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춘 작가의 고단한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국내외 반응이 뜨겁다. 또한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쌈마이웨이>부터 <동백꽃 필 무렵>을 거쳐 <폭싹 속았수다>로 이어지는 임상춘의 세계는 일관되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폭싹 속았수다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아이유)은 제주 해녀의 딸로 자라났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엄마는 새아버지와 살면서 애순을 시댁에서 살게 했다. 그나마 그 집이 먹고 살기 때문이었는데, 그 곳에 얹혀 살던 애순은 어린 나이에도 사실상 식모 역할을 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엄마가 애순을 다시 데려가지만 그 엄마도 스물 아홉의 나이에 생을 등졌다. 결국 열 살 먹은 애순은 새아버지의 아이들을 돌보며 소처럼 밭을 일궈 양배추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본래 지긋지긋한 섬을 떠나 육지로 가서 대학도 가고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고단한 삶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을 계속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늘 애순 옆에 딱 달라붙어 그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관식(박보검) 같은 따뜻한 인물이 있어서다. 섬놈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애순은 관식과 결혼하고 드디어 행복을 느낀다. 시인이 되는 꿈은 접었지만 너무나 예쁜 아이들을 보며 애순은 후회하지 않는다. 관식 또한 마찬가지다. 운동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 무쇠 같은 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물론 아이가 사고로 죽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서로를 의지해가며 살아간다.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이런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흙수저 인생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애순과 관식 같은 인물은 사실상 6,70년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들의 쉽지만은 않았던 삶을 대변한다. 물론 제주라는 환경이 다르지만, 그 격동의 세월에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세대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것 없어 살 집 하나 얻는 것조차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야 가능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어 그 난관들을 뚫고 나왔던 그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지나고 나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고 나아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재가 그들의 고군분투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을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대단한 입지전적인 인물의 성공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범한 이들의 출세담도 아닌 평범한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가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인생 모험담으로 그려진다. 때론 쨍쨍 내리쬐는 햇볕처럼 아팠지만 때론 따뜻한 봄날의 행복도 겹쳐져 있던 인생 모험담.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임상춘 작가의 따뜻한 시선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이라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임상춘 작가의 일관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초다. <쌈마이웨이>에서 그 시선은 스펙이 없어 변방으로 밀려난 채 살아가는 흙수저 청춘들을 들여다 봤다. 아버지가 흙수저면 그 삶이 대물림되는 청춘들이 마주한 세상의 벽은 결코 넘기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변방에서 이들은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로 나서고, 뉴스데스크 앵커를 꿈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 데스크에서 일하는 최애라(김지원)는 방송국 대신 지방행사를 뛰고 격투기 전문 아나운서가 된다. 즉 <쌈마이웨이>는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쌈마이’ 취급 하는 세상 속에서 이 건강한 청춘들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마이웨이’를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외된 이들이 살아내고 버텨내는 생활 생존서사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늘 중심이 아닌 변방이 배경이다. <쌈마이웨이>가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을 그렸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그 곳에 어린 아들과 함께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공효진)의 삶을 그렸다. 외지인인데다, 예쁜 얼굴에 술집 운영을 하는 미혼모라는 동백의 배경은 편견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촌므파탈 용식(강하늘)의 동백에 대한 순애보는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 동백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용식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어진다.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등장으로 동네는 흉흉해지지만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의 연대는 이 위기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가장 힘겨운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꽃이 피어난다고 하던가.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 같은 편견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들에게 그 힘겨움이 ‘꽃이 피어나기 위한’ 고난이라고 위로해주는 드라마다. 

 

전 세계가 주목할 독보적인 임상춘 작가의 세계

<폭싹 속았수다>는 이러한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훨씬 깊어졌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제주 해녀의 삶을 토속적이면서도 거친 제주 방언의 특색을 더해 그 삶의 신산함을 드러내는 대목은 ‘문학적인’ 느낌마저 준다. 대사의 표현에서도 이런 면모들이 드러난다. “그러게 복어를 왜 건드려? 독으로 버티고 사는 걸.” 같은 대사로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낸다거나 “명치에 든 가시 같은 년” 같은 대사로 광례가 애순을 얼마나 애닳게 생각하는가를 표현해내는 점들이 그렇다. 

