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의 안중근 의사로 돌아온 현빈의 어른이 되는 과정

하얼빈

영화 ‘하얼빈’은 끝없이 펼쳐진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나가는 안중근(현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화 ‘듄’을 촬영했던 카메라 ARRI 65에 담겨진 광활한 압도적인 광경 속에 홀로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며 힘겨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안중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다. 신아산 전투에서 ‘만국공법’을 지켜야 한다며 풀어준 적장 때문에 동료들이 희생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고픈 마음에 얼음바닥에 눕기도 하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 다시 그 얼음 위를 걸어나간다. 그 때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안중근의 목소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는가를 드러낸다.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먼저 간 동지들이 그를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거였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은 그 두만강을 건너는 장면을 몽골의 홉스골이라는 호수에서 홀로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걷고 쓰러지고 누워버리다 다시 일어나 걷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찍었다고 한다. 영화만 봐도 그 촬영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현빈은 의외의 말을 꺼내놨다. 힘들기보다는 그 “고립되어 있고 외로이 있는 상황들이” 오히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거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위를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디뎌야 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그 혹독한 촬영 현장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얼빈’ 촬영 당시, 홉스골에서 있었던 이 이야기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한때는 비현실적으로 잘 생긴 외모 이야기가 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 더 많았던 현빈이었다. 하지만 그의 필모를 잘 들여다보면 그가 배우로서 얼마나 노력해왔고, 그 결과 현재의 아우라를 갖게 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를 스타덤에 올린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당시 그가 연기했던 현진헌이라는 인물이 가진 새로움이 느껴진다. 김삼순을 직원으로 둔 까칠한 연하남 사장이다. 그 까칠한 인물이 김삼순에게 점점 빠져들고 그래서 한라산 꼭대기에서 “누구 맘대로 김희진이야! 난 삼순이가 좋다고 그랬지?”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울컥하게 된 건 현빈의 눌러주는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 작품을 통해 현빈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배우가 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으로 현빈은 스타 배우로서의 정점을 찍는데 이 작품 역시 쉬운 역할은 아니었다. 백화점을 소유한 재벌3세 역할이었지만 스턴트우먼인 길라임(하지원)과 몸이 바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현빈은 무수한 광고의 모델이 될 정도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빈은 이러한 초절정의 인기 속에서도 그 순간에 깊숙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그건 평소 부모님이 현빈에게 “큰 거에 빠져 심취해 있으면 작은 것의 감사함을 모를뿐더러, 그것이 없을 때의 상실감도 클 수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의 이목이 다 집중되던 그 순간에 현빈은 해병대에 입대했고,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의 대상 수상소감도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영상으로 전해졌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는 군대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제 일과 현빈이라는 사람을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시기가 굉장히 좋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나오면 그게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거예요. 내 직업을 내가 이만큼 좋아하고 있고 이걸 놓지 않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 좋은 시간이었죠.” 

 

이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현빈은 전역 후 보다 성숙한 배우로서의 면모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역린’으로 첫 사극을 찍었는데, 단 한 줄로 ‘세밀한 등 근육’이라고 써 있는 그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가 아닌 맨 몸 운동으로 잔근육을 만들 정도로 그는 연기에 진심이었다.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고, 영화 ‘공조’에서는 임무를 받고 남한으로 내려와 남한 형사와 공조 수사를 진행하는 북한 형사를 연기했다. ‘협상’에서는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판타지 설정의 드라마에 그의 연기가 현실감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으로 또 한 번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함께 연기했던 손예진과 세기의 결혼에 골인해 가정을 이뤘다. 

 

이러한 일련의 성장 과정들이 있어서일까. ‘하얼빈’으로 돌아온 현빈은 어딘가 달라보인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보다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그건 그 서른 즈음에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걸어간 안중근을 이해하려한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하얼빈’에서 현빈은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에 있어서도 도드라진 면모를 보인다. 물론 그가 주인공이지만 함께 독립 투쟁을 한 다른 인물들이 똑같이 주목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하얼빈’은 안중근 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덕순(박정민), 이창섭(이동욱),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같은 여러 독립군의 면면이 살아있는 작품이 됐다. 

