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더 우먼’, 갑질, 시월드, 비리, 위선에 날리는 강력한 한 방

원 더 우먼

“다들 내가 누군 줄 알고 깝쳐!”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쳐 기억상실이 된 채 졸지에 재벌가 며느리 강미나(이하늬)가 된 비리검사이자 조폭 행동대장 외동딸 조연주(이하늬)는 꾹꾹 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자신이 진짜 며느리인 줄 알고, 재벌가 시월드에서 꼭두각시에 노예처럼 대접받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도 그러려니 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당하기만 했던 강미나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서는 뭐든 해왔던 비리검사이자 거의 조폭급의 싸움 실력으로 그들과도 결탁되어 있는 조연주다. 그의 본성이 터져 나오며 재벌가 시댁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란 듯이 일침을 가하는 장면은 마치 이 드라마가 패러디해 따온 제목 <원 더 우먼>의 그 슈퍼히어로를 떠올리게 한다. 

 

계속 무시하듯 장난치는 큰며느리의 아들에게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소리치고, 그런 그에게 얘가 장난 좀 한 걸 갖고 뭘 그러냐는 큰며느리에게도 똑같이 쏘아붙인다. 꼴에 남편이라고 끌어 앉히려는 한성운(송원석)에게 “이해? 말이 좋아 이해지 나보고 그냥 입 닥치고 가만있으라는 거잖아?”하고 일침을 가하고, 급기야 참지 못한 시아버지이자 한주그룹 회장인 한영식(전국환)이 큰 소리로 “조용히 못해!”하고 소리치자 주춤하기는커녕 더 큰 소리로 “언성 높은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아니 이게 무슨 노름판도 아니고 왜 갑자기 소릴 질러요? 아이고 깜짝이야!”하고 외친다. 이렇게 일일이 한 사람씩의 공격에 맞대응하는 모습은 마치 원더우먼이 빗발치는 총알들을 팔찌로 막아내고 공격한 자들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의 이 속 시원한 사이다 장면은 이 드라마가 겨냥하고 있는 카타르시스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 순간 이 독보적인 여성은 노예처럼 시월드에서 핍박받아온 그 응어리를 마치 총알처럼 쏘아댄다. 과장된 코미디로 연출되어 있지만 마침 추석 명절을 보내고 온 며느리들 중에는 이 광경이 주는 시원함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여성 캐릭터가 겨냥하고 있는 건 시월드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세계만이 아니다. 마침 이 여성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며느리에게조차 갑질이 일상이 되어 있는 재벌가다. 남편은 대놓고 바람을 피고, 집안사람들은 유민그룹의 막내딸인 이 여성이 물려받게 될 유산에만 관심이 있다. 재벌가 며느리지만 가사도우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의 스케줄을 가진 이 여성은 그래서 재벌가라는 회사의 갑질 아래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 같은 위치를 드러낸다. 그러니 이 여성이 싸워나가는 건 시월드의 핍박만이 아니라, 갑질하는 세상의 핍박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쩌다 재벌가 며느리 강미나가 된 이 여성의 실체는 비리검사이자 조폭인 조연주다. 그러니 기억을 잃기 전까지는 그 법 지식을 이용해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써왔지만, 이제 재벌가 며느리의 역할을 하게 된 그는 그 남다른 법 지식을 갖가지 비리와 위선으로 점철된 재벌가와 싸우는데 활용하게 된다. 물론 비리를 캐거나 혹은 후계자 승계구도 대결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성혜(진서연) 같은 적이나 조폭들의 물리적인 폭력 앞에서도 그의 잠재된 능력(?)이 튀어나온다. 저도 모르게 조폭들을 때려눕히며 “나 왜 이렇게 잘 싸워?”라고 하는 대목은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이 독보적인 캐릭터의 무소불위를 잘 드러내준다. 

