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개념 예능이란 이런 것

 

믿을 수 없는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에 무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분들과 그리고 실종자 분들 또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힘들게 버티고 계실 가족 분들에게 더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을 담아 머리 숙여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저희 무한도전 멤버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마치 조문을 온 듯 모두 검정 양복을 입은 채 MBC <무한도전>은 이렇게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로 잠시 멈춰서 있던 예능 프로그램을 재개하면서 먼저 이번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희생자 분들, 실종자 분들 또 가족 분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예능 재개를 한다는 것이 역시 쉽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충분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무한도전>은 알고 있었다.

 

특히 어린 학생을 지키지 못한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서로가 건네는 진심어린 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씩 기운을 내서 서로 위로하고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서로 힘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한도전>은 이어서 어른으로서 사죄하는 마음 또한 전했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먼저 얘기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장에서 밤낮없이 구조작업에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 그리고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수고에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 생기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저희 무한도전 또한 여러분께 힘이 되고자 저희가 있는 자리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이번 참사로 인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것은 또한 <무한도전> 역시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충분한 애도의 마음을 먼저 전한 후, <무한도전>은 본연의 웃음으로 돌아갔다. 애도하면서도 웃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마침 <무한도전>이 그간 9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선거 특집을 통해 보여준 것은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게 여겨졌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패러디 성격이 강했고, 선거철이 되면 벌어지곤 하는 남발되는 선심성 공약에 대한 비판적인 풍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대로 된 선거뿐이 아니던가.

 

선거 공약 발표와 토론에서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관료주의’, ‘시청률 재난본부’, ‘늑장대처’, ‘위기극복시스템등이 그것이다. 이 풍자의 과정에서 소통소똥이 되었다. 그리고 유재석은 시청률을 빌어 위기에 대해 말했다.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며 더 큰 위기위기인 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자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시청률에 대해 얘기합니다. 어떤 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무한도전> 시청률 하락에 대한 셀프 디스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또 유재석의 이 말에 갈증이 나는지 연실 생수를 들이키는 박명수를 지칭한 듯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또한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우리의 목표는 시청률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웃음입니다. 이것이 무도가 지켜야할 기본입니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이 던진 이 마지막멘트 역시 다양한 뉘앙스로 들려왔다. OECD가 어떻고 경제 몇 위가 어떻고 하는 그런 숫자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지켜져야 할 것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 기본이 아닌가.

 

<무한도전>선거 특집하나로 보여준 것은 웃음이 결코 그저 오락거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국민 전체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책임과 예의가 전제 되었고, 또 예능으로서 충분히 웃음을 담보하면서도 잘못된 현실에 대한 날선 풍자가 들어 있었다. 개념 예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웃기면서도 눈물 나고 감동적이면서도 현실 인식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무한도전>은 역시 향후 10년을 책임질 예능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모든 드라마의 악역, 돈으로 귀결되는 까닭

 

결국은 돈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대부분이 추악한 돈의 문제를 다룬다. 새롭게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 김석주(김명민)는 돈이 된다면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됐던 분들의 고통도 나 몰라라 하고 일본 기업의 편에 서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법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돈 있는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나갈까만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로펌을 이끌고 있는 차영우(김상중)는 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죄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야. 그가 죄가 있어도 죄를 입증시키지 못했다는 뜻이지.” 이 드라마 속 변호사들은 결국 돈의 생리를 따라간다.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고 없으면 유죄가 되는 것. <개과천선>은 그 대표격인 김석주라는 변호사의 말 그대로의 개과천선을 다루는 드라마. 세상에서 필요한 건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라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드라마다.

 

KBS <골든크로스>는 경제를 움직이는 0.001%의 집단이 벌이는 추악한 범죄를 다룬다. 마치 과거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드라마는, 돈이 된다면 멀쩡한 은행도 부실로 만들어 헐값에 외자에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고위 경제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이야기 한다. 이 과정에서 강도윤(김강우)의 집안은 파탄이 나 버린다. 여동생은 살해당하고 그 여동생 살해의 용의자로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이른바 골든 크로스라는 집단이고 그 뒤에는 결국 돈이라는 절대 악역이 자리해 있다.

