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사나이>, 김소연의 태도에는 특별한 게 있다

 

배우 김소연에게는 늘 특별한 느낌 같은 것이 배어있었다. 시상식장이나 드라마 종방연에서 가끔 만나보게 된 김소연은 이 인물이 드라마 속 그 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다소곳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늘 들여다보는 듯한 그 섬세하고 배려 깊은 모습은 때로는 지나치게 예의바른 느낌마저 주었다. 김소연에게서는 상대가 누구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 삶의 태도가 묻어났다. 그녀는 그런 인물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녀가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투입된다고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은 <아이리스>에서의 여전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와 실체는 다를 수밖에 없는 법. 그녀가 체력적으로 허당이라는 건 기초 체력검사를 하는 그 순간에 다 드러나 버렸다. 팔굽혀펴기 백 번 정도는 거뜬히 해낼 것 같고, 윗몸일으키기도 마치 숨 쉬듯 편하게 할 것 같은 그녀였지만 실제는 정반대. 그녀는 팔굽혀펴기 하나도 쉽지 않은 저질체력의 소유자였다.

 

구보 중에는 먼저 가십시오!”하는 말이 입에 배어 나오고, PT 체조를 하면서도 연실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며, 포복으로 10미터 전진하는 것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힘겨워하는 김소연은 그러나 화생방 훈련에 들어가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들 눈물 콧물 쏟아내는 그 최루가스에 밖으로 뛰쳐나가려 안간힘을 쓸 때, 김소연은 그걸 묵묵히 버텨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체력은 떨어져도 하고자 하는 정신력이나 태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악바리라는 걸 그녀는 보여주었다.

 

훈련 중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같은 말들이다. 거기에는 안 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가 묻어나고,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동료들이 힘들어할까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말들이 <진짜사나이>를 통해 들려올 때마다 시상식장이나 종방연에서 늘 상대방을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평소 그녀의 태도는 혹독한 훈련장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4미터가 넘는 벽을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오르는 유격훈련장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올라가려는 동료를 밑에서 받쳐주려 안간힘을 썼다. 밑으로 점점 내려오는 동료를 위해 악착같이 군홧발을 머리로 받쳐주는 모습에서 우아한 여배우나 멋진 여전사의 모습은 없었다. 결국 바닥에 깔려버린 그녀를 위해 조교들이 나서게 됐지만, 그렇게 동료를 위해 제 몸을 기꺼이 지지대로 내던지는 모습은 그 어떤 여배우나 여전사보다 더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구름사다리를 마치 에베레스트산 정복하듯 힘겹게 오른 그녀는 동료들 중 특별히 감사한 전우가 있냐는 서경석 조교의 질문에 한 명을 택할 수 없이 전부 하나하나 다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모두가 그 말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 말에서는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간 훈련을 통해 해왔던 그녀의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들이 거기에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이 곳에 와서 뭘 느끼나?”하고 서경석 조교가 묻자 김소연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내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도저히 못할 듯 보였던 것들을 조금씩 해낼 수 있었던이유는 뭘까. 그녀가 악바리라서?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악바리 근성까지 드러내 보이며 악착같이 해내려 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타인들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착한 심성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여러모로 여기 출연한 여성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귀여운 앙탈 하나로 화제가 된 혜리가 그렇고, 대대장 포스의 라미란이 그러하며, 남편 닮아 바르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풍기는 홍은희나 언어가 익숙지 않아 엉뚱하지만 의외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지나, 그리고 영 군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유격장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 맹승지, 또 운동선수 출신으로 묵묵히 힘겨운 훈련을 이겨내는 박승희까지 그렇다. 군대 가면 진면목이 나온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악바리 김소연이 특별히 감동을 주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어쩌면 배려 없고 예의 없는 현실과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배려하고 예의 깊은 그녀의 모습이 주는 어떤 울림 때문이 아닐까.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은 단순히 여자들의 군대 체험만이 아니라 사회나 조직에서 겪게 되는 일종의 단체생활에서의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특히 이 특집에 관심을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김소연의 자신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악바리 근성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진짜사나이> 장혁의 영화 찍기와 그 역효과

 

<진짜사나이> 수방사편에서 특임대에 들어간 장혁은 매번 모의 훈련 때마다 거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권도로 무장한 장혁은 버스에서의 대테러진압훈련에서도 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테러범을 제압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인질을 구출하는 훈련에서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창밖에서 진압 도중 생겨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적을 조준하는 자세를 진짜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훈련 과정에서 장혁의 모습은 조금 과한 느낌을 주었다.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는 훈련에서도 장혁의 동작은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한 편의 영화였다. 그 때마다 훈련교관들은 당황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한 마디로 ‘너무 잘 해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통해 예능적인 연출을 보여준 것. 하지만 장혁의 조금은 과한 동작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너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아이리스>를 떠올리게 된 것.

