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곡보다 장범준 자체에 끌리는 이유

 

지금 음원차트를 들여다보면 버스커버스커에서 솔로로 데뷔한 장범준의 곡이 거의 차트 상위권을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어려운 여자’,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 ‘낙엽엔딩’, ‘주홍빛거리’, ‘내 마음이 그대가 되어등등 거의 전곡이 차트에 올라와 있다. 지난 25일 장범준의 이번 솔로 타이틀곡인 어려운 여자는 멜론, 엠넷, 올레뮤직,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벅스, 소리바다 등 총 8개 주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범준(사진출처:CJ E&M)'

특이한 건 버스커버스커 때도 그랬듯이 장범준이 방송에는 일절 얼굴을 내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음원으로만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여타의 아이돌들이 뮤직비디오는 물론이고 방송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신곡이 나올 때마다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처럼 더 장범준의 노래에 대중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놀라운 것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장범준의 곡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버스커버스커가 만들어낸 일종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벚꽃엔딩이후 장범준의 신곡이 무엇일까에 대한 기대감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그러니 노래가 무엇이 됐든 장범준이 곡을 내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중들의 관심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그 내놓은 신곡이 변함없는 장범준 스타일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는 건 대중들을 만족시키는 부분이다. 버스커버스커에서 독립해 나와 솔로 곡을 들고 왔지만 노래가 버스커버스커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건 그가 사실상 이 그룹을 거의 혼자서 이끌고 있었다는 걸 반증한다. 마치 산울림이나 송골매를 듣는 듯한 향수어린 사운드에 장범준 특유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경쾌한 듯 센티멘탈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는 장범준표 음악의 대표적인 특징들이다.

 

장범준이 내놓은 여러 곡들 중 특정 곡 하나가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전곡이 차트에 올라가는 이유는 우리가 그의 노래를 어떻게 듣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대중들은 이제 특정한 곡을 듣는다기보다는 그저 장범준을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무심한 듯 툭툭 던져 넣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얹혀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 가사가 주는 한가로운 정취는 장범준의 곡을 특정 가사나 특정 멜로디가 아니라 그의 곡 분위기 자체로 인식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물론 이렇게 되자 장범준의 곡들은 각각의 변별력이 크지 않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척 들으면 그것이 장범준의 곡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 각각의 곡의 제목을 대라고 하면 잘 분간이 가진 않는 건 그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가 장범준이라는 아우라에 압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별력이 크지 않은 곡들의 단점은 동시다발적으로 차트를 점령하는 그의 여러 곡들에 의해 오히려 장점으로 바뀐다. 여기저기서 장범준이 들리는 것이다.

 

가수로서 곡보다 더 그 가수의 목소리가 듣고픈 욕구를 만든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산울림이 그랬고, 송골매가 그랬으며, 조용필, 이선희 같은 목소리 자체가 매력인 가수들이 그랬다. 물론 장범준의 가창력은 그런 대형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창력만이 가수의 매력을 만들던 시대는 지나갔다. 목소리의 개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들의 마음을 이끄는 요즘, 장범준은 자기만의 독특한 노래의 분위기로 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우리는 어느새 그의 곡을 듣지 않는다. 장범준을 들을 뿐.

 

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과 소속사의 아마추어리즘

 

크레용팝의 핵심은 ‘아마추어리즘’이다. 흔히들 B급 정서로 표현하는 것. 하지만 B급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 콘텐츠 자체가 B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경쾌한 록 장르에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춤을 얹은 괜찮은 콘텐츠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기존 걸 그룹 시장에서 우리가 늘상 보았던 콘셉트들을 모두 뒤집었다는 데서 그 가치가 새로워진다. 완전체 걸 그룹과는 정반대 놓여있는 크레용팝은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면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걸 알 수 있다. 노래는 좋지만 이들의 가창력은 미지수고, 춤은 중독성이 있지만 그다지 테크닉이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외모나 스타일은? 헬멧에 트레이닝복을 입혔으니 이 부분은 아예 소속사가 안티인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아마추어적인 면들이 크레용팝의 인기요인이 되었다. 때때로 유명 아이돌 그룹에서도 종종 나오고 있는 ‘패션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대해 팬들이 ‘소속사가 안티’라며 발끈해 오히려 더 팬심을 높이곤 했던 것처럼, 크레용팝의 헬멧과 트레이닝복, 잘 드러나지 않는 가창력과 멋지기보다는 망가지는 춤은 팬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어딘지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보살펴줘야 할 것 같은 이 ‘빈 구석’은 팝저씨들이 탄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게다. 하지만 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이 허용되고 때로는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는 건 딱 여기까지다. 콘셉트가 B급이라고 매니지먼트도 B급일 수는 없다. 크레용팝에게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 여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단 알리고 봐야 한다는 갈급함에 커뮤니티의 성격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홍보마케팅을 밀어붙인 것에는 영세 기획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후부터의 좀 더 세심한 관리였다. 막상 크레용팝이 알려지고 나서 비상하는 단계에 발목을 잡은 건 달라진 위상에 걸맞는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베 논란이 계속 되고 있을 때,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점은 기획사의 매니지먼트로서는 아마추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다 광고까지 끊기고 나서(아니 하필 그 시점에) 일베와 선긋기를 시도하면서 공식입장을 발표한 것도 또 그 공식입장에 담긴 공감하기 어려운 해명들도 적절했다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난데없는 ‘선물 계좌 개설’ 발언이 또다시 논란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팬들로부터 선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를 받지 않겠다며 대신 계좌를 개설해 현금으로 받아 그것을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실용적인 판단으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발언이다. 게다가 좋은 곳에 쓰겠다는 취지 아닌가.