 

SBS <쓰리데이즈> 역시 남북 간의 긴장관계를 만들어 그걸 통해 무기거래 같은 이익을 보려는 팔콘이라는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팔콘의 개가 된 김도진(최원영)은 이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조차 무감하게 받아들인다. 또 이를 막으려는 이들을 한 명 한 명 제거하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제거하려 한다. 팔콘이라는 조직이 뒤에 놓여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본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돈이면 전쟁도 불사하는 그들이다.

 

KBS에서 월화드라마로 새로 시작한 <빅맨> 역시 이 자본이 가진 더러운 본질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고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살던 김지혁(강지환)이 갑자기 재벌가 2세가 되는 이면에는 그의 심장을 필요로 하는 재벌가 자제가 숨겨져 있다. 결국 심장이식을 위해 숨겨진 자식인 척 가장하는 것. 이 이야기에는 돈이면 사람 생명도 제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자본의 무시무시한 자만이 들어가 있다.

 

최근 드라마들이 다양한 장르물들을 시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절대 악역으로서 등장하는 자본의 문제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는 어째서 이토록 대중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양극화가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이들 드라마들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게다. “난 무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쓴 게 그게 죄냐?”하고 말하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처럼, 지금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은 스스로를 무죄라고 말 할 만큼 뻔뻔해져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듯 돈의 문제는 인명 앞에서조차 이제 모든 걸 결정하는 최종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비통한 상황이다. 하지만 돈이면 과연 다 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는 선택은 과연 온전한 무죄일까. 나의 선택이 타인의 고통이 되지는 않을까. 지금 드라마들이 자본을 절대 악역으로 출연시켜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사실과 진정성, 손석희 <뉴스9>의 경쟁력

 

사실과 진정성의 힘은 컸다. JTBC <뉴스9>의 시청률이 5%를 돌파하면서 MBC <뉴스데스크(5.6%)>SBS <8뉴스(6%)>에 육박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 이후 조금씩 상승하던 수치가 지상파 뉴스를 압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 시청률보다 고무적인 건 JTBC <뉴스9>과 진행자인 손석희 앵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보고 믿을 건 JTBC와 손석희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손석희의 <뉴스9>은 어떻게 이런 지지를 얻게 되었을까.

 

'뉴스9(사진출처:JTBC)'

역시 가장 큰 것은 사실 보도의 힘이다. 세월호 보도에 대해 실종자 가족들이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는 불만을 표시했을 때, 그 가족과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내보낸 것도 <뉴스9>이었다. 실종된 단원고 2학년 학생의 학부모 김중열씨를 인터뷰했고, 뭐든 구조를 위해서 해볼 건 다 해봐야 한다며 다이빙 벨 투입을 얘기했던 이종인 대표를 인터뷰했으며, 팽목항에 직접 내려가 현장에서 뉴스를 진행하면서는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언딘이 초기구조에서 시간을 지체했다는 내용을 민간 잠수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

 

사실 기자들이 자료 화면과 함께 몇 마디 멘트를 넣어 뉴스를 전하는 건 일반적인 뉴스의 형태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 있어서 시청자들은 그 보도의 신뢰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기자들의 목소리보다는 오히려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 JTBC <뉴스9>에 훨씬 더 신뢰가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손석희 앵커가 진도 팽목항에 직접 내려가 현장에서 뉴스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JTBC 뉴스 관계자에 의하면 팽목항에서의 뉴스 진행은 본래 3일 정도만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뉴스9> 진행을 위해 70여 명의 인력이 대거 투입되다 보니 그 이상을 현장에서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내려가 보니 너무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안들이 산적해 있었다는 것. 계속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팩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이틀을 더 연장해 5일 간을 현장에서 진행하게 됐다는 것.

 

대중들이 진정 알기를 원하는 사실 보도의 힘은 희생자 가족들이 이번 참사의 분명한 원인 규명을 위해 당시 상황을 담은 고인들의 휴대폰 동영상을 <뉴스9>쪽에 제공한 것에서 나타난다. 이 동영상을 통해 그간 선장의 증언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희생자 가족이 보내온 동영상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 그대로 보도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정지화면으로 편집해 내보내게 됐던 것. 이것 역시 다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사실 보도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손석희 앵커와 <뉴스9>이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었다. 화제가 된 팽목항에서의 손석희 앵커의 변함없는 옷25일 당일 갑자기 결정되어 진도로 가게 되면서 옷을 챙겨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팽목항 야외는 뉴스 보도를 위한 제대로 된 스튜디오가 마련되지도 않았다. 똑같은 옷에 변변한 스튜디오도 없는 팽목항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서 담담히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의 모습은 뉴스가 외관이 아니라 그 진심어린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뉴스를 전하는 <뉴스9>의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타 지상파 매체가 좀 더 큰 배에 타고 있어 흔들림이 적은 배 위에 뉴스를 전하는 모습과 <뉴스9>의 기자가 탄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흔들리는 배 위에서 뉴스를 전하는 모습은 사뭇 대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방송사 여건의 문제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은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열악한 상황은 진짜 사실을 전하려는 그 진심어린 태도를 오히려 보여주었다.

