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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특집 <진짜사나이>의 드라마틱한 반전, 그 이유

 

MBC <진짜사나이>가 해군특집을 시작한 지난 821일 그 첫 시청률은 10%(닐슨 코리아)였다. 이전 개그맨 특집의 시청률이 8.3%에 머물렀던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이 해군특집은 그 기획 자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 후 이 해군특집은 2회 만에 12%를 넘어섰고 시청률만이 아니라 화제성까지 이어지며 13%를 넘기면서 마무리 되었다. 도대체 해군특집의 무엇이 시들해져 가던 <진짜사나이>의 드라마틱한 부활을 가능하게 한 걸까.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진짜사나이>는 사실 그 리얼리티 상황의 강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따라오기가 힘들다. 경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12>이 가진 야생성이 야외취침이나 공복을 만드는 복불복 정도라면 <진짜사나이>는 땀이 철철 흐르고 눈물이 나며 심지어 부상의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할 정도다. 게다가 여군특집이 합쳐지면 그 강도는 더 높아진다. 여군으로 투입된 출연자들은 눈물, 콧물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작업으로 겨드랑이에서 철철 흐르는 땀까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진짜사나이>가 갈수록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떨어졌던 건 그 강도 높은 훈련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그 야생성에 점점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자극은 보다 높은 자극으로 갈 때만이 계속 집중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진짜사나이>의 군대 체험에서 강도 높은 훈련이란 어느 선이 있기 마련이다. 보는 이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조교나 선임들의 등장도 반복되다보면 긴장감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자극으로만 계속 치달을 수도 없는 것이 <진짜사나이>가 가진 딜레마였다.

 

하지만 이번 해군특집은 독특한 지점에서 <진짜사나이>가 가진 이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게 됐다. 그건 훈련 상황의 강도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출연자들의 독특한 캐릭터가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시영과 솔비다. 이시영은 여군특집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녀 출연자 전체를 통틀어 독특한 출연자로 자리매김했다.

 

남자들도 힘겨워하는 훈련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로도 남자들 이상으로 잘 적응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었다. 암기면 암기, 체력이면 체력 또 정신력이면 정신력, 무엇하나 빼놓을 게 없는 말뚝 박아도 잘 적응해낼 그런 캐릭터. 게다가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것이 식탐이다. 그녀는 연예인이라는 입장 따위는 접어둔 것처럼 먹고 또 먹는 것이 군 생활에서의 즐거움이라는 걸 여지없이 보여줬다. 그렇게 먹어서 심지어 뱃살이 나왔다는 걸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캐릭터라니.

 

솔비는 엉뚱한 방식으로 군 생활의 강도를 무화시키는 면면을 드러냄으로써 <진짜사나이>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늘 진지하게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이 강도 높은 해군의 훈련 상황 속에서도 긴장을 풀어주는 웃음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물론 이런 식의 엉뚱함을 보여준 출연자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솔비가 독특했던 건 그런 엉뚱함에 지청구를 날리는 교관들 앞에서도 그녀는 전혀 주눅 드는 모습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솔비 특유의 해맑음 때문이었다. 못해도 순수하게 진심을 드러내는 데야 교관들이라고 어찌할 도리가 있을까.

 

여기에 제2 갑판장의 캐릭터를 선보인 투머치토커 박찬호나 뜬금없이 갑판에서 사투리 <개그콘서트>를 하는 양상국 같은 인물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진짜사나이> 해군특집은 드라마틱한 부활의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훈련 강도보다 중요한 건 어떤 출연자가 등장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라는 걸 이번 해군특집은 잘 보여줬다. 이시영과 솔비가 보여준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응답하라1994>, 왜 촌스러움을 전면에 세웠을까

 

기성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응답하라 1994>는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첫 회를 삼천포(김성균)의 상경기 하나로 오롯이 채워 넣은 것은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체로 멜로드라마의 첫 회란 남녀 주인공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꽤 많은 시간을 삼천포의 상경기에 할애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에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아마도 이런 선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을 해봤던 경험 때문일 게다. 드라마? 꼭 그 문법을 따라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응답하라 1994>는 그래서 예능이 그러한 것처럼 때론 조금은 과장된 시트콤적인 상황을 통해 캐릭터와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필요하면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의 멜로 라인도 그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관계가 설정된 상황을 오누이처럼 살짝 가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2회에서 갑자기 쓰레기가 아픈 성나정의 옆자리에 함께 눕는 장면과 함께 이 둘이 오누이가 아니라 오래 만나다보니 오누이 같은 친근함을 가진 특이한 관계라는 것이 설명되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과정도 드라마적인 스토리 전개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MT를 가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는 성나정이 오매불망 쓰레기의 삐삐만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책 나온 성나정에게 무심한 듯 살짝 애정을 표현하는 쓰레기의 모습은 이야기의 전개라기보다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시트콤적이다.

