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협 트렌드에 올라탄 tvN 토일드라마 ‘환혼’

우리에게도 ‘무협’이라는 장르는 익숙하다. 하지만 영상물로서 무협 판타지를 다루는 작품들은 대부분 중국 콘텐츠에서 많이 시도됐던 게 사실이다. tvN 토일드라마 <환혼>이 과감하게 펼쳐놓은 무협 판타지의 세계가 남다른 의미와 가치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환혼

홍자매가 가져온 신무협의 세계

우리에게 과거의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주로 ‘사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진짜 역사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담은 삶의 공간이 제시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기대하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환혼>은 작품의 시공간을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이 등장하고 이로 인해 ‘운명이 뒤틀린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환혼>은 대놓고 이 작품이 사극이 아닌 ‘무협 판타지’라는 걸 분명히 해놓고 시작한다. 이렇게 한 건, 워낙 최근에 ‘동북 공정’이니 ‘문화 공정’ 같은 역사 왜곡 논란들이 드라마 한 편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전례들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즉 완전한 가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전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의 빌미 자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방어적인 선택만이 아닌 보다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도 들어 있다. 그것은 주로 중국 콘텐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했던 무협 판타지를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사실 무협소설의 역사가 우리도 결코 짧지 않고,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을 통해 이른바 ‘신무협’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도 무협 장르는 그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다만 드라마 분야에서 무협 판타지가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건, 제작비, CG기술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어딘가 이 장르에 ‘중국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중국의 무협소설보다 우리의 무협소설이 훨씬 재밌다는 건 단지 ‘국뽕’의 차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현실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무협소설들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중국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 무한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 현실을 모르고 가본 적이 없어 하나의 상상의 세계로서 마음껏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신무협’ 트렌드는 이러한 국적성 자체가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소림파 무당파 등이 등장하는 무협소설과 달리 몸을 바꾸거나 인생을 리셋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 설정 같은 것들이 더해진 특징을 갖고 있다. <환혼>은 바로 그런 신무협의 세계를 드라마로 가져왔다. 물론 홍정은, 홍미란 작가는 이미 이전부터 <쾌도 홍길동(2008)>에서부터 <화유기(2017)>에 이르는 액션 판타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 <환혼>은 훨씬 더 과감하고 본격화된 무협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다. 어찌 보면 많은 중국의 무협 판타지들 속에서 한국형 무협 판타지의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과감함이 엿보인다. 

 

혼을 바꾸는 설정, 그래서 만들어진 신박한 스토리

많은 판타지물들이 그렇지만 <환혼> 역시 ‘혼을 바꾼다’는 하나의 판타지 설정이 다채로운 스토리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일단 주인공 장욱(이재욱)이 가진 출생의 비밀이 바로 이 설정에서 비롯된다. 환혼술을 알게 된 장강(주상욱)에게 병든 선왕 고성(박병은)이 자신과 7일간만 혼을 바꿔달라 요구하고 그렇게 환혼술로 장강의 몸에 들어간 왕이 장강의 아내인 도화와 동침해 장욱이 태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장강은 태어난 아들 장욱의 기문을 막아 술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기문이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욱에게 나타난 희망이 바로 무덕이(정소민)다. 무덕이는 실제로는 물 한 방울 튕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초절정 살수 ‘낙수(고윤정)’가 부상을 입은 후 환혼한 인물이다. 낙수와는 정반대로 기력 하나 없는 무덕이는 어쩌다 장욱의 몸종으로 들어가지만, 장욱은 그가 낙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그를 자신의 막힌 기문을 뚫어줄 사부로 삼는다. 그래서 이 관계는 복합적으로 뒤얽힌다. 겉으로 무덕은 장욱의 몸종으로 이들은 주종관계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장욱이 무덕의 제자가 되는 사제관계가 생겨난다. 무협 판타지지만 홍자매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미된 작품은 그래서 이 관계의 비틀어짐에서 만들어지는 웃음과 그러면서 점점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달달함까지 더해진다. 

