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드라마와 영화사이 길을 찾다

'아이리스'의 대중적 인기는 이례적이다. HD나 대형화 되어가는 TV로 인해 안방극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드라마는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간 시도되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 예를 들면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드라마들이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실패는 영화적인 볼거리를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아이리스'의 선택은 볼거리가 아닌 스토리였을까.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새롭지 않다. 우리는 이 드라마 속에서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들에서 보았던 익숙한 설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이리스'의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왔던 것일까.

'아이리스'의 성공은 장르적인 공식에 충실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해낸 연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 세련된 장르 영화에 가깝다. 이미 반복되어 하나의 형식이 굳어져 있지만, 색다른 연출을 통해 여전히 보는 이에게 쾌감을 주는 장르 영화. '태양을 삼켜라' 같은 블록버스터 드라마 역시 장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양을 삼켜라'의 스토리나 연출은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드라마적이다. 영화 같은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볼거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영화처럼 장면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 또한 영화처럼 압축되어 있지 않고 상당히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태양을 삼켜라'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적인 볼거리를 주면서도 그 감각적인 영상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영화적인 차원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현장성을 부각하기 위해 끝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나, 짧게 압축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의 연결, 인물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섬세한 카메라 앵글 등은 '아이리스'가 그간 보아왔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의 영상과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스토리 또한 대단히 압축적이다. 첫 회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벌어지는 김현준(이병헌)의 암살과 탈출의 장면들은 4회에서 반복되는데, 이 1회에서 4회 사이의 거리는 대단히 좁다. 그리고 4회에서 5회까지 이어지는 헝가리 시퀀스 역시 그 속도감은 여전하다.

이 속도감 위에 현준과 승희(김태희)가 아키타현으로 여행을 떠나서 보여준 멜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휴식처처럼 존재하는 이완감으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멜로구도는 이어지는 속도의 액션 위에 인물들이 감정을 싣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미 공식화된 장르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이 감정과 아드레날린의 속도 위로 달려 나가는 쾌감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너무 복잡한 스토리의 영화보다 단순한 스토리 위에 현란한 장면들로 펼쳐지는 영화가 보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아이리스'는 드라마라는 틀로 들어오면서 장르 영화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초반부 폭발적인 몰입을 이끌어내면서 대중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달리, 몇 시간 내에 끝이 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따라서 속도감 넘치는 장면들이 주는 몰입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둔감해지기 마련이고, 그 때는 이제 점점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가 드러나게 된다. 즉 새로운 스토리의 부재는 이제 이 몰입감을 더 이상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게다가 초반부 이 드라마는 영화적인 연출에 몰두하면서 중요한 시퀀스 하나를 버리는 실수를 했다. 그것은 현준과 선화(김소연) 사이에 벌어지게 되는 멜로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편집해 버린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멜로는 끝없는 긴장감 속에 이완감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현준과 승희가 서로를 죽은 것으로 생각하며 갈라져 있는 시간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현준과 선화의 멜로가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실로 아쉬운 부분이다.

'아이리스'가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액션의 반복이 지루한 감을 주는 것은 여기에 얹어지는 적절한 새로운 스토리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그 속도를 어느 정도 제어해줄 수 있는 장치(이를테면 멜로나 코믹적인 인물 같은)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적 선택을 하면서 드라마적 고려를 잘 하지 못한 이 작품의 모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병헌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액션 속에서도 이병헌의 감정 연기는 이 복잡하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드라마를 중장년층 여성들마저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이리스'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모색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매체적인 변화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거리를 상당부분 좁혀놓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거두고 있는 일련의 성과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연출과 연기의 힘, '아이리스'

'아이리스'의 화면은 멈춰서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기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이 계속 움직이는 화면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그 흔들리는 카메라에 적응이 되면 그 영상이 주는 심리적 뉘앙스는 새로운 묘미로 다가오게 된다. 마치 현장의 근거리에서 그 사건상황들을 바라보는 듯한 긴박감을 연출해내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또한 순간적인 점프 컷 같은 것들이 자주 사용된다. 갑자기 연결을 툭 끊어버리며 바뀌는 장면의 연속은 현장의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을 포착해낸다. 외부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마치 주인공이 떠올리는 듯한 영상들이 툭툭 들어오면 무언가 긴박한 사건들이 여전히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아이리스'에서는 가장 긴박한 순간에 가장 편안한 영상으로 교차편집되곤 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북측 요원 암살 명령으로 긴박감이 넘치는 NSS의 장면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현준(이병헌)과 승희(김태희)의 아름다운 영상이 교차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교차편집은 이 각각에 벌어지는 두 사건을 모두 강화하는 힘을 발휘한다. 한쪽에는 긴장감을 높이고 다른 한쪽에는 이완감을 높여주는 것이다.

