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참 다양하게도 비유된다.

삶을 인생의 여정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일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는 여행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역시 잠시 이 쪽의 불을 끄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말하기도 한다. 

여행과 나날

여행에는 낯설음과 익숙함 혹은 새로움과 진부함 나아가 차이와 반복의 이중주가 담겨 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낯설고 새롭고 어딘가 지금과는 차이가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낯설고 새롭고 차이가 나는 경험으로서의 여행이라도

같은 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혹은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그 경험은 익숙해지고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그래서 이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 새로움과 진부함 사이 그리고 차이와 반복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위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그것 역시 삶과 여행을 빼닮았다는 걸 알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단어들이나 말들이 갈수록 익숙해지면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 단어나 말들이 지긋지긋해지고 더이상 쓰고 싶어지지 않게 된다. 

여행과 나날

“나는 말(言)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각본가인 '이(심은경)'는 그렇게 말한다. 

이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각본가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쓰는데, 아마도 그녀에게 처음부터 일본어가 쉬웠을 리는 없다. 

이건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소회하고도 일치한다.

그 일본어를 쓰며 하는 연기는 그래서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한국어로 하던 연기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본어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는 그마저 '말의 틀'에 갇히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슬럼프에 빠지기 전 그녀가 쓴 작품으로 된 영화는 여름 날 어느 낯선 바닷가에서 만난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대단한 사건도 대단한 대사도 없지만 묘하게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영화는

그 무료한 바닷가에서 함께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수영하는 광경을 관능적으로 담아낸다. 

작가의 이의 무료함은 그렇게 영화라는 세계 속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여행의 낯설음을 꿈꾸게 한다. 

여행과 나날

그 작가의 권태로움이 극에 달해 말의 틀에 갇혀버린 이는

이제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말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난다. 

영화 속 세계가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소년 소녀의 판타지에 가까운 상상이었다면

현실 속 이가 떠난 세계는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 속 지도에도 없는 허름한 여관에서 만난 

괴팍해 보이는 아저씨 주인과 만난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이다.

여행과 나날

하지만 이는 온천도 스키장도 아닌 이 지도 바깥에 있는 이 낯선 여관에서

주인 아저씨 벤조와 일상을 보내며, 그가 하는 엉뚱한 짓에 가담해 의외의 작은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벤조가 왜 혼자 그런 외진 곳에서 여관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사연도 알게 된다.

그 엉뚱한 모험을 한 후 이가 한껏 웃는 얼굴로 벤조에게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할 때

벤조가 툴툴 대며 옆자리로 눕는 장면은 이 영화의 깨알같이 빛나는 대목이다. 

여행과 나날

벤조의 사연은 자못 비극적이고 아련한 면이 있고,

그건 그의 하루하루를 온통 채우는 일상 그 자체다. 새로울 리도 없고 그러니 즐거울 리도 없다.

하지만 벤조의 그 일상 속으로 여행해 들어온 이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 바깥으로 나와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고 대사도 많지 않다. 

특히 전반부에 등장하는 이가 쓴 작품 속 바닷가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익숙한 영화 문법과는 사뭇 동떨어진 광경들이 등장하며

낯선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여행과 나날

하지만 그것이 영화였고, 그 영화의 각본을 쓴 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함에 갇혀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새로움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 또 하나의 영화다. 

극중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것은 영화라는 예술이

익숙함의 틀에 갇혀 즐거움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즐거운 여행으로 인도하는가를 담아낸다. 

 

이 영화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삶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여행을 하고 있거나 혹은 나날(일상)을 살아가고 있거나.

그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며.

여행과 나날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효리가 껴안은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이런 강도 보고 저런 산도 보고 들판도 보고 이러면서 힐링이 되는 거야. 여행이라는 건.” 이효리의 엄마 전기순씨가 그렇게 말할 때 그에게서는 순간 소녀 같은 설렘이 느껴졌다. “저런 산만 쳐다보면 산이 너무 좋은거야 엄마는. 저런 데서 막 누비고 다니며 버섯도 따고 고사리도 꺾고 도라지도 캐고...” 엄마는 그런 산 같은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모양이었다. 

 

JTBC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통해 함께 경주로 여행을 떠난 이효리와 엄마는 어딘가 그런 일이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그런 여행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취향도 너무나 달라 이효리가 뭘 하자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싫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야경이 좋다며 보러가자고 하면 잠을 자야 한다고 하고, 찜질방에 가자고 하니 머리가 망가진다고 안된다고 한다. 네일아트라도 해보자고 하니 집에 가면 밭일할 걸 뭐하러 그걸 하냐고 하신다. 