 

물론 무협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성장스토리’는 이러한 관계의 재미라는 구슬들을 하나로 꿰는 실이다. 무덕이는 기문이 막혀버린 장욱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주는데, 그 방식은 그들이 함께 벼랑 끝에 서는 것이다.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함으로써 조금씩 어떤 한계를 넘어 성장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진 청춘들이지만 기성세대들에 의해 꼬인 현실 속에서 그 꿈과 능력을 제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물론 이런 한계를 넘어 한 단계씩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RPG 같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보다 깊은 질문들까지 던질 수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장점들과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들이 효력을 나타내면서 <환혼>은 최고 시청률 7.0%(닐슨 코리아)를 넘겼고 높은 화제성도 기록했다. 파트1, 파트2로 나뉘어진 작품으로 파트1이 20부로 편성되었고 이미 촬영을 마쳤으며, 최근 파트2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기보다 <환혼>이 대작이라는 의미다. 

 

톡톡 튀는 대사와 흥미진진한 설정이 만들어내는 신박한 관계의 재미가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환혼>은 시작부터 여주인공 교체로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본래 박혜은이 캐스팅되었지만 부담감을 이유로 하차했고, 대신 정소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행스러운 건 정소민이 몸종과 사부 나아가 연인의 면면을 오가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즌2 촬영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여주인공 교체 이슈가 떠올랐다. 시즌2에는 정소민이 아닌 본래 낙수 역할을 했던 고윤정이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이건 ‘환혼’이라는 이 드라마의 설정으로 인해 낙수가 제 몸을 찾아가거나 회복하는 새로운 스토리로 인해 나온 이야기일 듯싶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 속에는 ‘환혼’이라는 혼이 바뀌는 설정이 뒤로 갈수록 관계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즉 무덕이만 봐도 그 몸은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잃어버린 첫째 딸로 추정되고, 그 몸에 혼으로 들어간 낙수는 진무(조재윤)에게 속아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다. 이렇게 인물의 정체가 ‘환혼’이라는 설정 때문에 복잡해질 수 있고, 자칫 ‘출생의 비밀’ 같은 ‘정체의 비밀’ 코드 활용에 빠져들 수 있다. 정작 이렇게 혼을 바꿔 삶을 연장하거나 어떤 욕망을 취하려는 이들의 파국이 담아내려는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 요컨대 마치 옷을 바꿔 입듯 혼을 바꾸는 잔재미(?)에 빠지다보면 보다 깊은 드라마의 질문들이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진짜 한국형 무협 판타지가 중국의 그것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려면 이러한 판타지 설정의 함의하고 은유하는 묵직한 메시지까지를 이 발랄한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르적 묘미를 충분히 즐기면서도, 그 여운이 오래 갈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글:매일신문, 사진:tvN)

드라마 여주인공을 보는 관점, 무엇이 달라졌나

<대장금> 시절 이영애는 단연 당대 최고의 여배우의 위치를 구가했다.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펼친 <대장금>으로 인해 확고한 스타덤을 구축한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연기력으로도 우뚝 섰으며 ‘산소 같은 여자’라는 문구로 기억될 정도로 광고 모델로서도 최고의 위치를 구가했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하지만 SBS <사임당, 빛의 일기>로 돌아온 이영애는 여러모로 옛 영광의 흔적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 미숙과 사임당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현재적 관점에서 그만큼 매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 등은 이를 연기하는 이영애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영애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만한 과거의 명성에 비추어 두각을 나타낼 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역시 오랜 만에 드라마 KBS <완벽한 아내>로 복귀한 고소영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완벽한 아내>는 꽤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심재복을 연기하는 고소영보다 오히려 그 대립구도를 이루는 이은희 역할의 조여정이 더 눈에 띈다.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의 힘이 이은희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재복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문제가 크지만 역시 연기의 문제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영애는 1990년부터 활동해 현재 27년째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고, 고소영 역시 1992년부터 시작했으니 25년차 연기자다. 사실 이 정도의 연배라면 주연급보다는 주연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주변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울릴 법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여전한 외모는 이들이 지금도 주연을 맡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주연 여배우에게 외모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꽤 멀리 와 있다. 출중한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드라마 배역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연기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 되었다. 