 

이것은 영화만큼 장혁이 잘 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영화처럼 너무 짜여진 각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들 일어나는 것조차 천근만근인 상황이지만 장혁은 그 와중에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 그의 모습에 일반병사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실제 병사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연예인과 군인들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부대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청룡대대나 이기자 부대처럼 체력적 부담을 느낄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곳에서 장혁의 모습은 FM병사의 그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떤 인간적인 허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뭐든 말로는 최고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경기에 나가 한 방에 모래판에 꽂혀버리는 모습은 장혁의 액션(?)에 실감을 만들어주었다. 즉 폼은 멋있고 또 체력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실전은 역시 실전이라는 것.

 

하지만 수방사 특임대에서 장혁이 보여주는 액션은 심지어 교관들조차 압도되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이것은 수방사 특임대가 다른 부대에 비해 훈련 강도가 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혁이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실제야 어디 그리 쉽겠냐마는 방송으로 나오는 장면만을 두고 보면 장혁이 잘 하면 잘 할수록 특임대의 훈련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짜사나이>의 존재이유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진짜사나이>의 주인공들은 힘들게 군복무를 하는 일반사병들이지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역할은 사병들이 얼마나 열심히 군복무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또 공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수방사 편에서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일반병사들에게 마치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장혁이 내무반에서 사병들에게 하는 이른바 ‘연애 특강’은 인생 선배로서는 이해되는 일이지만 진짜 군대 생활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수방사편의 훈련내용이 지금껏 나온 다른 부대들에 비해서 너무 약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방사편에서 일반사병 중 가장 많은 방송분량을 만들고 있는 ‘특별한 선임’ 손지민 일병은 연예인 구멍병사보다 더 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심지어 손지민 일병이 받쳐주지 못해 서경석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빗속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치르는 유격훈련이나 잠을 자지 않고 훈련을 버텨내는 고강도 무박훈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수방사가 보여주는 테러진압 훈련이 너무 짜여져 있어 약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대마다 특성이 있기 마련이고 또 훈련강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한 부대에 전입되면 거기에 맞춰 생활하는 군인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부대 간의 비교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 균형을 방송 제작진과 출연진이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출연진은 이전에 다른 부대를 경험하고 온 터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대와 부대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수방사편은 특히 류수영 같은 <진짜사나이>에 걸맞는 ‘힘겨워도 긍정하는’ 인물이 스케줄 때문에 중도에 부대를 빠져나갔고, 목 부상을 당한 샘 해밍턴이 훈련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균형이 깨진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혁의 영화 같은 액션은 너무 튀는 인상만 남기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과 사병들 사이에 어떤 소통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수방사편은 <진짜사나이>의 그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연기는 과정, 비판 없으면 성장도 없어

 

연기력에 있어서 김태희와 수지는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맞는 얘기다. 연기자 출신으로 연기 경력이 10년이 넘은 김태희와, 가수 출신으로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수지의 연기력을 비교한다는 건 어딘지 공정치 않아 보인다. 즉 이들의 연기력을 상대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의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게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대중과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를 보면 김태희는 늘 그렇듯이 연기력으로 욕을 먹고, 수지는 칭찬받는다. 김태희가 욕을 먹는 근거 중 가장 큰 것은 그렇게 오래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지가 칭찬받는 이유는 본격적인 연기자도 아니고 연기를 오래하지도 않았지만 연기가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잣대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면 김태희는 정말 연기가 늘지 않았고 지금 하고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라는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존재일까. 또 수지는 과연 몰입에 방해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해주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연기자에 대한 일정부분의 편견과 정서가 작용한다. 김태희 하면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연기력 논란이라는 연관검색어를 떠올리는 관성이 있다. 반면 <건축학개론>의 후광효과로서 수지는 만인의 연인,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이미지화되는 경향이 있다.

 

시청률도 무시하지 못한다. 가혹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시청률이 부진하면 그 희생양으로 여배우의 연기를 드는 경향이 있다. 괜찮은 시청률을 보였던 <아이리스>에서도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래도 멜로와 액션을 넘나든 괜찮은 연기라는 평도 있었다. 당시 KBS 연기대상에서 김태희는 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장옥정>은 어떨까.

 

<장옥정> 방영 초반에 김태희에 대한 연기력 논란이 쏟아진 건 연기의 문제도 있었지만 캐릭터와 시청률의 영향도 컸다. 김태희 연기의 문제는 본인이 연기하는 자신을 자꾸 의식한다는 데 있다. 연기력 논란이 생기면 이런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일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장옥정의 진짜 캐릭터(독하게 변해가는 모습)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장희빈의 이미지와 김태희가 초반 연기하는 장옥정은 부딪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청률의 추락은 더더욱 이 모든 것이 김태희 연기의 문제로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옥정이 본래의 캐릭터를 회복하는 순간부터 김태희의 연기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김태희는 자신에게 쏟아진 연기력 논란의 문제를 장옥정이라는 캐릭터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연기자로서는 영리했던 선택이다. 드라마 속에서 악에 받친 듯한 한스러운 눈빛은 어쩌면 김태희 자신의 답답한 마음의 토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선택은 그녀가 연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과거 장희빈을 다룬 작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 연기와 비교되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연기로만 따지만 이번 작품은 과거의 작품들과 비교해 결코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특히 장옥정이라는 캐릭터의 연기가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악독한 인물이 아니라, 그 악독해져가는 변화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가, 궁으로 들어와서는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점점 독해지고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잃고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변화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연기다.

