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에릭, 우리가 원한 건 그의 정성일 뿐

 

느려도 너무 느리다. tvN <삼시세끼>의 에릭이 하는 요리 이야기다. 그의 요리가 이전 어촌편의 차승원과 확연히 다른 건 속도. 차승원은 재료만 확보되면 척척 요리로 만들어냈고, 그 과정은 심지어 다이내믹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능숙하다는 얘기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하지만 에릭은 다르다. 그는 요리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 듯이 아주 정성을 다하고 섬세하게 요리를 한다. 그러니 저녁 한 끼를 먹으려고 준비하는 과정만 7시간이 걸린다. 7시간 동안 만든 요리가 회 초밥 몇 점, 고구마튀김, 수육 그리고 그 육수로 만든 제주도식 돔베국수다. 일찍부터 준비했지만 새벽2시가 훌쩍 넘어서야 저녁을 다 먹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가 회 초밥을 만들기 위해 잡아온 물고기를 회치는 모습은 거의 정지화면에 가깝다. 이서진은 피곤한 몸을 뉘여 한 잠 자고 일어났지만, 그 때까지도 에릭은 정성을 다해 회를 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칼을 놀리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장인 같지만 성격 급한 이서진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무슨 요리를 해먹자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두려울 만큼.

 

그런데 막상 요리를 먹어보면 그렇게 투덜대던 이서진의 얼굴에도 보조개가 피었다. 만일 맛이 없었다면 한참 투덜댔을 그는 그래서 그런데 또 맛은 있어하며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힘든 건 제작진들도 마찬가지. 나영석 PD는 새벽에야 저녁을 먹는 모습을 찍다가 좀 빨리 먹어줄래?” 하며 자신들도 퇴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웃음을 주었다.

 

이런 모습은 이미 그 날 아침부터 일찌감치 예고되었다. 그저 간단한 것처럼 호박죽을 아침 메뉴로 선정했지만, 믹서기도 없는 마당에 그걸 하나하나 잘라내 솥에 끓여서 흐물흐물한 죽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이서진이 따온 고구마 줄기 반찬을 만들기도 했다. 아침을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에 먹게 되었지만 역시나 맛이 좋아 이서진은 흡족해 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점심 준비에 들어간 에릭은 이번에는 짜장밥과 백합탕을 선보였다. 서두르고 서둘렀지만 역시 짜장을 기름에 볶아 직접 짜장 소스를 만들고, 익어서 뚜껑이 벌어진 백합을 하나하나 꺼내 속살만 빼어내고 조개껍질만 다시 넣어 국물을 우려내는 식으로 정성을 다한 백합탕을 만드는 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막상 만들어놓은 음식에는 이서진은 물론이고 나영석 PD까지 그 맛에 반색했다. 마치 도둑처럼 훔쳐 맛보던 나영석 PD는 혼자 먹기 아깝다는 듯 스텝들을 불러 먹이기까지 했으니.

 

에릭의 요리가 느린 건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그는 미안했던지 방송이 끝나고 수산시장까지 가서 생선 회치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 요리에 대한 노하우나 지식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니 백합탕 하나 끓이는 데도 너무 조개를 오래 끓이면 질겨지기 때문에 조갯살만 미리 빼놓는 것이고, 조개를 넣고 끓일 때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삼투압 때문에 육즙이 다 빠져 나간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충대충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에릭의 요리다. 그래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맛은 더 깊어지는 것. 그의 요리를 보면 실로 정성이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하나하나 제대로 절차와 과정을 밟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요리의 맛을 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요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처럼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하수상한 시국에, 에릭이 한 끼를 만들어내는 그 정성스런 요리의 시간은 그래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능숙한 것도 아니고, 또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정성이다. 그 하나를 하는 것에 들어가는 마음. 느림보 에릭에게서 배워야할 그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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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어떻게 이 진부함과 황당함을 이겨낸 걸까

 

