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단순한 복수극도 멜로도 아니다

 

시청률 3.8%. 낮아도 너무 낮은 시청률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낮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즉 시청률이 낮다고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역사왜곡과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내고 있는 경쟁작 <기황후>25%의 시청률을 낸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태양은 가득히(사진출처:KBS)'

<태양은 가득히>는 동명의 알랭 드롱이 나온 영화에서 제목을 따왔다. 아마도 지금의 세대에게는 <리플리>라는 제목의 영화가 더 쉽게 다가올 게다. 가난하지만 야심가인 톰 리플리가 자신을 하인 취급하는 고교동창 필립을 살해하고 그의 행세를 하다가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 물론 <태양은 가득히>의 이야기는 리플리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만 그 안에 깔려 있는 모티브들이 유사한 점이 있다.

 

즉 정세로(윤계상)가 이은수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것이나, 가진 것 없는 자가 결국 모든 걸 다 가진 자들에 의해 모든 걸 빼앗기고 분노하는 정황, 또 복수 속에 사랑이 얽혀 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은수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정세로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에 향후 드라마의 극적 전개가 요동칠 거라는 점이 <리플리>를 떠올리게 한다.

 

고시에 패스하고 이제 삶의 정점을 향해 날개를 펴려는 순간 정세로의 인생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를 만나러 간 태국에서 억울하게 살인자로 몰려 5년 감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로 죽게 되었다. 5년 후 복수를 꿈꾸며 돌아온 정세로는 자신의 할머니가 살인자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오열한다. 정세로가 박강재(조진웅) 앞에서 터뜨리는 분노 속에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 우리 할머니가 박스를 주워. 이 추운 날 산동네서 내 할머니가 박스를 줍는다고. 그래 맞아. 내가 가진 게 참 없지. 많이 없지. 예전에 내가 주제도 모르고 책상 앞에 붙어있었을 때 저 빌딩이 갖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냥 저기 작은 불빛 하나 딱 하나만 내거였음 했어. 근데 그 꿈조차 짓밟았어. 저 빌딩 가진 새파란 여자가. 그 가족들이. 난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르고. . 나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근데 아버지처럼 살 거야. 아니 그보다 더 할거야. ?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내 할머니가 라면박스를 주우니까. 내가 정세로로 못 사나까 내가 이은수. 내가 살인자니까. 내가 살인자니까!”

 

정세로의 분노 속에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겪는 삶의 부당함이 들어있다. 작은 불빛 하나 가지려고 해도 그 꿈조차 짓밟는 세상. 그리고 결국은 살인자로까지 내모는 세상. 돌아온 정세로가 왜 당시 태국에서의 사건을 한영원(한지혜)과 그 집안에서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고 급히 덮으려 했는지를 알고는 분노하는 대목도 그렇다. 한영원은 자신의 피앙세였던 죽은 공우진(송종호)이 다이아몬드 도둑의 오명을 쓰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결국 가진 자들의 고작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이 파탄 났다는 것에 정세로는 분개하는 것이다.

 

<태양은 가득히>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보지 않게 되는 지점은 이 정세로라는 인물이 가진 억울함과 갈증을 서민들의 낮은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회적인 부조리와 시스템을 쥔 자들(이를 테면 회사 비리를 덮기 위해 딸의 피앙세까지 살해하는 한영원의 아버지 같은)의 잔혹함이 묻어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좀 더 근원적인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드라마가 단순한 멜로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건, 이렇게 정세로가 복수하려는 한영원이라는 인물이 사실은 똑같은 피해자의 입장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잃었고 또한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아버지를 잃게 된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정세로가 만일 한영원을 같은 피해자로서의 고통을 공감하게 된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멜로는 어떤 방향으로 튀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태양은 가득히>는 물론 어딘지 익숙한 복수극과 멜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단순 복수극이나 멜로가 담아내지 못하는 묘한 흡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심도가 느껴지는 안정된 연출력과 윤계상의 광기 가득한 연기만으로도 <태양은 가득히>는 단지 3%대의 시청률로 속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2회 만에 30% <참 좋은 시절>이 말해주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새로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짜증 가득한 불쾌함을 종영까지 보여주었던 반면, <참 좋은 시절>은 이제 단 2회 밖에 안했지만 벌써부터 가슴 가득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경주의 작은 마을로 15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검사 강동석(이서진). 그가 15년 만에 귀향하게 된 것은 경주로 발령이 나면서다. 어린 시절 식모살이하던 엄마와,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세 지능에 멈춰버린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강동석의 배다른 동생으로 엇나가버린 남동생 강동희(택연)... 강동석에게 고향이란 잊고 싶은 아픈 과거로 남은 곳이다.

 

<참 좋은 시절>은 고향으로 돌아온 대쪽 같은 성격의 검사 강동석이 그간 없는 듯 치부하며 살아왔던 가족을 찾아와 그 온기와 정을 다시 찾아가는 드라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강동석이 집을 찾아와 마음에 앙금과 죄송함이 함께 남아있는 어머니 장소심(윤여정)을 만나는 장면이나, 손자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를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강동석 앞에 놓여진 가족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 헤쳐지고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집주인과 식모의 자식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에 힘겨움을 겪었던 해원(김희선)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공식과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드라마의 시작이란 문제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강동석이 경주로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동석과 해원의 사랑이야기는 차라리 멜로드라마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런 구성이나 이야기는 같은 시간대의 전작이었던 <왕가네 식구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처럼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을 반복하는 클리쉐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단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참 좋은 시절>은 완성도 면에서나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나 여러 모로 완성도 높은 착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드라마라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극성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내고 개연성 있는 인물에 공감시켜 풀어내느냐가 그 차이인 셈이다.

