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경고하던 동물다큐 이제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라이온킹>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평화롭게만 보였던 아프리카 동물들의 실상은 너무나 살풍경했다. 박신혜가 함께 헬기를 타고 따라간 그 곳에는 코끼리 사체들이 덤불에 가려진 채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놀랍게도 얼굴 전체가 도려내져 사라지고 없었다. 국경없는 코끼리회 대표 마이크 체이스 박사는 밀렵꾼들이 먼저 코끼리의 척추를 끊어놓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게 만든 후 살아있는 상태에서 톱으로 얼굴을 도려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는 총 사용을 피하고 또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란다.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은 휴먼과 애니멀이 더해진 제목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묻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저 아름다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만을 담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동물을 죽이고 사냥하며 학대하는 인간의 잔인함을 전면에 드러냈다. 죽어있는 코끼리 앞에서 말문이 막힌 채 눈시울이 붉어진 박신혜의 마음은 아마도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게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코끼리를 숭배한다는 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유해진이 찾아간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생태공원. 그 곳을 만든 야생동물보호 활동가 생드언 차일런트는 코끼리들과 거의 가족처럼 교감하고 스킨십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롭게만 보이는 풍경 이면을 알게 된 유해진은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곳에 온 코끼리들이 사실은 한평생을 잔인한 고문과 학대로 살아오다 오게 됐다는 것. 벌목이나 트래킹 관광, 코끼리 쇼 나아가 종교행사에까지 동원되는 코끼리들은 어려서부터 학대받아 왔다. 그 속에서 코끼리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코끼리쇼를 보여주는 곳을 찾아간 유해진은 그 곳에서 갖가지 묘기와 재롱을 보여주는 쇼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결코 웃거나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 이면을 봤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유해진과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을 게다.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어려서부터 그 긴 시간을 학대받으며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어찌 그런 쇼를 볼 수 있을까.

 

트로피헌팅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아프리카를 돕는 것처럼 포장되는 사실상 살상행위 역시 충격적이었다. 돈을 냈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자신들이 죽인 동물들을 박제해 집안에 전시해놓은 올리비아 오프레는 오히려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짐바브웨의 아름다운 사자 세실이 트로피 헌터들의 ‘작전’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생긴 세계적인 공분은 트로피헌팅이 얼마나 잔인한 사냥인가를 알려줬다. 세실이 사냥꾼들의 유인으로 넘어섰던 철로가에 선 류승룡은 그 곳에서 저 편에 세실이 서 있는 것만 같다며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휴머니멀>은 그저 단순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잔인한 인간들에 의해 어떻게 동물들이 학살당하고 학대당하는가를 보여준다. 박신혜, 유해진, 류승룡이 그랬던 것처럼 시청자들은 그걸 보면서 미안해지다가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지만 태국의 코끼리 생태공원의 활동가 생드언 차일런트가 한 말처럼 “누구나 눈물은 흘릴 수 있지만 땀은 누가 흘리냐”는 질문이 던져진다. <휴머니멀>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미안해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넘어 행동을 해야 한다고.(사진:MBC)

‘라이프 오브 사만다’, 치타에 투영된 정글 같은 현실과 모성애

 

치타를 보고만 있는데 어째서 마음이 짠해질까. SBS 창사특집 4부작 다큐멘터리 <라이프 오브 사만다>의 첫 회는 이 전편 4부작에 대한 프리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짧게 이 다큐멘터리가 무얼 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영화 <라이언킹>의 실제 무대이기도 한 케냐 마사이마라에 사는 치타 사만다. 새끼들 세 마리를 홀로 키우는 사만다에 감정이입이 되는 건 ‘싱글맘’이라는 지칭이다. 치타들은 암컷이 홀로 새끼들을 키우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수컷들은 짝짓기를 하고는 떠나버린다.

 

아프리카의 그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홀로 먹이를 구해야 새끼들을 키워야 하는 사만다의 이야기가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몰입시키는 건 그 삶이 우리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먼저 다큐멘터리는 치타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입견을 깨버린다. 치타라고 하면 굉장히 빠르고 그래서 먹이를 잡는 선수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한 번 달릴 때 엄청난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금세 지쳐버리고 먹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또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치타와는 너무나 다른 표범, 재규어 등과는 생태 자체가 다르고, 특히 다른 포식자들이 나타나면 도망갈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이 사만다 가족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은 건 치타가 늘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어서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고 또 그 와중에 먹이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사만다 가족을 찾기 위해 제작진들은 며칠 동안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새끼들을 챙겨야 하는 사만다는 어쩔 수 없이 제1 포식자인 사자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곳이 그나마 잡을 수 있는 영양 같은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어렵게 잡은 먹이도 제2 포식자인 하이에나가 나타나면 버리고 도망가야 할 정도 치타는 약하고 겁이 많았지만.

 

바로 이 두 지점이 사만다에 우리가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된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생존의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새끼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위험을 무릅쓰는 사만다의 모습이 주는 어떤 짠한 현실감과 그럼에도 따뜻한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곤충이든 사물이든 다큐멘터리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하던가. <라이프 오브 사만다>는 이역만리의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살아가는 치타 가족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그 풍경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삶이 존재하고, 때론 먹먹한 관계들이 존재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생명을 통해 얻는 위로가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

<꽃청춘>이 봐야할 아름다움, 풍광이 아닌 사람들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에서는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빅토리아 폭포에 도달한 청춘 4인방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실로 놀라운 풍광의 빅토리아 폭포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멀리서 보면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나고 무지개는 무시로 걸려있어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걸 목도한 청춘들의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압도적인 풍광 앞에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치 동화에 세계에 들어간 것만 같은 풍광 속에서 폭포를 옆에 두고 걸어오는 네 사람의 모습은 한 마디로 그림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거기까지 달려가면서 봐왔던 장면들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막과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는 사파리 그리고 도시를 거쳐 물의 축제가 벌어지는 빅토리아 폭포까지.

