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변호사’, 기성이라는 가상도시에 담은 현실 코드들

“아이고 할매요. 맨날 이렇게 퍼줘가 할매는 뭐 먹고 사노?” “고마 떠들고 처먹기나 해라. 마 나가서 얼른 경제를 살려야 될 거 아이가.”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는 안오주(최민수)와 국밥집 욕쟁이 할매가 나누는 대화. “기성의 아들 안오주 자나깨나 기성만 생각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가장 정의로운 도시 여러분의 시장 안오주가 만들어가겠습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기성시장 선거홍보영상이다.

tvN 토일드라마 <무법변호사>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지만, 누구나 이 선거홍보영상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게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외치던 그 유명했던 전직 대통령의 선거홍보영상. 물론 시장통 국밥이야 정치인들에게 선거철이면 늘 카메라에 잡히는 단골메뉴지만, 이 드라마가 그려낸 선거홍보영상은 누가 봐도 지금은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당시의 전직 대통령의 그것을 패러디했다는 게 느껴진다.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도 사실은 다 연기자였던 것이 뒤늦게 밝혀진 그 홍보영상.

시장선거가 벌어지는 <무법변호사>의 기성은 이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상도시다. 왜 하필 기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도시명은 혹 ‘기성세대’라고 부를 때의 그 ‘기성(旣成)’은 아니었을까. 물론 ‘기성세대’라고 부를 때 그 의미가 모두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네 현실에서 정치와 정의의 문제 등에 있어서 ‘기성’의 의미는 긍정적이지 않다. 적어도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현실 속에서는 더더욱. 

<무법변호사>의 기성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은 차문숙(이혜영) 판사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성을 법으로 쥐고 흔들어왔던 차병호 판사의 딸. 그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는 겉으로는 ‘기성의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며 보육원 봉사를 다니며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을 언론에 흘리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면 청결제로 손부터 씻는 인물이다. 공명정대한 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연출된 거짓들이다. 그는 안오주 같은 깡패를 시장으로 세워 앞으로도 기성을 자신의 발밑에 두려고 한다. 

깡패 안오주는 대놓고 자신이 시장이 되려는 이유가 “정치”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가 선거홍보영상으로 국밥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다. 그 영상에 들어가 있는 “경제를 살린다”는 말이나,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가장 정의로운 도시”는 안타깝게도 서민들을 속이기 위한 연기일 뿐이다. 차문숙과 안오주는 그렇게 기성의 적폐 세력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의 면면과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 시민들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차문숙은 아버지대로부터 이어받은 권력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안오주는 정치의 힘을 빌려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자신의 주머니만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하재이(서예지)의 아버지인 하기호(이한위)를 통해 드러나듯 시민들은 이들의 거짓 놀음에 눈이 멀어 있다. 자신이 큰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며, 기성에 나타나 그 진실을 끄집어내려는 봉상필(이준기)에게 적대감을 갖는 모습은 우리가 이전 선거철마다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모든 기성세대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가 최우선이 되었던 시대를 살아오며 덮어지고 미화되고 했던 일들을, 이제 봉상필이나 하재이 같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물들이 바로 잡으려 한다. 이런 이야기가 어찌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무법변호사>의 기성이라는 도시가 그저 가상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적폐청산의 이야기가 현실 코드를 담아낸 패러디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사진: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현실 담은 코믹 캐릭터 열전

좋은 작품과 ‘좋은 캐릭터’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던가. 좋은 작품에는 눈에 띠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고, 좋은 캐릭터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뜻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저마다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주인공인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는 물론이고 주변인물들인 우수지(이솜), 마상구(박병은), 양호랑(김가은), 심원석(김민석) 하다못해 분량이 많지 않은 윤보미(윤보미) 같은 캐릭터까지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들 캐릭터들이 이렇게 돋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사진출처:tvN)'

남세희는 마치 ‘시리야-“하고 부르면 나올 법한 고저강약 없는 목소리로 무표정을 일관하는 캐릭터다. IT업계에서 잘 나가는 브레인인 그는 모든 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결정하고 선택하려 한다. 심지어 결혼을 ‘선택’하는 일도 사랑 같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살만큼 생활습관이 맞는 대상이고 또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 평생을 갚아나가야 하는 집 대출금을 내는데 도움이 되는 대상이라는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데 이 무표정하고 무감정해 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순간 전해지는 매력은 더 커진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한 부부라 부르지만, 당사자들은 집주인과 세입자인 관계로 그는 윤지호가 자신의 사적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걸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윤지호가 스토커로 추정되는 남자와 다니는 게 영 눈에 밟힌다. 

