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꽃보다>까지, 이우정 작가의 놀라운 존재감

 

한 매체가 제기한 이우정 작가 부재설은 사실무근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사안이 말해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우선 이우정 작가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지금껏 참여해온 작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큰 성과를 가져왔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네 방송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12>이 지금껏 KBS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고, <꽃보다> 시리즈는 물론이고 <삼시세끼>까지 연달아 대박을 터트리는 놀라운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 인력들이 드라마 판에 들어와 오히려 드라마에 신선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우정 작가 부재설 기사가 나오고 나서 대중들이 보인 반응은 <응답하라1988>에 대한 걱정과 우려였다. 그만큼 이우정 작가를 시청자들은 믿고 보는 작가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응답하라1988>은 속편은 본편을 넘지 못한다는 속설 자체를 뒤집고 매회 최고의 기록들을 경신중이다. 반응도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예능적인 요소보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 만이 발견할 수 있는 <응답하라1988>은 그래서 이우정 작가의 드라마판에서의 지분 또한 확연히 넓혀놓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모든 성취들을 이우정 작가 한 사람의 공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혼자가 아니라 팀이 이룬 성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우정 작가를 중심으로 나영석 PD, 신원호 PD, 신효정 PD 같은 PD군들이 있고, 그 작가들 중에도 최재영 작가나 김대주 작가는 물론이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함께 해온 다수의 작가군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관리해주는 이명한 본부장까지.

 

한 사람이 아니라 막강한 사단이 함께 이룬 성취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들의 일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를 연달아 진행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이우정 작가도 작가군들을 통해 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이우정 작가 한 사람의 공백이 있다고 해도 큰 차질은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지금껏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이 PD들에게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작가에게 시선이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세끼>,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면에 나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였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 부재설이 나오자 즉각적으로 <응답하라1988>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예능에서부터 드라마까지 너무 많은 의존도에 대한 걱정이 쏟아진 건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에 있어서 작가들은 PD들보다 더 주목받는다. 거의 작가의 의지에 의해 드라마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예능은 다르다. 예능 작가들은 PD들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만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능에서부터 드라마로 차츰 차츰 영역을 확장해온 이우정 작가는 지금 이러한 예능 작가에 대한 위치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가 가는 험난한 길은 그래서 수많은 예능 작가 후배들에게는 중대한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드라마의 제작방식을 답습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또 보통의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드라마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의 유전자를 가진 나무가 드라마라는 텃밭에서 쑥쑥 자라난 새로운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연속성을 따라가기보다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별로 구성되는 형태는 시트콤이나 콩트 같지만 그 심도가 드라마 이상이라는 점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우리가 매료되는 이유다. 예능 작가가 아니라면 시도되지도 또 나오지도 못했을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이우정 작가 부재설 해프닝은 그 자체의 사안만이 아니라 나아가 예능작가에 대한 새로운 존재감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는 그 예능의 경험치들이 하나하나 쌓임으로써 그 경계를 뚫고 나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낸 작품을 <응답하라1988>에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행보와 성취는 향후 예능 작가에 대한 새로운 위상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엄마로 울리고 웃기고, <응팔>의 남다른 저력

 

애초에 남편 찾기콘셉트가 <응답하라1988>에서도 계속된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신원호 PD가 밝혔을 때 대중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건 또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시대만 바꿔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응답하라1988>은 이전 시리즈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물론 여전히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남편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이 드라마의 주요한 동력 중 하나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요소일 뿐 <응답하라1988>의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그렇다면 <응답하라1988>이 이전 시리즈와 확연히 다른 점은 뭘까. 물론 여전히 염소 BGM이 흘러나오며 웃기는 장면들이 연출되지만, 유독 눈물의 밀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눈물은 다름 아닌 가족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성동일이 모친상을 당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다가 뒤늦게 외국에 살던 형이 찾아오자 우리 엄니 불쌍해 어쪄하고 오열하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응답하라1988>의 핵심적인 정서는 신원호 PD가 공표한대로 가족이야기에서 나오고 그 가족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로도 귀결된다.