 

아마도 시청자들이 이런 느낌을 가질 정도니 거기 직접 여행에 참여한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 아름답고 심지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광은 압도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풍광들보다 더 아름다운 청춘들의 모습이 있었다.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그리고 박보검. 이 네 사람의 마치 형제처럼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청춘의 고단함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으니.

 

경표형이 텐트 쳐주시지 재홍이형이 밥 먹여주시지 준열이형이 운전해가지고 이곳저곳 다 데려다 주시지 저는 아무 것도 해드리는 게 없는 거예요.” 박보검은 인터뷰에서 형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실로 류준열은 6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괜찮다며 홀로 운전했고, 안재홍은 변변찮은 재료로도 최고로 맛나는 음식을 매번 챙겨줬으며, 고경표는 뚝딱뚝딱 텐트 치고 접는데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는 박보검 역시 형들을 알게 모르게 챙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모르게 옷을 개어주고, 설거리를 하거나 정리정돈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카메라 곳곳에서 잡혔다. 게다가 피곤할 형들을 위해 차에서 잠을 자는 걸 자청하기도 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형들은 숙소 침대를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겨진 건 이들 네 사람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총무를 덜컥 맡아 남들은 즐길 때 홀로 돈 계산에 걱정을 하는 고경표나, 학교 선배이기도 한 안재홍이 그런 고경표가 부담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모습. 운전이 미숙해 번번이 사고를 낸 박보검에게 짐짓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줬던 류준열이나 그런 형들이 고마워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부터 글썽이는 박보검.

 

압도적인 풍광이나 도로 위로 지나가는 기린, 가까이서 보이는 코끼리와 온통 분홍빛으로 호수를 물들이는 홍학 떼들의 비현실적인 장면들.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 편에는 그 어떤 여행보다 그런 이국적인 장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더 띄고 공감하게 되는 건 어떤 청춘들보다 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컸던 네 청춘이 아니었을까.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힘겨웠던 시절을 겪었기에 더 절절했을 그 마음.

<꽃청춘>, 우리들이야말로 그대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자 오늘도 한 번 외치고 시작할까?” “감사하다!” 이 구호는 이제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의 오프닝이자 엔딩이 되어가고 있다.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그리고 박보검. 처음에는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박보검 때문에 시작된 구호였다. 하지만 그 구호는 어느새 그들 모두의 마음이 되었다. 푸켓에서 나영석 PD에게 기쁘게(?) 유괴되어 아프리카 나미비아까지 이렇게 함께 오게 됐다는 사실이 그들은 못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모습이었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아마도 현실에 살아갈 때에는 그런 여유를 전혀 맛보지 못했을 터다. 이 청춘들은 나미비아까지 가서 어둑한 저녁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초성 게임을 하다가도 근데 여기가 아프리카야!”라고 말하면서 깔깔 대고 웃을 정도로 자신들이 그러고 있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었길래 이 여행 속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게 됐던 걸까.

 

<꽃보다 청춘><응답하라1988>에서 이들이 오디션을 봤던 그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고경표는 선우 역할을 하기 위해 몇 주 만에 살을 쪽 빼오는 열정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라고 신원호 PD는 말했지만 그의 살이 빠진 모습은 점점 더 고등학생 선우를 닮아갔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던 그다. <SNL 코리아>를 통해 세고 코믹한 캐릭터들을 소화하던 그가 <응답하라1988>의 정극 캐릭터에 도전했던 이유다.

 

고경표가 <꽃보다 청춘>에 합류해 함께 나미비아로 떠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꽃청춘> 같은 프로그램은 사랑받는 사람이 나가는 곳 아니냐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류준열 역시 <응답하라1988>의 오디션을 보고 자신이 발탁됐다는 사실에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여행에서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류준열이다. 자신감 있는 영어로 낮선 현지에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가고 또 동생들을 보듬어주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청춘의 많은 난관과 질곡들이다.

 

안재홍은 <응답하라1988>에 오디션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평소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그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에 놀라워했고, 그래서 자신 역시 오디션만이라도 보고 싶었다는 것. 낯을 가리고 긴장한 탓에 오디션이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는 정봉의 대사 몇 줄을 발견한 후에는 그도 제작진도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박보검은 <응답하라1988>에서 엄마 역할이었던 김선영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사를 오디션에서 하다가 목이 메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가 눈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활짝 웃을 때조차도 마음이 서늘해지는 어딘지 상처가 많아 보이는 박보검이 아닌가. 그가 극중에서 눈물을 흘릴 때 시청자들이 먹먹해졌던 건 그 연기 속에 그가 살아냈던 작지 않은 삶의 아픔 같은 것들이 느껴졌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일까. “감사하다!” 이렇게 늘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마음 한 구석에 짠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 <응답하라1988>이나 <꽃보다 청춘> 같은 프로그램이 대단하기 때문이겠지만, 도대체 청춘이라는 자산 하나만으로 도전하지만 얼마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면 오디션을 통과한 사실이나, 함께 여행을 가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토록 감사해하는 걸까.

 

아니 이것은 어쩌면 하나의 주문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감사하다고 말하다 보면 정말 감사한 일들이 생긴다고 박보검이 말한 것처럼. 사실 이 청춘들이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시청자들이 더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앞날에 늘 감사한 일들이 생겨나기를. 이 척박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청춘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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