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추락하던 <12>을 되살렸나

 

도무지 기사회생할 것 같지 않았던 <12>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즌2로 가면서 줄곧 곤두박질치던 시청률도 반등하고 있고, 무엇보다 시즌3 2회만에 캐릭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예능에는 영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을 것 같던 맏형 김주혁은 인제에서 펼쳐진 인기투표를 통해 저조한 인지도로 굴욕을 맛본 이후 예능 열심히 할거야라며 의욕을 불태웠고, 깨알 같은 생활 멘트로 무장한 힙합비둘기 데프콘은 <12> 출연이 꿈이었다며 과한 의지를 드러냈다.

 

<12> 특유의 서열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엉뚱한 발언을 해대는 막내 정준영은 선배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록커의 매력을 드러냈고, 까불이 김준호 역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김주혁에게 전부 묻혀버렸다며 하소연을 해댔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새 매거폰을 잡은 유호진 PD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세워졌다는 점이다. 어딘지 마광수 교수를 연상케 하는 맥없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의외로 독한 야생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유호진 PD는 혹한기 입영캠프에서 벌어진 이른바 야생5덕 테스트를 통해 보여주었다.

 

구덩이 하나를 파 놓고 무려 50여분에 가까운 방송 분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성과로 보인다. 처음에는 삽질로 땅을 파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거기에 물을 채우고, 그 물에 얼음을 들이부은 후 등목을 시키고, 그 구덩이를 제자리 뛰기로 넘게 하는 일련의 복불복 게임은 그간 맥락 없이 때 되면 벌어지곤 하던 복불복의 묘미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똑같은 복불복 같지만 거기에는 특유의 야생 분위기가 살아났고, 무엇보다 유호진 PD와 새로운 MC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복불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는 여지없이 PD를 놀리는 MC들의 도발이 있었고, PD 역시 이건 성공할 수 없을 거야라며 미션을 던지는 독함이 돋보였다. 게다가 <12> 공인 국제심판(?) 권기종 조명감독의 얄미운 까지 합세하면서 복불복은 시즌1의 느낌을 재현해내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12>의 핵심적인 재미가 PDMC들 사이의 갈등과 대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즌1에서 독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이명한 PD와 강호동의 대결구도가 그랬고, 이어 바톤을 이어받은 나영석 PD는 좀 더 아기자기한 밀당으로 이 대결을 심리전으로 이어가기도 했다. 강호동이 잠정은퇴 선언을 하고 빠져나갔을 때는 나영석 PD가 더 독하게 밀어붙임으로써 특유의 야생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결국 핵심적인 키는 야생의 분위기에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PD의 역할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호진 PD의 첫 발은 <12> 본연의 색깔을 꽤 제대로 짚어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유호진 PD가 편집을 통해 보여준 훨씬 디테일해진 MC들의 리액션들은 그네들의 행동 이면에 담겨진 심리를 포착하게 해줌으로써 단순한 게임조차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중요해진 건 여행이다. 복불복을 통해 특유의 야생 분위기를 되살려낸 것은 <12>의 긴장감을 되찾아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이 프로그램의 본질에 닿아있다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복불복은 말 그대로 양념일 뿐 주재료는 여행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즌3의 시작을 독한 복불복으로 꾸려낸 것은 잘 선택한 전략이다.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멤버들의 캐릭터를 좀 더 빨리 확실하게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구축된 캐릭터들 속에 깔려있는 관계의 심리가 여행이라는 낯선 체험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만일 이렇게 어렵게 구축된 관계의 심리가 빠져버린다면 자칫 시즌2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매번 여행지를 바꿔가며 비슷한 복불복을 제 아무리 독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캐릭터 관계 속에서의 맥락을 발견할 수 없고 여행지와의 관계도 없다면 굳이 계속 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12> 시즌3는 어렵싸리 부활의 불씨를 되살려 놓았다. 이제 그 불씨에 여행의 참맛을 덧붙여 활활 태워야 할 시점이다. 여행지 소개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여행지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여행이 주는 특유의 감성과 정서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과연 <12>은 이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한껏 높아진 기대감만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2>, 기대감 뺄수록 기대되는 까닭

 

우리의 장점은 다 고갈됐다.” <12>을 새롭게 이끌 유호진 PD는 시즌3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장점을 묻는 질문에 장점이 없다는 답변. 어찌 보면 황당하게도 느껴질 수 셀프디스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을 예능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기는 KBS와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러한 <12>의 셀프디스 분위기는 시즌3의 첫 촬영 예고편에서도 묻어난다. 차태현은 죄송한데 이게 다인가요?”하고 물었고, 김준호는 누구 한 명 데리고 와하고 말했다. 자막으로 표기된 것만 봐도 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 ‘저조한 인지도’, ‘저조한 자신감같은 문구들이 전하는 고개 숙인 <12>’의 분위기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왜 유호진 PD는 자신감이나 기대감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 없음기대감 없음을 내세운 걸까.

