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김주혁의 소신과 열정은 어째서 무시될까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을 보다 보면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분노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아르곤’이라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처한 상황과, 그 안에서 그 누구보다 소신을 지키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어쩐지 제대로 평가받기보다는 오히려 핍박받는 위치에 서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아르곤(사진출처:tvN)'

HBC에서 보도의 중심은 메인 프로그램인 ‘뉴스9’이다. ‘아르곤’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서 특종을 해왔지만(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잦은 소송과 사과방송까지 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정 시간대로 밀려난다. ‘아르곤’이 이렇게 된 것은 그 프로그램이 의미와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소신을 지키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성역 없는 취재를 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김백진(김주혁) 앵커. 그는 재난보도에서 ‘뉴스9’이 정치적 목적으로 섣부르게 현장소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보도한 것을 백업 보도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보도가 편향되었다는 걸 알고는 이를 바로 반박 보도함으로써 방송사의 경연진들에 눈총을 산다. 팩트에 근거한 진실보도보다 방송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그들의 판단 때문이다. 

그는 말기암 판정을 받아 ‘뉴스9’을 물러나게 된 최근화(이경영) 앵커의 자리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그의 라이벌로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는 유명호(이승준) 보도국장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지만 유명호가 벌써 국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건 진실보도에 대한 소신을 지키기보다는 정략적인 보도를 통해 오로지 출세의 길로만 달려온 덕분이다. 

유명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과거 ‘아르곤’이 했던 종교계 비리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건을 다시 끄집어온다. 그 종교단체가 갑자기 김백진을 지목해 소송을 벌인 것. 알고 보면 그것도 유명호가 뒤에서 꾸며낸 계략이었다. 소신 보도의 길을 걷다보니 많아진 소송 건들을 건드려 ‘뉴스9’ 메인 앵커 투표에서 그의 표를 깎아내려 했던 것. 결국 소신을 지키려 하는 이가 출세를 향해 달리는 이들에 의해 핍박받는 현실을 우리는 <아르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소신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김백진 같은 리더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리더와 함께 뛰고 또 뛰는 ‘아르곤’의 기자와 작가들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 똑같이 핍박받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마침 회사를 나가려 결심한 육혜리 작가(박희본)는 김백진 앵커의 소송을 취하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려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안 김백진 앵커가 그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분명히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연화(천우희) 같은 시용기자라는 특수한 계약직이 만들어진 것도 결국은 저런 출세만을 위해 달리는 유명호 같은 인물들 때문이다. 유명호는 자신을 지지하는데 사인을 하지 않은 이연화에게 계약직이라는 위치를 상기시키며 은근히 협박을 한다. 그것이 그들이 시용기자라는 특수한 계약직을 만들어 이용하는 방식이다. 

<아르곤>은 사실 드러내 놓고 지금 현재 공영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문제를 끄집어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르곤>이 그리고 있는 그 대결구도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공영방송 언론이 처한 상황을 가늠해낼 수 있다. 사실 소신을 지키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기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잘 되는 현실이 아니다. 오히려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더 잘 되는 현실. <아르곤>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분노의 원천은 이렇게 우리네 현실과 맞닿아 있다.

안희정의 ‘말하는대로’, 공약보다 소신과 철학 왜 중요할까

“우리는 국토로 치면 10%. 그 좁은 문을 향해 모두 스펙을 쌓기 위해 등허리가 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인 서울(in Seoul)이라는 천정부지의 높은 임대료와 그 아파트의 성냥갑 속에서 우리는 치열한 스펙경쟁에 하루하루를 우리 인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헬조선이지요. 지난 20세기까지 중앙집권화된 그 국가권력을 모아서 그 권력을 향해서 모든 사람이 충성을 하라고 그랬고 모든 개성을 잠재우라고 했습니다. ‘닥치고 따라와.’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행복은 이 집중화된 중앙집권화된 체제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답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새로운 인생 한 번 안 살아볼랍니까?”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JTBC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 도지사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 사회가 왜 헬조선이 됐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명쾌했다. 그는 그 원인을 ‘중앙집권화된 체제’로 명명했다.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 서울에 전체 50%의 인구가 몰려들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회. 그 곳에 가야만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암묵적인 강박이 하루하루를 스펙경쟁에 내몰고 그것으로 우리네 인생 대부분을 소모하게 만드는 사회. 그것이 그가 본 헬조선의 실체였다. 