 

대릉원에 관심이 있다고 가서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무관심해 보이고, 경주에 가면 봐야 한다며 첨성대 앞에 가서도 사진 몇 장 찍고는 다 했다고 돌아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효리는 우스우면서도 왜 그런 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특히 여행 오면 남는 게 사진인데, 엄마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싫어한다. 왜 찍느냐며 손사래를 치고, 애써 찍으려 하면 어색해한다. 

 

교복을 입고 소녀처럼 변신해 찍은 사진들 중에서 잘 나온 걸 고를 때도 엄마는 이효리에게 “너 사진빨 잘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은 보기 싫다 하신다. 귀엽다, 예쁘다, 잘 나왔다고 이효리가 계속 말하지만, 엄마는 부정한다. “늙어가지고 잘 나온 게 어딨어. 다 꼴보기 싫구만.”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이효리의 말에도 “웃는 것보다 그냥 다물고 찍는 게 자연스럽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이효리가 농담처럼 슬쩍 말을 얹는다.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요? 사랑하도록 해봐요. 전여사님 우리 모두가 다 늙잖아요.”

 

이효리의 엄마지만 보다보니 자꾸만 우리네 엄마들이 겹쳐진다. 어렵게 살았고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여유도 없이 일하며 살아오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도 여전히 과거처럼 ‘실용적인 선택’이 삶의 습관이 되어 살아가시는 엄마들. 그래서 나이들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하는 일들을, 애써 숨기면서 살고픈 마음이 더 많은 엄마들이다. 캠코더로 엄마를 찍던 이효리가 “엄마 팔자걸음이다”라고 말하자 금세 ‘일자걸음’으로 고쳐 걷는 모습에서 엄마들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으면서도 “눈가 주름도 쫙 펴졌으면 좋겠어. 쫙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이라고 딸이 말하자 엄마는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며 그걸로 만족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슬쩍 딸 자랑을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난리들인데 뭐. 예쁘고 착하고 얼마나 너그럽고 착한 딸이냐 엄마한테 그래.” 그러면서 “한번 겪어봐라. 한번 부딪쳐봐라.”라는 말로 남들 이야기가 기쁘면서도 자신에게는 좀 소원한 것 같은 마음의 아쉬움도 드러낸다. 

 

가난했던 삶. 당신이 어려서 사랑을 못받아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려 했지만 막상 아빠를 만나고 나서 여유도 틈도 없었다는 말을 꺼내며 엄마는 슬쩍 눈물을 훔친다. “울어?”하고 묻는 이효리에게 “뜨거운 거 먹으니까 눈물이 난다”고 했지만 아마도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을 테다. 이효리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지금도 약간 긴장이 계속 되는 거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하도 일이 벌어지니까. 둘이 따로따로 있으면은 괜찮은데 같이만 있으면...”

 

“그런 점에서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엄마로서.”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이효리는 엄마가 사과할 건 없다며 늘 아빠가 먼저 시작했고 그래서 자신이 신랑을 순한 사람으로 골랐다는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이효리는 자꾸만 그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하지만 엄마는 그걸 꺼내놓고 싶지 않다. 그 과거를 부정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엄마가 “좋은 얘기만 하자”고 할 때 이효리가 하는 답변이 가슴에 와닿는다. “좋은 얘기 나쁜 얘기가 어딨어? 다 지난 얘기지.”

 

누구나 가족사에 아픔 하나쯤은 다 있게 마련이다. 특히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부모님들과 겪어온 현 세대들이라면 이효리와 엄마의 이런 여행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런 아픈 과거들은 애써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을까. 이효리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려 한다. 나이들어 잔주름이 생기면 생기는 거고, 본래 팔자걸음을 걷는 건 숨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픈 가족사 역시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이효리는 말하고 있다.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힘들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평생 가슴에 남아 있고, 그래서 더 잘해야 됐는데 반대로 이상하게 그것 때문에 더 엄마를 피하게 되는 안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게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마음을 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마음들이 엄마하고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마음들을 용감하게 물리쳐 보고 싶어요.”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같은 제목에는 사실 부모와 조금 소원해진 자식들에게는 필요한 ‘용기’ 같은 게 느껴진다. ‘단둘’이 여행을 가는 일은 가족의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고, 그래서 한 걸음 떨어져 그 살아왔던 삶을 좀더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효리와 그 엄마의 지극히 사적인 여행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한때는 피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꺼내놓고 마주하는 이효리의 용감한 마음은, 우리도 갖고 싶고 또 가져야될 것 같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진:JTBC)