 

여기에서 유호진 PD가 가진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유호진 PD는 독불장군식으로 <12> 혼자 달려 나가기보다는 지금 현재 대중들이 체감하는 <12>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사실 현재의 <12>은 전성기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패턴의 반복으로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고, 새로운 예능 형식들에 비해 어딘지 구닥다리 느낌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호진 PD는 이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제작진의 생각과 대중들의 생각이 공유되는 지점이라고 볼 때 유호진 PD의 마인드는 일단 합격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 새로운 멤버가 될 것인가를 두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기대 없음의 표현이 더 많았다. 아마도 이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유호진 PD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같은 다소 부끄러운 마음을 드러내는 자막을 붙였을 게다.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일단 괜찮은 접근방식으로 여겨진다.

 

<12>이 시즌2를 하면서 망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프로그램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겉핥기만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12>의 본질은 늘 대중들과 함께 하는여행이었다. 그래서 대중의 이름을 빌어 와 복불복을 하고 까나리 액젓을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제작진 전원이 비를 맞으며 야외취침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 대중들과 함께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여행을 했던 것이다.

 

요는 복불복이나 여행 그 자체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정서적인 유대감이라는 점이다. 저 복불복이 저 여행이 우리들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저들만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호진 PD<12>의 현재 초라한 모습을 꺼내놓고 대중들과 다시 소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그 어떤 새로운 게임의 개발이나 새로운 여행지의 발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된다.

 

뭔가 잘 안 되는 이들의 여행은 뭔가 잘 안 풀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어쩌면 정서적인 공감대를 줄 수 있다. 이 대중들의 정서적 지점과 제작진이 처한 현실 그리고 출연자가 느끼는 무력감 같은 것이 하나의 공감대로 엮어진다면 <12> 시즌3의 여행은 분명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아이템이 낡아서, 형식 그 자체가 식상해서, 아니면 새로 들어온 출연자들이 재미가 없어서 <12>이 추락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중들의 정서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함께 하지 않으면서 저 혼자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소통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추락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시작하는 마당에 유호진 PD의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남은 것은 이 정서적 공감대를 어떻게 유지하고 또 어떻게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일 테지만.

<1박2일>, 제2의 전성기를 위한 전제조건들

 

<1박2일>이 시즌3를 선포하면서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느냐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수근, 유해진, 성시경, 김종민은 하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엄태웅과 차태현은 잔류할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목이 집중된 것은 새로운 멤버로 누가 들어갈 것인가다. 항간에는 장미여관의 육중완, 샤이니 민호 그리고 존박이 새 멤버 물망에 올랐다고 하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렇게 멤버 교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캐릭터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매번 어떤 장소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는 형식의 반복이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단발의 웃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캐릭터다. 일일이 <1박2일>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만, 이를테면 이수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많은 사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수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과거 경북 영양에서 현지 주민과 하룻밤을 지냈던 미션이다. 허름한 시골집, 불빛도 별로 없는 어두운 그 곳에서 현지 주민과 함께 하룻밤의 교감을 마치고 떠나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이수근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김종민 하면 <1박2일> 초창기에 혼자 낙오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김C 하면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한겨울에 홀라당 벗고 박스에 의지하던 모습이 떠오르며, 강호동 하면 입수를 외치며 한 겨울 계곡 얼음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캐릭터는 단지 인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1박2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차가 아쉬운 것이고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하지만 <1박2일> 시즌3의 경우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너무나 익숙해진 프로그램 형식이 다시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일이다. 단지 멤버가 바뀌고 제작진이 바뀐다고 이미 익숙해진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시즌2가 확인시켜 준 바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핵심은 이 프로그램의 소재인 ‘여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1박2일>이 시작하는 단계에서만 해도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여행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박2일>로 인해 여행의 트렌드가 바뀐 지 오래다. 이른바 ‘아웃도어’ 열풍이 불고 있는 것. 이 열풍에 그저 편승하는 것으로는 <1박2일>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채워주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 <1박2일>의 진정한 목표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여행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1박2일>은 거기에 우리네 팔도의 지역 특성과 아웃도어 개념을 덧붙여 여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도 더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빠 어디가>가 아빠와 아이의 여행으로 세분화됐고, <꽃보다 할배>는 어르신들의 여행으로 세분화됐다. 그렇다면 새 시즌을 준비하는 <1박2일>의 여행은 어떻게 과거의 <1박2일>과 또 여타의 여행 버라이어티와의 차별화를 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1박2일> 시즌3의 성패가 달려 있다.

