법정>의 상승곡선은 시청자들의 이동을 명확히 보여준다.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논외의 작품이 되었다. 줄곧 2%대의 시청률로 역대 최하의 기록을 세우며 시청자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비쌍곡선이 말해주는 건 뭘까. <마녀의 법정>이 던지고 있는 사회적 의제가 <사랑의 온도>가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사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압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가진 세련미는 <사랑의 온도>가 훨씬 나은 면이 있지만, 소재나 이야기만을 두고 보면 <마녀의 법정>이 다루는 사건들이 훨씬 더 다채롭다. 

<마녀의 법정>은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일반인 동영상 유출사건, 아동 성폭행 사건 그리고 성폭력 살인사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들을 다루고 있다. 성 평등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요즘, <마녀의 법정>의 이야기들은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마이듬(정려원)과 여진욱(윤현민)이라는 통상적인 남녀 캐릭터의 선입견을 깨는 검사들이 사건을 해결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 역할을 뒤집어보는 묘미를 선사한다. 승소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과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며 사건 해결만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진욱의 합은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다시금 보게 되는 건 마이듬을 연기하는 정려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다. 꽤 오래도록 여러 작품을 연기해온 그 공력이 이제는 훨씬 자연스럽게 그의 연기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냉철하면서도 때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마이듬이라는 캐릭터를 정려원은 충분히 공감하게 연기해 보여준다. 

반면 ‘사랑의 온도차’를 보여주겠다던 애초의 의도에서 점점 치정으로 치닫고, 결국 부모와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흔들리는 <사랑의 온도>의 인물들은 너무 뻔한 구도 앞에서 그 연기조차 퇴색된 모양새다. 좋은 연기는 좋은 캐릭터에서 나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이야기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사랑의 온도>는 그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 물론 섬세한 심리묘사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먼저 다채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담보됐을 때 이야기다. 

결국 <마녀의 법정>이 <사랑의 온도>를 압도한 건 그 다양한 사건들이 현실적인 사회적 의제를 건드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랑의 온도>가 가진 그 사적인 멜로는 갈수록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멜로라고 해도 그것이 함의하는 사회적 관계의 문제들을 ‘온도’라는 시점으로 풀어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시청자들은 이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은 것이다.

엘르’, 우리에게 이 영화의 울림이 적지 않은 이유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엘르>는 집으로 난입한 복면의 남자에게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난폭한 그 장면을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가 바라본다. 그런데 이 미셸의 반응이 이상하다. 강간을 당했다면 응당 굉장한 충격을 받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해야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것이 일상이라는 듯 깨진 잔을 빗자루로 치운다. 물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친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더 놀라는 건 친구들이다. 그녀는 너무나 담담하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사진출처:영화<엘르>

그녀의 이 담담한 얼굴은 관객들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친구인 안나(앤 콘시니)와 함께 게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미셸은 마침 회사에서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캐릭터의 성폭력 동영상이 메일로 전 직원에게 퍼지는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누가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뿐 그녀는 역시 이를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공포심을 갖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담담해진 이유로서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이 밑거름을 제공한다. 아버지가 수십 명을 무차별 살해한 사이코패스였고, 그 살해 현장에서 찍힌 그녀의 사진은 마치 그녀마저 아버지의 공범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사실 이 정도의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면 그녀의 담담함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폭력적인 사건들이 일상인 세상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감옥에서만 평생을 산 아버지를 그녀의 엄마는 자꾸만 찾아가 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트라우마이며 벗어나고픈 과거일 뿐이다. 엄마는 집착적으로 젊은 남자와 그 나이에도 연애를 하고, 미셸은 그런 엄마의 삶이 어딘지 잘못되어 있다고 느낀다. 또 피부 색깔이 다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믿으며 여자친구에 집착하는 아들의 삶 역시 엇나가 있다 여긴다. 무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겪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잘못된 것들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다만 어떤 촉발점이 없을 뿐이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촉발점이 되어준다. 친구인 안나에게 엄마의 연애행각을 보며 “내가 저렇게 살면 죽여줘”라고 말하는 미셸은 엄마처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보다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은 단지 안에 들어가는 재에 불과한 삶이라는 걸 엄마의 죽음으로 확인한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가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엇나가게 만든 아버지라는 트라우마를 진정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 총 쏘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정작 교도소를 찾아간 그날 아버지는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찾아가겠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아버지에게는 총알이 되어 날아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가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이웃집 남자 패트릭(로랭 라피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끌림과 폭력 사이에서 갈등한다. 평상시 신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패트릭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동시에 폭력이 아니면 사랑이 되지 않는 그 남자의 실체 앞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패트릭이라는 남성은 얼마나 여성들에게 폭력이 일상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가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모든 문제들을 자신이 겪었던 그 방식으로 해결한다.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차별 살인 속에서 자신이 피해자였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 속에서 가해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그 살인 현장에 서게 되지만. 

<엘르>는 일상적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절한 복수를 하는 그런 영화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성들을 둘러싼 일상적 폭력들이 섬뜩할 정도로 잘 담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자벨 위페르의 그 무심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한 얼굴은 그래서 쿨하게도 다가오지만 동시에 일상적 폭력 속에서 둔감해진 여성의 아픈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한 편이 이토록 다양한 상징적 의미들과 확장성을 갖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특히 우리처럼 여성들이 오래도록 가부장적 틀에서 살아오며 피부에 이식되어 이제는 그게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자행되는 일상의 폭력들을 겪는 사회에서 <엘르> 같은 영화가 주는 울림과 카타르시스는 의외로 크다. 여성들이 느낄 폭력의 실체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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