 

이것은 칠봉이(유연석)가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을 찾아가려다 운전이 미숙한 성동일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늦게 되어, 결국 삐삐 음성으로 마음을 전하는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1994>의 스토리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전개를 갖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그 안에 캐릭터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조금은 단순해 보이고 심지어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전개는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진 소재나 메시지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건 ‘촌스러움’에 대한 것이 아닌가.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하숙집(그 하숙집도 지방에서 갓 올라온 집안이 꾸린 것이다)에서 같이 생활하며 낯선 서울 살이를 체험하는 이야기.

 

이것은 왜 첫 회에 삼천포의 상경기에 그토록 시간을 할애했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으로의 초대. 삼천포라는 인물은 그 시절의 조금은 구식의 풍경과 정서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준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왜 굳이 1994년을 다루면서 촌놈들의 서울 체험을 주된 소재로 삼았을까. 이것은 자칫 지금 세대에게 낯설 수 있는 1994년의 공기를 ‘촌놈’이라는 공통된 시선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게 전하기 위함이다.

 

지금 세대에게 1994년이 낯선 모험의 지대인 것처럼 촌놈들에게는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이 모험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상국이 ‘네가지’나 <인간의 조건>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 촌놈의 시선은 또한 서울이 익숙한 이들에게도 서울을 낯선 모험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 표현한 ‘촌놈’이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은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정감가고 아날로그적이며 세련됨이 밀어낸 따뜻한 정조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의미인 셈이다. 양상국처럼.

 

삐삐라는 지금은 너무나 투박하고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물건은 그래서 오히려 스마트폰 하나면 즉각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지금 시대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관계의 아련함 같은 것을 전해준다. 누군가의 삐삐가 오기를 밤새도록 기다리는 경험이라던가,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녹음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마치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마음을 적어나가던 편지처럼 애틋해지는 구석이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분명 촌스러운 드라마다. 하지만 이 촌스러움은 오히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과거를 회고하거나 추억하는 향수 드라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정조를 ‘촌놈’의 시선으로 끌어내는 것. 이만큼 현재에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는 주제의식이 있을까. 이것이 이 드라마의 촌스러움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인간의 조건>, 공감 너머 개념 예능이 뜬다

 

예능은 무조건 재미있으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예능에서 재미는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남자의 자격>의 폐지와 그 이후에까지 여전히 여진이 멈추지 않는 혼수 방송 논란은 예능이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아마도 좀 더 비싼 혼수품을 걸고 하는 게임은 그만큼 더 자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으리라 믿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종의 상황극을 연출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상황극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그대로 방영했다는 것은 대중들의 정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작진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예능에서 재미만큼 중요해진 것이 개념이 되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이 특별한 예능 프로그램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절대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운 후에 비로소 그 위에 웃음을 얹는다. 즉 파일럿 프로그램의 미션에서는 휴대전화,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살아보는 것으로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가리고 있었던 많은 인간적인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되어 한 첫 번째 미션으로 시도된 쓰레기 없이 살기는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만 않을 뿐 결국은 우리 환경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미션은 자동차 없이 살기다. 자동차의 편리함 뒤로 사라져버린 인간적인 교류와 빠른 속도에 묻혀져 버린 삶에 느림의 행복을 되새기게 만드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즉 <인간의 조건>은 그 미션 주제 자체가 개념이 있고 공감이 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만큼 쉽게 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재미가 얹어진다. 개그맨들만으로 출연진을 제한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제목만큼 무거울 수 있는 이 예능의 개념 주제와 미션들을 이들이 주는 가벼운 웃음으로 상쇄시켜보겠다는 의도였을 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의도가 상쇄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 출연한 개그맨들의 ‘개념’을 알게 된 바가 크다. 상승효과가 생긴 것이다.