이영애와 고소영 시절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현실감 없는 외모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지금의 여주인공들은 훨씬 더 공감 갈 만한 외모의 소유자들로 바뀌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친근한 이미지가 훨씬 대중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나란히 수목드라마에 들어와 있는 MBC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과 KBS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 같은 여배우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굉장한 외모로 주목을 끌기 보다는 친근한 외모가 오히려 만들어내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을 보면 실로 이 작고 어린 여배우가 가진 잠재력에 놀라게 된다. 그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적 설정을 통한 웃음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 깔린 청춘들의 아픈 정서를 동시에 풀어내고 있다. 게다가 직장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오피스물의 엉뚱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를 자극하는 멜로에도 능수능란하다. 고아성이라는 배우가 향후 얼마나 대성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질이 아닐 수 없다.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는 이미 독특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여배우로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발랄함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정서까지 끌어내는 배우다. 어찌 보면 평범한 얼굴이지만 그녀가 가진 독특한 매력은 멜로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진 개성을 연기의 영역으로 잘 살려낸 배우가 바로 최강희다. 

확실히 드라마의 여주인공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여전히 이영애와 고소영에 대한 향수를 가진 시청자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고아성이나 최강희 같은 지금의 세대에 소구하는 여주인공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또한 연기자를 훨씬 더 직능적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의 시청자들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대박>의 폭주, 어째서 막장이 떠오를까

 

SBS 월화사극 <대박>이 폭주하고 있다. 그 폭주는 이인좌(전광렬)의 폭주를 닮았다. 그가 연령군(김우섭)을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이 사극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말해준다. 연령군이 누군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비록 서자지만 숙종이 그토록 아끼던 자식이 아닌가. 그런데 일개 이인좌 같은 인물의 폭주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너무 과한 허구다.

 

'대박(사진출처:SBS)'

이인좌라는 인물 역시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런 설정은 지나치다. <대박>은 이인좌라는 인물의 힘이 중요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이 인물을 크게 그려놓았다. 연잉군(여진구) 따위는 애송이로 바라보는 존재이며 심지어 한 나라의 임금인 숙종과도 대적하는 엄청난 존재다. 이제는 왕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찔러 죽이는 희대의 인물로 그려졌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허구조차도 개연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박>의 여주인공은 담서(임지연). 그런데 담서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또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사실은 이인좌라는 걸 알고 있는 담서는 복수를 하려던 인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숙종의 명을 받고 이인좌를 죽이러 온 김체건(안길강)의 앞을 그녀가 막아선다. 그가 자신을 제자로 삼은 것만은 진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김체건의 칼에 맞아 죽으며 이인좌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물의 일관성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걸 보고 역시 이인좌를 처단하기를 그토록 원해왔던 백대길(장근석)이 구생패를 던지며 갑자기 그를 살려달라고 김체건에게 말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갑자기 살인검 활인검이야기를 꺼내며 담서가 목숨을 걸고 부탁한 일인데 그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보다. 모든 비극이 이인좌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대길이 담서의 죽음과 부탁(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으로 이렇게 이인좌를 살려 달라 하는 대목이 이해될 수 있을까.

