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시스템과 충돌하는 버스커버스커의 행보

 

지금 현재 가요계에서 버스커버스커는 대단히 이질적인 존재다. 이것은 그들이 <슈퍼스타K>를 통해 알려지고 1집을 발표한 후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 자체부터가 그렇다.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의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윤종신이나 이승철 심사위원이 이들을 혹평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음이 잘 올라가지 않는 장범준에게 가창력에 대한 지적이 계속 이어졌고, 버스커버스커만의 특징은 비슷한 패턴의 반복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자력으로 생방송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버스커버스커(사진출처:CJ E&M)'

당시 톱10에 올랐던 예리밴드가 <슈퍼스타K>의 시스템에 반발해 무단이탈하는 사건은 그러나 버스커버스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었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 후 예리밴드는 밴드 오디션이었던 <톱밴드2>에 나갔지만 이슈만 만들었을 뿐 그다지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반면 <슈퍼스타K>의 생방송 무대에 오르게 된 버스커버스커는 의외의 매력을 드러내며 톱2에까지 오르는 성과를 만들었다. 또 <슈퍼스타K>가 끝난 후 발표한 1집은 작년 한 해 내내 차트에 오르며 우승을 차지한 울랄라세션을 압도했다. 올해 들어 발표한 2집 역시 1집과 비교해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걸까.

 

버스커버스커의 이 이례적인 변칙 성공사례는 분명히 달라진 대중들의 어떤 기호를 반영하고 있다. 고음처리가 안되는 장범준의 가창력이나 전문가들에게 비슷한 패턴의 반복으로 평가되던 그들의 노래는 기존 가요계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되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고음을 얼마나 높게 올릴 수 있는가가 마치 그 가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오인되던 <나는 가수다>풍의 시선이나, 춤과 끼를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그 가수의 화려함을 드러내주던 기존 기획사 아이돌 풍의 시선에서 이들은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 전문가들이 지적하던 단점은 그들의 개성이 되었다.

 

사실상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드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에서 비롯된다. 완벽하게 모든 걸 구사하는 이들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어느 한 구석 비어있는 이들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버스커버스커가 기존 가요계의 완벽주의가 가진 숨막힘에 하나의 숨통을 터준 부분이다. 버스커버스커의 1집 성공 이후, <슈퍼스타K>의 정준영이나 <K팝스타>의 악동뮤지션 같은 개성강한 신예들이 주목받게 된 것은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

 

버스커버스커가 최근 들어 무수한 잡음을 내고 있는 것은 이들의 행보가 기존 가요계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발표하고 콘서트를 통한 직접 대면만을 고집하는 방식. 게다가 그 흔한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들의 방식은 대중들에게는 대단히 참신한 것이지만 기존 가요계 시스템에서는 심지어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버스커버스커가 만일 이 행보로 확고한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이끌어낸다면 그것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는 관리의 문제가 발생한다. 버스커버스커의 브래드가 노이지에 인터뷰한 내용이 대서특필되고, 김형태가 일베논란을 겪거나 <은교>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그 과정들은 이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밴드가 기존 가요계 시스템과 생기는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이다.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고 완벽히 짜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조금은 자유롭게 활동함으로써 논란도 발생하지만 여전히 인기도 있는 이들은 그래서 기존 가요계 시스템에서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수한 논란이 쏟아지면서도 버스커버스커에 대한 인기가 여전한 이유 역시 이들이 보여주는 아마추어리즘의 힘에서 발생한다. 즉 아마추어리즘이란 프로처럼 완벽한 관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 역시 순수함에서 비롯된 실수 정도로 여겨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시스템 안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시스템이 너무 오랫동안 공고하게 유지되어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진입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은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번 <슈퍼스타K5>의 출연자들이 실력에 있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결과는 훨씬 후에 나타날 수 있다. 버스커버스커처럼 본인이 갖고 있는 단점들마저 개성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기존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단점을 잘라내 버려 개성이 잘 안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또 다른 매력을 대중들에게 선사할 수도 있을 게다. 버스커버스커는 그래서 현 가요계에 대단히 불편한 존재지만 기존 틀에 묶인 가요계 시스템에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댄싱9>, 여타의 오디션과 다른 차별점은?