 

하지만 좋은 취지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순수한 의도가 곡해될 수 있다. 특히 ‘현금’이나 ‘입금’ 같은 단어는 자칫 엉뚱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이 발언은 ‘주겠다’는 내용보다 ‘받겠다’는 전제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결국 받아야 기부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런 발언에 대해 대중들이 찜찜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순수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발언 자체를 철회하고 사과했지만 왜 계속 이런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는 지 소속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크레용팝의 현재 발목을 쥐고 있는 것은 이들 신개념 아이돌과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콘텐츠가 아니라 오히려 소속사의 아마추어적인 관리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B급 정서를 갖고 있다고 매니지먼트까지 B급이어서야 되겠는가.

<슈스케4>, 정준영 스타일 vs 로이킴 스타일

 

<슈퍼스타K2>에 허각과 존박이 있었다면 <슈퍼스타K4>에는 정준영과 로이킴이 있다. 이들은 서로 라이벌이면서도 마치 형제 같은 훈훈한 느낌을 준다. 스타일도 완전히 상반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함께 서 있으면 서로를 부각시킨다. <슈퍼스타K>라는 서바이벌의 무대에서 형제애가 느껴지는 라이벌이 더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슈퍼스타K4'(사진출처:mnet)

어린 시절부터 해외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살아오다가 홀로 독립해 밴드생활을 해온 정준영은 4차원으로 여겨질 정도의 자유분방함과 심지어 귀차니즘이 느껴지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노래를 할 때는 록커 특유의 남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지만, 노래가 끝나고 던지는 “감사합니당-” 같은 멘트에서는 심지어 여성적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신발이 없어 슬리퍼를 끌고 다니고, 누군가 칠해놓은 페티큐어가 잘 어울리는 그는 중성적이다.

 

반면 로이킴 역시 해외에서 살아왔지만 정준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귀공자에 엄친아 같은 스타일. 어딘지 모범적일 것 같은 건전함이 묻어나지만 막상 경쟁의 무대에 서면 대단한 승부욕을 드러내는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다. 정준영이 그보다 형이지만 둘이 같이 서 있으면 어딘지 로이킴이 형인 것처럼 신사의 품격이 묻어나는 의젓함이 있다. 그는 부드럽지만 강한 남성성을 내면에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전혀 다른 두 스타일의 주인공들이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 서바이벌의 무대를 대하는 모습이 완전히 상반된다는 점이다. 로이킴은 오디션이라는 경쟁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와 거기에 잘 적응하면서 승부욕을 드러내는 편이라면, 정준영은 이 경쟁 시스템 자체를 비웃는 듯한 쿨함을 보여준다. 최종 관문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슈퍼스타K4> 특유의 밀당이 이어지다가 결국 합격 판정을 들었을 때 그는 “아 진짜 이 프로 이상해. 왜 이렇게 사람을...”하고 투덜대기도 했다.

 

싸이가 마치 정준영이 떨어진 것처럼 이야기를 몰고 가도 그는 엉뚱하게도 강남의 클럽에 가서 술 한 잔 사달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자 이내 “클럽 못가잖아요”라고 말해 싸이를 박장대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면 로이킴은 이승철이 굳이 이 길을 가지 않아도 더 좋은 길이 있다고 이야기를 몰아가자 자신의 열정은 누구보다 못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합격 판정을 받은 그는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뭐든 열심히 도전하고 성공해왔던 자가 가질 수 있는 구김살 없는 모습이었다.

 

로이킴과 정준영이 <슈퍼스타K4>를 대하는 태도가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마치 경쟁사회 속에서 그 경쟁 시스템을 대하는 우리네 두 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그 경쟁 시스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를 낸다면, 다른 한 사람은 그 경쟁 시스템을 무화시키는 행동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결국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로이킴과 정준영은 첫 서바이벌 무대에서 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로이킴이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통해 댄디하면서도 깔끔하고 단단한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줬다면, 정준영은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를 통해 거칠고 야성적이며 자유로운 그만의 록커 스타일을 드러냈다.