 

앞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며 돌아오는 이야기에서도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주인공으로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이 가능했을 담서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대목에서는 작품이 너무 쉽게 인물을 죽이고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박>에도 일종의 데스노트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다른 게 막장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될 만큼의 개연성이 없는 것, 인물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궁극에는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노리개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런 전개가 바로 막장이다. 이런 막장이 목적하는 건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아니라 자극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줘 주목을 끌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자극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박>의 시청률은 결국 8.5%(닐슨 코리아)로 월화극 꼴찌로 전락했다. 시청률에서 유리한 사극이고, 장근석,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쟁쟁한 캐스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폭주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연기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개연성을 잃어가고 있다

<마의>는 왜 이요원을 수동적으로 만들었을까

 

<마의>의 승승장구는 물론 백광현(조승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 덕분이다. 이병훈표 사극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선명한 선악대비와 고난-극복-성장의 스토리를 백광현이라는 캐릭터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망자 신세가 되어 청국에까지 가게 된 백광현이 황후의 병을 고치고 칙서까지 받아 조선으로 금의환향하는 스토리는 이 인물의 성공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마련이다.

 

'마의'(사진출처:MBC)

<마의>는 백광현 뿐만 아니라 조연들도 저마다의 톡톡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백광현의 적수로 선 이명환(손창민)과 이조판서 정성조(김창완)의 악역 연기도 돋보이고, 백광현을 짝사랑하며 그의 뒤를 봐주었던 숙휘공주(김소은), 백광현의 스승으로 괴팍하면서도 제자에 대한 정이 넘치는 사암도인(주진모), 백광현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추기배(이희도)와 자봉(안상태) 그리고 어린 시절 스승이자 무교탕반의 숙수인 오장박(맹상훈), 심지어 숙휘공주를 보좌하는 곽상궁(안여진)이나 호위무사 마도흠(이관훈)까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많은 인물들 중에서 유독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가 강지녕(이요원)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강지녕은 누가 뭐래도 <마의>의 여주인공이 아닌가. 그런데 <마의>가 지금껏 흘러오는 과정을 보면 강지녕이 한 일이라고는 백광현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남자주인공인 백광현이 끝없는 시련을 극복하고 드라마틱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강지녕은 숙휘공주만큼의 존재감에도 가려져 왔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캐릭터가 너무나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 탓이 크다. 숙휘공주는 백광현과의 멜로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그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또 어떤 경우에는 코미디에 가까운 웃음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이것은 아마도 여주인공이라는 무게감이 강지녕을 숙휘공주만큼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지녕의 캐릭터가 주목되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의>라는 드라마가 거의 온전히 백광현이라는 캐릭터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극의 인물군은 주인공 백광현을 중심으로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백광현이 잘되기를 바라며 기원하는 숙휘공주, 사암도인, 소가영(엄현경), 추기배, 자봉, 오장박, 장인주(유선), 서은서(조보아), 윤태주(장희웅), 박대망(윤봉길) 같은 인물군으로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시트콤적인 웃음을 만들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두 번째 부류는 백광현과 각을 세우는 대립군으로 이명환과 정성조 같은 인물군이다. 이들은 백광현을 고난에 빠뜨리고 또 그 고난을 이겨내고 돌아온 백광현에게 당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 번째 부류가 백광현과의 멜로를 이루는 인물군으로 강지녕과 이성하(이상우)가 그들이다. 이렇게 보면 이 세 번째 부류의 인물군들로서 강지녕은 물론이고 이성하까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마의>가 백광현의 성장드라마는 성공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의 삼각 멜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멜로가 살아야 강지녕이라는 여주인공이 살아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애초부터 강지녕을 너무 멜로의 틀에만 묶어뒀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살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만일 강지녕이 여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성장을 위한 어떤 미션을 부여받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마의>에서 강지녕은 백광현이라는 남주인공의 멜로 파트너 정도로 머무른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되니 그 삼각 멜로의 다른 축이었던 이성하라는 캐릭터 역시 잘 살지 않게 된 것이다.

 

<마의>는 스펙사회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백광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조선시대 마의 버전으로 풀어냄으로써 권선징악 판타지의 힘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바로 여주인공이지만 여주인공만큼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강지녕이라는 캐릭터의 한계다. 왜 <마의>는 그토록 강지녕을 제 자리에 멈춰 서서 한없이 백광현을 기다리고 그리워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렸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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