 

사실 <원 더 우먼>은 그 흔하디흔한 ‘왕자와 거지’ 코드와 기억상실 코드를 틀로 가져왔다. 다분히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 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익숙한 코드를 통해 축조해낸 무소불위의 여성 캐릭터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는 비리검사였으며 조폭이었지만 재벌가 며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 주먹, 돈을 모두 쥘 수 있는 캐릭터다. 중요한 건 이런 잠재적 능력을 이 여성 캐릭터가 무엇을 하는데 쓰는가 하는 점이다. 정의의 사도 같은 캐릭터와는 멀고 적당히 속물적이지만 불의는 참지 못하는 이 캐릭터는 저도 모르게 시월드와 싸우고, 갑질하는 세상과 싸우며,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해온 위선적인 기득권자들과 싸운다. 

 

물론 굉장히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일주일 간 갑질하는 세상에서의 갖가지 스트레스와 피로를 한 몸에 안고 주말을 맞이한 시청자들에게 한 시간 동안의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날려주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 이 한 여성 캐릭터에 이러한 다양한 사회의 갑질 구조를 부여한 건 이 드라마의 신의 한 수라 할만하다. 여성과 약자들의 연대적 지지가 그 캐릭터 속에 자연스럽게 부여될 수 있어서다. 아마도 최근 등장한 여성캐릭터 중 독보적인(One) 여성 캐릭터(The woman)의 탄생이 아닐까 싶다. (사진:SBS)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며느라기>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조리한 명절의 풍경을 정혜린의 목소리를 통해 팩폭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정혜린에게 작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명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온 노동을 며느리가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서 함께 그 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당연한 걸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괘씸할 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강요를 오래도록 당연한 듯 받아온 시어머니가 이제 저 스스로 나서서 그걸 며느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고부갈등이나 시월드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졌다. 하지만 극화되어 악역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에 대항해 당장의 사이다만을 보여주던 며느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기보다는 '저런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들로 치부하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월드를 드라마로 보는 어르신들은 줄곧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어.

 

이것은 너무나 극적으로 그려져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라는 걸 은폐하기도 하던 시월드 소재 드라마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무구영네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괴물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나름 예의도 차리고, 며느리 생각해 상냥한 말도 건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민사린을 이상하게도 힘겹게 만든다. 시어머니 생일상을 혼자 차려내고 시댁 식구들이 저들끼리 대화하고 후식을 먹을 때 혼자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민사린 역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며느리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다. 그래서 민사린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당함을 얘기함으로써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정혜린은 그 평온해 보이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팩트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발한다.

 

모두가 귀성길에 올라 도심에 차들이 많이 사라진 명절에 민사린은 무구영을 기다린다. 결혼 전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달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 장면으로 시작한 드라마가 그 날 무구영네 집에서 벌어진 정혜린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의 팩폭 풍경을 거친 후 엔딩으로 이어지자 달달함은 사라지고 대신 씁쓸함이 더해진다. '착한 며느리' 운운하는 무구영의 생각은 이제 민사린이 겪을 시월드의 '며느라기'로 이어질 거라는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20분 남짓의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 부당한 것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왜 그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나서서 강요하고 있을까. 엄마가 해온 평생의 독박노동과 그 고생을 절감하는 아들이라면, 착한 며느리를 들여 엄마를 도와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부당했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엄마가 했던 그 차별적인 대우와 노동을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대신 맡아 똑같이 하는 걸 당연시 할 게 아니라.(사진:카카오TV)

'며느라기'의 담담해 보여도 날카로운 시월드 폭로

 

'그런데 내일 아침에 엄마 미역국 끓여드리면 진짜 좋아하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힘드시겠죠? 내일 출근하셔야 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에서 남편 구영(권율)의 여동생 미영(최윤라)은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의 생신에 민사린(박하선)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릴 수 있냐고 넌지시 메시지를 보낸다. 에둘러 요구하는 그 메시지에 민사린은 마치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이 "미처 생각을 못했다"며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자 미영은 고맙다며 엄마가 '황태' 미역국을 좋아한다는 걸 마치 팁이라도 되는 양 알려준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드린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차리라는 이야기고, 그러려면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 구영이 요구한 건 아니지만, 사린은 그래서 스스로 전날 시댁에 가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시댁에 도착해서도 시어머니를 챙긴다며 설거지를 하고 시댁 식구들이 TV를 보고 있을 때 과일 깎아 내놓는다.