새로운 마블의 슈퍼히어로물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 스토리나 설정만 두고 보면 진부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잘 나가던 외과의사가 교통사고로 손을 다쳐 절망감에 빠지게 되고 육체적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몸을 정신 수련을 통해 고쳐내면서 엄청난 위기상황을 맞게 된 세상을 구원해내는 이야기... 일단 동양인이라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막연한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진부하고 황당한 스토리지만 관객들은 의외로 영화 속에 점점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사진출처:영화 <닥터스트레인지>

네팔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인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으로부터 수련을 받는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의 설정은 역시 그 무수한 쿵푸 영화의 한 대목을 잘라 붙인 듯한 느낌을 준다. 갖가지 마법을 부리는 방법들이 들어 있는 책들이 가득한 공간은 마치 무협지의 비급들이 숨겨진 공간처럼 그려지고, 그 곳을 지키는 도서관장인 웡(베네딕트 웡)은 진짜 소림사에서 갓 나온 듯한 모습이다. 스승인 에인션트 원을 배신하고 그 책들 중 중요한 마법의 한 장을 잘라내 도망치는 제자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와 또 다른 제자가 된 스트레인지가 대결 구도를 이루는 스토리도 역시 쿵푸 영화의 전형적 설정이다.

 

게다가 이들이 부리는 마법은 현실감을 갖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일종의 관문 같은 걸 만들어 이쪽 세상에서 갑자기 히말라야 꼭대기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중력의 세계를 무색케 만드는 전후좌우가 마음대로 뒤집어지는 마법을 부려 그 속에 있는 이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공간과 공간의 이동은 물론이고 시간까지도 멈춰 세우거나 뒤로 돌리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신에 가까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상상력의 무한 확장은 현실적인 무게감을 지워버릴 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상상력의 스펙터클은 관객의 시선을 매료시킨다. ‘거울의 차원이 보여주는 것처럼 건물들이 뒤집어지고 어느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장면들은 마치 관객이 거대한 만화경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중력이 여러 방향으로 바뀌는 그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그래서 독특한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의 진부함과 황당함을 무화시킨 건 놀라운 CG 기술 덕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CG는 그저 기술의 차원만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기술이라면 그럴 듯한 가상의 장면들을 현실감 있게 구현해내려 노력한 면들이 두드러졌을 게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CG는 그것보다는 예술 작품의 한 대목을 잘라낸 듯한 인상이 짙다. 압도적인 비주얼이지만 예술적인 느낌들이 그 진부함을 새로움으로 바꾸고, 황당함을 상상력의 자유로 바꿔준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구사되는 <닥터 스트레인지> 특유의 농담과 유머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작품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어 지나친 현실감 추구가 야기할 수 있는 황당함을 벗어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위기를 맞게 된 스트레인지가 수술을 받는 동안 그 영혼이 빠져나와 적의 영혼과 한판 대결을 벌일 때, 수술도중 사용하는 심장충격기의 충격이 적에게 타격을 주는 대목은 사실 개연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대신 영화는 이 장면이 주는 유머와 웃음의 코드를 활용함으로써 개연성의 부족을 슬쩍 뛰어넘는다.

 

물론 그렇다고 이 황당한 스토리의 영화가 그저 허망한 볼거리의 작품이라는 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어떤 허탈함을 느꼈을 게다. 하지만 영화는 이 상상력의 이야기를 통해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의미를 확보해낸다. 즉 시간으로 인해 결국은 사멸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의 조건이 꿈꾸게 되기 마련인 영원이나 불멸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일일 수 있는가를 이 영화는 흥미로운 스펙터클로 보여준다. 스토리로만 보면 황당할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예술적인 CG와 전략적인 유머들 그리고 그 상상력 속에 심어놓은 나름의 철학은 그래도 이 영화에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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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어째서 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까

 

말도 안 되게 재밌다? 아마도 이 말은 <W>라는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평가일 듯싶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한 마디로 만화 같기때문이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주인공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자신을 만든 작가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W(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재밌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송재정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판타지의 욕망이 작용한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상상. 그것을 눈앞에 던져주고 나름의 법칙들을 세워둠으로써 마치 게임 같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되게 된 건 송재정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처음 만화 속 세계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가 빨리 그 회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강철(이종석)의 뺨을 때리고 키스를 하는 설정은 하나의 유머처럼 처리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법칙이라는 걸 은연 중에 인지시킨다. 즉 만화 속에는 그런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머를 통해 슬쩍 제시해 놓은 것.