 

5회는 그런 점에서 오롯이 엄마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 묻는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남편 잡아먹었다는 시어머니 앞에서 그 모진 소리를 다 듣고는 다신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김선영이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온다는 소리에 짐짓 잘 사는 것처럼 보이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서는 엄마로서 서로 이해되는 이심전심의 마음이 시청자들을 울렸다. 결국 그렇게 숨기려 했지만 그래도 눈에 띈 구멍 난 양말과 헤진 옷이 밟혀 화장실에 돈과 편지를 놔두고 간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다가 목이 메어버리는 김선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마도 저마다의 엄마를 떠올렸을 게다.

 

딸이 데모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이일화의 이야기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모들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절대 데모 하지 말라고 꾸지람을 하지만 딸을 잡아가려는 경찰 앞에서 쉬지 않고 우리 딸이 어떤 딸인 줄 아냐며 애원하는 엄마. 경찰서에서 훈방조치 받고 나온다는 딸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야한다는 이웃집의 이야기에 그래도 우리 딸이 무슨 잘못을 했냐고 두둔하는 아빠. 결국 부모가 데모를 반대한 것은 그 데모가 잘못된 일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딸을 걱정하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당대의 부모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반면 라미란의 이야기는 눈물보다는 웃음의 포인트가 드러난 엄마의 이야기였다. 뭐든 자기 손길이 닿아야 집안 일이 돌아가는 라미란이 집을 비운 사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집안이라던가, 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말끔하게 집을 치워놓는 남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아무 변화가 없는 것에 오히려 실망하는 라미란의 모습은 우리네 억척스럽던 엄마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엄마들이 있어 어렵던 시기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응답하라1988>이 한 회로 묶어서 보여준 다양한 엄마들의 이야기가 그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된 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치 않는 것이 바로 그 모성이기 때문일 게다. 다만 80년대라는 상황이 그 모성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엄마로 대변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응답하라1988>이 남편 찾기 같은 기존 시리즈의 요소들을 답습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데모하는 딸을 둔 이일화의 이야기는 엄마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읽어내게 한다. 일부이겠지만 무슨 무슨 엄마회라는 이름의 단체로 엄마를 호명해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안타깝게도 2015년 서울의 한 풍경이다. 거기서 우리는 어떤 모성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감히 거기에 엄마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게 가당한 일이기나 할까. 자식이 몹시 걱정되지만 그래도 자식이 잘못한 건 없다고 말하는 엄마. 그것이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해야할 엄마라는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응팔>, 무엇이 80년대까지 우리를 되돌렸나

 

도대체 <응답하라1988>의 무엇이 우리를 그 시대로 눈 돌리게 했을까. 97년과 94년이라는 시점과 88년이란 시점은 사뭇 다르다. 많은 이들이 1988년이라는 시점에 의구심을 갖게 된 건 그럴만한 일이다. 97년과 94년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할 수 있는 시대다. 97년을 기점으로 디지털문화, 팬 문화가 시작됐고, 무엇보다 IMF 이후의 장기불황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당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그 기점이 흥미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하지만 1988년은 다르다. 80년대 문화를 이해하는 이른바 386세대들에게는 아련한 향수지만 젊은 세대들과 그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애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이 <응답하라1988> 2회만에 증명되었다. 첫 회에 평균시청률 6%를 간단히 넘긴 이 작품은 2회에는 7.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고무적인 건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연령층에 고루 소구하는 시청률 분포를 보였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힘을 발휘하게 했을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주효했던 건 신원호 PD가 왜 굳이 1988년까지 시간을 되돌린 것인가에 대한 이유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응답하라1988>은 신원호 PD의 말대로 가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가족의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엄마가 없는 바둑천재 택(박보검)이 바둑대회 우승을 하자 이웃인 라미란의 가족이 그걸 축하해주기 위해 비빔국수 같은 스파게티를 나눠먹는 풍경이 그 시대의 가족이다. 갑자기 귀가한 남편의 밥 한 공기를 빌릴라 치면 각자의 집에서 저녁에 만든 반찬이 이웃으로 배달(?)되어 결국은 비슷비슷한 저녁을 먹는 이웃이라니.

 

이웃집 딸이 88올림픽 피켓걸로 나온다고 하면 마치 자기 딸인 양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해주는 그런 풍경을 지금 우리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학교 점심시간이면 서로가 싸온 반찬을 꺼내놓고 친구들끼리 함께 둘러앉아 먹던 그런 풍경. 맛없는 도시락이라도 애써 싸준 엄마가 미안해 귀갓길에 남은 반찬을 다 먹는 그 따뜻한 마음. 골목길 한 켠에 놓여진 평상에서 수위 높은 부부생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마치 자매들처럼 환한 웃음을 채워놓는 이웃들.