안희정은 그러나 그것이 20세기의 삶의 방식이었지 21세기 우리의 삶은 달라야 한다고 강변한다. 사실상 압축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개인적 삶의 행복 따위는 접어든 채 달려오게 했던 건 강력한 중앙집권 체재를 통해서였다. 우리에게는 군사독재라고도 불리는 그 체재 속에서는 질문 따위가 용납되지 않았다. 안희정이 그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목소리를 “닥치고 따라와”라고 명명한 건 그래서다. 

그리고 그 군사독재는 끝났지만 그 잔재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진 것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닐까. 대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공적 권력의 사적 착복 같은 군사독재 시절의 통치방식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정부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달라졌다 착각해온 그 환상을 여지없이 깨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 아닌가.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은 이 여전한 중앙집권화된 체제의 문제를 메르스 사태를 거론하며 확인시켜 주었다. 지방에서 생겨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의 검사를 반드시 서울에서 확인해야 하는 그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국가 위기 상황을 더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AI에 이어 구제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적 사태에 속수무책인 통제 불능의 정부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말하는대로>에서 안희정이 던진 “새로운 인생 한 번 안 살아볼랍니까?”하는 그 질문이 더 가슴에 와 닿은 건 그래서다. 물론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예를 인 서울(in Seoul)을 예로 들어 말했지만, 사실 이건 지역분권의 문제를 넘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만이 옳고 그래서 그렇게 권력화된 한 가지에 모두가 몰두하는 몰개성한 사회가 아닌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소신 있게 해나갈 수 있는 다원화된 사회. 실로 안희정이 ‘말하는 대로’의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희정은 공약보다 중요한 게 소신과 철학이라고 했다. 공약은 언제든지 속임수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공약을 보고 뽑게 되면 돌아오는 건 배신감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대신 중요한 건 소신과 철학이 보여주는 그 후보의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철학은커녕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는 권력자들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는 현재, 그리고 조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닐까.

<태후>, 송중기는 군인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다

 

세상에 이런 군인이 있을까.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움 따위는 없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하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이 쓰러지자 자칫 잘못하면 국제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포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도 군인 유시진(송중기)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그를 살릴 수 있냐고 묻는다. 군인이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는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른다. 이것이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라는 군인의 면면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늘 분쟁과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군인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군인은 그 직업적 특성 자체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랜 군부 정권의 폭력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라는 직업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분쟁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일상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청춘들이라면 모를까(실제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호는 높다고 한다) 그 힘겨운 시절을 겪어낸 세대라면 고개가 갸웃해질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군부 정권 시절과 그것이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 체계를 공고히 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를 겪어낸 중년여성들조차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든다. 이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마치 스파이물의 주인공처럼 위험지구를 넘나들고, 노인, 아이, 여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인물에 빙의된다. 무엇보다 여성 앞에서는 끝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임무에 들어가면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맹활약하는 그 모습이 일상이 시시한 소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군인이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에서 하는 일은 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보호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시설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의 보호임무도 맡고 있다. 그리고 유시진은 이곳에서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무기거래상이 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와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곳에 벌어진 지진 때문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화되어 있는 유시진의 면면에 의해 가려지는 해외 파병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국뽕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면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고 있는 해외 파병의 실체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없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를 국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푹 빠져 일주일의 피곤을 날리고 있는 그 무수한 시청자들은 그럼 모두가 국뽕에 빠져버린 중독자들인가.

 

만일 <태양의 후예>가 군인 판타지를 앞세워 국가를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완성도 높게 찍은 배달의 기수같은 드라마라면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반응할 수 있을까. 과연 <태양의 후예>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해외파병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까. 아니 의도는 없더라도 실제로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해외파병 문제가 덮어지기는 하는 걸까.