 

“내가 한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현빈은 가정을 꾸린 후의 변화를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점점 뒤로 가면서 이 상황들을 책임져가는 것. 내 중심에서 내가 중심이 아닌 사람이 점점 되어가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현빈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한발짝 뒤로 물러남으로써 생겨나는 여유는 깊이를 만든다. 연기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현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글:국방일보, 사진:영화'하얼빈')

‘지옥에서 온 판사’의 박신혜, 러블리한 악마 캐릭터의 탄생

지옥에서 온 판사

“이게 진짜 재판이야.” SBS 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강빛나(박신혜)는 지옥에 가는 게 마땅한 가해자들을 처단하며 그렇게 말한다. 그는 지옥에서 온 악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한 판사 강빛나의 몸으로 들어왔다. 지옥의 총책임자인 악마 바엘(신성록)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보내졌고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이 내려졌다. 세계관 설정부터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옥에 악마에 판사라니.

 

하지만 그런 이유로 지상에 내려와 판사로서 활동하게 된 악마 강빛나가 벌이는 가해자 처단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 이유는 가해자들이 너무나 잔혹한데 그들이 저지른 벌에 비해 처벌이 솜방망이인 현실 때문이다. 첫 번째 가해자로 등장한 인물은 심각한 교제 폭력을 저지르고도 300만 원의 벌금형만 받고 나와 또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끔찍한 폭행을 저지른 자다. 강빛나는 그에게 나타나 그가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대로 고스란히 당하며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결국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게 되면 “그럼 죽어”라며 지옥으로 보낸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둘이나 살해한 후에도 아이까지 상습적으로 학대해온 범죄자나 일가족을 살해한 범죄자 같은 끔찍한 사건들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가해자들을 시원하게 처단하는 악마 판사의 모습이 보여주는 카타르시스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악마가 하는 처단이라 그런지,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잔혹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잔혹함이 자칫 지나친 폭력성과 자극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장본인이 바로 박신혜다. 그는 ‘러블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배우이니 말이다. ‘천국의 계단’에서 여주인공인 한정서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박신혜는 그 후에도 주말드라마 ‘깍두기’, ‘미남이시네요’, ‘넌 내게 반했어’,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리고 최근에 방영된 ‘닥터 슬럼프’까지 러블리한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러블리한 아우라의 원천은 건강한 에너지다. 과거 드라마 ‘닥터스’를 함께 했던 고 김영애 선생님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신혜에 대해 한 말이 그 단서를 알려준다. “신혜는 발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아요. 땅을 튼튼하게 짚고 서 있는 참 밝고 건강한 아이. 이쪽 일하다 보면 땅에서 붕 떠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신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고, 좋은 여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함께 호흡 맞추는 게 예뻤어요.”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은 건강함에서 나오는 러블리함. 그런데 그 러블리함은 지옥에서 온 판사 같은 하늘에 붕붕 띄워진 캐릭터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눈빛이 악마로 변할 때는 섬뜩한 면을 주지만, 그 처단하는 모습에서는 마치 천진한 아이 같은 깨발랄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 건강하고 발랄한 러블리한 면모들이 있어 자칫 과도한 잔혹함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들이 중화된다. 박신혜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신혜는 애초부터 이 길을 꿈꿨던 배우가 아니다. 그의 데뷔 과정을 보면 독특한 면이 있는데, 잘 알려진 이승환과의 인연이 그것이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다니던 교회에 이승환 팬이니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박신혜의 사진을 당시 이승환이 운영하는 회사 드림팩토리 클럽(지금은 이승환 1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에서 공고한 뮤직비디오 배우 오디션에 보낸 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다음 앨범인 이승환의 ‘꽃’ 뮤직비디오에 발탁됐다. 그래서 박신혜의 본래 꿈은 가수였지만 노래를 표현하기 위해 연기수업을 받던 중 배우가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천국의 계단’의 아역오디션을 보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오게 됐다. 당시 이승환의 드림팩토리가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되면서 박신혜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게 됐지만 그 때의 경험들은 아마도 밴드 이야기를 소재로 담은 ‘미남이시네요’에서도 좋은 자양분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신혜가 남장여자 고미남 캐릭터로 나온 이 작품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정용화와 ‘넌 내게 반했어’를 이어서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남장여자 캐릭터로서 남자들 사이에서 털털한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박신혜의 특유의 건강한 러블리함으로 그들 사이에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을 하면서 그는 드디어 ‘한류퀸’으로서 떠올랐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권까지 월드투어 팬미팅을 한 첫 국내 여자 배우가 됐다. 