 

양상국은 <개그콘서트>에서는 그저 촌놈이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그 촌놈의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개념 개그맨이 되었다. <인간의 조건>이 부여한 아날로그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씁쓸한’ 상황을 보여주는 김준호는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저 뚱뚱한 것으로 대중들을 포복절도시키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김준현은 기타를 치며 의외의 감성을 보여주었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정태호는 가족처럼 출연진들을 챙기는 엄마 같은 자상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잘생긴 개그맨 허경환의 인간적인 모습이나, 고참 개그맨 박성호의 부드러운 변화는 또 어떻고.

 

결국 여기 출연한 개그맨들이 모두 이전 <개그콘서트>의 이미지에서 좀 더 인간적이고 훈훈한 이미지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조건>이 미션 그 자체에서 깔아놓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개념’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 없이 살기 미션이 끝났지만 여전히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양상국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진심어린 웃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개념어린 행동과 미션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까지 변화하게 만든다. 예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최근 공감을 넘어 이른바 개념 예능이 뜨는 이유다.

 

이렇게 된 것은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예능을 이제 더 이상 그저 웃고 즐기면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이 가끔씩 보여주었던 사회 공적인 기능들, <개그콘서트>가 담았던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등은 예능에 개념을 요구하게 되었던 어떤 전조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펀(fun)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는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이제 그 재미에 개념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공감할 수 있는 개념 자체가 재미일 수 있다는 것. 놀라운 일이 아닌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축의 이동은 이런 변화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련의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던 토크쇼들의 추락은 무언가 의미 있는 토크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에서 비롯된 바가 크고, 한 때는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남자의 자격>이나 <1박2일>이 최근 폐지되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이유도 너무 반복되다 보니 희석되어버린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능의 관건은 재미만큼 개념이 되었다.

Posted by 더키앙

서수민 CP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의 뛰어난 고집이 통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건 딱 하나예요. 개그맨들이 뜨면 버라이어티에 한 번씩 넣어주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게 되면 개그맨들의 버라이어티 MC 따라 하기가 되요. 그래서 <개콘>이나 다른 버라이어티가 보이지 않았던 자연인 개그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근데 그게 잘 살았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는 건... 사실 처음엔 맘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암말 안했다는 거(웃음). - 서수민 CP”

 

사진:전성환

<인간의 조건>의 서수민 CP는 요즘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의 조건>이 이렇게 잘 나오고 반응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개그맨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짜보라고 신미진 PD에게 숙제를 내주면서였다고 한다. 신미진 PD는 무려 10개의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결국 전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수민 CP나 예능국 총괄 프로듀서인 박중민 EP 입장에서는 MC도 없이 개그맨들만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진 PD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4부작 파일럿 얘기가 나오자 “하지 말란 얘기 아니냐”며 반 포기 상태였다고 한다. 그 때 가져온 기획안이 <인간의 조건>이었던 것. 그것도 그다지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서수민 CP는 박중민 EP에게 이번은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했다는 것이다. 후배 기를 살려주는 차원에서.

 

“그래서 박중민 EP와 농담으로 방송 나갈 때 첫 방이 괜찮으면 우리 이름을 넣고 아니면 빼자고도 했어요. 결국에는 이름 들어가는 게 자랑거리가 됐지만(웃음).”

 

막상 나온 프로그램이 너무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프로그램의 불안 요소였던 MC가 없이 개그맨에 최적화시켰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콩트에 익숙한 개그맨들은 설정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들어가면 자꾸 설정을 하고 상황극을 하려다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은 거꾸로 갔다. 개그맨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고 더 잘 될 수 있었던 것.

 

“박성호는 설정이 없으면 불안해해요. 갸루상 같은 분장을 해야 편안해지는 편이죠. 그래서 <인간의 조건> 들어갈 때도 너무 불안해 했어요. 그런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들어가더니 오히려 김준호와 케미(관계)를 만들어 내더라구요. <개콘> 이면에 이런 불편한 관계도 있구나 하는 걸 시청자분들도 흥미롭게 보아주셨죠.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진짜예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이 훨씬 진정성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죠.”

