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초반 시선을 잡아야 성공한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첫 회의 법칙’이 있다. 첫 회에서 시선을 잡아끌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 하이라이트 부분을 맨 앞에서 먼저 보여줘 시선을 잡아끈 다음, 회상 신으로 돌아가 극을 전개시키는 방식은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멜로드라마에서 해외로케를 통해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고, 사극에서 스펙터클한 액션장면을 보여주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첫 회에 제시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극의 첫 회, 지붕 위를 걷다
‘일지매’는 첫 회에서 갑의를 착용한 일지매(이준기)가 전각지붕 위를 바람처럼 달려나가고 왕실의 보물창고인 내수고에 침입해 보물을 훔치는 장면을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주었다. 일지매가 담을 넘어 탈출하면서 매화나무 아래 안착한 후 카메라가 일지매의 눈으로 쑥 들어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첫 번째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한 ‘일지매’의 면면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제 시청자들은 그 붙잡힌 시선에 이끌려 이 멋진 일지매가 되기까지의 과정, 즉 겸이에서 용이가 되고 용이에서 일지매가 되는 그 과정을 보게 된다.

궁을 배경으로 한 액션 신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사극의 첫 회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이산’에서 궁중연회 도중 갑자기 영조(이순재)를 향해 총을 쏘는 군졸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영조 앞을 사도세자가 가로막는 장면은 물론 영조의 꿈이지만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저 ‘대왕 세종’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자객들의 궁궐 침입 시퀀스와 유사하다. 이 장면 역시 실제 상황이 아닌 궁궐 내의 훈련 상황이었던 점을 보면, 이런 첫 회의 액션 신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 드라마의 첫 회, 방송의 이면을 보다
최근 한 트렌드처럼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 드라마’들이 첫 회에서 보여주는 것은 방송의 이면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첫 방에서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게된 앵커가 방송도중 눈물을 흘려 자칫 방송사고가 될 뻔한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가 뉴스를 볼 때 봐왔던 수면 위의 장면들, 그 아래 숨겨진 숨가쁜 발놀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 아찔한 상황 속에서 서우진(손예진) 기자는 순발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 선보인다.

각종 시상식은 방송 드라마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온에어’의 첫 회가 시상식의 이면을 잡아내면서 나눠주기식 시상식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그려냈던 것처럼, ‘태양의 여자’는 상해에서 벌어진 아시안TV페스티벌에서 ‘원더우먼쇼’로 상을 받는 아나운서 신도영(김지수)에 대한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시상식이라는 시퀀스는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면과 동시에 그 이면이라는 낯선 그림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점이 있다. ‘태양의 여자’는 이 첫 회를 통해 해외로케와 시상식이라는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벌어질 신도영의 상황, 즉 ‘원더우먼’으로서 잘 나가는 아나운서이지만, 무언가 내면적인 문제가 있는 그 정황을 모두 잡아낸다.

첫 회에 대한 집착, 문제는 없나
이 밖에도 가족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대개 문제를 내포한 가족들의 면면을 일상을 훑어가며 보여준다. ‘엄마가 뿔났다’의 첫 회가 영수(신은경)와 종원(류진)이 함께 침대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은 장면 자체가 갖는 시선 끌기의 목적도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이 드라마 속의 갈등상황(이 사실을 안 엄마가 뿔나는)을 예고해준다. ‘행복합니다’의 첫 회 장면은 이질적인 두 집안을 병치해서 보여주는데, 준수(이훈)네 집은 침입한 도둑을 쫓는 에피소드로 우스꽝스럽게 연출된 반면, 그와 결혼할 재벌집 서윤(김효진)네 집은 연말을 보내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는 화려함을 대비시킨다. 이것은 후에 벌어질 계층 갈등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첫 회에 대한 드라마들의 집착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 속에서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문제점도 양산한다. 최근 월화극에 대한 편성전쟁으로 그 첫 회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방영되게 된 것은, 바로 이 첫 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이 초반부에 눈길을 잡아야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은 자칫 하이라이트를 너무 앞으로 배치해 중반부터 긴장감이 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물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나올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초반에 연쇄살인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쓰면서 오히려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 즉 하이라이트를 앞으로 빼놓아 드라마 중반이 허전해지는 상황은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처럼 반복되고 있다. ‘일지매’도 초반부 강력한 액션 신으로 한껏 기대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음 에피소드들의 소소함에 부담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대왕 세종’ 역시 초반의 화려한 볼거리에서 중반의 대사 중심의 정치 이야기로 들어서면서 시청률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대왕 세종’은 이제 대마도 정벌이라는 아이템으로 볼거리를 잡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첫 회의 법칙’은 분명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첫 회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한 드라마에는 독이 될 것이다. 첫 회가 매력적이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중반 진행과 후반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것이 간과되지는 않아야 한다.