 

현대무용이 이토록 멋진 춤이었던가. 남성 발레의 그 역동적인 힘은 또 어떻고. 그저 춤이라고 하면 걸 그룹들이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맞춤형으로 갖고 나와 추던 걸로만 생각했던 이들에게 <댄싱9>은 춤의 신세계를 열어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브레이크 댄스에서 스트릿 댄스, 발레, 스포츠 댄스, 탭댄스, K팝 댄스 심지어 고전무용까지... 이 땅의 춤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을 한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험적이면서 가슴 떨리게 만드는 기획이다.

 

'댄싱9(사진출처:mnet)'

현대무용을 하는 이선태가 특유의 부드러운 동작 속에 강인한 면을 섞어 강온 양면의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마스터들을 매료시켰다면, 댄스스포츠 선수로 유명한 배지호는 골반 돌리기와 현란한 스텝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고전무용을 하는 김해선이 우리 춤이 가진 우아하고 절제된 선을 선보인다면, 크럼프를 추는 음문석은 근육질의 몸에서 나오는 힘을 춤에 맞춰 한껏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댄싱9>의 무대가 놀라운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선입견으로 자리한 여러 장르의 춤들을 재발견시켜준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무용이나 발레, 고전무용은 대중성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춤들이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는 춤꾼들이 춤을 추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언감생심이고 현실에 부딪쳐 춤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여겨질 정도.

 

그래서 미소년의 얼굴로 싱긋 웃으며 현대무용을 선보이는 한선천의 춤 동작에서 묻어나던 어떤 절제된 아픔은 고스란히 그걸 바라보는 마스터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고, 격렬한 춤동작으로 바지가 찢어졌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춤을 추는 뮤지컬 배우 문예신에게서는 그 절절한 열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항간에는 <댄싱9>이 <슈퍼스타K>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노래가 춤으로 바뀌어졌을 뿐, 참가자들의 때론 감동어린 스토리와 때론 자극적인 연출이 비슷하다는 것. 하지만 노래를 춤으로 바꾼 바로 그 지점부터가 다르다. 노래는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춤은 보는 것에 더 집중한다. 노래가 목소리가 주는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지만 춤은 몸이 표현하는 아름다움과 감정에 매료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은 <댄싱9>이 설혹 <슈퍼스타K>와 비슷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구사한다고 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단순한 오디션이 아니라 레드윙즈와 블루아이로 구성된 팀을 나누어 대결하는 방식도 새롭다. 마지막 9초에 빨리 키를 돌리는 팀이 참가자를 데려올 수 있는 방식은 팀 대결을 더욱 집중하게 만들고, 상대방 팀이 뽑은 참가자를 데려올 수 있는 마스터키 제도는 이 대결에 치열한 두뇌싸움을 만든다. 너무 좋아서 섣불리 뽑아오다가는 바로 마스터키로 인해 상대방 팀에게 기대주를 빼앗길 수 있게 되는 것.

 

엠넷 신형관 국장은 “3회부터 공개될 전지훈련에서는 자기 분야가 아닌 춤을 즉석에서 소화해내야 하는 미션 등이 소개될 예정이라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국장의 말대로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됐던 춤이 어느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그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춤의 종목은 달라도 그것이 결국은 모두 몸으로 표현된다는 그 한 가지의 믿음 때문이다. 몸으로 엮어지는 춤의 공감대가 자못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사실 몸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직까지 예민하지 못하다. 그저 춤이 흥겹다는 것을 알뿐 그 묘미가 어떻게 생겨나는 지는 춤의 영역에 있는 이들을 빼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때로는 교육적인 기능도 담당한다. 물론 그 교육은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다. 과거 <슈퍼스타K>가 좀 더 노래를 즐길 수 있는 대중들의 귀를 만들어주었다면, 이제 어쩌면 <댄싱9>은 좀 더 몸이 전하는 아름다움, 즉 춤을 즐길 수 있는 대중들의 눈을 만들어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었다.

