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공간·시간·인간

“저런 곳에서 지낼 수 있다면...”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이 주는 가장 큰 로망은 바로 그 공간이 주는 판타지가 아닐까. 요즘 같은 황금연휴에 여행은커녕 일을 하고 있거나, 여행을 가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 TV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윤식당>의 그 발리의 외딴 섬이 주는 막연한 로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게다. 단 며칠이라도 모든 걸 잊고 울려대는 전화기 따위는 커버린 채 바닷바람 맞으며 해먹에 누워 느긋한 독서와 낮잠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윤식당(사진출처:tvN)'

“저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하지만 <윤식당>이 주는 로망이 단지 공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 공간에 깃들여진 여유로운 시간이 없다면 무용지물. <윤식당>이 그 섬에서 연 가게도 원할 때 열고 원할 때 닫는 그 여유가 없다면 이 곳 도시의 치열한 회사생활과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이 <윤식당>의 사장님 윤여정은 장사로 돈을 벌려는 그런 욕망이 거의 없다. TV프로그램이기 때문이지만, 자신이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기다리다 오랜만에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접시에 더 정성을 깃들이고 덤에 덤을 얹어준다. 그리고 하는 말이 “맛있게 먹어주니 너무 고맙다”는 것이다. 이런 사장이 있는 가게에 여유가 없을 리 없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이렇게 여유를 갖고 하는 장사에 오히려 손님들이 더 몰린다는 점이다. 손님들도 안다. 돈 벌려고 장사하는 것과 진짜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려고 애쓰는 그 차이를.

“저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하지만 무엇보다 <윤식당>의 가장 큰 로망은 윤여정 사장님으로부터 느껴지는 좋은 사람들이다. 보조인 정유미를 잘 한다 잘 한다 다독이고, 영업과 마케팅을 맡은(?) 이서진이 신 메뉴를 얘기할라치면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다가도 나중에는 본인이 더 나서서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적극성을 보인다. 처음 여는 가게라 긴장과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손님이 많아 정신없이 바쁠 때 활짝 펴지는 그 얼굴을 보면 시청자들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새 내 장사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사장님이라니. 

아이디어 많고 추진력도 좋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척척 대처해내 기댈 수 있는 상무, 이서진의 든든함도 그렇고,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그리도 잘 아는지 말 하지 않아도 척척 옆에서 준비를 해주고 마음을 써주는 정유미 보조의 싹싹함, 그리고 가장 연장자지만 아르바이트라는 위치에 맞게 늘 손님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신구의 친절함까지 <윤식당>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일하고픈 그런 좋은 느낌을 준다.

연휴를 맞아 어딘가 떠나지 못하고 심지어 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윤식당>이 보여주는 공간, 시간, 인간에 대한 로망은 아마도 누구나 꿈꿔왔을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이 그 소망하는 대로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 세 가지라는 걸 말해준다. 괜찮은 공간에서 여유 있는 시간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픈 소망. <윤식당>이 우리를 꿈꾸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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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타자기', 임수정에 더 집중해야 산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져가는 시청률이다. 2.4%(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시카고 타자기>. <해를 품은 달>과 <킬미 힐미>의 진수완 작가의 신작인데다, 유아인이 출연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수준이었다. 하지만 2회에 잠깐 2.8% 시청률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시청률이 빠지더니 5회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작품의 완성도나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의 연기 모두 명불허전인 건 사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지금껏 드라마 소재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세계를 담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20년대 경성과 현재를 넘나들고 타자기와 회중시계가 일종의 판타지 장치처럼 활용되며 작가인 한세주(유아인)와 진짜 유령인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라는 존재의 관계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마저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상과 현실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하는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굉장한 야심작이다. 그 안에는 스릴러에 판타지 로맨스 같은 다양한 장르들의 편린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종을 잡을 수 없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그 목표의식이 5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이건 5회에 이르러 유진오가 그저 유령작가가 아니라 실제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깜짝 밝히는 반전을 보여주는 그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반전에 집착하며 어떤 이야기로 튈지 알 수 없게 현재 상황을 숨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이 궁금하기보다는 다소 복잡하고 나아가 답답하게 여겨진다. 드라마에서 반전 장치란 터트릴 때는 효과가 있지만 터지기 전까지 숨길 때는 이야기 전개의 원활한 흐름을 오히려 막아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유진오가 유령일 거라는 추측은 이미 대부분 시청자들이 알고 있었던 사안이다. 이러니 반전의 효과는 줄어들고 대신 반전을 보이기 위해 그간 숨겨놓고 눌러놓았던 이야기 전개만 더 복잡하게 보이는 역효과가 생길 수밖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의 몰입 포인트를 드라마가 제대로 콕 집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세주라는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워져 있지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소설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지점은 그다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창작자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다가올 테지만 말이다. 

대신 이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한세주의 뮤즈로 나타난 전설(임수정)이라는 평범 속에 비범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째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늘 하던 일이 어그러지는 그런 인물. 그러면서도 끝까지 한세주 작가의 초심을 믿고 신뢰함으로서 그를 진정한 창작자로 살게 하는 존재. 

한세주와 전설의 관계는 그래서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가 지금 현재 어떻게 역전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과거의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는 창작자에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힘이 더 우세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독자가 창작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뮤즈가 되기도 한다는 것. 