현준이 요원 암살 명령을 받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서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다채로운 연출이 적절히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 등장하는 사건, 즉 스토리만 보면 그 내용이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요원 암살을 성공했지만 본부에 의해 버림받는 주인공, 그 주인공을 추격하는 적국과 본부 요원들, 그리고 그 주인공을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 저린 안타까움 등은 첩보 액션물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적인 스토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촘촘히 계산되어 짜여진 영상 연출과 그 연출을 실제 연기로 보여주는 연기자의 힘이다. 한 컷도 허투루 찍혀지지 않은 영상들을 그 심리적인 전개과정에 맞춰 편집해내는 이 드라마는 그간 영화에 비해 정체되어 있는 드라마의 연출을 다시 보게 만든다. HDTV가 보급되고, TV가 대형화되면서 안방극장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 현재, 여전히 과거의 관습적인 드라마 연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리스'의 영화적 연출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출을 구현해내는 연기자들의 연기 또한 '아이리스'가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이병헌은 멜로와 액션을 제대로 버무려내는 연기로 눈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가슴의 울림까지 만들어내고 있고, 그를 좇는 북측 핵심 첩보요원 박철영 역할의 김승우는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김태희의 연기는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고, 북측 작전공작원 김선화 역의 김소연 역시 이병헌의 여성판이라고 할 만큼 균형 잡힌 멜로와 액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연출이 잡아내는 아름다운 영상 위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혼신을 불태우는 연기. 이 '아이리스'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힘의 원천은 작금의 우리 드라마가 가진 정체된 연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블록버스터 '아이리스', 볼거리만이 아니다

TV가 대형화되고 HDTV 같은 고화질 TV가 대중화되면서 '안방극장'은 말 그대로 실현되는 듯 보였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기획되고 만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그만큼 시장이냐 규모 같은 외연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매체의 진화가 그 발판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목을 잡은 건, 영상이 아니라 스토리였다. 영상은 정말 영화를 방불케 했지만 스토리는 그 영상이 가진 세련됨을 전혀 따라가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화려한 영상은 오히려 스토리를 잡아먹는 괴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로비스트'가 그랬고, '태양을 삼켜라'가 그랬다. 드라마가 스토리를 좇아 움직이기보다는 영상만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이들 드라마가 그 거대한 규모만큼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 '아이리스'가 기획되는 단계에서부터 어찌 우려와 걱정이 없었을까. 이 또 하나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또 하나의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그저 그런 영화 흉내내기에 머무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그간 이런 드라마들의 과장된 제스처에 여러 번 속아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리스'가 다루는 소재에서 남북한의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점은 그 시의성이 과연 지금에도 적절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이 드라마가 영화 '쉬리'의 드라마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쉬리'의 성공은 그 시대가 아직까지 남북 간의 대결구도에 민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남북한의 이야기는 조금은 구닥다리의 냄새가 난다. 늘 비슷한 접근들이 이 소재 속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첫방을 통해 느껴지는 점은 최소한 이러한 우려들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물론 볼거리를 위해 헝가리로 달려가지만 단지 그 풍광이나 장면에만 집착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첫 번째 헝가리 시퀀스는 '본 얼티메이텀' 같은 이른바 본 시리즈가 보여주는 세련된 첩보액션을 잘 그려냈고 그 위에 인물의 감정 또한 포착해내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액션에 이어서 촘촘히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세 인물, 즉 김현준(이병헌), 진사우(정준호), 최승희(김태희)의 소소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배치되는 점은 이 드라마가 적어도 대작에 대한 조급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찬찬히 이야기를 만들어 극적인 장면으로 몰아가는 드라마 전개나, 그 전개를 잘 받쳐주는 영상 연출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볼거리는 물론이고 어떤 대중들과의 호응을 이끌어낼 스토리에도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멜로와 액션을 세련되게 잡아내는 이 드라마에서 이병헌은 자신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해내고 있다. 그는 멜로 연기와 액션 연기 두 가지를 동시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그의 액션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액션 연기가 단지 몸동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정에서부터 끌어올려지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이 우려되었던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풋풋한 본연의 이미지는 극중 최승희를 통해 그대로 보여지지만, 그녀는 또한 NSS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냉철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식상함을 벗어나고 있다.

물론 이제 첫방이 끝난 시점에서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첫방이 보여준 스토리와 볼거리의 적절한 조합은 이 드라마가 그간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속여온 그 오명을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과연 '아이리스'는 우리에게 진짜 의미의 '안방극장'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