‘온에어’와 ‘티켓투더문’ 사이의 거리

드라마 작가 서영은(송윤아)이 보조작가 다정(강주형)에게 시청률을 묻는다. 아무리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했지만 그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모양. 다정은 시청률이 소폭 올랐다며 “착한 드라마래요. 은영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운대요.”하고 시청자 반응을 말하고, 서영은은 감동한 듯, “나 미쳤나봐. 55.5%도 넘겨봤는데 15.5%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하고 말한다. ‘온에어’ 속에 등장하는 착한 드라마, ‘티켓투더문’이 15.5%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방송이 나가던 날, ‘온에어’의 시청률은 21.9%(AGB닐슨)였다. 최근 사극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다.

‘티켓투더문’, ‘온에어’가 꿈꾸는 환타지
착한 드라마, ‘티켓투더문’에 시청률 15.5%를 준 것은 어쩌면 ‘온에어’가 꿈꾸는 드라마의 환타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극적이지 않고 볼거리에 치중하지도 않으면서 잔잔한 감동과 메시지만을 진심으로 담아 승부하는 착한 드라마들이 이만한 시청률을 거두기는 현실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고맙습니다’ 정도가 예외가 될 뿐, 대부분은 10%도 넘기지 못하고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끝나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티켓투더문’같은 착한 드라마를 꿈꾸는 ‘온에어’는 착한 드라마일까. 그렇지 않다. ‘온에어’는 꿈꾸는 드라마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인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하고 오승아(김하늘)의 입을 통해 PPL의 문제를 꺼내놓으면서도 심지어 그 대사를 하고 있는 장소조차 PPL로 활용한다. “작가가 왜 작품으로 승부하지 배우에 기대느냐”는 이경민 PD(박용하)의 대사를 빌어 스타배우에 기대는 작금의 드라마 제작 행태를 비판하지만, 이 ‘온에어’라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네 명의 스타배우들의 파워와 그네들의 혼신을 불태운 연기에 기댄 점이 분명 존재한다.

“왜 불필요한 해외로케를 하느냐”는 대사를 통해 홍보 이벤트성 해외로케의 문제를 꼬집지만 사실상 한 회분 전체를 해외 로케의 홍보로 활용하는 과감성도 보인다. 이경민 PD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온에어’라는 작품은 진정성 하나를 무기로 전장에 나선 착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드라마 제작과 마케팅 홍보에 있어서 능수 능란한 프로의 손길이 느껴진다.

문제의식이 멜로로 바뀔 때
따라서 ‘온에어’가 꿈꾸는 드라마, ‘티켓투더문’에서 마지막 16부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실제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영은 작가는 극중 은영의 성장을 단순히 에이든과의 사랑을 통한 멜로의 성장으로만 그려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꾸자는 내용 속에 포함되는 것은 은영의 사회적인 성장이다. 즉 그저 편안한 해외로의 도피가 아니라 국내로 되돌아와 비슷한 장애를 겪는 이들을 위해 거북이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거북이’라는 이름은 ‘조금 느릴 뿐’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한다. 착한 드라마의 진정성이란 멜로의 진정성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함의까지를 내포한다는 걸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의미로의 확장은 ‘온에어’라는 현실(이것은 ‘티켓투더문’을 드라마 속이라 상정했을 때는 현실이 된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티켓투더문’ 속에서 에이든이 은영에게 “놀라지 말아요”라고 말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은, 사실 장애와 비장애를 뛰어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만, ‘온에어’라는 현실로 나오면 이경민에게 서영은이 받았던 기습키스를 대본의 형태로 이경민에게 되돌려주는 멜로로서만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착한 드라마를 꿈꾸는 ‘온에어’는 ‘티켓투더문’이라는 작품 속에서만 꿈을 꿀뿐, 작품 밖으로 나오면 철저히 시청률의 잣대로 움직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멜로드라마가 된다.