 

<태양의 후예>는 일단 군인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유시진이라는 군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물론 날라 다니고 한다는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 그것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인물로서의 슈퍼히어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붕괴된 건물 속으로 뛰어들고, ‘만약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부상자의 상태를 팔목에 꼼꼼히 적어놓는 건 단지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시진은 군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인물에 가깝다. 국가는 그를 부르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의 연인의 안부와 안전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지만 갑자기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뛰어가야 하는 그다. 재난지구에서조차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진영수(조재윤) 같은 인물이 그걸 가로막는 유시진에게 국민의 세금운운하며 몰아 부칠 때, 그는 국가를 위한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를 얘기한다.

 

<태양의 후예>가 제아무리 유시진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만들어도, 해외파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진 판타지가 군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희구하는 이상화된 슈퍼히어로(휴머니즘 같은 가치를 수행하는)이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어서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존재다

토크쇼가 배워야할 이연복, 최현석, 황교익의 토크 맛

 

저희 집 홍보나 그런 것에 관련된 건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요.” tvN <수요미식회>에서 이연복 대가는 대놓고 자신의 음식점 홍보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매장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것. 이연복 대가가 얼마나 손님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가가 그 말 속에는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홍보의 유혹을 거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수요미식회(사진출처:tvN)'

토크쇼만 틀면 보이는 것이 홍보.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와 뮤지컬과 새로 내놓은 음원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토크보다 홍보가 우선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MBC <라디오스타> 같은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짧게 홍보 시간을 주기도 한다. 물론 나머지를 홍보가 아닌 토크로 채우기 위해서다. 그러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연복 대가가 짬뽕을 주제로 그것도 문 닫기 전 가야할 식당리스트를 공개하는 방송분에서 자신의 음식점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대단한 소신이다.

 

이연복은 대신 짬뽕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화된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들로 자신의 분량을 채웠다. 식당 리스트를 얘기할 때도 특별한 코멘트를 달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의 토크를 덧붙였다. 맛있긴 하지만 오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좀 이상하게 느꼈다는 식의 이야기. 즉 전문적인 자신의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토크쇼 특유의 재미에 오히려 집중하는 모습. 실로 연예인 토크쇼들이 배워야할 자세가 아닐까.

 

최현석 셰프는 허세캐릭터로 유명한 만큼 토크쇼에서도 그 캐릭터를 통한 특유의 웃음을 만들었다. 이연복이 자신의 음식점 홍보를 안 하겠다고 말한 것과 달리 최현석 셰프는 스테이크 특집을 하면 자신의 음식점을 알리고 싶다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이연복 셰프가 겸손과 소신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최현석 셰프는 솔직함의 매력이 돋보였다. 그는 심지어 민감한 MSG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자신의 가게에서는 쓰지 않지만 자신은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MC가 중식을 잘 모르는 최현석 셰프에게 짬뽕 전문점은 있는데 왜 짜장면 전문점은 없느냐고 짓궂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뭐라 얘기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은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답해 출연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셰프라고 해서 음식관련 모든 분야에 대해 해박할 필요는 없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얘기하는 것. 최현석 셰프의 솔직함 역시 여타의 토크쇼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대목이다.

 

또한 토크쇼에서 중요한 건 할 말은 하는그 토크쇼만의 소신 있는 발언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수요미식회>에서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른바 전국 5대 짬뽕에 대해 그저 동네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짬뽕이라고 말했다. 한 블로거가 올린 내용을 신문이 받아 기사화하면서 생겨난 5대 짬뽕의 신화에 대해 사실 그리 대단한 맛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준 것.

 

황교익이 보여주는 토크쇼의 이 직설은 프로그램을 엣지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 것으로 소신대로 드러내는 토크야말로 막연한 환상이나 정보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이연복, 최현석과 늘 그 자리에 앉아 해박한 미식의 세계를 알려주는 황교익. 이들은 여타의 토크쇼들과는 다른 <수요미식회>의 묘미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홍보 같은 잡스런 맛을 빼버리고, 특유의 감칠맛을 살리며 때로는 지켜야할 소신 있는 맛을 고집하는 토크쇼. 토크쇼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맛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