 

서수민 CP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배운 게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후배가 뭐 한다고 할 때 말리기보다는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것이다. 나름 본인도 예능에 있어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 나름의 경험과 기준으로 판단을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예능PD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있어요. 예능하면 꼭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1,2,3가 있는데 이것 없이 과연 제대로 나올까. 메인 엠씨가 없고 게임이 없고 오락성이 없는데 과연 될까. 그런데 되는 걸 보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건 다른 거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건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와 <인간의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중들은 언젠가부터 예능의 양념들(서수민 CP가 말하듯 게임이나 메인 MC, 오락성 같은)에 질려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그 양념을 빼버림으로써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담백한 예능의 맛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갈 수 있게 신미진 PD를 잡아준 건 나영석 PD였습니다. 사실 처음 휴대폰, TV, 인터넷 없이 살기 미션에 대해 저나 박중민 EP나 뭐 딱히 잡히는 게 없어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신미진 PD는 꽤 신랄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회의를 했던 나영석 PD가 이거는 분명히 된다고 확신을 갖고 말하더라구요. 왜? 하고 물었더니 지금 국장님도 휴대폰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물어 봤을 때 아무런 그림이 안 떠오른다고 얘기하시지 않았냐고 하지 않았냐. 마찬가지다. 뭐가 될지 모르는 게 버라이어티의 시작이다. 게임이 있고 뭐가 있으면 뭐가 나올 지 다 예상이 되지 않냐. 그것보다는 뭔지 모르겠다는 궁금증이라도 생기고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고 얘기하더라구요. 후에 몇 번 촬영장에 찾아갔는데 그 때마다 나영석 PD가 말하더군요. 이건 대박이야!”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사실 박중민 EP나 서수민 CP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능을 하면서 예능적인 핵심 코드들을 다 빼겠다는 건 큰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턱없는(?) 자신감이 <1박2일>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1박2일>은 결국 연출을 빼고 관찰을 통해 재미요소들을 발견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연출이나 기획하지 않아도 분량이 나오는 걸 늘 봐왔던 나영석 PD는 그래서 상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존 멤버로 계속 갈 건지 아니면 조금씩 새로운 개그맨을 투입해서 바꿔나갈 건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너무 같은 그림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그대로 가려구요. 중요한 건 이야기지 굳이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봐요. 지금 이대로도 박성호와 김준호처럼 그 멤버들 사이에 다양한 케미가 가능하거든요. 이 기본을 유지하고 중간 중간에 숙소를 자연스럽게 개그맨들이 찾아올 수는 있겠죠. <인간의 조건>이 좋은 게 이 프로그램으로 <개콘> 개그맨들도 자극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개그맨들이 생긴 거죠.”

 

<개콘>이 늘 아쉬웠던 부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성장한 개그맨들이 그 연장선 위에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 <개콘>의 개그맨들은 성장하면 이 프로그램을 나와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은 다르다. <개콘>을 하면서 동시에 콩트 코미디 이상으로 개그맨이 성장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할 수 있다. 개그맨들로서는 확실한 발판이자 성장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개콘>을 잘 하면 또 다른 자기를 메이킹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개그맨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개콘>과 또 개그맨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능인 셈이죠.”

 

<인간의 조건>은 <개콘>의 이면 같은 느낌을 준다. <개콘>이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개그맨들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분장을 지우고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온 맨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준다.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그래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개콘>의 짝패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Posted by 더키앙

양상국, 무엇이 이 개그맨을 주목하게 하나

 

<해피투게더> 약한 남자 특집에서 양상국은 같이 출연한 김태원, 이윤석, 김성규와 자신이 왜 함께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몸이 약한 남자들(?) 속에서 그는 마음이 약한 남자였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혹시나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양상국은 눈물 많기로 소문난 ‘국민 울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마음만은 특별시다.”고 말함으로써 그 반전을 통해 웃음을 주지만 양상국은 뼛속까지 촌놈이다. 연예인 같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 개그할 때의 사투리 그대로가 평상시 말투인 그는 콩트 속의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간극이 별로 없다. 물론 콩트가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캐릭터의 성격이나 성향이 실제와 거의 같다는 얘기다.

