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누나>가 그렸던 고 김자옥의 면면들

 

그녀는 우리에게 <꽃보다 누나>로 남았다.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배우 김자옥.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된 것은 어쩌면 서둘러 떠난 그녀에게도 좋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 이미연을 눈물 흘리게 했던 그 모습은 이제 마치 그녀의 유언처럼 우리에게 남았다. 모두를 축복하고 그녀는 떠난 것이다.

 

'꽃보다 누나(사진출처:tvN)'

그러고 보면 그 때 당시 그녀가 왜 그렇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가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여행길에서 모두가 당황해하거나 길을 찾아 헤맬 때도 전혀 개의치 않던 모습. 심지어는 모두가 걱정할 때 느긋하게 벤치에 누워 그 짧은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즐기던 그 모습은 생전에 그녀가 대했던 삶의 치열함을 말해줬던 것은 아니었을까.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는 건 그래서 어쩌면 진짜 삶에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 중 발견한 작은 일에도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삶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분의 진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때론 귀여운 소녀처럼 깔깔 웃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르면 어디서든 춤을 추기도 하는 그런 자유로움이 삶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에서 기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꽃보다 누나>에서 그녀는 죽음을 생각했던 과거를 술회하기도 했다. 암 수술을 한 게 전이가 되면서 이렇게 죽는 것인가하고 생각했다는 것. 그녀가 항암치료를 받았고 또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것은 <꽃보다 누나>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알려졌다. 겉으로 늘 밝게 웃고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복바이러스였던 그녀의 몰랐던 아픔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그녀가 보여준 건 아픔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었다. 그녀와 함께 손을 꼭 잡고 걷던 김희애와 그녀에게 팔짱을 끼며 살갑게 다가왔던 이미연을 기억할 것이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두렵고 힘겨워했던 그녀의 모습은 여행 중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꽃보다 누나>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았다.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며 짐짓 공주병인 척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사실 그녀의 병이 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 웃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또 누군가를 웃게 해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 저렇게 급하게 저러지? 결국 다 될 건데...” 그녀는 <꽃보다 누나>에서 막 급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이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루하루를 다급하게 살아가는가. 또 무엇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될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다 이루고 떠나갔다. 우리에게 <꽃보다 누나>의 기억으로 남은 채.

 

추성훈 가족이 보여준 <슈퍼맨>이 강한 이유

 

링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추성훈. 그 광경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내 야노 시호. 그리고 그 시간에 꿈나라로 간 귀여운 딸 추사랑. 이 세 사람이 보여준 단 몇 분의 장면들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아마도 지금껏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들 중 가장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제목에 걸맞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힘겹게 싸우고 집으로 돌아온 추성훈에게 존경사랑을 표하는 아내와 딸. 딸을 꼬옥 껴안는 추성훈에게서, 또 부끄러운 듯 살짝 아내를 안아주는 추성훈에게서 전해지는 뭉클함은 모든 이 땅의 아빠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았을까.

 

입안이 다 헐어서 조금 신 과일을 먹어도 쓰라려 하면서도 딸이 준 것이라 받아먹고 허허 웃는 추성훈의 마음은 모든 아빠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것이다. 묵묵히 남편을 지지해준 야노 시호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자신은 한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의 모습에 한없이 따뜻해지는 건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금껏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보여줬던 육아예능의 틀을 살짝 벗어나 아빠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빠들이 어떻게 슈퍼맨이 되고 그 슈퍼맨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를 보여줬다. 추성훈의 귀환은 바로 이 이야기를 완벽하게 상징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잠든 딸을 위해 링 위에 오르는 아빠와 그 아빠를 껴안아주는 딸의 모습, 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모습인가.

 

이것은 육아예능의 후발주자인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여타의 프로그램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어린 아이들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솔직함과 순수함으로 보여주고, 그 놀라운 성장으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들의 진정성 또한 진솔하게 보여준다.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이 여행이라는 상황 속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렘과 흥분을 보여준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빠들은 일상 속에서 가족들을 위한 실제 고민과 고통과 행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것이 더 리얼한가가 최근 관찰 예능의 새로운 화두라면 단연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리얼함을 여타의 육아예능들이 따라잡기 힘들 수밖에 없다.

 

삼둥이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둘러매고 성화봉송을 하는 송일국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저절로 뚝뚝 떨어진다. 혼자 걷기도 힘든 푹푹 빠져드는 뻘밭에서 타블로는 하루를 등에 업은 채 뻘을 빠져나온다. 퉁퉁 부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반기는 가족들의 품에 안기는 추성훈의 얼굴에서는 하루를 살아낸 가장의 행복이 깃든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슈퍼맨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것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강한 이유다. 거기에는 아빠와 아이와 가족의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특별한 노력과 진심이 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 그저 지나쳐버렸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해 봄으로써 가능한 발견이다. 추성훈의 귀환은 밤마다 녹초가 되어도 가족들 앞에서 허허 웃는 우리 시대 가장들의 진심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들었다.

