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논란, 앞뒤 맥락 없이 대사만 갖고 침소봉대

 

차세윤이 너한테 한 짓은 죽어 마땅하지만, 쉽게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그의 호텔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너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아. 그리고 너의 자책감을 덮기 위해서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게 해서는 안 돼.”

 


'용팔이(사진출처:SBS)'

SBS <용팔이>에서 주인공인 김태현(주원)이 성폭행 피해자 여성에게 던진 이 말은 논란의 빌미가 되었다. 이 대사만을 놓고 보면 성폭행을 당한 피해 당사자 역시 그 잘못이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대사 속의 자책감을 덮기 위해서라는 말이나 호텔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너의 잘못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 대사 한 줄이 만들어낸 논란은 점점 확대 해석되었다. 마치 이 드라마가 성폭행에는 피해자의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시킨 것처럼 해석되었고, 이런 대사를 버젓이 내놓는 지상파의 의식수준까지 거론되었다. 그럴만한 일이다. 대사 한 줄에만 집중한다면 말이다.

 

중요한 건 이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앞뒤 맥락이 다 빠져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드라마에서 이 여성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인 것은 맞지만 거기에는 자발적인 면도 있었다는 점이다. 즉 그녀 스스로는 전혀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는데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일종의 거래같은 것이 깔려 있다. 연예인이 되게 해주겠다는 것에 함께 호텔에 갔다는 것.

 

따라서 대사가 지적하고 있는 너의 잘못이란 성폭행을 당한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거래에 임했던 그녀의 잘못을 얘기하는 것이다. 성폭행은 그 호텔방에 들어간 이후에 생겨난 변수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이 시퀀스은 성폭행 피해자의 잘못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이른바 VIP들의 갑질 하는 세상을 비판하고자 했던 장면들이다.

 

게다가 이 대사를 한 김태현이라는 의사는 이상을 얘기하는 인물이 아니다. 즉 당연히 성폭행 같은 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이상이지만, 그는 그런 이상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환자도 죽을 수 있다는 현실을 목도한 그에게 일종의 거래를 위해 그런 류의 남자와 호텔에 갔다는 건 현실적으로 성폭행의 위험 속에 스스로를 노출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스트지만 겉으로는 속물인 척 말하는 그런 의사다.

 

물론 이 대사가 민감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 전체에서 어떤 맥락을 갖고 사용되었으며, 그런 대사를 던진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가를 염두에 둔다면 이해되지 않는 대사도 아니다. 대사 한 줄이 가진 파장은 물론 민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분만 떼어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논란으로 몰아세우는 건 너무 악의적이다. <용팔이>는 그런 거래상황을 수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지 성폭행이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일반화한 적이 없다



고영욱이 무죄라면 법은 잘못된 것이다

 

“행위에 있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연애 감정을 가지고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추행으로 보기 어렵다. 입맞춤하려고 시도했으나 상대가 고개를 돌리자 중단한 경우가 있다. 강력한 물리력이 없었을 경우, 처벌 판단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음악의 신'(사진출처:Mnet)

이것이 미성년자 간음 및 성추행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는 고영욱에 대한 첫 재판에서 한 고영욱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즉 고영욱이 성적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상호 연애 감정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미성년자를 범했다는 도덕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도덕적 비난은 감수할 것이지만, 도덕적인 비난과 처벌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여기서 그 대상 중에 13세 초등학생도 들어있다는 점은 ‘연애감정’ 운운하는 것이 실형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변명거리처럼 들리게 한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연애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정상적인가. 그것도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으로서 사회적인 책무를 가진 이가 이런 식의 대응을 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고영욱은 작년까지만 해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시생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었지만 코믹한 이미지로 다시 방송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검찰이 발표한 것처럼 그는 지난 2010년에 이미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적 행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발표에 의하면 그는 2010년 여름 자신의 승용차에 A양(13)을 태우고 자신의 집에 데려가 강제로 간음을 했다고 하며 또 이로부터 일주일 후 A양에게 술을 마시게 한 후 한 차례 더 간음을 했고, 같은 해 가을 피해자 B양(14), C양(17)을 역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습적이고 의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세 사건이 드러나 조사가 진행 중이었던 2012년 12월에도 D양(13)을 자신의 차에 태워 성추행한 혐의가 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물론 고영욱은 이를 부인했고(그는 “태권도를 배웠다고 해서 다리를 눌러본 사실은 있지만 그 외는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심지어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성년자와 어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합의 하에 만났다는 인터뷰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아 억울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그잖아도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고영욱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나쁜 전례를 남기는 셈이다. 백 번을 양보해도 상식적으로 초등학생을 집으로 끌어들여 성적 행위를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이 상호 연애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미성년자를 자기 차에 태웠다는 것조차도 연예인이라면 조심해야 될 사안이 아닌가.