 

인터넷 뉴스까지 포함해 지금 현재 뉴스를 전하는 매체들은 엄청난 숫자로 늘어났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뉴스들도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양의 뉴스는 무엇이 진짜인지를 오히려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결국 시청자들이 믿을 수 있는 건 사실보도와 진정성이다. 손석희의 <뉴스9>이 보여준 건 그 사실보도와 진정성의 힘이었다. 이 어찌 보면 뉴스 진행자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에 이토록 대중들이 박수를 보내는 건, 그간 뉴스 보도가 얼마나 대중들의 신뢰를 잃고 있었던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엔젤아이즈>,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는 이유

 

SBS 주말드라마 <엔젤아이즈>의 첫 회 시청률은 6.3%(닐슨)로 미미했다. 하지만 일주일마다 <엔젤아이즈>2%씩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다음주 8.8%를 기록한데 이어 그 다음 주에는 무려 11%를 넘어섰다. 3주만에 두 배 가까이 시청률이 급상승한 것. 도대체 <엔젤아이즈>의 그 무엇이 이런 급부상을 만들어냈을까.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처음 시청률이 미미했던 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SBS 주말드라마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주중드라마는 SBS가 단연 선두를 이끌고 있지만 주말드라마는 KBSMBC에 밀려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SBS 주말드라마는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막장 없는 착한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가족드라마 틀을 과감히 벗어나겠다는 것.

 

<엔젤아이즈>는 주말드라마 답지 않게 본격 멜로에 119 구급대원, 의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적 성격을 접목했다. 시작부터 보여준 터널 사고 장면은 블록버스터의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 주말드라마로서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멜로에 초점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엔젤아이즈>는 장르물적 성격을 떼어놓고 보면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첫 사랑이 있고, 엇갈린 운명에 의해 헤어지고 12년 후 다시 만나 과거 추억의 장소를 더듬으며 그 때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퀀스들이 그렇다. 결국 남녀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12년이라는 공백이 만들어낸 두 사람의 다른 상황은 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어린 시절 겪은 사건들 배후에는 이들 부모들의 숨겨진 비밀이 놓여져 있어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에도 불구하고 <엔젤아이즈>는 여기에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적 설정들과 새로운 주제의식 등을 덧붙임으로써 훨씬 풍부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거기에는 119 구급대원과 의사라는 직업의 디테일들이 에피소드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적인 세련됨이 있고, 이들 직업들이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 머물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동주(이상윤)의 어머니 유정화(김여진)는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가족애 그 이상의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사고로 눈이 먼 어린 수완(남지현)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결국 그녀에게 눈을 주고 저 세상으로 떠난 인물이다. 가족과 멜로를 뛰어넘는 이러한 휴머니즘은 드라마를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인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한편 수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유정화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동주를 자식처럼 키워내는 수완의 아버지 윤재범(정진영)도 복합적인 인물이다. 사적인 선택과 공적인 죄책감이 뒤섞인.

 

이처럼 <엔젤아이즈>는 평범할 수 있는 사적인 멜로의 틀을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적인 영역을 투영시켜 사회적 멜로로 확장시킨다. 아마도 소방관과 응급실 의사라는 위급상황이 주는 인물들의 절절함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희구하게 된 생명에 대한 포기 없는 노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먼저 간 유정화의 묘소 앞에서 그녀가 주고 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수완의 모습은 타인이라도 가족처럼 눈물 흘리게 되는 이번 참사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엔젤아이즈>라는 드라마 한 편이 이 거대한 비극을 온전히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전해주는 타인에 대한 휴머니즘과 확장된 가족애는 이번 비극을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게 해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귀한 죽음은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준다. 그 눈은 이제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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