 

그렇다면 <구사의 서>에서 수지가 연기하는 담여울은 어떨까. 사극 연기가 처음이라 쉽지 않다고 하지만 <구가의 서>는 본격적인 사극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판타지에 가까운 <구가의 서>는 그래서 현대 어투를 사용해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담여울이라는 캐릭터는 수지가 늘 해왔던 연기의 연장선이다. 운명적인 사랑의 아이콘. 때론 남자처럼 털털하고 그러면서도 두근두근 설렘을 주는 캐릭터. 이것은 연기라기보다는 수지가 가진 이미지의 매력 그 자체다. 수지는 여전히 <건축학개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게다가 우리는 수지에게 엄청난 연기력이나 연기 변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만일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수지가 장옥정 같은 악역을 연기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누구나 미스 캐스팅으로 여길 것이다. 수지에 대한 기대치는 바로 수지 자신이 갖고 있는 순수한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오는 것에서 만족된다. 이것은 연기의 영역이 아니다. 캐스팅의 영역일 뿐.

 

김태희와 수지의 연기를 비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경력이 어떻든 출신이 어떻든 둘 다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연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또 앞으로 할 것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각자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여러모로 김태희의 연기에 쏟아지는 비난은 그녀에게는 훗날 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과거의 CF스타의 모습과는 달리 이제 진정으로 김태희가 연기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장옥정이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그래서 그녀에게 연기자로서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어떤 연기를 해도 칭찬받는 수지는 만일 연기를 앞으로도 계속 할 요량이라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나오는 칭찬이란 기대치가 낮거나 캐릭터에 대한 연기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지 본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시간이 흐르면 소멸되고 만다. 연기자는 자신의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로의 변신이 가능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들보다 여배우들은 귀하다. 이렇게 된 것은 대중들이 여배우에게 갖는 이미지가 남자 배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배우들은 논란도 많이 겪게된다. 나이 들거나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하는 것들은 여배우에게는 하나의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김태희도 수지도 바로 그 귀한 여배우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좋은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난도 칭찬도 모두 약이 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장옥정>의 끝없는 추락, 그 이유는 뭘까

 

역시 김태희의 사극 캐스팅은 무리수였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의 시청률이 7%대까지 추락하면서 그 원인으로 김태희의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색한 표정 연기와 어려운 사극 톤에 어울리지 않는 발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장옥정>의 부진은 과연 온전히 김태희의 연기력 부족 때문일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물론 김태희의 연기력은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되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극 특유의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극의 대사 톤은 현대극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인 발성으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사극 특유의 연기 톤을 자기 특유의 색깔과 맞춰 자기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김태희의 목소리는 복색만 한복을 입었을 뿐, 현대극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자들 사이에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옥정>의 유아인과 김태희 캐스팅은 극중 캐릭터와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멜로 드라마의 경우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캐스팅된 배우들의 조합 그 자체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이 많은 김태희와 한참 어려보이는 유아인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멜로의 결을 만들어내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남녀 연기자들 사이의 조합 문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 조합이나, <구가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의 조합을 생각해보라. 그 캐스팅 자체가 기대감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대한 대로 김혜수는 카리스마와 코믹과 슬픔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오지호는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에서 보여줬던 코믹하고 과장된 캐릭터를 잘도 소화해내고 있다. 또 <구사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는 그 확실한 비주얼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 만들어내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본래 연기력 논란은 캐스팅 논란이나 캐릭터 논란과 겹쳐져 나타나곤 한다. <장옥정>은 사극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현대극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제목을 장옥정으로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 다른 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옥정은 심지어 그 시대에 패션쇼를 여는 패션 디자이너다.

 

만일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들이대지 않았다면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을 수 있다. 실제로 군복 디자인을 하기 위해 이순(유아인)의 친위대 비밀야영지로 들어온 장옥정이 군복을 직접 입어보고 군영을 체험하는 장면은 사극으로서는 이색적이다. ‘옷을 만드는 여인’이 그저 미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그 패션 디자이너를 세우자 충돌이 생겨난다. 장희빈으로 기억되는 그 강렬한 이미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악녀로 낙인찍히기는 했어도 그 절절함과 절실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장옥정>에 등장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기존 장희빈이 갖고 있던 그 절실함이 빠져 있다.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여인이라도 역사적 인물로서 장희빈을 내세웠다면 적어도 그 절절함만큼은 가져갔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장옥정>은 기존 장희빈을 기억하는 사극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사랑타령이 되어버렸고, 또 새로운 사극을 희망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옷(무려 장희빈이라는!)을 입은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마치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를 그리는 퓨전사극에 어색하게도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억지로 꿰어 덧댄 느낌이다. 작품이 이렇게 어정쩡한 선에 서 있으니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입은 캐릭터라는 옷이 잘 맞을 리 없다. <장옥정>의 추락은 물론 김태희 연기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바로 현대극인지 사극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작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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