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씨남정기> 윤상현, 찌질하다고? 인간적이다!

 

처음에는 그저 찌질한 하청업체 샐러리맨처럼 보였다. 사장과 함께 영원한 갑인 황금화학 김상무(손종학)의 접대를 나가고, 필요하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조아리면서 헛된 접대성 웃음을 날리는 그가 아니었나. JTBC <욱씨남정기>의 남정기(윤상현) 과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적어도 옥다정(이요원)이라는 본부장이 새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하지만 옥다정이 오면서 그는 조금씩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자체 브랜드 생산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을 그다. 영원히 황금화학의 을로서 하청업체가 해야될 일들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을 그다. 하지만 러블리 코스메틱이 늘 취하고 있던 을의 입장을 옥다정이 과감하게 내팽개쳐버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하청이 끊어지는 것이 회사가 망하는 길이라고 여겼던 그지만 이제는 자신의 주 업무인 자체 브랜드 개발에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그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옥다정의 지휘아래 토닥토닥세럼을 개발해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고 이어 색조화장 세트, 립스틱까지 만들어내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사실 애초에 옥다정이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오겠다고 마음 먹게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건 바로 러블리 코스메틱의 제품의 질이 우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러블리 코스메틱의 가장 큰 경쟁력이란 남정기 과장 같은 어찌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지만 고집스럽게 제품의 질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인물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만 하청업체라는 입지 때문에 그 가치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게다가 그는 자신이 망가질지라도 자신의 부하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따뜻한 상사다. 새로운 제품 콘셉트 기획안이 유출된 것에 대해 박현우(권현상) 대리가 그런 것 아니냐며 몰아세우는 신팀장(안상우)에게 소심한 그가 책임을 져도 제가 질 테니까 함부로 제 부하 직원한테 손대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사실 남정기 같은 과장은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크게 비전은 보이지 않는 그런 인물. 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야망은 아니고, 성공하고픈 욕구가 있지만 그렇다고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또 갑질하는 회사의 접대가 죽을 듯이 싫지만, 그것이 회사의 입장이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해내는 인물.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샐러리맨의 전형처럼 보이는 인물이 남정기 과장이다.

 

하지만 <욱씨남정기>는 이렇게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가 꿈꾸지 못하고 비전을 보이지 않았던 건 그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발현시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접대도 감수했지만 사실 그가 진정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일은 혼자 다 해도 티는 잘 나지 않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남정기 과장에게 박현우는 화가 나 남과장님 같은 꼴이 되기 싫다고 말한다. 그럴 법 하다. 회사에서 부하직원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미래란 바로 위 상사의 현재다. 남정기 과장의 드러나지 않는 가치에 박현우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 얘기까지 듣는 남정기지만 그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혼자 밤샘근무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잘할게. 선배로서, 어른으로서라며 부하직원인 박현우를 다독인다.

 

뒤에서 힘든 일 다 하는데 생색은 다른 사람이 내고. 화 안 나냐라고 묻는 박현우의 질문은 아마도 시청자들이 하고픈 말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남정기 과장은 남이 날 알아주든 몰라주든 그건 중요한 게 아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날 인정해주는 일 아닐까라고 답한다. 물론 이런 교과서적인 답변은 현실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답변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왜 이런 지극히 당연해야할 답변이 비현실적인 답변처럼 여겨지게 된 걸까. 남정기 과장 같은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하며 부하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샐러리맨들이 성공하는 그런 현실은 요원하기만 한 걸까.

<욱씨남정기>의 갑질들, 현실적이라 더 슬프다

 