 

시인을 꿈꿨던 애순이 쓴 시들도 예사롭지 않다. ‘점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같은 기막힌 구절이 돋보이는 어린 애순의 시 ‘개점복’이나, 나이 들어 이제 시인의 꿈을 버린 지 오래지만, 백일장에 장사하러 나왔다가 애순이 쓴 ‘추풍’이라는 시도 그렇다. ‘춘풍에 울던 바람/ 여적 소리내 우는 걸,/ 가만히 가심 눌러/ 점잖아라 달래봐도/ 변하느니 달이요./ 마음이야 늙겠는가’ 나이 들어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애순이 봄날의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걸 담아낸 이 시에서는 어쩌면 임상춘 작가도 한때 꿈꿨을지 모르는 문학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번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는 점에서도 임상춘 작가에게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임상춘 작가는 줄곧 KBS에서 작품을 공개해왔다. 즉 어찌 보면 가장 로컬의 색채가 묻어나는 방송국에서 작품을 해왔던 셈이다. 임상춘 작가 특유의 끈끈한 가족 서사의 매력이 KBS라는 플랫폼과 어울려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은 최고 시청률 23.8%(닐슨 코리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를 통해 공개되는 <폭싹 속았수다>는 어떨까. 가장 로컬적인 콘텐츠가 글로벌할 수 있다는 걸 지금껏 증명해온 넷플릭스에 임상춘의 세계는 확실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공개 2주차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 비영어 부문에서 2위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칠레, 멕시코, 터키,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총 41개국에서 톱10 리스트에 랭크된 것. 제주를 비롯한 한국의 현대사 같은 낯설 수 있는 로컬 색깔들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 같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서사가 담겨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다. 

 

특히 소외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깊이있게 천착함으로써 그 삶을 위대한 모험담처럼 그려내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틀에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한바탕 씻김굿 같은 눈물을 통한 거대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세계가 주목할만한 작가의 탄생이다. (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나의 해방일지’, 손석구에 대한 추앙이 말해주는 것들

나의 해방일지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되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김지원)은 구씨(손석구)에게 뜬금없이 ‘추앙’이라는 단어를 쓴다.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 대사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붕뜬 느낌을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2회 말미에 ‘추앙’이라는 대사가 나온 후 2주가 지나 5회 정도에 이르자 이 대사는 어딘가 유행어처럼 될 조짐을 보인다. 적어도 “날 추앙해요”라는 말 한 마디로 <나의 해방일지>를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을 쉽게 구분할 정도다. 

 

추앙이라는 단어는 미정이 뱉어 놓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구씨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전으로 추앙이라는 단어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라는 뜻을 찾아보는 구씨. 그리고 뜬금없이 미정에게 “확실해? 봄이 오면 다른 사람 돼있는 거?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 돼있을 거라며?”하고 툭 던지는 말이나, “하기로 한 건가?”하고 미정이 묻자 “했잖아. 아까 낮에.”라며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갖다 주려 넓이 뛰기 선수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던 일을 말하는 구씨.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라는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인물이고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투, 말까지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 던지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이가 갑자기 온몸으로 보이는 ‘추앙의 행위’는 그 답답함을 일거에 날려 보낼 만큼 더 강력한 힘으로 터져 나온다. 

 

미정네 집 밭일과 공장일을 도와 주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멀리 걸어 나가야 있는 마트에서 결국은 술이 모자라 또 나가야 할 걸 알면서도 꼭 두 병씩만 사서 집에 돌아오는 사람. 그리고 홀로 평상에 앉아 산 저편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러려니 멍하니 그 비를 맞고 있는 사람. 이상하게도 마음이 측은해지고 ‘추앙’ 같은 비일상적인 단어도 막 쓰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구씨다. 