<시카고 타자기>가 좋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된다. 창작자의 고민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사항은 아니다. 대신 시청자들이 더 주목하는 건 독자의 확장된 역할이 아닐까. 전설의 활약이 중요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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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최진혁이 30년을 뛰어넘은 진짜 이유

시간의 터널 저 편으로 간 사람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요. OCN 드라마 <터널>은 아마도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했을 겁니다. 터널을 통과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박광호(최진혁)는 왜 하필 30년 후 김선재(윤현민)와 신재이(이유영) 앞에 나타난 걸까요. 김선재가 과거 박광호가 추적하던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의 아들이고, 신재이가 다름 아닌 박광호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현재, <터널>이 30년을 뛰어넘는 판타지가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우리는 이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터널(사진출처:OCN)'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날 집을 나선 가족 중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거나 혹은 실종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그 먼 길을 떠나버렸다면, 남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느낄 상실감을. <터널>은 그렇게 집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고, 떠나간 그들이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결코 그들을 잊지 못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김선재는 살해된 어머니 때문에 미친 듯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가 되었고, 신재이는 범인을 추적하다 실종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사고로 숨진 어머니로 인해 섬뜩할 만큼 냉철한 범죄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박광호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시간의 터널을 통과했는지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걸 갖게 되죠. 연쇄 방화범에 의해 홀라당 타버린 건물에서 가스가 새며 폭발할 위기에 처하자 몸을 날려 김선재를 구한 박광호는 말합니다. “우리가 범인 못 잡았어도 저 새끼까지 다치게 하면 너무 면목이 없잖냐.” 박광호에게는 과거 자신이 연쇄살인범을 끝내 잡지 못해 피살된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었던 거죠. 

게다가 신재이는 시간의 터널 저편으로 넘어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마음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그 무심한 얼굴로 가리고 있습니다. <터널>의 이야기는 그래서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라도, 하다못해 시간을 뛰어넘는 터널이라는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실종자의 간절한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렇게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가족의 마음이 담겨져 있죠. 

<터널>은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형사물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시대의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와 치유를 담은 휴먼드라마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사건들은 끔찍하지만 그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이나 범죄 심리학자, 법의학자는 단순히 살인범을 잡는 데만 혈안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연민과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따뜻함을 드러내죠. 

어찌 보면 늘 범죄 현장에서 사체들을 봐야 하는 형사나 범죄 심리학자 같은 이들이 왜 그토록 험한 일에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그 이유 역시 <터널>에서는 남다른 동병상련의 ‘공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오빠의 죽음을 목격하고 입을 꼭 다물어버린 아이에게 신재이는 다름 아닌 자신 역시 겪었던 그 상처를 드러냄으로서 입을 열게 하죠. 군대에서 구타로 죽은 아들 때문에 아내까지 잃게 되자 결국 그 살인자를 감정에 못 이겨 살해한 한 아버지에 대해, 김선재는 자신이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그래서 갖게 된 범인에 대한 살의 같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터널>이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 건 단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살인사건의 현장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시간의 터널’ 저편으로 간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에 놓여진 커다란 상실감과, 그래서 가질 수밖에 없는 그들이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런 것들이 우리를 이 심상찮은 드라마에 빠져들게 합니다. 3년 전 4월 16일, 그 날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금도 돌아오길 바라는 그 마음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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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시그널'과 비교되는 지점들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시청자들이 여러 작품들의 잔상들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30년 전 1980년대의 정경이 환기시키는 영화 <살인의 추억>과 드라마 <시그널>. 특히 <시그널>은 이러한 과거의 정경과 함께 현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터널>이 떠올리게 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시그널>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가 등장하지만, <터널>은 과거에서 현재로 통과하는 터널이 등장한다. 

'터널(사진출처:OCN)'

우연인 건지 의도한 것인지 <터널>의 남자주인공 박광호(최진혁)의 아내 역할로 나온 이시아는 <시그널>에서도 이재한(조진웅)의 첫 사랑으로 등장한다. 하드보일드한 형사지만 아내 혹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가진 존재라는 특징은 이 두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이들은 그만큼 사람 냄새가 나는 형사라는 캐릭터로 시청자들 앞에 서 있다. 

이처럼 유사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터널>의 이야기가 새로운 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이 작품이 타임슬립 장르를 덧붙여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로 온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박광호가 현재에 맞닥뜨릴 형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김선재(윤현민)다. 그는 사람수사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스마트폰, SNS, 이메일, CCTV, 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증거를 뒤져 수사 단서를 잡는다. 

박광호를 타임슬립시켜 김선재 같은 형사와 붙여 놓는 이유는 명백하다.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아날로그 형사와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디지털(?) 형사를 대비시키려 함이다. 몸으로 현장에서 부딪치며 뛰는 수사가 여러 형사물에서 과학수사와 대비되며 한때 과거의 유물로 그려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터널>의 선택은 정반대다. <터널>은 오히려 차갑디 차가운 과학수사라는 틀을 쓴 채 사람의 생명이 과학적 수치로만 보이는 그런 현재를 아날로그 형사를 데려와 꼬집는다. 

그래서 결국 <터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박광호라는 아날로그 캐릭터 그 자체다. 30년 전 연쇄살인을 목도하며 그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던 그는 “어떻게든 잡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미 범인을 눈앞에서 봤지만 안타깝게도 놓치고 만다. 그 열망은 그래서 그가 시간을 뛰어넘는 터널을 통과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설정이나,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갖는 유사성의 한계를 과연 <터널>은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굳이 그런 설정들과 요소들을 가져온 이유가 납득되는 지점에서 그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 냄새 나는 형사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현재에 대한 어떤 비판적 성찰 같은 것이 성공적으로 그려져야 이 모든 한계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일단 첫 회를 통해 박광호라는 형사의 인간미는 충분히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범인을 잡고픈 열망과 아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같은 걸 제대로 드러내줬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시그널>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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