 

그러면서 차츰 차츰 다양한 법칙들을 소개한다. 즉 만화 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며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나, 만화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같은 법칙들이다. 이렇게 마치 게임 같은 법칙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자 <W>의 상상력은 더 과감해진다. 이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지만 여기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그다지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많은 만화 속 세계의 법칙과 설정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일 그만한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 나왔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만화 같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타 장르들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함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허용한 건, 그 함의가 진실이나 정의의 실현 같은 이야기의 메시지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W>는 아직 그 함의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메시지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고, 혹은 판타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신과 관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이야기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송재정 작가의 도전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가 가족과 멜로와 몇몇 장르물들 사이에서 마치 도돌이표처럼 어디서 봤던 설정들을 뱅뱅 돌리며 반복하고 있었다면, <W>의 상상력은 그 바깥으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고 도발하는 듯하다. 늘 되는 드라마의 법칙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이라고 <W>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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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바뀔 수 있다...<또 오해영>의 사랑론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그 목소리가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도 들려온다. 물론 <시그널>이 과거를 고쳐 미래를 바꾸는 설정이 판타지를 통해서였다면, <또 오해영>은 도경(에릭)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기시감을 통해서다. 도경은 이미 본 미래와 다른 말과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그 미래를 바꾸게 됐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기시감 속에서 도경은 오해영(서현진)에게 미안하다. 아는 척해서라고 속내를 숨긴 채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실제로는 신발 바꿔 신어. 발소리 불편하게 들려라는 말로 슬쩍 자신의 걱정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항상 속내를 감추며 살아왔던 도경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걸 보여준다.

 

도경이 변화하자 그 다음의 일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시감 속에서 오해영이 한태진과 손잡고 가는 장면은 두 사람이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오해영을 재회한 도경은 또 기시감과는 다른 말을 건넸다. 늘 해왔던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반갑다. 나만 아프면 억울할 뻔 했는데 너도 아파서 반갑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난 네 결혼을 깰 거고 옆방에서 다시 만날 거다.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것 하나도 안 미안하다. 미안한데 이게 진심이다. 너 안고 뒹굴고 싶은 것 참느라 병났다.” 이 말은 결국 오해영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병원을 나선 도경의 뒤로 한 달음에 달려오는 그녀의 발이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하며 다시 사랑을 확인했다.

 

<또 오해영>이라는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며 헤어 나올 수 없게 한 장치는 도경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사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에 가깝다. 그가 정신과의사 박순택(최병모)을 찾아와 상담을 하는 건 그래서다. 교통사고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도경의 모습이 그 기시감을 통해 보여지면서 시청자들은 그가 죽어가고 있고 그 시점에서 오해영과의 사랑을 회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시감이 생겨난다고 추측하게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새드엔딩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

 

하지만 <또 오해영>은 이런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도경의 선택에 의해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식이다. 결국 도경의 기시감이 말해주는 건 미래가 마음이 그리는 그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미래를 구성한다는 것. 도경의 기시감이 주는 비극적인 상황들은 사실 그가 상처를 받을 지라도 속내를 드러내고 부딪치지 않고, 그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예단한 미래 때문에 생겨난 일인 셈이다.

 

주치의인 박순택이 도경에게 인생은 마음에 대한 시나리오라고 말하듯 <또 오해영>은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이 선택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런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로맨틱 코미디가 과연 있었던가. 사랑을 두고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만을 논하던 로맨틱 코미디가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음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음을 통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이건 마치 멜로판 <시그널>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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