 

도대체 이 미스테리한 인물의 정체는 뭘까. 왜 박해영 작가는 이런 인물을 미정네 집 근처에 포진해 놓은 걸까. 미정을 추앙하는 몸짓으로 웅크렸던 날개를 펴고 날았던 일 때문에 창희(이민기)는 하루 종일 구씨 이야기를 한다. “오늘 날 진짜 뜨거웠거든? 머릿 가죽 다 벗겨지는 줄 알았거든? 인간 염창희 이렇게 고추 따다 뒤지는구나. 고추는 뭐고, 나는 뭐고, 태양은 뭔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구씨 뛰는 거 보자마자 그냥 정신이 번쩍 드는데...”

 

창희가 추앙하기 시작한 구씨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작은 변두리 마을에 자신을 가둬둔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구씨라는 인물 때문에 이 변두리 마을과 서울을 오가며 매일 가짜 행복과 가짜 위안에 지쳐가며 ‘채워진 적 없는’ 미정과 창희가 조금씩 변화해간다. 미정은 대뜸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고, 비 오고 천둥치는 날 그가 걱정되어 그를 향해 달려가기도 했다. 창희는 구씨의 비상으로 무력하기만 했던 삶에 작은 활기를 찾아내고, 집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구씨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눈빛이 반짝반짝하다. 

 

구씨라는 인물은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 있음으로써 그와 관계하는 인물들을 반추해내는 그런 존재처럼 보인다. 미정이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말하며 겨울이 오기 전 “어떤 일이든 해야 되고” 한 번은 “채워져야”한다고 말한 건 그래서 마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건 친구들에게 구씨 추앙을 늘어놓는 창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진짜 멋지고 싶다. 멋짐을 드러내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진짜 멋진 그런 삶을 꿈꾸는 것. 

 

물론 그건 구씨의 실체가 아니다. 구씨는 결국 변두리 마을로 숨어들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둬놓은 알코올중독자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방 한 가득 채워진 빈 술병이 그걸 말해주고, 어쩌다 뜨거운 물을 발에 쏟아 다쳤어도 별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오죽 무료하면 마트에 갔을 때 네 병을 사면 한 번만 가도 될 그 길을 굳이 두 병씩 나눠 사서 또 걷겠는가. 그는 마치 시간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데 그런 구씨에게 미정이 다가가고, 아무 조건 없이 “좋기만 한 사람”으로 구씨를 대하려 하면서 구씨도 변화한다. 주급을 받자 미정에게 문자를 보낸다. ‘돈 생겼는데 혹시 먹고 싶은 거. 나 구씨’라고. 그 추앙의 문자 하나가 미정을 웃게 만든다. 두 사람은 변두리 당미역에서 만나 흔한 돈가스를 별 대화 없이 먹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던 사람이 보내는 문자 하나와 함께 먹는 식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흔하게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말하는 그런 헛소리도 아니고 매일 의미 없이 보내고 맞장구치는 허망한 문자도 아니다. 온전히 ‘채워진 말이고 문자’일 테니.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 마음 속 한 구석에 무언가에 소외되거나 상처 입은 채 더 이상 달리거나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고 날개를 접고 있는 저마다의 ‘구씨’가 있는 지도 모른다. 가짜 위로와 가짜 행복 속에서 허망한 말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들을 버텨내며 꾹꾹 봉인해 뒀던 구씨.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구씨를 찾아내게 하고 추앙하게 함으로써 그 답답한 곳으로부터 해방해주라 말하고 있다. “날 추앙하라”는 말은 그래서 타인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저 거짓 속에서 함부로 대해왔던 스스로를 추앙하라고.(사진:JTBC)