 

이제 겨우 30대지만 10대부터 연기를 해온 박신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할들을 소화했다. 멜로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피노키오’나 ‘닥터스’처럼 전문직 장르물도 소화했고, 게임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실제 전직 기타리스트인 호스텔 주인과 게임 속 신비로운 NPC 캐릭터 엠마의 1인2역을 연기했다. 어려서부터 무용이나 서핑 같은 다양한 스포츠를 해왔던 그는 액션 연기도 잘 소화해 ‘#살아있다’ 같은 좀비 영화나 ‘콜’ 같은 액션이 많은 스릴러, ‘시지프스:the myth’ 같은 SF 판타지에서도 이물감 없는 연기를 펼쳤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큰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의 강빛나 캐릭터가 가진 전복적인 요소들이 그 자체로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범죄물에서 여성들이 피해자로 등장하고 심지어 그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판결도 주로 남성 판사들이 함으로써 억울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성별 구도를 뒤집어 놨다. 여성이 늘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가 아닌 처단자의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이 인물 자체의 매력도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건강함이 주는 매력이 더해짐으로써 악마조차 발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변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고 김영애 선생님이 표현한 것처럼 그 건강함은 허공으로 붕붕 띄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건강함, 이건 박신혜만이 아닌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글:국방일보, 사진:SBS)

‘호텔 델루나’에 겹쳐지는 꽤 많은 작품들, 그리고 내용물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호불호가 완전히 나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겹쳐지는 작품들이 꽤 많아서다. 떠오르는 작품이 많은 분들은 비교하며 볼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신기한 세계로 보일 것이다. 그 차이는 극명한 호불호를 만들 수밖에 없다.

 

우선 시청자들이 단박에 떠올린 작품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다. 영원히 죽지 못하는 도깨비와 그 천형 같은 영생으로부터 그를 구원해주는 도깨비 신부의 이야기. <호텔 델루나>의 죽지 않는 존재 장만월(아이유)은 그래서 여자 ‘도깨비’처럼 보인다. 그의 앞에 새 지배인으로 나타난 구찬성(여진구)은 그래서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장만월과 연결된 존재일 것이라는 기시감이 든다. 전생에 잇지 못한 사랑을 호텔 델루나에서 이어가는.

 

죽지 않는 존재 장만월이 지내온 그토록 긴 세월이 담겨진 사진들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인으로 조선 땅에 들어와 죽지 않고 살아가며 엄청난 부와 지식을 동시에 갖게 된 인물의 역사가 사진 속 달라진 배경 속에 여전한 젊음을 가진 모습으로 담아지던 장면들. 그래서 총지배인 노준석(정동환)의 죽음은 죽지 않는 신적 존재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대비를 담은 <하이랜더> 이후의 많은 작품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또 갑자기 기사가 귀신에 의해 깨어나 구찬성을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언뜻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물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 캐릭터들이 마치 좀비처럼 공격하는 장면들이지만, <호텔 델루나>의 기사와의 대결 장면만 떼고 보면 비슷한 느낌을 준다. 파란 눈을 갖고 깨어나 공격하는 귀신의 형상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대결을 담았던 <왕좌의 게임>의 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호텔 델루나>에서 더 많이 연상되는 작품은 홍자매의 2013년 작품이었던 <주군의 태양>이다. 죽은 귀신들이 눈에 보이고 그 공격에 깜짝 깜짝 놀라는 모습으로 주는 코미디적 요소들이 그렇다. 매니저가 되지 않으려 거부하는 구찬성을 되돌리기 위해 장만월이 무수히 많은 귀신들을 깨워내 그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장면도 많은 좀비물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호텔 델루나>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나무도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왕좌의 게임>이 철왕좌와 대비시켜 상징으로 그려내는 나무의 ‘영생’과 ‘기억’의 이미지가 그 나무에서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떠오르는 건, <호텔 델루나>가 그리고 있는 판타지적 세계의 레퍼런스들이 바로 그런 작품들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해지는 건 이러한 다양한 레퍼런스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을 갖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인가다.

