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다 해도 강력한 힘 발휘하는 <응팔> 멜로

 

<응답하라1988>에서 덕선(혜리)의 남편이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이제 최고조에 올랐다. 좁혀진 대상은 택이(박보검)와 정환(류준열). 심지어 네티즌 수사대(?)가 장면 속에 있는 소품들까지 체크해가며 누가 미래의 남편일지에 대한 추론을 내놓을 정도다. 스포일러가 쏟아지는 것 때문에 제작진들이 곤란해진 입장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호기심과 궁금증이라면 스포일러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소개팅남에게 바람맞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오다 쌍문동 골목 친구들의 눈에 띠어 그대로 이승환 콘서트장에 가는 길이라고 둘러댄 덕선(혜리)은 추운 날씨에 콘서트장 앞에서 벌벌 떨며 친구 자현(이세영)을 기다렸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정환이 콘서트장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이제 그가 드디어 덕선에게 고백을 하는가 하는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건 택이. 그는 승부사답게 그 날의 대국에 최초로 기권패를 당하면서까지 덕선이 있는 콘서트장을 향해 달려갔다. 뒤늦게 택이가 먼저 온 사실을 안 정환은 운명을 탓하며 돌아서야 했다. 택이가 미래의 남편일 지도 모른다는 이 장면은 미래의 덕선(이미연)이 남편이 인터뷰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역시 택이가 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미 인터뷰를 싫어하는 택이의 에피소드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책 좀 그만 보라는 미래의 덕선의 이야기는 또 그 남편이 정환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마지막에 이르러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정환은 반지를 꺼내놓고 덕선에게 의외의 사랑고백을 했다. “원래 졸업할 때 주려고 했는데 이제 준다. 나 너 좋아해. 매일 같이 너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너 독서실에서 올 때까지 걱정돼서 한 숨도 못 잤다. 내 신경은 온통 너였다.” 하지만 이 고백은 동룡(이동휘)에게 이제 됐냐 XX? 이게 네 소원이라며?”하는 말 한 마디로 농담처럼 뉘앙스가 바뀌었다. 결국 친구들과 덕선이 모두 웃고 넘어가는 에피소드로 끝나 버렸다.

 

드라마 시작 전 시청자들은 또 남편 찾기콘셉트의 이야기를 <응답하라1988>에서도 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 때 신원호 PD는 물론 <응답하라1988>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것이지만 재미 요소로서 남편 찾기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청자들은 남편 찾기콘셉트가 이제는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결말에 이르자 신원호 PD가 말했던 것처럼 남편 찾기콘셉트의 힘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택이와 정환. 두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시청자들에 어필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구 하나를 조연이나 악역으로 만들지 않고 둘 다 덕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 배려하는 모습은 두 캐릭터에 대한 호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키워놓았다.

 

물론 그간 <응답하라1988>이 다룬 건 멜로만이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형제, 남매, 자매 간의 애정. 또 친구들 사이의 우정 등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조합을 통해 보여지면서 드라마에 훈훈한 정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강력한 한 방은 덕선의 미래 남편에 대한 궁금증으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심지어 과열 양상까지 띠는 상황. 이러니 신원호 PD가 말했듯 이 재미요소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게다



<응팔>, 덕선 남편보다 빛나는 택이와 정환의 우정

 

어남류인가 혹남택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한 분들도 있을 게다.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란 뜻이고 혹남택혹시 남편은 택이란 뜻이다. 이 두 신조어는 tvN <응답하라1988>의 인기를 말해준다. 오죽 드라마가 인기 있으면 누가 극중 여주인공인 덕선(혜리)의 미래 남편일까를 두고 이토록 열띤 화제가 될 것인가.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는 단연 택이(박보검)가 돋보였다. 그는 이미 쌍문동 골목에서 천재 바둑기사로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적인 보물(?)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대회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상당한 돈과 영향력을 거머쥔 인물이기도 하다. 보통의 멜로드라마라면 이런 판타지적인 캐릭터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되고 단 몇 회만에 어남류라는 말이 나왔다. 정환(류준열)은 덕선을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인물이다. 덕선 모르게 그녀를 챙겨주지만 앞에서는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인다. 요즘 젊은 세대를 열광시키는 이른바 츤데레(겉으로 퉁명스럽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뜻의 신조어)’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정환이 이른바 어남류라는 말까지 만든 데는 단지 애정만이 아니라 친구를 배려하는 우정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정환의 마음을 아무도 모르는 사이, 어느 날 택이가 덕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슬쩍 꺼내놓자 그는 더 꽁꽁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덕선과 더 선을 긋는다. 또 자신은 가슴앓이를 해도 진정으로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면으로는 너무 바보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은 어딘지 약자(?)의 위치에 서 있지만 심지어 배려까지 하고 있는 정환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게 된다.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생긴 정환에게 시청자들이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심리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택이가 점점 덕선에게 다가가고 정환은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응원하는 마음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응답하라1988>은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을 만들어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덕선에 대한 사랑을 이제 막 표현하려고 할 때 택이가 정환의 마음을 알아채게 된 것. 덕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걸 눈치 채고 또 그가 놓고 간 지갑에서 덕선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물처럼 들어있는 걸 확인하고는 택이는 특유의 어른스러움으로 돌아간다. 택이는 바둑기사의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돌아가 덕선에게 고백하려던 마음을 접어버린다.