 

876.10 이후 6.29 선언이 이어지고 그해 말에 치러진 대선이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던 그 시점부터 198888올림픽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대책 없는 낙관론 속에 있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이 보여줬던 것처럼 88년부터 97년 사이에 있었던 낙관론이 실로 대책 없는 거품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도시는 재개발되었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은 아파트로 재정비되었다. 정치적 이슈들을 저 경제논리 속에 묻혀져 갔고 세계화를 부르짖던 기업들은 대마불사를 꿈꿨지만 결국은 무너져버렸다.

 

88년부터 97년 사이의 10년은 그래서 세계로 뻗어나간 경제 성장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허물어진 10년이 되었다. 우리는 번지르르한 아파트들이 세워진 그 10년 사이 많은 걸 잃어버렸고 결국은 그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IMF를 통해 확인했으며 그 여파를 지금껏 겪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신원호 PD가 왜 굳이 1988년까지 시간을 되돌린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대책 없는 낙관론으로 모든 것이 뻥튀기되기 직전 실로 진솔했던 우리네 삶에 대한 그리움. 부유하진 않았어도 많은 걸 갖고 있었던 그 시절이 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야 비로소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1988>은 지금의 자극적인 삶을 담아내는 살풍경한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어찌 보면 너무 밋밋하고 소소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거품 없는 세상의 진짜 사람 간의 정과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다. 88년을 경험한 세대든, 아니면 그걸 경험한 적 없는 그 이후의 젊은 세대든 이 드라마에 막연히 끌리는 이유는. 경제적 수치는 올라갔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걸 잃어버린 채 각박해진 우리네 현재의 삶. 그것이 88년의 한 골목이웃들에게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다.



왜 나영석 PD처럼 신원호 PD도 내려놨다 말하는 걸까

 

솔직히 <응답하라 1994>보다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응답하라1988>의 기자간담회에서 신원호 P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두 번째까지 잘 되다가 세 번째 폭망하는 현상이 재밌을 것이다. 망할 거란 생각이 나도 든다. 이번 시리즈의 성공을 장담하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왜 망한다고 말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과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나영석 PD<삼시세끼>. <삼시세끼>에 대해서 나영석 PD는 방영 전 만난 필자에게 이번에는 진짜 망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망했다는 얘기는 실제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
. 이서진이 그랬고 게스트로 온 윤여정이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삼시세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런 놀라운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에 왜 그들은 망했다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통상적인 프로그램의 룰에서 보면 자신들의 시도가 망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시커먼 남자 둘이 농작물을 키우고 밥을 해먹는 아이템은 사실 기존 예능의 불문율로 보면 해서는 안되는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 공식 안에서는 망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새로운 작품이 공식 안에서 만들어질까. 결국은 공식 바깥으로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신원호 PD망할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기대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 말은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속 성공으로 한껏 올라 있는 기대감을 눌러 놓는 것이면서 또한 그런 기대감 때문에 오버하지 않는다는 자기 결심이기도 하다. 성공을 위해 시청률을 만들어낼 법한 코드들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더 담담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건네겠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제목에서 묻어나듯 1988년을 시대상으로 다룬다. 물론 시대는 배경일 뿐이고 그 시대의 공기가 제공하는 가족적인 이웃의 이야기가 진짜 알맹이다. <한 지붕 세 가족>2015년 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86년부터 94년까지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은 지금에는 찾아보기가 힘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이웃사촌들이 엮어가는 정이 넘치는 드라마였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방영되던 그 중간지점으로서의 1988년을 신원호 PD가 굳이 소환한 건 당대가 그나마 이러한 이웃 간의 가족이야기가 가능한 시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5년에 1988년 이웃사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세련됨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개인화된 도회적 삶과도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맨땅의 헤딩같은 시도에 신원호 PD가 스스로 폭망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일 게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우리가 <응답하라> 시리즈에 바라는 것일 수 있다. TV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다 비슷해 보이는 코드화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담담해도 우리의 감성을 적셔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물론 시청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시청률을 떠나서 1988년을 중심으로 한 80년대의 가족적인 이야기들과 당대를 단박에 회고시키는 음악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과연 망했다고 했던 <삼시세끼>처럼 <응답하라 1988>도 의외의 지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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