 

심지어 막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왕가네 식구들>이 줄곧 내세웠던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좋으니 좋은 드라마라고 했던 것. 하지만 어디 그럴까. 시청률은 막장을 거둬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2회 만에 참 좋은느낌을 선사하면서도 30%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래서 이 주말드라마 시간대의 시청률이 가진 허상을 거꾸로 말해준다.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잣대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얻어내는 30%의 시청률과 온갖 짜증과 분노를 자극해 얻어내는 30% 시청률이 같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참 좋은 시절>이 거둬가는 30% 시청률은 그래서 <왕가네 식구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시청률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완성도 높고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소위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드라마가 아니고.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김영희 PD가 전하는 중국판 <아빠 어디가>의 인기비결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는 요즘 중국 방송사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한국인 중 한 명이다. 중국 후난TV<나는 가수다> 포맷이 수출되면서 생긴 일이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 지도와 자문역을 맡아 이른바 플라잉 디렉터(FD·Flying Director)로 활약하게 되면서 그는 마치 한류 예능 콘텐츠를 대변해주는 인물로 부상했다. 지난 9월 그는 북경TV제작자협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고 12월에는 광저우 난방TV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내년 2월에도 후난TV 초청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의 강연료는 국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높은 수치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말 한 마디에 대한 중국 방송사들의 갈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에서 유명인사 된 김영희PD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가수다>가 국내 가요계 전반에 미친 영향이 실로 지대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흔치 않은 오디션은 운용에 있어서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끝없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대중들의 기대치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스토리를 다양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결국 시즌제가 아닌 매주 편성으로 프로그램이 운용되면서 생긴 문제다. 적절히 끊어주고 휴지기를 만들어주는 시즌제는 대중들의 기대감을 조절하고 다양한 가수군과 그들이 전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필수적인 형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결국 김영희 PD<나는 가수다> 형식의 완성은 국내가 아닌 중국이 되었다. 국내에서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나는 가수다> 중국판을 시즌제로 만들었고, 거기에 중국인들의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 그들의 영웅상을 무대 형식으로 재현했다. 즉 실력은 출중하지만 메인에서 멀어져버린 가수들을 끄집어내 무대에 올림으로써 중국 대중들의 억눌린 정서를 그 소영웅들을 통해 풀어냈다는 점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즌1의 마지막 시청률이 3% (중국에서는 1%가 성공 시청률이라고 한다)에 육박했던 것.

 

하지만 중국에서의 김영희 PD 입지를 더 공고하게 해준 것은 <아빠 어디가> 중국판의 대성공이었다. 시즌1 중국 시청률이 5%대를 넘었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같은 대도시에서는 무려 8%대에 이르기도 했다. 이 수치는 중국 방송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적인 것이라고 한다.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 PD는 국내에서 매주 제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판을 지도 감독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마침 중국에 있던 김영희 PD<아빠 어디가> 중국판의 지도와 자문을 맡게 됐던 것.

 

김영희 PD가 들려준 <아빠 어디가> 중국판을 처음 찍을 때 벌어진 에피소드는 대단히 흥미롭다. 처음 촬영 현장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장난이 아니더라는 것. 아빠들이 있어도 도무지 통제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방송을 찍어야 하는데 모이라고 해도 모이지도 않는 상황. 결국 김영희 PD는 아빠들을 다 모아 놓고 이렇게 설득을 시켰다고 한다. “당신들의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식이라면 결코 예쁘게 방송에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아빠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적인 면들을 잡아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조금씩 변화시켜가는 모습이 방송에 잡히면서 <아빠 어디가>에 대한 중국 대중들의 열광이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에는 중국만의 특수한 문화적 요인도 깔려 있다. 중국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했던 산아제한 정책(독생자녀제 獨生子女制)으로 1자녀 이상을 둘 수 없게 되면서 소황제(小皇帝), 소공주(小公主)라고 불리는 독특한 아이들 세대가 생겨났다. 외자녀들이 그러하듯이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이들 세대는 급성장한 중국의 경제 혜택까지 누리게 되었다. 소황제라는 지칭이 말해주듯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칫 이기적이고 나약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문제였다. <아빠 어디가>가 바로 이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었다는 것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나는 가수다>에 이은 <아빠 어디가>가 만들어낸 중국에서의 대성공은 현재 중국의 예능 한류 포맷 러시를 만들어냈다. <12>, <불후의 명곡>, <슈퍼스타K>, <K팝스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뜨겁다 싶은 예능 프로그램 포맷들이 중국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포맷이 <아빠 어디가> 같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2>은 큰 기대를 업고 지난 6월 쓰촨TV에 포맷 수출계약을 맺어 방영되기도 했는데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정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포맷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패는 잘된 포맷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현지화하는가 하는 제작진의 파트너십과 노력이라는 것.

 

김영희 PD는 중국이 대단히 매력적인 예능 한류의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불안요소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파트너십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노하우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중국의 방송사들은 지금 현재 우리네 방송 노하우를 얻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 투자가 성과를 보이는 프로그램이 바로 <아빠 어디가>.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중국 방송에서는 보기 힘든 자막이 본격적으로 예능의 툴로 활용되면서 중국 방송 전체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지금껏 잘 보이려 하지 않던 중국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소재로서 떠오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 시장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나는 가수다>에 이은 <아빠 어디가>의 성공에 대해 중국의 광전국(우리의 방통위에 해당>이 최근 한 방송사당 1년에 한 편만 포맷 수입을 허가하는 수입제한조치를 내리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는 관대하기 때문에 특히 중국의 예능 한류는 앞으로도 한동안 장밋빛 흐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2의 쌀집아저씨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국내의 예능 제작진들에게도 고무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예능이 한류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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