 

그런 사린에게 시어머니는 마치 며느리를 꽤나 생각하는 듯이 "회사 다니랴 살림하랴 힘들지?" 하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며느리가 힘들어서 걱정한다기보다는 마치 회사를 다니지만 살림도 당연히 며느리가 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힘들어도 회사일, 살림을 다 챙겨야 한다는. 피곤해하는 아들에게는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하고 며느리에게는 더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시어머니에게서 "힘들지?"하고 묻던 그 말의 진심은 휘발되어 버린다.

 

아내가 힘들 거라는 걸 모른 채 눈치도 없이 들어가는 남편. 시어머니가 줄줄 늘어놓는 아들 자랑은 심지어 결혼 전에도 선보라고 연락이 많이 왔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사린은 "인기 많은 남편"이 좋다고 애써 웃어주지만, 시어머니의 그 말에는 다른 뉘앙스들이 담겨 있다. 이렇게 인기 많은 남편이니 잘 하라는 것.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자는 시댁에서 혼자 일어나 사린은 생신상을 차린다. 미영의 조언대로 황태를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에 반찬들까지 내놓으며 스스로 뿌듯해한다. 연애 때는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보온병에 담아 사린의 생일을 챙겨줬던 남편이지만 지금은 아내가 그 고생을 할 때 쿨쿨 잠만 자고 있다. 뒤늦게 일어난 미영이 도와드렸어야 한다는 맘에도 없는 말을 꺼내놓고, 사린이 요리를 엄청 잘한다며 칭찬한다. 칭찬에 뿌듯해 하던 사린은 그러나 나중에 상 차릴 일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해야겠다는 미영의 말에 기분이 묘해진다.

 

그건 마치 시댁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어떤 선 같은 게 그어지기 때문일 게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말에 누그러지다가도 알고 보니 황태 넣은 미역국을 원한 건 전날 회식으로 과음한 미영이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언짢고, 시댁 식구들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어 혼자 먼저 밥을 다 먹게 된 사린은 그 자리가 점점 불편해진다.

 

그런데 이런 사린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독박 노동을 친정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동조한다. '사린아. 어제 시댁에서 자느라 불편했지? 아침에 늦잠 안자고 일찍 일어났는지 모르겠네. 엄마가 깨워준다는 걸 깜빡했어. 사부인 생신상은 잘 차려 드렸니? 네가 잘못하면 다 엄마 흉 되는 거 알지? 우리 사린이야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예의 바르게 공손히 잘 하고 출근 잘 해라.' 사린에게 보낸 친정 엄마의 메시지에는 며느리의 시댁에서의 노동은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려니 참고 있던 사린이지만, 설거지 하는 동안 깎아 내놓은 과일을 다 먹고는 남은 거라도 먹으라며 "너랑 나랑 한 개씩 먹어치우자"라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서운함이 폭발한다. '먹어치운다'는 그 표현 때문에 더욱 그렇다. 며느리가 뭐 남는 거나 먹어 치우는 그런 존재인가.

 

"너 가사도우미 면접 보러 가니?" 남자친구네 저녁초대를 받아 부모님을 보러 간다는 회사 동료가 밥 먹고 나서 설거지는 자신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에 다른 동료가 툭 던지는 일침은 사린이 시댁에서 보낸 그 하루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사린이가 시어머니 생신날 겪은 하루를 통해 <며느라기>는 결혼 후 며느리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부당한 처우를 끄집어낸다. 그래야 예쁨 받고 칭찬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낸 강요들.