갑의 권력을 이용한 각종 갑질들. 그 갑질에 의해 몸도 마음도 상처 입는 을들. 하지만 갑질은 갑을관계에 놓인 회사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같은 회사로 심지어 늘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 안에서도 갑질이 벌어진다. JTBC <욱씨남정기>가 보여준 계약직 여직원 장미리(황보라)에게 정규직 평가를 내리는 위치에 있다는 권력을 이용해 접대자리에 데리고 나가 술을 따르게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하는 신팀장(안상우)의 이야기가 그렇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러블리코스메틱이라는 회사에 대외적으로 늘 갑질을 해온 황금화학의 김환규(손종학)상무가 있었다면 신팀장은 마치 러블리코스메틱의 리틀 김상무 같은 존재다. 밖에서 당하는 갑질은 그나마 안에서의 위로와 격려라도 받지만, 안에서 당하는 갑질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비참한 일이다. 신팀장이 장미리에게 성추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입을 열지 못하는 박현우(권현상)는 사내에서 벌어지는 갑질이 왜 더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술자리로 불러내 겁탈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사건들은 예외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눈에 띄는 사건이 아니라도 부지불식간에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접대나 성희롱의 사례들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일 게다. 많은 이들이 그런 피해를 당하면서도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넘기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남정기(윤상현)와 조동규(유재명) 사장이 소셜커머스 업체의 담당자에게 자신들의 배너를 좀 더 위쪽에 배치해달라고 청탁하며 벌이는 접대와 향응은 또 어떤가. 그것은 남성들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만일 그들이 여성들이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엄청난 희롱과 폭력의 현장이라는 게 그 실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죽을 듯이 술을 마셔대고 갑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그 익숙한 장면은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라 슬프다.

 

러블리코스메틱의 옥다정(이요원) 본부장이 접대없이 영업을 하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게 된 건 스스로도 그토록 했었던 접대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걸 몸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정기와 조동규가 접대하는 그 담당자는 같은 시간에 김상무와도 자리를 함께 하는 더블 접대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 이것도 극화된 내용일 수 있지만 이건 아마도 실제 현실일 게다. 경쟁사들의 경쟁적인 접대자리를 갑들은 이리저리 옮겨가며 받아왔을 테니.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 원리원칙을 추구하고 모든 갑을관계에서 관행처럼 벌어져온 갑질과 을의 행태들을 부정하는 캐릭터인 것은 거꾸로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옥다정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이다로 느껴지는 건 그것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고구마 현실 때문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욱씨남정기>는 코미디지만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옥다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속 시원한 한방을 선사하지만 그것이 지목하는 일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남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옥다정 같은 원리원칙이 상식이 되는 현실은 요원할까. <욱씨남정기>가 웃음 끝에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적지 않다

현실보다 판타지, 드라마 속에서라도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는 대놓고 을의 판타지를 다룬다. 이 드라마에서 남정기(윤상현)란 인물은 을의 대명사격인 캐릭터. 러블리 코스메틱이라는 하청업체의 과장인 그는 일상이 갑질인 황금화학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주문을 해놓고는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심지어 거래를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 이유는 관행’. 하청업체 길들이기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욱씨남정기>의 장르적 기조는 코미디다. 갑질에 한없이 망가지는 남정기 과장의 모습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깊은 슬픔이 깔려 있지만 드라마는 이를 우스운 캐릭터로 그려낸다. 따지고 보면 미생도 이런 미생이 없지만 <욱씨남정기><미생>이 그렸던 처절하기까지 한 직장 생존기를 눈물보다는 웃음의 방식으로 풍자해낸다.

 

게다가 <욱씨남정기>는 옥다정(이요원)이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을 통해 갑을 관계를 뒤집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황금화학 김환규(손종학) 상무에게 사우나까지 찾아가 오히려 거래를 끊어버리는 그녀다. 이건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답답한 고구마 같은 세상에 잠시 동안이지만 느끼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 최근 드라마들은 <미생> 같은 처절한 현실을 담기보다는 잠시 동안의 판타지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역시 그 이야기의 액면만 놓고 보면 기막히게 슬픈 현실 정서가 깔려 있다. 죽어라 일만 하다 죽은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그가 죽지 못하고 다른 몸으로 역송하는 까닭은 그 죽음마저 자살로 덮어버리는 현실의 비정함 때문이다. 그는 돌아와 남은 가족들을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려주려 한다. 이 얼마나 쓰디쓴 현실을 담아낸 비극인가.