로이킴 논란, 무엇이 불씨를 키웠을까

 

<슈퍼스타K>의 최고 전성기는 허각이 배출됐던 시즌2다. 당시 친숙한(?) 외모에 환풍기 수리공으로 생활하며 노래를 부른 허각은 <슈퍼스타K>, 아니 오디션 프로그램의 아이콘이 되었다. 단지 오디션 우승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로이킴(사진출처:CJE&M)'

그로부터 2년 후 <슈퍼스타K> 시즌4가 배출한 로이킴은 여러모로 허각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잘 생긴 외모에 모 주류업체 대표 아들이라는 배경, 유학파에 누가 봐도 매너있어 보이는 신사 이미지 그리고 심지어 노래까지. 게다가 로이킴은 작사 작곡 능력까지 선보이며 작년 오디션 프로그램의 화두라고도 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 이미지까지 갖고 있었다. 허각이 서민들의 동일시 대상이었다면 로이킴은 로망이었던 셈.

 

실제로 로이킴은 ‘봄봄봄’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바람을 일으켰다.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이 곡은 컨트리풍에 ‘-소’로 끝나는 옛 어투를 구사하는 것으로 그가 갖고 있는 폭넓은 세대에 걸친 팬덤을 겨냥하고 있었다. ‘봄봄봄’은 싸이와 조용필이 본격 활동을 벌이던 시기에 음원차트와 각종 음악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발표와 동시에 표절 논란의 불씨가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도입 부분은 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후렴구는 노르웨이 밴드 아하의 ‘테이크 온 미’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로이킴측은 ‘고 김광석을 가장 좋아했던 로이킴이 그분 음악을 베낄 수 있겠느냐’며 ‘공식대응이랄 것도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사실 이 초창기 불씨에 대해서 로이킴측이 조금 더 신중하게 대처를 했다면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까지 불거지지는 않았을 수 있다. 너무 쉽고 단순한 일로 치부했던 것. 하지만 이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로이킴이 콘서트에서 언급한 장범준 코멘트로 인해 다시 불이 붙었다.

 

“버스커 버스커 장범준이 곡 중간에 '빰바바밤'이라는 결혼식 축가 멜로디를 넣어 부른 걸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는데 비난을 많이 받았다. '축가'는 내가 작곡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면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장범준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이 코멘트는 아마도 표절이 아니라는 자신감의 표명이었을 것이지만 과한 발언이었고 결국 도화선이 되어버렸다.

 

어쿠스틱레인의 ‘Love is cannon’ 표절 논란으로까지 확산된 건 분명 이 장범준 코멘트가 만들어낸 후폭풍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에 어쿠스틱레인이 블로그에 적은 글이 안티 팬들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 하지만 일련의 논란에 대한 로이킴측의 대응도 적절치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싱어 송 라이터로 로이킴을 이미지 메이킹하던 차에 표절 논란이 나오자 공동작곡가 배영경씨가 언급되는 대목이 그렇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로이킴측의 대응이 지나치게 논리적인 주장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누가 먼저 발표했느냐는 선후관계를 따지거나 전문가 의견을 덧붙여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식은, 이 문제의 핵심인 ‘대중들의 정서적인 부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이다. 마치 표절이냐 아니냐가 핵심인 것 같지만 이 문제는 이미 그 진위공방의 사안을 넘어서 로이킴에 대한 정서적 반감의 문제로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만일 허각 같은 서민들과 동일시되는 인물이었다면 설혹 표절 논란이 나왔다고 해도 이 정도로 문제가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엄친아 이미지의 로이킴은 그것이 잘 유지될 때는 반짝반짝 빛나지만 어떤 작은 틈이라도 보일 때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것을 타블로의 사례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의 화려한 스펙이 모두 사실이지만 대중들이 믿지 않게 된 건, 정서의 문제를 팩트의 문제로 풀려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표절 논란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로이킴측은 아마도 이 문제가 거기에서 그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로이킴은 이 대중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표절 논란이 해결된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허각과는 정반대 이미지의 소유자, 로이킴에게 벌어지는 논란은 그래서 타블로의 경우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공인 강용석과 일반인 강용석