시청률과 꿈꾸기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어쩌면 이것은 만들고 싶은 드라마와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드라마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둘러싼 PD와 작가, 배우와 매니저 사이의 팽팽한 갈등과 긴장감은 착한 드라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냈지만, 현실적으로 이 드라마 자체는 착한 드라마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착한 드라마를 위한 팽팽한 대립은 점차 멜로의 전조로서 작용한 바가 크며, 착한 드라마인 ‘티켓투더문’은 ‘온에어’의 멜로를 위한 표현의 창구로서(동그라미를 치거나 특정 대사를 집어넣거나) 기능한 바가 크다. 그리고 이것은 안타깝게도 작금의 드라마 제작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에어’의 가치는 착한 드라마냐 아니냐의 측면이 아니라, 이 독특한 다중창 전략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 속의 드라마를 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온에어’는 현실적인 시청률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는(극중 드라마를 통해) 장치를 얻어낸 셈이다. ‘티켓투더문’이라는 드라마 속 드라마는‘온에어’라는 차가운 드라마 현실에서 착한 드라마를 꿈꿀 수 있는 티켓이 되어주었다. ‘온에어’는 착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착한 드라마를 꿈꾸었던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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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이은 ‘스포트라이트’, 방송이란 전문직 살릴까

한 때 소설에 있어서 ‘소설가 소설’이라 불리던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나와 자성적인 입장으로 소설 쓰는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소설가의 위선 같은 것을 꼬집으면서, 그 특정한 직업군의 특수한 이야기를 통해 일반적인 명제들을 끄집어내는 소설들이었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이와 비슷한 드라마들이 등장해 관심을 끈다. 이제 종방을 앞둔 ‘온에어’와 이제 막 시작하는 ‘스포트라이트’가 그것이다.

‘온에어’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과정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로서 연예계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포착한다. PD와 작가, 배우와 매니저의 이야기들을 통해 드라마 제작과정의 어려움과 그 극복의 과정들을 그려낸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는 바로 그 연예계의 맨 얼굴에 대한 호기심이다. 초반부터 이 드라마는 연예계와 드라마 제작의 문제점들을 꼬집으면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는데 성공하면서 그 인기를 끝까지 이어갔다.

곧 종영하는 ‘온에어’의 바통을 이어받는 드라마가 ‘스포트라이트’다. 이제 첫 회를 끝낸 이 드라마는 방송국 기자라는 직업군의 세계를 파고든다. 브로드캐스팅이라는 소재는 특종이라는 목적의식과 생방송이라는 긴박감, 그리고 사회 속에 깃들여진 사건사고를 그 안에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미 영화에서는 익숙하면서 검증된 소재다. 하지만 아직까지 드라마로서 이 세계를 다룬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에 대한 남다른 기대를 갖게 만든다.

드라마가 TV, 즉 방송을 소재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방송에 대한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온에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드라마 내내 사전제작이니 쪽대본이니 하는 드라마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은 새롭게 시작한 ‘스포트라이트’도 마찬가지. UCC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방송은(시청은 물론 제작까지) 이제 더 이상 저쪽 세상의 일이 아니라 우리 옆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되었다.

또한 이 일상이 된 방송(혹은 영상)은 여러모로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끄집어낸다. 즉 일방적인 방송을 보는 시대가 아니라 쌍방향에서 요구사항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개입은 때론 시청률에만 몰두하기도 하는 방송 스스로의 자성을 요구한다. ‘온에어’와 ‘스포트라이트’ 모두 등장인물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바로 시청률이다. 이 상업적인 방송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의 요구사항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자기 자신, 즉 방송을 캐스팅했다고 해서 신랄하게 자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온에어’의 아쉬운 점은 초반부 화두처럼 드라마 제작의 문제점들을 끄집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거기에 대한 어떠한 답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반으로 흘러오면서 거의 멜로 구도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를 통해 결말에 대한 관심을 온통 멜로의 성공에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그 직업의 세계가 이 멜로 구도 속으로 들어가면서 예를 들면 PD와 작가 간의 비현실적인 관계 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취해야할 리얼리티 역시 상당부분 후퇴했다는 점이다.