‘나의 해방일지’, 흰자의 삶에 대한 박해영표 위로

나의 해방일지

“넌 그냥 딱 촌스러운 인간이고, 난 그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경계선 상의 인간이고.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라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창희(이민기)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이유로 경기도에 살아가는 자기 삶의 환경을 이야기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계란 노른자와 흰자로 비유해 말하는 대목이 웃음을 준다. 그런데 그 뒤에 어딘가 짠한 페이소스 같은 게 남는다. 이건 대체 뭐지?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남쪽 수원 근처 산포(가상의 지명이다)라는 곳에 살아가는 창희, 미정(김지원), 기정(이엘) 남매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사실 어느 정도는 과장이 들어가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건 너무나 공감가는 대목도 있지만, 서울의 변방에 살아가는 이들이 처한 상황들을 <나의 해방일지>는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먼저 채워 넣는다.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 하루가 다 가는 이 흰자의 삶 때문에, 미정은 회사에서 지원하는 동호회 하나 들지 못하고 회식에 가서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유는 하나. 집이 너무 멀어서다. 기정은 출퇴근 하다 인생이 끝장날 것 같은 답답한 삶을 토로한다. 만나자는 남자가 약속장소를 삼청동으로 잡는 것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정을 힘들게 한다. 경기도민이 주말에 서울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냐며 그런 인간을 소개시켜준 이를 질타한다. 

 

창희가 다른 남자가 생긴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꺼내놓은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 흰자의 삶이 준 고충이 담겨있다. 강북에 사는 여자친구 때문에 헤어지고 집에 가는데 매일 1시간 반이 걸렸다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갑자기 서울과 경기도, 도시와 촌스러움으로 나뉘는 노른자와 흰자의 삶이 애인과 남친이라는 지칭의 차이로까지 등장해 감정을 건드린다. 결국 창희는 “그 놈은 서울 사람이냐?”는 자격지심 가득한 말까지 터트린다. 

 

박해영 작가가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로 기억되는 작가. 그런데 박해영 작가가 코미디도 이렇게 잘 썼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해방일지>는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채워진다. 그 웃음은 도시인들에게는 로망으로까지 여겨지는 전원생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가져온 데서 비롯한 것들이다. 

 

서울에서 양복 챙겨 입고 멀쩡하게 일하던 이 삼남매가 택시비를 아끼려고 강남역에서 만나 같이 택시를 타는 광경이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 한 편에 있는 수돗가에서 웃통을 벗어던지고 물을 끼얹는 창희의 모습이 그렇다. 주말에 전원생활을 즐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하는 파 농사로 땀에 절어 일을 하는 모습은 또 어떻고. 박해영 작가는 코미디도 잘 쓴다. 

 

그런데 이러한 흰자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건 단지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경기도민이라는 지역이 가진 소외감이나 고충을 드러내기 위함만이 아니다. 그건 어떤 걸 중심으로 세워두고 그것이 마치 바람직한 인생인 양 내세워지는 세상에서 그 바깥에 놓여진 이들이 겪는 소외를 말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그 소외 속에서 답답하고 그렇게 살다 인생을 다 보낼 것 같은 불안감에 빠져 있다. 

 

그런 소외는 단지 지역적 차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물론 우리나라는 지역이 그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회사 생활에서 동호회 같은 것에는 관심 없는 아웃사이더이거나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모두가 거치는 걸 자신만 빼놓고 지나는 일을 겪는 누군가에게서도 생기는 일들이다. 즉 창희, 미정, 기정은 본인들이 경기도민으로 흰자의 삶을 살아가는 소외를 겪고 있다 느끼지만, 그 집에서 일을 해주며 살아가는 구씨(손석구)는 이들보다 더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일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그는 할 일이 없을 때는 멍하니 깡소주를 까는 걸로 시간을 죽인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래서 이렇게 소외된 이들이 그 답답한 일상을 버티다 버티다 드디어 폭발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결국 모종의 무언가를 터트리는 이야기다. 2회의 마지막에 미정이 집으로 돌아가던 그 챗바퀴의 마지막 발길을 되돌려 갑자기 구씨(손석구)에게 다가가 “날 추앙해요”라고 어색한 단어까지 동원해 얼토당토한 제안을 하는 건 그래서 우스우면서도 짠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거나 심지어 관심 갖지 않는 것 같은 소외 속에서 미정은 자기보다 더 바깥에서 살아가는 구씨에게 명령하듯 그런 말을 던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웃음과 눈물,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나의 해방일지>는 흰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점점 다가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이 왈칵 우리 앞에 쏟아진다. 과연 이 변방에서 흰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곳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해방은 과연 노른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진정한 해방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는 걸까. 웃기지만 짠한 페이소스가 가득한 박해영표 희비극이 가진 매력이다.(사진:JTBC)