 

이 일관성(?)은 양상국에게서 대중들이 어떤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유독 양상국이 재조명되고 재발견된 건 특히 진정성이 중요한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 그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양상국은 <인간의 조건>에서 늘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부지런한 모습과, 개그맨 선배 동료들을 기다리며 때로는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따뜻한 심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개그콘서트>가 콩트 코미디라는 조금은 과장된 영역을 갖고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가면을 벗고 일상인으로 돌아온 개그맨의 맨 얼굴을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양상국이 갖고 있는 촌놈 캐릭터는 그저 콩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제였다는 것. 양상국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도 이 촌놈 캐릭터를 일관되게 가져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본래모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인간의 조건>이 무언가 하나를 빼냄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것을 그려내는 ‘아날로그형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양상국의 촌놈 캐릭터는 잘 어울린다. 첫 번째 미션으로 휴대전화와 TV, 인터넷이 없는 생활은 도시인들의 필수품을 제거함으로써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을 보여주는데, 양상국은 그 자체로 도시 속의 촌놈이라는 아날로그형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촌놈 캐릭터가 휴대전화와 TV와 인터넷이 없어 답답해하는 반전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웃음을 주었고, 그 다음에는 본래 촌놈으로서의 진짜 푸근한 모습이 보여짐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

 

서수민 PD는 양상국이 <인간의 조건>을 만들고 있는 신미진 PD의 기획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개그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래 <인간의 조건>은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원시인처럼 살아가기’라는 콘셉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의도된 일이라기보다는 양상국의 본래 모습이 그저 잘 맞아떨어진 것일 게다.

 

“멋있는 거 못하는 것도 있고요. 서민에다 바보 이런 걸 많이 했죠.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낮은 캐릭터에 더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개그맨이지만 개그맨 같지 않은 수수함과 심지어 쑥스러움을 보여주는 양상국. 그를 보면서 아날로그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이 세련됨과 첨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오히려 주목되는가를 잘 말해준다. 촌놈 양상국에 대한 주목은 그래서 문명을 다 털어내고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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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과 개그맨의 조건

 

아마도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인간의 조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했을 지도 모른다. <개그콘서트>가 개그맨들을 발굴하고 키워내고 성장시키는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 그렇게 해서 성장한 개그맨들은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다양한 예능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지만 정작 그런 프로그램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게다가 <인간의 조건>은 그 프로그램 형식상 콩트에 적응한 개그맨들이 저 넓은 예능의 세계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전초전이자 훈련소이면서 또한 그 프로그램 자체로도 재미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절묘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또 <1박2일>에서도 몇 번 시도되었던 관찰카메라를 이용한 리얼리티쇼 형식이다. 그다지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개그맨들을 그것도 여럿을 한 공간에 세워두었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조건>은 현대인들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몇몇 문명의 이기들, 이를 테면 휴대폰이나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생활하는 모습을 특별한 설정 없이 그대로 찍어 편집해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종 조미료(예를 들어 <1박2일>에는 복불복이라는 조미료가 있듯이)를 치지만 그것 없이도 맛있는 웃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의 조건>은 보여준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해 스케줄이 없는 양상국이 하루 종일 집을 지키다 집에 들어온 김준호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이나, 잠깐 전화를 걸러 나간 양상국의 빈 자리를 김준호가 똑같이 느끼는 장면은 특별한 설정 없이도 웃음을 준다. 남들이 다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할 때 그 소리를 들으며 금단증상을 느끼는 김준호나, 늘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케이스를 만지작대는 정태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이 주는 특별한 웃음이다.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 몇 개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인간의 조건>이 가진 특별한 의미는 따라서 동시에 예능에 있어서 조미료 역할을 하는 의도적인 설정 자체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예능 본연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이 안에서 개그맨들은 지금까지 콩트 코미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일상적인 모습)를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콩트 코미디에 익숙해져버린 개그맨들에게는 새로운 적응훈련이 되는 셈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투입되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상황극을 자꾸만 하려 하거나, 개인기, 유행어를 선보이려는 콩트의 습관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부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있으라는 <인간의 조건>의 미션은 얼마나 좋은 기회이자 훈련인가.

 

<인간의 조건>은 리얼리티쇼가 갖는 다큐적인 속성 그대로 어떤 분명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개그맨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들을 한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인공조미료 없는 순수한 재미까지 선사하는 예능이다. 한참을 보다보면 거기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까지 느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콩트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우러지는 이미지의 변화과정은 앞으로 리얼 예능을 꿈꾸는 개그맨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인간의 조건>. 개그맨들에게 새로운 예능의 조건을 제시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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