 

하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죽었다 살아온다는 그 설정 자체가 희극이다. 다른 몸으로 살아난 인물들은 달라진 몸 때문에 한바탕 희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한다. 심지어 여자의 몸으로 되살아난 인물이 겪는 성 정체성의 혼돈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코미디 요소다. 게다가 이렇게 되살아난 아저씨의 몸은 다름 아닌 꽃미남에 조각 몸매에 심지어 회장 아들이다. 그가 남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나, 회사의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은 한 마디로 통쾌한 판타지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왜 비극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이토록 판타지에 더 몰두하는 걸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은 현실이 이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는 반증이다. 적어도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그 현실의 무게를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비극적 현실을 가져오지만 그것을 희극을 통해 풍자하거나 혹은 통쾌한 판타지로 그려내는 것일 게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를 보면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태양의 후예>는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과 테러리즘 같은 심각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 분량은 극히 적다. 위협적인 현실의 무게감에 매몰되기보다는 금세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슈퍼히어로의 판타지와 달달한 멜로로 달려간다.

 

물론 그렇다고 대중들이 현실을 잊고 판타지에 빠져버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더 처절하게 현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위로나 위안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나 <돌아와요 아저씨>의 이해준(정지훈) 같은 사이다 캐릭터에는 그래서 이 현실에 치인 대중들의 다친 마음들이 어른거린다. 잠시만이라도 그 현실을 탈출하고픈

시청률 급상승 <욱씨남정기>, 그 중심에 선 이요원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1.0%(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급상승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욱씨남정기>3회 만에 2% 시청률을 넘겼고, 화제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얼음공주에서 멋진 마녀로 돌아온 사이다녀 이요원이 있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사실 어찌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그리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드라마다. 아예 대놓고 갑질 하는 세상의 을들을 위한 사이다 드라마라고 표방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영원한 을의 입장에 서 있는 하청업체 러블리 코스메틱 사람들이 갑질 하는 황금화학과 맞서 나가는 얘기를 다룬다.

 

하지만 황금화학 팀장이었던 옥다정(이요원)이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들어와 을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지금까지 관행처럼 해온 황금화학의 갑질 행태들에 사이다를 날리는 대목이 시청자들의 정서를 저격한다. 늘 하청업체로만 살아왔던 러블리 코스메틱이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당당하게 서는 모습만큼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대목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손종학)가 벌이는 갖가지 갑질들이 있지만 그래서인지 이 러블리 코스메틱이란 회사의 일에 시청자들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지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옥다정이라는 인물에 이요원을 캐스팅한 것에서 드러나듯 이 드라마는 캐스팅의 묘가 빛난다. 이요원이 어떤 이미지의 배우인가. ‘얼음공주라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아닌가. 그런데 이 차가운 면이 을의 입장에서 러블리 코스메틱을 일으켜야 하는 본부장 역할로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

 

사실 갖가지 황금화학의 갑질 행태 앞에 일일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맥 빠지는 리더의 모습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옥다정은 그럴수록 더 표정이 냉정해지고 심지어 사우나 하는 김상무를 찾아가 황금화학과 앞으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사이다 발언을 할 때는 살벌할 정도로 차가운 면을 드러낸다. 그 냉정함이 을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흡족하고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은 남녀의 위치가 바뀐 이른바 츤데레의 느낌마저 준다. 남정기(윤상현)의 아들 우주(최현준)가 핍박받는 아빠를 위해 복수하겠다며 옥다정의 집 문에 바보라고 적었다가 머찐 바보로 고쳐 적어 놓자 꼬마에게 옥다정이 한글 떼기 책을 선물하는 대목이나, 우주가 아프다고 하자 야근을 자청하는 남정기를 빨리 퇴근시켜주는 대목에서는 이 냉정한 옥다정이 사실은 이름처럼 정이 많은 인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

 

우리에게 이미 <미생>의 마부장으로 악명 놓았던 대표적인 개저씨손종학을 캐스팅해 갑질하는 황금화학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세워놓은 것도 적절했고, 늘 당하는 입장에서 한없이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는 윤상현의 캐스팅도 그 어떤 배역보다 잘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욱씨남정기>는 물론 대작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건드리고 있는 정서는 지금의 대중들이 갈증을 느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옥다정과 그녀가 이끄는 러블리 코스메틱 사람들이 갑질에 대항해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보여주는 것. 참 단순해보여도 이 정면승부가 주는 정서저격의 힘은 의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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