나영석 생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한다.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그래서 과거에 트렌드라고 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어떤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트렌드는 가속도를 얹어 나와는 상관없이 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아 달려라 나는 걸어갈테니...’ 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시대의 삶의 지혜지만, 이런 삶에서 비껴 있는 이들도 있다. 트렌드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혹은 트렌드를 주도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예능PD는 바로 그 직업 중 하나다. 시대의 재미를 포착해내지 못하면 예능PD들은 때론 시대착오적인 불편함을 줄 수도 있고, 혹은 ‘노잼’의 굴욕을 맛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빨리 변화해가는 세상을 어떻게 따라잡는단 말인가. 

 

나영석은(뒤에 PD라 붙여야 할지, 크리에이터라 붙여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냥 이름만 쓴다) 그 누구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걸 해내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1박2일’ 조연출 시절부터 봐왔던 후배지만, 그가 현재의 이런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현재의 어떤 모습에서 하나씩 뒤로 시간을 되돌려 반추해가다 보면, 그 때의 어떤 모습들이 현재의 씨앗이 되었을 거라고 짜맞춰 볼 수 있을 뿐이다. 

 

먼저 최근 나영석의 행보를 보자. 최근 화제가 됐던 건 엉뚱하게도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의 팬들이 여는 행사인 ‘생카(생일 카페)’다. 4월8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이 생카에는 아이돌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팬들이 몰렸다.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이서진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것처럼 “진짜 연예인 병”이라고 걸린 걸까 싶지만, 현재의 팬들이 하는 생카 같은 트렌드에 다소 뻔뻔한 얼굴로 꽃다발에 화관을 쓴 킹 받는 콘셉트의 사진을 내건 나영석의 행보는 과감하면서도 놀랍다. ‘아워 땡 보이(Our Ddang Boy)’라는 문구로 표현된 그는 이제 PD라는 틀에서 벗어나 6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유튜버이자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라는 걸 이 행사 하나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본업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는 최근 ‘서진이네2’를 찍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다. 추운 날씨의 아이슬란드에 맞춰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한국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한다는 의도에 따라 ‘서진뚝배기’를 연다고 한다. ‘서진이네2’는 나영석에게는 tvN에서 방영되는 블록버스터급 예능으로서 본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본업과 부업 혹은 본캐와 부캐를 구분하는 일은 그 자체가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부업이 본업이 되고 본업이 부업이 되기도 하며, 일과 취미가 교차되는 일은 이미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며 일상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즐기다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된 빠니보틀이나 곽튜브 같은 이들을 보라. 본캐와 부캐의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시대 변화를 나영석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나영석의 나불나불’을 비롯해 ‘나영석의 와글와글’ 같은 일상적인 코너들을 하면서, 때로는 세븐틴과 함께 한 ‘나나투어’처럼 그 코너들이 발단이 되어 메인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여줬다. 채널 십오야에서 나영석이 하는 이 코너들은, 과거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위해 TV 토크쇼에 나가던 연예인들이 나가고 싶어하는 일순위 토크쇼로 자리잡았다.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1박2일’이라는 국민예능을 만들어내며 스타PD의 반열에 올랐던 그는, 케이블로 영상의 패권이 옮겨가는 시절에 CJ로 이적해 tvN에서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서진이네’ 등등 연달아 히트 프로그램들을 내놨다. 그리고 이제 플랫폼의 시대에서 콘텐츠의 시대로 바뀌는 시점에 CJ를 나와 에그 이즈 커밍이라는 콘텐츠 제작사에 둥지를 틀고 tvN에 맞는 콘텐츠는 물론이고 유튜브 콘텐츠도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로 전면에 세웠다. 그 일련의 변화과정을 보면 실로 카멜레온 같은 변신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계산된 변화가 아니라, 현재의 대중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구한 결과에 가깝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은 어딘가 PD라기보다는 크리에이터 같은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다. 그는 대중들이 좀더 리얼한 진짜 여행을 원한다는 걸 알아챘고, 그래서 제작진 역시 ‘함께 여행’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그가 카메라 뒤가 아니라 카메라 앞으로 나와 복불복 게임을 주도하게 된 건 그래서다. 당시 강호동이 틀린 답을 이야기할 때 “땡!”하며 진짜 즐거워 했던 나영석의 크리에이터로서의 씨는 그 후로 여러 프로그램의 햇살과 비를 맞으며 싹을 틔워 현재의 ‘아워 땡 보이’가 됐던 것이다. 