'괴물', 신하균에서 이규회·천호진까지 모두 괴물로 만든 건

 

모두가 괴물 같다. 아마도 범죄 스릴러에서 누가 범인일까 하는 건 가장 중요한 드라마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괴물처럼 보이는 드라마다. 그건 그만큼 이 범죄 스릴러의 동력이 멈추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처음에는 이동식(신하균)이 괴물처럼 보였다. 20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거의 미쳐버린 형사. 마침 외사과에서 만양파출소로 내려온 이 자그마한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주원 경위(여진구)는 이동식을 범인이라 끝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의심이 맞는 것처럼 이동식이 실종된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의 잘려진 손가락 열 개를 슈퍼 앞 평상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러니 이동식이 괴물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드라마는 이내 강민정을 죽인 범인이 그의 아빠인 강진묵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지만, 그것이 강진묵을 통해 그가 숨겨 놓은 사체를 찾으려는 이동식의 큰 그림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결국 연쇄살인을 벌이고 사체들을 곳곳에 묻어버린 괴물이 바로 강진묵이었다는 게 확실해진다.

 

하지만 16부작 드라마에 고작 8회 만에 괴물이 밝혀졌다는 건 어딘지 찜찜함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범인은 강진묵만이 아닌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게 그가 자살하며 남긴 '유연이는 아니야'라는 글귀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리고 강진묵이 20년 전 집을 나간 아내 윤미혜를 찾아다녔고, 그가 찾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같은 윤미혜의 친구인 방주선은 물론이고 업소에서 일하던 많은 여자들을 죽였다는 걸 알아낸다. 그가 강민정을 죽인 것도 2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윤미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던 그를 민정이 자극했고 결국 살해하게 된 것.

 

이렇게 보면 강진묵이라는 인물의 연쇄살인은 아내 윤미혜와 관련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이동식의 여동생인 유연이는 아니라며, "유연이는 내가 너한테 돌려줬거든.."이라는 말은 또 다른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강진묵이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동식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집 벽 속에서 유연이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살하게 된 강진묵을 방조한 혐의로 남상배 파출소장(천호진)이 긴급체포된다. 강진묵이 암시한 또 다른 범인이 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강진묵이 자살하던 날 누군가 유치장을 찾아와 그에게 낚시줄과 윤미혜의 시체 검안서를 건네줬고, 그 날 남상배가 그 곳에 들어가는 걸 유재이(최성은)는 목격한다.

 

한 걸음 뒤편에 있었지만 남상배는 어딘가 이상했던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이동식이 슈퍼 평상 앞에 잘려진 손가락을 놓는 장면이 찍힌 CCTV를 지웠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숨겨진 과거는 유재이의 모친이자 실종된 한정임의 첫 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가 숨겨진 또 다른 범인일까.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 같이 괴물처럼 보이고 무언가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 범죄스릴러를 끝까지 쫄깃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괴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저마다 실종된 이들을 애타게 찾는 인물들이다. 유연이를 20년간 찾아온 이동식은 물론이고, 연쇄살인범이었던 강진묵도 집 나간 윤미혜를 20년간 찾아 헤맨 인물이다. 그리고 아마도 남상배 역시 사라진 첫사랑 한정임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실종된 인물을 수십 년 간 찾아 헤맨 자들이라는 상황은 이들의 이상한 행동들조차 납득하게 만든다. 저 정도의 절박함이라면 저런 '미친 짓'도 하게 될 것이라는 공감이 생기는 것. 그래서 <괴물>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괴물 같은 느낌을 주고, 그것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괴물>은 이런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이 낙후되어 있는 변두리라는 공간과, 심지어 사람이 계속 실종되어도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공간의 쓸쓸함과 소외가 어떤 괴물들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개발, 부동산 같은 투기적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땅 속에 사라져버린 사체들이 나온다는 건 그래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은유처럼 읽힌다. 거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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