 

<1박2일>의 새 시즌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형식과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다. 복불복은 <1박2일>의 핵심적인 감초지만 이것이 너무 전면에 내세워질 때는 여행 버라이어티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는 단점이 있다. 시즌2에서 늘 문제로 지목됐던 것은 과도한 게임이었다. 복불복은 다큐처럼 찍어지는 초창기 리얼 버라이어티의 안전장치처럼 사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의 소산물이라는 것. 하지만 요즘처럼 관찰예능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의도적인 복불복은 ‘리얼’의 느낌을 상당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다변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사안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여행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냈던 ‘대학생 생활백서’ 같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 발굴이 절실하다 여겨진다. 여행의 일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1박2일>을 기존 여행의 틀로만 한정짓지 않는다면 더 많은 소재와 스토리가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카메라 연출에 있어서도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최근 경향인 관찰 카메라 형식을 도입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프닝을 위해 일렬로 멤버들을 세워놓고 찍는 방식은 너무 식상해졌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다큐적인 오프닝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고, 과정을 찍는 방식도 좀 더 현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형태가 리얼감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중민 EP가 밝힌 것처럼 “친구와 여행은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을 소재”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늘 여행을 꿈꾸고 또 여행을 다녀와서도 또 다른 여행을 생각하는 욕망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여행이라는 좋은 소재도 똑같은 형식과 스토리만을 반복해서는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콘셉트를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 이것이 <1박2일>에는 멤버 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는 은근 닮은꼴

 

<꽃보다 할배>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일섭다방’에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귀여운 할배들의 ‘서열놀이’가 들어있다. ‘젠장 나이 70에 막내라니...’라는 자막과 함께 투덜대는 백일섭과 그 놀이가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뒤에서 웃고 있는 이순재, 그리고 백일섭에게 커피 타라고 시키는 신구는 나이만 쏙 빼놓으면 영락없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이 그렇다. 그들에게 주어진 ‘배낭여행’이라는 중차대한 미션은 그들을 순식간에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파리에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이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오는 장면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의 연속이다.

 

누가 뭐라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이순재와, 무거운 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챙겨준 장조림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백일섭이 그렇다. 또 그 투덜대는 막내(?)를 살뜰하게 지켜주고 그가 버리고 간 꽃다발을 챙겨 그의 가방에 꽂아주는 바르고 착한 어린이 같은 신구와, 드라마 속에서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멋진 스타일에 여전히 소년처럼 보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미소를 짓는 박근형이 그렇다. 이들은 적어도 <꽃보다 할배>에서는 소싯적의 아이들로 돌아간 모습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여행이 주는 힘 덕분이다. 일상과 일 속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자 후배들이 우러러보는 국민배우들이지만, 여행은 그런 무거운 타이틀들을 모두 벗어버리게 만든다. 그들은 그저 오래도록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형 동생 사이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아마도 <1박2일>을 통해 이미 여행이 주는 감성이 때 묻은 어른의 껍질을 벗어내고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다. 중년의 어른들도 계곡 앞에 서면 입수를 걸고 목숨 걸듯 복불복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보면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전혀 다른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이 이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할배들을 조명한다면, 다른 한쪽은 실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무장된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여행이라는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할배와 아이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보통의 성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약자의 위치는 예능이 주는 간단한 미션조차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준다. 아이들에게 시골이라는 낯선 공간이 하나의 도전이라면, 할배들에게는 배낭여행으로 가게 되는 외국의 낯선 공간이 도전이 되는 셈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빠들이 보호자로 서 있다면, 할배들에게는 이서진이라는 젊은이가 보호자가 되는 셈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가 점점 ‘조미료 없는 예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할배와 아이라는 약자의 지점은 중요하다. 성인이라면 훨씬 강도 높은 미션이 주어져야 그만한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다이빙을 한다든지 군에 재입대를 한다든지 해야 그만한 효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배와 아이처럼 출연진 자체를 약자로 두게 되면 단순한 일조차 미션이 된다. <꽃보다 할배>의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 찾는 첫 번째 미션이 별다른 조미료(설정) 없이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되는 이유다.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찾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진짜사나이>가 다 큰 장정들의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혹독한 군대로 들어가야 하는 반면, 할배들과 아이들은 이 순수함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군들이다. 어쩌면 향후의 새로운 예능 트렌드는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준 그 순수의 지대에서 새롭게 피어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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