 

생각해보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도 그렇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갖고 우리네 삶이 죽음과 겹쳐져 있어 때론 쓸쓸하지만 또한 그래서 찬란하다는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텔 델루나>는 이런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을 가져와 무슨 다른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 여기에 이 작품의 관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신기한 외관은 충분하니 더 중요해진 건 그 안을 무엇이 채우고 있는가다.(사진:tvN)

'SKY캐슬'과 '알함브라', 작가라면 이런 의미 있는 시도해야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JTBC <SKY 캐슬>은 그 드라마의 색깔은 다르지만 드라마에 쏟아지는 반응은 유사한 면이 있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모두 높은 드라마인데다, 거침없는 전개로 박수 받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참신한 소재와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라 그저 그런 뻔한 소재와 전개를 가진 드라마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작가라면 이런 도전적인 시도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차병준(김의성)이 제이원 홀딩스 컴퍼니를 손에 넣기 위해 궁지에 몰아넣었던 유진우(현빈)가 그에게 ‘동맹’을 맺게 만드는 상상초월 전개로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게임 속 세계가 현실과 연결되는 ‘미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 세계’ 속으로 드디어 차병준도 들어가게 된 것. 차병준은 이로써 그의 앞에도 사이버좀비가 되어 나타난 아들 차형석(박훈)을 보고는 멘붕에 빠졌다. 향후 차병준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유진우의 공동운명체가 되어 그를 도울 수밖에 없게 됐다. 유진우의 마지막 퀘스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궁금증이 쏠리는 이유다.

<SKY 캐슬>은 강준상(정준호)의 숨겨진 딸로 그 집에 들어왔던 혜나(김보라)가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복자매인 예서(김혜윤)에게 충동적으로 그 사실을 말하고, 이 사실을 SNS에 올리면 어떻게 되겠냐며 위협을 가하는 와중에 무슨 일인지 베란다 난간에서 떨어지는 혜나의 모습으로 끝나는 엔딩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도대체 누가 혜나를 죽인 것인지, 그것이 실제 사건인지 분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게 한 것. 어른들의 잘못된 세계 속에서 지옥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러한 거침없는 사건 전개는 그저 자극이 아니라 메시지와 맞닿는 것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SKY 캐슬>이 보이는 또 하나의 유사한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 전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함을 보인다는 점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애초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하는 멜로가 아닐까 오해하게 했지만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고 그 세계과 현실과 중첩되면서 벌어지는 상상초월의 이야기 전개로 이어졌다. <SKY 캐슬>도 처음에는 JTBC 드라마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상류층 사교육을 풍자하는 드라마처럼 시작했지만, 차츰 어른들의 욕망이 어떻게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모는가 하는 이야기로 확장되어갔다.

이러한 거침없는 전개는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의 2018년 12월 4주차 드라마 화제성 순위표를 보면, <SKY 캐슬>이 1위이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2위다.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표에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현빈과 박신혜가 각각 1위, 5위이고 <SKY 캐슬>의 염정아와 김보라가 각각 3위, 7위를 기록했다. 시청률에서도 <SKY 캐슬>은 1.7%로 시작해 무려 15.78%(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는 대반등을 만들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최고 시청률 9.8%를 기록했다. 그만큼 지금 이 두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산술적으로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나눠 평가할 수 없는 구조지만, 공교롭게도 이 두 드라마가 모두 비지상파라는 점은 그저 우연한 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국 대본이 똑같이 들어와도 그걸 편성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건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SKY 캐슬>은 두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방송사의 드라마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를 잇는 판타지로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거론되고, <품위 있는 그녀>를 잇는 풍자극으로서 <SKY 캐슬>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면 수십 편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드라마 홍수 시대’다. 하지만 양적으로 늘었다고 질적으로도 좋아졌다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드라마 코드들을 범벅해 내놓은 드라마들이 공해 수준으로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시청자들이 보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SKY 캐슬>에 대한 열광을 드라마 기획자나 작가들이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작가라면 이런 의미 있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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