 

애초에 <응답하라1988>이 시작되기 전 신원호 PD는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왔던 남편 찾기콘셉트가 이번에도 또 나올 거라고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재미요소일 뿐 이번 드라마의 주요 콘셉트는 가족이라는 걸 명확히 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응답하라1988>에서 어남류혹남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누가 누구의 남편이 되는가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거기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덕선에 대한 사랑이 친구 간의 우정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우정을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건, 이 드라마가 애정보다 우정 나아가 친구와 이웃을 넘어서 마치 가족 같은 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다분히 사랑타령보다는 사람 간의 정에 더 갈급해진 현실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응답하라1988>이 그 어떤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더 큰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었던 힘. 덕선의 남편찾기보다 빛나는 택이와 정환의 우정에서 그 힘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응팔>이 만든 만만찮은 파장, 향후 드라마 판도는?

 

예능 드라마? 한 때 이 이상한 조어의 드라마는 드라마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는 비하의 대상이었다. 드라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어찌 보면 너무 가볍게도 느껴지고 어찌 보면 만화 같기도 한 이 근본 없는(?) 드라마에 예능 드라마라는 어설픈 이름을 붙인 것에도 아마도 그 비하의 의미는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고 여겨진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 시리즈 이야기다. 처음 <응답하라1997>을 신원호 PD가 만든다고 했을 때 필자 역시 그건 드라마가 아니라 시트콤일 것이라 섣불리 예단했던 적이 있다. 예능 PD가 드라마를 한다는 걸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과거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했던 경력을 떠올리며 <응답하라1997> 역시 시트콤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이런 섣부른 예단은 첫 회가 방영된 후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건 시트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존 드라마 문법을 따르는 드라마도 아니었다. 드라마와 예능 사이 애매모호한 경계를 밟고 있는 <응답하라1997>은 그러나 성공적이었다. 2012년에 <응답하라1997>이 방영된 후 3, <응답하라1988>은 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가 결코 드라마 바깥에 놓여진 돌연변이가 아니라 어찌 보면 달라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들의 취향 때문에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드라마들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올해 드라마 판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지상파의 고민과 비지상파의 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들은 기존 플랫폼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MBC는 기존 지상파 주 시청층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래서 익숙한 자극적인 코드들을 버무려 주말드라마 헤게모니를 만들었다. MBC 주말드라마는 그래서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가져갔지만 잃은 것도 만만찮다. 결코 미래지향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그 선택이 MBC 드라마의 위상을 깎아먹은 것이다.

 

SBS는 이른바 복합장르라는 새로운 드라마의 틀을 만들어내며 이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기존 지상파의 헤게모니를 이어가려 노력했다. 현재 하고 있는 <리멤버 아들의 전쟁> 같은 복합장르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냄새를 보는 소녀> 같은 SBS가 시도해온 일련의 복합장르의 실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KBS는 이런 변화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 지상파 드라마 헤게모니의 핵심이랄 수 있었던 가족드라마, 일일드라마, 정통사극 안에 머물렀다. 그나마 올해의 성과라고 하면 <프로듀사> 같은 예능과 드라마의 접목을 통해 탄생한 작품 정도일 것이다. KBS 드라마의 부진은 이제 점점 사라져가는 지상파 플랫폼의 힘과 새로운 드라마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파 드라마들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고민하며 이런 저런 선택을 하고 있을 때 비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틈새를 통해 비상했다. JTBC는 작년 <밀회>를 통해 확고한 드라마의 강자임을 증명했지만 올해는 <송곳> 이외에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변화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일이다. JTBC는 지상파와의 차별점으로 정통드라마를 주창해왔지만 올해는 <라스트><디데이> 같은 장르물의 실험을 시도했다. 물론 그 장르물이 성취를 갖지 못했지만 정통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점은 역력해보였다.