 

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자유칼럼그룹에 게재한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칼럼은 강용석이 방송으로 일종의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우리가 강용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정서를 갖고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썰전(사진출처:JTBC)'

혹자는 사적인 장소에서의 말 한 마디가 무슨 주홍글씨나 되느냐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문제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이 나왔던 장소가, 비록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였다고 하나 그것을 사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평소 친분이 있던 대학생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인이라는 공인으로서 대학생과 만남을 가졌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걱정이랍시고 아나운서 지망한다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일종의 ‘조언(?)’을 했던 것이다.

 

아나운서라는 특정 직업이 나왔기 때문에 아나운서 협회가 고소장을 냄으로써 이 문제만 불거졌지만, 사실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다른 이야기들은 이 땅의 여성들 모두가 불쾌함을 느낄만한 것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는 말이나, 청와대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여학생에게 “그 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면서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심지어 사석이라도 정치인이라면 내놓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2년 전 <개그콘서트> 의 '애정남'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최효종을 고소했을 때 마치 공공의 적처럼 강용석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던 것은 그런 행위가 어떤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자신의 대중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이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용석이 최근 방송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박상도 아나운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방송이라는 마법이 만들어낸 ‘잘못된 기적’처럼 보인다.

 

국민 비호감으로 전락해 정치권에서조차 퇴출된 인물이 오히려 방송가의 뜨거운 인물로 급부상한데는 그만한 이미지 변신 전략이 깔려 있다. 강용석은 먼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방송 이미지를 확보했다. <슈퍼스타K>에 출연해 오디션을 본 것은 그저 뜬금없는 행위가 아니었던 셈이다. 정치인으로서는 고소남으로 이미지화되었던 그는 방송인으로서는 지적질을 당하는 입장에 자신을 세웠던 것.

 

비호감 정치인은 스스로 대중들이 돌팔매질 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방송으로서의 입지를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그가 정치인으로서 변호사로서 갖고 있는 정보들은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의 MC들과 어떤 차별화를 만들었다. 늘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비슷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의 멘트들과는 다른 ‘전문적인 느낌’이 주는 신선함이 거기에는 있었다. 강용석 이미지의 마법 같은(?) 변신은 이처럼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방송이 가진 힘이 작용했던 것이다.

 

박상도 아나운서의 글은 그래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 글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는 걸까. 여기에는 그가 글에 호명한 ‘대중’이라는 글귀에 대한 서로 다른 정서가 들어있다. “이런 그의 행태를 보면서 ‘그냥 웃자고 한 말이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서 ‘도대체 대중이 얼마나 우스우면 저럴까?’하는 분노가 생겨납니다.” 여기서 박상도 아나운서가 하려는 말은 대중은 무섭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이 말은 강용석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급호감으로 바뀐 것에 대한 비판의 글들과 뒤섞여 정반대로 읽힐 소지도 있다.

 

즉 대중들이 강용석을 좋아하게 된 것에 대해 박상도 아나운서가 ‘우스운 대중’ 운운하며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박상도 아나운서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나쁜 이미지도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끌어와 포장하려는 방송이며, “사석에서는 이처럼 좋을 수 없다”는 일반인으로서의 강용석이 아니라 정치 일선에서 공인으로서는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인이라는 공인으로 서 있는 강용석에 대한 것이다.

 

물론 한 번 잘못하면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인에 대한 대중들의 허용은 일종의 정서적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방송인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일종의 자숙기간을 갖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강용석은 그런 기간이 없었다는 것.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쉽게 뒤집는 건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썰전>에서 허지웅은 “<썰전>이 강변호사한테는 <힐링캠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강용석 변호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의미도 들어 있다. 시청자들은 <힐링캠프>를 때로는 문제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프로그램처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 점이다. 박상도 아나운서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그래서 그저 강용석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작금의 방송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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