이제 첫방을 끝낸 ‘스포트라이트’는 일단은 그 긴박감이나 직업을 다루는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본격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방송국 기자라는 특정 직업을 통 해 직업 드라마가 갖는 조직 속에서의 스트레스와 성공 그리고 좌절의 이야기 같은 보편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사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성공은 바로 이 부분, 기자가 아닌 보통의 샐러리맨이라도 같은 조직 경험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갖게 되는 공감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그래왔듯이 이 초심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만일 끝까지 리얼리티를 가진 직업의 세계를 고수한다면, 방송을 소재로 다룬다는 자성적 의미는 물론이고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개척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통해 흐지부지된다면 시청률 지상주의를 꼬집는 드라마가 자칫 그 시청률 지상주의를 드러내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소설가 소설들이 초기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자신들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장으로 인식되면서 결국 외면을 받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TV를 캐스팅한 드라마가 문제를 제시하고 아무런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외면의 길을 걷게 될 지도 모른다. 기왕에 TV를 다루겠다고 한다면 제대로 적나라하게 꼬집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본격’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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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사극, 수목-전문직, 주말-가족극

드라마의 완성도가 뛰어나서 성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드라마의 장르가 그 방영요일(편성)과 잘 맞아떨어진 결과일까. 최근 드라마들의 성적표를 보면 요일별로 장르가 굳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월화의 ‘이산’, 수목의 ‘온에어’, 그리고 주말의 ‘엄마가 뿔났다’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예외적인 것들(예를 들면 ‘조강지처클럽’같은)이 있지만 대체로 이 구도는 꽤 오래 지속되어 왔다.

월화의 밤을 사극으로 굳혀버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주몽’이다. 34주 연속 시청률 1위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남긴 이 사극은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들을 모두 침몰시키면서 월화의 밤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것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산’이다. ‘이산’과 함께 맞불 작전을 폈던 ‘왕과 나’ 역시 수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사극의 밤을 장식했다.

물론 수목드라마로서 방영된 사극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태왕사신기’였지만 이것은 방영시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공교롭게도 월화에 이미 배정된 ‘이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진이’가 평균시청률 21%, ‘쾌도 홍길동’이 15% 정도에 머무르는 시청률을 수목의 밤에 장식했으나 그것은 사극으로 봤을 때는 미미한 것이었다. 물론 완성도나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나무랄 데 없는 사극이었지만 말이다.

‘쾌도 홍길동’이 높은 완성도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때, 수목의 강자로 등장한 것은 전문직 드라마 ‘뉴하트’였다. 전문직 드라마가 수목의 장르로 부상한 것은 ‘쩐의 전쟁’, ‘개와 늑대의 시간’같은 드라마들이 있었기 때문. ‘히트’(월화)나 ‘에어시티’(주말)같은 전문직 드라마가 있었지만 시청률면에서나 완성도 면에서 모두 참패했다. ‘뉴하트’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것은 ‘온에어’이며, 이 분위기가 그대로 새로 시작되는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강력한 경쟁자로서 ‘일지매’가 방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역시 수목은 전문직 드라마일지, 아니면 사극이 그 틀을 깰 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주말드라마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어오다가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를 연달아 내보내면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 ‘황금신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엄마가 뿔났다’, ‘행복합니다’같은 가족드라마들은 주말밤을 온전히 주부 시청자들의 그것으로 만들고 있다. 가족드라마의 특성상 전통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면서도 달라진 시대에 맞게 끝없이 변주하는 작금의 가족드라마들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말의 장르로 군림할 것이라 예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월화는 사극이, 수목은 전문직이, 그리고 주말은 가족극이 나누고 있는 현재의 드라마 상황은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장르의 요일별 패턴화는 작품 자체보다는 굳어진 편성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칫 좋은 드라마들이 어울리지 않는 요일을 만나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해’나 ‘누구세요’같은 호평 받은 드라마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이유 속에는 이 같은 편성의 패턴이 분명 작용한 바가 있다.

또한 이것은 요일을 떠나서 최근의 되는 드라마가 사극, 전문직, 가족극 이 세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드라마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되는 드라마만 집중적으로 양산되는 이 상황은 자칫 드라마의 다양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물론 이것은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이 수많은 패턴들(요일이나 장르)을 넘어서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새로운 실험적인 드라마가 등장했을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란 그저 시청률에 실패한 드라마에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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