 

비지상파 드라마의 비상을 전면에서 이끈 건 다름 아닌 tvN이다. tvN<응답하라1997>의 성취에 이어 끊임없이 예능적인 성격을 가진 드라마들과 영화적인 드라마들을 공격적으로 포진해왔다. 작년 <미생>이 드라마 전체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물론 그 원작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올해 <오 나의 귀신님>이나 <두 번째 스무 살>이 모두 7%대의 시청률을 낸 것은 tvN표 드라마의 지속적인 투자가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모두가 인정하듯 <응답하라1988>이다. 이 드라마는 마치 비지상파 드라마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고, 또한 지상파 본방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케이블과 종편이 새롭게 등장한데다 모바일이나 IPTV 시청이라는 새로운 시청패턴이 등장하고 있는 혼돈기에 이 드라마는 하나의 대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응답하라1988>의 구성이 너무 허술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기존 드라마 문법 안에서 이 드라마를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응답하라1988>은 예능의 좋은 유전자들을 가져와 드라마에 이식한 작품이다. 마치 예능이 그러하듯이 캐릭터가 선명하게 세워져 있고 매회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 한 편의 완결된 영화처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시트콤적인 구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응답하라1988>은 시트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을 갖고 있다.

 

이렇게 캐릭터를 선명하게 세우고 매회 끊어지는 에피소드로 구성하게 되면 드라마 전편을 굳이 다 보지 않아도 중간 중간에 들어와 충분히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틀이 가능해진다. 마치 <12>을 몇 주 못 봤다고 해서 다음 회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한 회 분량의 에피소드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이야기들로 짧게 짧게 끊어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한 회를 다 보지 않아도 이른바 짤방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응답하라1988>은 현재 16%(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게다가 이만한 화제를 매일 같이 쏟아내는 드라마도 없다. 지상파도 내기 힘든 시청률과 화제성. <응답하라1988>은 현재 플랫폼 변화와 시청자들의 취향 변화 속에 혼돈에 빠진 드라마계의 새로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예능 드라마라고 비하했던 이들 드라마들은 이제 향후 드라마계의 새로운 판도를 예고하고 있다



tvN 대표상품 <응팔><삼시세끼> 그 연전연승의 비결

 

올해의 마지막을 <응답하라1988><삼시세끼>가 잘 마무리해주었으면 합니다.” <응답하라1988>이 시작되기 전 tvN 이명한 본부장은 그 전망을 묻는 필자에게 그렇게 말한 바 있다. 결과론이지만 말 그대로 올해의 마지막을 <응답하라1988><삼시세끼>가 제대로 마무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고 시청률 13%(닐슨 코리아). 이 두 프로그램이 거둔 성적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렇게 나란히 두 프로그램이 이런 성적을 낸 건 그 유례가 없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단지 성적만이 아니다. 올해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삼시세끼><응답하라1988>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삼시세끼>는 예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그 잠재력을 한없이 확장시켰고, <응답하라1988>은 이제는 신원호표라고 해도 좋을 법한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의 틀을 확고히 구축했다. 이 두 콘텐츠는 다름 아닌 tvN을 대표하는 상품이 되었고 그 방송국 브랜드를 만드는데도 지대한 위치를 차지했다.

 

궁금한 건 어떻게 이처럼 이 두 프로그램이 연전연승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대부분 본편이 성공하면 속편은 망하는 게 통상적이다. 본편의 기대감을 속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시세끼><응답하라1988>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점점 올라간다. 반응도 점점 뜨거워진다. <삼시세끼>가 이제 어촌편 마지막을 찍었다는 이야기에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마지막이란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토로한다.

 

이것이 가능한 건 새로움과 익숙함을 제대로 묶어내는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의 탁월한 균형감각 덕분이다. 신원호 PD는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속편이 왜 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 본편이 성공하면 속편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주려 한다. 만일 감독이 바뀌게 되면 이런 새로움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중들이 원하는 건 본편의 성공에 들어있는 익숙한 요소들이다. 물론 속편만이 갖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는 있어야 하지만 본편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신원호 PD는 말한 바 있다.

 

나영석 PD의 연전연승의 힘은 항상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에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 또 생각하는 것들을 본인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어야 저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삼시세끼>가 정선을 여러 번 찾아가고 또 만재도를 찾아가서도 변함없는 건 이 대중들이 원하는 편안하고 아날로그적인 정서다. 물론 매번 새로운 인물들이 찾아오고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궁극적으로 그 바탕의 이야기는 이서진과 옥택연, 차승원과 유해진의 익숙한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응답하라1988><응답하라1994><응답하라1997>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 놀랍긴 하지만 신원호 PD의 생각을 떠올려보면 전혀 예측불허의 일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삼시세끼><꽃보다> 시리즈를 변주하며 연전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나영석 PD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것은 모두 대중들에게 맞춰진 이들의 일관된 시선에서 가능해진 일들이다.

 

어쨌든 이들이 이처럼 대중의 눈높이를 유지해준 결과 올해도 우리는 즐거움과 감동을 이들의 콘텐츠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듯 <삼시세끼>는 피곤한 일상에 청량제가 되어주었고, <응답하라1988>은 각박한 현실에 따뜻한 손난로가 되어주었다. 내년에도 이들의 연전연승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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