 

백 번 사죄해야 될 일을 오히려 억울하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건 한 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온 이로서 해야 될 일이 아니다. 대중들은 이미 그가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첫번째 연예인이 될 것인가 아닌가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혐의가 두 번이 넘었고 피해자 중 16세 미만 청소년이 있기 때문에 검사가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전자발찌를 착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과연 고영욱은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인가.

<보고싶다>, 피해자들을 위한 진혼곡

 

“내 딸이 죽었어요. 그놈들은 성폭행을 한 게 아니라 살인을 했습니다. 내 딸이 죽었어요." 결국 성 폭행범을 제 손으로 죽이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보고싶다>의 보라 엄마(김미경)가 던진 이 한 마디는 아마도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을 게다. 그녀를 찾아와 그녀에게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고맙습니다.”라며 통곡한 또 다른 피해자 수연(윤은혜)의 어머니 김명희(송옥숙)의 절절한 말은 또한 이 땅의 모든 부모가 보라 엄마에게 하고픈 말이었을 게다. "나 대신 해준 건 고맙고, 나 대신 벌 받는 거 같아 미안하고.."

 

'보고싶다'(사진출처:MBC)

<보고싶다>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멜로처럼 여겨지게 만들지만(또 멜로가 전면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절절한 그리움 속에는 깊은 아픔이 깔려 있다. 성 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한 것처럼 은폐되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수연 엄마 김명희와 수연을 사랑하는 정우(박유천)는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연을 끌어안고 살아온다. 무려 14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담벼락에 새기고 또 새겨서 점점 더 선명해진 ‘보고싶다’라는 글자처럼 그것은 긁고 또 긁어서 지워지지 않은 상처처럼 더 깊어졌다.

 

세상이 이토록 끔찍한 데 한가한 사랑타령이 가당키나 할까. <보고싶다>가 우리네 멜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그 많은 신데렐라들과 그만큼 또 많은 변형된 왕자님들을 또 세우지 않는 건 그런 이유다. 거기에는 신데렐라 대신 성 폭행의 후유증으로 과거를 의식적으로 지우고 살아가려는 피해자 수연이 있고, 왕자님 대신 그 피해자 수연을 하루도 잊지 않고 14년 간 그리워하며 찾아다닌 형사 정우가 있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조합이 피해자와 형사의 조합으로 바뀌게 된 것.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법 정의의 문제는 멜로에서조차 끔찍한 현실을 끌어낸다.

 

<보고싶다>가 절묘한 지점은 이처럼 멜로와 사회극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우가 형사로서 범인을 추적하고 또 그 오랜 세월동안 수연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그 과정은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사라진 수연을 찾기 위해 정우가 14년 전에 집을 나왔다는 얘기는 그래서 수연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지금껏 찾아다녔다는 것. 너무나 아파서 과거의 이수연을 부정하고 조이로 살아가려는 그녀지만, 정우는 그 아픈 기억을 오히려 지워버리려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는 것.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몇 년 감옥 생활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가해자들을 보며, 그 범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는 피해자 가족들은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질까. 보라 엄마의 “내 딸이 죽었어요”라는 절절한 말에는 그 깊은 상처가 묻어난다. 14년 만에 자신의 딸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도 그 끔찍한 과거를 묻고 조이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딸에게 “그래 난 오늘 너 본적도 없는 거야.”라고 말하며 맨발로 도망치는 수연 엄마 김명희의 애절한 모성애. 그토록 긴 세월을 미친 놈처럼 수연을 그리며 그녀를 찾기 위해 살아온 정우의 마음은 또 어떻고.

 

<보고싶다>는 피해자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누군가는 자살한 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그토록 그리웠던 딸을 찾고도 그 아픔을 지워주기 위해 기꺼이 딸 앞에서 사라져주며, 누군가는 14년이란 긴 세월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미친 놈처럼 그녀를 찾아 헤맨다. 물론 <보고싶다>는 본격적으로 이 성 폭력이라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이 문제를 더 절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깊은 아픔을 우리 눈앞에 세워두고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싶다>라는 다분히 멜로적인 뉘앙스로 다가왔던 제목은 어느새 그 앞에 성 폭력과 잘못된 법 집행으로 희생당한 무수한 피해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살아남은 가족들의 그 지울 수 없는 보고 싶은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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