 

<꽃청춘>에서 느껴지는 이우정 작가의 진가

 

<꽃보다 청춘>을 보니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들이 새롭게 보인다. <응답하라 1994>의 해태 손호준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정도의 촌놈 기질이나, 칠봉이 유연석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착한 모습, 그리고 빙그레 바로의 나이는 어려도 의젓한 모습은 <꽃보다 청춘>이 보여주는 그들의 진짜 모습에서도 묻어나왔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비행기 기내식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는 토종 손호준은 이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얼떨떨한 표정이 역력했다. 먹는 것조차 토종 한국식만을 고집해온 탓에 라오스에 도착해서도 입맛에 맞지 않아 아무 것도 챙겨먹지 못하는 손호준은 <응답하라 1994>에서 보여줬던 촌놈 캐릭터 그대로였다.

 

반면 유연석은 손호준과는 정반대로 뭐든 잘 먹고 어떤 상황에서든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 것도 못 먹는 절친 손호준을 챙기기 위해 과일을 챙겨 먹이는 유연석에게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속 깊은 자상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 역시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보여주던 그대로다. 능력자지만 타인을 바보처럼 묵묵히 챙기는 그런 캐릭터.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와 실제의 모습이 같은 건 바로도 마찬가지. 가장 나이 어린 막내지만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는 유연석과 손호준에게 싸우지 마세요라며 중재를 하고, 때로는 서먹해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의젓한 막내. <응답하라 1994>에서 남다른 고민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빙그레의 모습이 그 진짜 모습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팬이라면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반색했을 것이다. 그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면면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와 진짜 실제 모습이 늘 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꽃보다 청춘>3인방의 경우에는 그 드라마 속 캐릭터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마치 <응답하라 1994>에서 막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응답하라 1994> 이우정 작가의 남다른 드라마 캐릭터 작법 덕분이다. 사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들의 가장 큰 장점이 캐릭터라는 옷을 배우들에게 그저 입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가진 실제 모습에서 캐릭터를 찾아낸다는 점이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작가들의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자연스럽고 또 그 매력이 드러나는 건 바로 이런 작가의 세심함 덕분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더욱 흥미로워진 건 그래서 상당부분 <응답하라 1994>를 쓴 이우정 작가의 공이 크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우리는 손호준과 유연석, 바로의 드라마 속에서 봤던 모습을 실제 리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캐릭터들이 그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진 모습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가능해진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면서 출연자를 살펴 그 실제 모습을 캐릭터화 하는 이우정 작가가 가진 고유의 영역. 그것이 아니었다면 <꽃보다 청춘>의 완결편이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벌써부터 막 입고 막 먹어도 막 멋있는 이들의 여행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꽃보다 청춘>, 회고담 속에 담긴 청춘의 기억

 

윤상, 유희열, 이적이 함께한 <꽃보다 청춘>의 페루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실 중년의 나이에 어느 날 훌쩍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중년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나이라서 그렇다. 회사를 다니는 중년이라면 위로 아래로 챙겨야할 일들이 산적해 개인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은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그렇다. 가족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자신 따위는 살짝 희생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바로 중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꽃보다 청춘>은 바로 이 현실에 꽉 막혀 있는 중년들을 어느 날 납치하다시피 비행기에 태워 그것도 남미 페루에 떡 하니 갖다 놓는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상하게 그것은 그들을 설레게 만든다. 유희열은 남녀가 함께 혼숙하는 도미토리에서의 불편한 하룻밤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하나하나 계획하기 시작하고, 이적은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부터 일어, 중국어 등등 각종 언어들을 급조해 섭렵(?)하며 여행의 소통을 책임진다. 갑작스런 출발에 부대끼는 몸을 달고 온 윤상은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동생들을 배려하며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여행 자체를 싫어하던 윤상은 동생들과 여행에서 여행의 묘미를 찾아낸다.

 

여행의 목적지인 마추피추 앞에서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그것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그 성취감과 현실에 묻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런 역사적인 문명 앞에 서 있다는 감흥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시간은 그 무구한 세월을 버텨온 유적 앞에서 다시금 의미를 되찾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채워가듯 일에 쫓겨 살아가던 중년들은 세월이 무상한 유적 앞에서 자신들이 보낸 현실의 안간힘이 마치 먼지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거쳐 남미까지 들어가는 데만도 20시간이 꼬박 걸린다. 거기서부터 또 마추피추까지 가는 여정은 버스로도 하룻밤 이상을 더 가야 하는 거리다. 그러니 중년의 그들에게 이동거리만으로도 도전이 됐을 터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이들은 동료로서 선후배로서의 끈끈한 관계를 재확인한다. 아픈 윤상을 무심한 척 살뜰히 챙기는 유희열의 마음이 보이고, 그런 윤상의 사연을 들으며 왈칵 울어버린 이적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윤상이 보인다.

 

중년 남자 셋이 마음을 통해 가까워지니 이제 그들은 소년이 된다. 마치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로 돌아간 듯, 현실 바깥으로 나와 적응된 그들은 점점 청춘이 되어간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왜 중년들의 여행을 소재로 하면서 <꽃보다 청춘>이라 이름 붙인 이유가 될 것이다. 여행은 우리 모두를 청춘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기억은 영원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그들이 납치되듯 여행을 시작했던 자유로 김치찌개 식당에서 후일담을 나눈다. 그 후일담에는 세 사람의 여행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은 여행과 청춘에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여행이든 청춘이든 다시 가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꽃보다 청춘>이라는 특별한 여행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청춘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떠나라. <꽃보다 청춘>은 그런 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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