백미러 하나 수리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오토바이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초절정의 순발력을 발휘하며 몸을 날리는 짠돌이지만, 윤지호를 궁지로 몰아가는 그 스토커의 오토바이를 발로 밀어버리는 장면은 그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낸다. 그가 윤지호에게 말하는 “우리집으로 가자”는 말 한 마디가 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평소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남세희의 친구이자 그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인 마상구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의 제목을 빗대 표현하자면, “이런 사장은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 CEO로서 어떤 권위는 분명히 있지만 권위주의라는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리더십을 보이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철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이 자신이 좋아하는 우수지가 술자리에서 성희롱에 성추행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상대남자를 들이받는 장면은 이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낸다. 투자 건이 무산되는 것을 감당하면서까지 우수지를 지켜내려 하는 모습에서 그가 철없는 인물이 아니라 순수한 인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세희나 마상구가 겉보기와 다른 반전 매력을 통해 그 캐릭터가 돋보이는 것처럼, 우수지라는 캐릭터도 그 반전 모습을 통해 어떤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남세희와 마상구는 그 현실과 부딪치며 어떤 판타지를 주는 인물인 반면, 거꾸로 우수지는 평소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달리 회사생활에서는 지극히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버텨내려는 모습으로 현실의 무거움을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인물이 회사 생활에서 일상으로 겪는 성추행이나 성희롱과 맞서지 않는다는 그 설정은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여성 직장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가를 드러내준다. 맞서는 순간 결국 여성인 자신만 다칠 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맞서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남세희와 윤지호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만큼, 우수지와 그를 좋아하는 마상구가 이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보다 보면 ‘이런 캐릭터들은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건 저마다 코믹하고 반전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그 밑바탕에 드리워져 있는 현실이 이들 캐릭터에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그래서 이런 좋은 캐릭터들을 연기한 좋은 배우들을 발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종석과 수지, ‘당잠사’가 깨운 연기자의 매력

역시 배우는 작가를 잘 만나야 제 매력을 발휘하게 되는 걸까. 박혜련 작가의 새 수목드라마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이하 당잠사)>에서 첫 회부터 이종석과 수지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사실 이 두 배우는 모두 박혜련 작가와 인연이 깊다. 수지는 <드림하이>로 박혜련 작가와 인연을 맺었고, 이종석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로 박혜련 작가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사진출처:SBS)'

<당잠사>는 판타지와 현실을 엮어내는 박혜련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이었고, <피노키오>에서는 마치 사진을 찍듯 모든 걸 기억해내는 소년과 거짓말을 하면 딸국질을 하는 소녀가 주인공이었다. 이번 <당잠사>는 예지몽을 꾸는 남녀가 주인공이다. 

첫 회에 <당잠사>는 꿈꾼 대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홍주(배수지)와 그녀가 일어날 일을 꿈꾸게 된 재찬(이종석)이 자동차 사고를 계기로 관계를 맺게 되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홍주 대신 운전을 한 이유범(이상엽)이 사고를 내고 그래서 혼수상태로 병실에 눕게 된 홍주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녀의 엄마 윤문선(황영희)이 과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그래서 홍주 역시 건물 옥상에서 자살하는 꿈을 꾸게 된 재찬이 그대로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걸 느끼면서 사고를 막는 과정.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어떤 불행한 사건 사고를 미리 꿈으로 예지한 인물이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간절함 때문이다. 누구나 어떤 사고를 겪었을 때 한번쯤은 그 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만일 그런 말이나 행동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 <당잠사>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 들어간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되돌리는 설정이 한 때 드라마의 트렌드가 되었던 이유는 그 과거로 돌아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결과를 바꾸려 하는 간절한 욕망이 거기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잠사>는 타임리프의 방식을 예지몽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려낸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을 미리 꿈으로 알게 되고 깨어나 현재에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런 이야기 설정에 특히 지금의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건 워낙 우리가 많이 겪었던 사건 사고들 때문이다.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부터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사고들이 남긴 트라우마는 우리네 대중들의 가슴에 지금까지도 선연한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니 <당잠사>의 인물들이 보이는 간절함은 남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박혜련 작가는 이처럼 판타지적 캐릭터를 활용하지만 그 캐릭터 속에 현실적인 정서나 감정을 투영해 넣는 것으로 마법 같은 힘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그래서일까. 최근 전작에서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이종석도 수지도 이 작품의 캐릭터 속에서 제대로 매력이 풍겨져 나오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첫 회가 주는 예감은 좋다. 미리 꾸어보는 꿈처럼.

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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