 

사실 <며느라기>는 다소 평범하고 담담하게 시월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하고 담담하게 느껴지는 건 그 상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들여다보면 시댁에서 벌어진 하루 간의 말 한 마디나 어떤 행동들 하나까지 어떻게 문제들을 만들어내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며느라기>의 담담함이 못내 불편한 현실로 느껴지게 되는 것.(사진:카카오TV)

<판타스틱>, 멜로 말고도 판타스틱 했던 순간들

 

그래 미쳤다. 이 집구석에서 1초도 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지. 니들이 10분 안에 마셔 없이 이 와인 한 병 값이 우리 엄마 수술비였어. 당신 장모 목숨이 이 와인보다 못해? 이 와인이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해? 그런 주제에 뭐? 정의를 구현해? 당신들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런데 내가 왜죽어? 이때까지 등신같이 살아온 게 아까워서 앞으론 멋지게 살거야. 최진태 씨 우리 이혼합시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입만 열면 막말하는 시어머니에 마치 종 부리듯 부려먹는 시누이, 게다가 부부강간을 시도하고 아내 앞에서 버젓이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에서 며느리가 쓰는 돈은 몇 만원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자신들은 수천 만 원짜리 와인을 즐기는 비정상적인 시월드에 많은 시청자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기 어려웠을 게다. 물론 극화된 것이겠지만 이런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갑질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집안의 모습은 서민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갑갑함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장모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돈 타령만 늘어놓고, 자기들 제사상 차리는 게 더 우선인 이 시월드에서 수천 만 원 짜리 와인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문을 나선 백설(박시연)은 마치 하녀복처럼 입고 있던 한복 차림을 벗어던졌다.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가 제목처럼 판타스틱 해지는 순간. 시청자들은 사이다 한 사발을 마신 듯 속 시원함을 느낀다.

 

물론 <판타스틱>은 암 선고를 받고 삶을 더 판타스틱하게 살아가게 되는 드라마작가 이소혜(김현주)와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는 자칭 우주대스타 류해성(주상욱)의 멜로가 중심 스토리지만, 때때로 그 멜로보다 더 속 시원한 사이다 장면이 눈에 띈다. 그건 이 드라마에서 이른바 갑질 하는 인간들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백설의 시댁 인물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반전이 등장할 때이다.

 

이 시월드의 시누이 최진숙(김정난)이 돈과 감언이설로 이소혜의 보조작가인 홍상화(윤지원)를 끌어들이려 할 때 거꾸로 홍상화가 그녀에게 한 방 먹이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최진숙이 건네는 명품 백에 김치 국물을 쏟아 부은 홍상화는 이렇게 일갈한다. “최진숙! 넌 정말 썅년이야. 이딴 가방은 너나 들어! 이게 뭔줄 아냐? 니가 한 말 여기다 다 녹음 떴거든.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당장 정정기사 내고 우리 이작가님한테 사과해. 아니면 오늘밤 인터넷에 이거 다 뿌릴 거다. 알았냐?”

 

법 좀 안다고 툭하면 고소를 해서 고소부인이라고도 불리는 최진숙이 그건 불법 녹취로 증거가 안된다고 말하자 홍상화가 또 한 방을 날린다. “나 법대 4년 다닌 사람이야.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을 처벌하고 있거든. 대화 당사자 본인이 포함된 대화 녹취는 불법이 아니다. 아셨어요? 이 무식한 고소부인아!” 돈도 법도 서민들의 것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가.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홍상화의 일갈이 판타스틱한 사이다로 다가온 건 당연한 일이다.

 

<판타스틱>이 이소혜와 류해성의 판타스틱한 멜로만이 아니라, 백설의 시월드를 굳이 집어넣은 건 이 드라마가 다른 한 편으로 담고 싶은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돈과 권력으로 이뤄진 비정상적인 관계를 깨치고 그걸 뛰어넘는 인간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다. 백설의 시월드 탈출과 이소혜와 류해성의 최진숙과의 관계 청산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해줄 판타스틱한 이야기의 또 한 면이 된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라도 속 시원한 사이다 전개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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