 

대중들이 로이킴과 정준영을 통해 보는 것은 바로 이 경쟁 시스템 속에서 이 서로 다른 대처방식과 스타일을 가진 그들이 어떻게 저마다의 성공스토리를 그려나가는가 하는 점일 게다. 물론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슈퍼스타K>라는 무대가 현실의 경쟁을 재현해내기는 하지만 그 위에 그려지는 건 대중들의 욕망이 담긴 판타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대중들은 어떤 스타일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할까. 이제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낸 로이킴과 정준영이 특히 주목되는 건 그 때문이다.

당당한 박기자, 왜 여자로 돌아갔나

‘스타일’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대한 논란은 초기부터 벌어졌다. 이서정(이지아)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수동적으로 그려지면서 심지어 ‘민폐형 캔디’라고까지 불려졌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박기자(김혜수).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서정의 성장드라마를 꿈꾸는 이 드라마는 초기 멘토이자 대립자로서 박기자를 세워두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한없이 박기자의 카리스마에 짓눌린 이서정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차츰 이서정이 박기자를 넘어서는(그러면서 닮아가는) 과정을 그려내야 드라마는 엣지있는 결말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서정이라는 캐릭터가 박기자를 넘어서기도 전에 삐걱거렸다는 것. 이서정은 물론 박기자의 카리스마를 넘어서기는 어렵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그 상황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것은 작가가 잘못 풀어낸 캐릭터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이지아의 문제이기도 하다. 캐릭터도 매력이 없고, 연기자도 그 캐릭터를 재해석해내지 못하자 이서정은 중심에서 밀려났다. 물론 이것은 이서정이라는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서정은 상대적으로 남성들을 통해 매력을 보여야 하는데,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 캐릭터들이 역시 매력이 없었다.

서우진(류시원)은 이 상업적인 바다에 던져진 ‘스타일’이라는 잡지의 세계에 와서 순수를 외치는 인물이다. “읽을 것 없는 잡지가 잡지냐”고 말하는 것은 물론 보편적인 먹물들의 사고방식이지만, 이것은 패션잡지다. 패션잡지는 읽는 것보다 보는 것, 그 보는 것을 어떻게 스타일있게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다. 서우진은 자신이 하고 있는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요리 스타일로 패스트푸드계에 들어가 훈계를 했던 셈이다. 게다가 이 인물은 훈훈한 듯 싶다가도 사람을 갖고 노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서정의 마음을 흔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결국에는 박기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식이다.

김민준(이용우) 역시 마찬가지다. 게이라는 설정은 그렇게 숨겨놓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드러내놓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했다면 김민준과 박기자의 관계가 쉽게 이해되었을 테고, 인물 관계도 보다 명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은 도무지 누구를 사랑하는지 또 왜 그런지 잘 이해가 가지 않게 그려졌다. 이처럼 이 드라마에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남성 캐릭터들에서 별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류시원이나 이용우는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캐릭터 선택의 잘못이거나 연기력 부족의 문제다.

이렇게 되니 이서정이라는 캐릭터는 고립무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성 캐릭터들이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지도 못하고, 박기자의 카리스마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결국 남은 것은 박기자라는 캐릭터의 독주 체제다. 여기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박기자가 중심이 되자, 그녀와의 대립각으로 손병이(나영희)가 세워지는 식이다. 박기자와 손병이의 싸움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사건이 되고, 박기자-서우진-김민준-이서정의 이야기는 간간이 섞이는 멜로가 되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박기자를 중심으로 세우려 했다면 말 그대로 엣지있게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결말이 보여주는 것은 이서정의 자리에 박기자가 서는 미완의 아쉬움이다. 이서정의 웨딩드레스를 박기자가 입는 것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다. ‘스타일’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두 가지 축의 이야기, 즉 직장 내에서의 권력의 충돌 속에서 어떤 멘토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기자와, 그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서정의 이야기는 이렇게 박기자 하나의 캐릭터로 봉합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박기자라는 당당한 직장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평범한 여자처럼 웃음을 짓는 장면이다.

물론 그렇다고 직장여성이 모두 결혼보다는 일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것은 드라마다. 스타일있고 엣지있던 박기자가 여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 드라마는 실로 맥이 빠져버린다. 어쩌다가 이런 결말에 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스타일’의 문제는 어느 한 부분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대본의 문제에서부터 연기와 연출의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빗나가버린 데서 생긴 결과다. 그토록 엣지를 부르짓던 ‘스타일’은 그렇게 엣지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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