 

이제 모두가 추종하는 트렌드의 시대는 지나고 있다. 그건 매스컬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들이다. 대신 저마다의 취향의 시대가 열렸다. 콘텐츠 소비만 봐도, 과거 가족들이 저녁에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TV를 함께 보던 그런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한 자리에 앉아도 저마다 가진 디바이스들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채널에서 보는 게 지금의 달라진 풍경이다. 하지만 취향의 시대로 들어왔어도 여전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매스컬처의 플랫폼들은 남아있고 이를 통한 소비도 여전하다. 여전히 1천만 관객 영화가 등장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박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러한 과도기에 양자에 걸쳐 살아가는 예능 PD들은 플랫폼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 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영석이라는 페르소나의 탄생은 과도기 같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 변화에 적응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나영석은 자신이 지금껏 계속 고수하고 있는 ‘여행’이라는 소재처럼,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움직여도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변수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이 변화에 놀라운 적응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심지어 적응이나 대처의 차원을 넘어서 이 변수들이 진짜 재미라고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그의 삶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행도 삶도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재미 없겠는가. 그러니 그 변화를 즐기라고.(글:국방일보, 사진:에그 이즈 커밍)

먹고 쉬는 '바퀴 달린 집', 코로나 시국의 로망을 자극하다

 

이 정도면 먹방의 끝판왕이 아닐까. tvN 예능 <바퀴 달린 집>에서 고창을 찾은 성동일, 김희원, 여진구 그리고 게스트 이성경은 먹방의 끝을 보여줬다. 고창하면 떠오르는 장어구이는 물론이고 성동일이 지인으로부터 공수해온 홍어에 3년 묵은 묵은지 그리고 잘 삶은 돼지수육을 더한 홍어삼합 그리고 바로 바퀴 달린 집 앞 갯벌에서 캐온 동죽을 넣어 끓인 시원한 라면까지. 끝없이 먹으며 "맛있다"는 감탄사를 내놓는 광경이 이어졌다.

 

마침 방송이 방영된 16일은 초복이라 부쩍 더워진 날씨에 기력 보충이 절실한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을 게다. 그런 분들에게 <바퀴 달린 집>의 고창편은 보기 힘들 정도로 꽉 채운 보신음식들의 향연이 아니었을까.

 

고창을 가기 전날 머물렀던 담양의 대나무숲에서도 놀라운 먹거리들이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죽통에 넣어 불을 피워 익혀낸 삼겹살은 그 비주얼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했다. 삼겹살로 배를 채운 후 이어지는 비빔국수, 잔치국수, 콩국수는 또 어떻고.

 

그러고 보면 <바퀴 달린 집>은 강원도 고성, 제주도, 담양, 고창의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자연을 앞마당에 둔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힐링을 주었지만, 그 앞마당에서 펼쳐지는 먹방 또한 큰 몫을 차지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고성에서는 새벽 어부들이 갓 잡아온 대문어를 사다 숙회 파티를 벌인 바 있고 제주도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제주 대왕갈치구이에 부위별로 두툼하게 썰어 공수된 제주도 흑돼지 구이의 만찬이 벌어졌었다.

 

사실 먹방이라고 하면 한때 방송 트렌드가 될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오며 조금은 식상해진 면이 있는 방송 형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먹방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것은 코로나 시국을 맞아 먹방 2.0이라고 불러도 좋을 색다른 콘셉트를 장착한 먹방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언택트의 개념이 들어간 프라이빗, 휴식이 더해졌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5와 <바퀴 달린 집>이다. <삼시세끼>는 코로나 시국에 어딘가로 떠나기가 어려운 시청자들에게 죽굴도라는 그 자체가 언택트인 공간에서의 즐거운 시간들을 선사했다. 그러면서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과 직접 잡은 물고기 같은 식재료들로 음식을 해먹는 과정들을 보여줬다.

 

<바퀴 달린 집>은 트레일러라는 언택트 개념을 가진 집을 동원해 전국 각지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역시 먹방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특산물들을 가져와 해먹는 만찬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프라이빗한 공간을 찾아 먹고 쉬는 개념은 코로나 시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집 생활을 주로 하며 갇혀 있다는 느낌 대신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즐거움이 그 무엇보다 소중해진 시국이기 때문이다. 방송의 여운을 느끼며 집에서 비슷한 음식을 가족들과 챙겨 먹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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