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에어’, 동그라미 치는 그들의 사랑법

이경민 PD(박용하)는 늘 서영은 작가(송윤아)의 대본을 읽으면서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친다. 그것은 ‘재미있다’는 표현이다. 처음에 서영은은 그것이 무슨 숙제검사 하듯 대본 검사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차츰 이경민의 동그라미가 점점 간절해진다. 동그라미의 의미는 점점 진화한다. 대사에 동그라미가 하나도 없는 걸 확인하고 실망하던 차에, 서영은은 대본 첫 장에 쓰여진 자기 이름 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동그라미가 단 한 개만 있는 대본을 주며 이경민이 그 한 신만 빼고는 다 좋다고 할 때,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움직인다. 직업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차츰 엮이고 부딪치는 부분이다.

‘온에어’가 가진 멜로의 장치는 바로 이 직업적인 관계로 사적인 관계를 숨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경민과 서영은 간의 멜로는 대본을 통해 교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과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것은 오승아(김하늘)와 장기준(이범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니저는 응당 자기 배우를 챙기는 것이 직업이지만, 때론 “내 배우”라는 말이 가진 뉘앙스는 매니저와 배우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경민-서영은, 오승아-장기준의 이분화된 라인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직업적으로 보자면 PD인 이경민은 당연히 배우인 오승아를 위해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오승아의 매니저인 장기준이 드라마 첫 방영을 끝내는 산고(?)를 치른 서영은에게 미역국을 끓여다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는 다 드라마가 잘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으로 표면화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수면 아래 그들의 감정들은 조금씩 교차된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멜로의 공존에 있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은 ‘전문직은 없고 멜로만 있는’드라마들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비판 때문인지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멜로가 들어가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듯 드라마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멜로 드라마는 뭔가 트렌디하고 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시선까지 생겼다. 하지만 사실 어떤 드라마든 멜로는 있을 수 있다. 어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멜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멜로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온에어’는 전문직이라는 장치를 멜로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난히 이 드라마에서는 인물들 간의 팽팽한 대립이 많은데, 그것은 바로 직업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승아와 서영은, 서영은과 이경민, 이경민과 오승아, 오승아와 장기준의 대립은 배우, 작가, PD, 매니저 간의 힘 겨루기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힘 겨루기 이면에는 그들이 가진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드러내지 않는 사랑법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멜로를 쿨하게 그려낸다. 초반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모습은 물론 어떤 사적 감정이 끼여든 것이 분명하지만, 직업적인 프로의식의 한 측면으로 가려진다. 이러한 대립적인 관계는 이제 실제로 드라마가 제작되는 단계로 넘어오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티켓 투 더 문’이라는 드라마에 동승한 이상, 서로를 격려하고 치켜 세워주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사적인 감정은 직업적 상황 속에서 가려진다.

‘온에어’가 보여주는 멜로가 쿨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직업적 관계에 동그라미를 치는 간접화법에 기인한다. 대본을 바꾸겠다며 애써 웃어 보이려는 서영은에게 지금 대본 대로 간다고 말하는 이경민. 그 말에 흘리는 서영은의 눈물은 직업적인 관계에서 끝까지 자신을 밀어주는 이경민에 대한 고마움일 수도 있고, 사적인 감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 ‘온에어’의 멜로가 좋은 지점은, 그 울고 있는 서영은을 이경민이 끌어안기보다는 그 앞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거리감이 주는 일정한 긴장감, 그것이 전문직과 멜로가 만날 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온에어’ 의 다중창 전략, 어떻게 쓰였나

과거 드라마라는 은막의 창은 늘 이편이 아닌 저편에서 신비로운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TV라는 창은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TV 이외에 다른 창들이 수시로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드라마에 몰입하고픈 시청자들은 따라서 좀더 창이 투명해져서 거기에 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질 정도로 드라마가 리얼하기를 원한다. 창에 리얼함을 깨는 먼지 한 톨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은 인터넷으로 달려가 그 먼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드라마는 퓨전이니 환타지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사극들처럼 아예 투명함을 포기하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처럼 투명해지거나 해야 한다. 적당한 멜로는 금세 탄로 난다. ‘온에어’는 이런 상황에서 좀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것은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창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중창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 드라마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그러니 믿으라고 시청자들에게 강변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 속에 다른 창을 하나 띄워놓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음으로써 시청자들을 믿게 만든다.

첫 번째 창, 드라마의 앞모습을 잡는 창
‘온에어’는 드라마에 대한 드라마.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중의 창을 가지고 있다. ‘온에어’는 먼저 우리가 믿지 않는 드라마(혹은 연예계)에 대한 창을 먼저 보여준다. 그것은 첫 회에 등장한 시상식 에피소드다. 그 시상식은 우리가 TV를 통해 불신감을 갖고 보아왔던 바로 그것이다. 조작가능성, 나눠 먹기식 시상이 우리가 시상식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온에어’는 먼저 그 시상식을 통해 드라마의 앞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뒤집어 말해 시상식의 뒷모습에 우리가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시상식에서 수상거부를 하는 오승아(김하늘)가 제일 먼저 드라마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온에어’의 네 인물인 오승아, 이경민(박용하), 장기준(이범수), 서영은(송윤아) 중 시청자들에게 TV 화면으로 친숙한 인물은 배우인 오승아다. 나머지는 모두 TV 뒤편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TV의 앞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승아를 주목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오승아에 대한 주목, 즉 시청자들이 믿지 않는 TV의 내용에 대한 장면들은 그것을 깨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오승아라는 배우의 진짜 모습, 그리고 TV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시상식에서 오승아를 찍는 카메라에서 한 걸음 뒤로 빠져나오면 그 카메라를 잡는 새로운 시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그 새로운 시선은 자유롭게 배우와 PD, 작가, 매니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방송계와 연예계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바로 이 시선이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창인 셈이다.

두 번째 창, 드라마의 뒷모습을 잡는 창
이렇게 시점이 첫 번째 창에서 두 번째 창으로 넘어오면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온에어’라는 드라마를 조금씩 믿게 된다. 그것은 진짜로 알고 싶었던 드라마의 뒷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보고싶은 걸 믿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시종일관 툭탁거리며 말다툼을 해대는 작가와 배우 간의 줄다리기가 있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엮어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PD와 매니저가 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드라마들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연기 못해도 CF 많이 찍으면 스타인 줄 알지만, 미국 배우들은 쓰지도 않는 제품 홍보하는 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작가 서영은이나, 여기에 맞받아 “그러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라 말하는 오승아가 그렇다. 또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는 이경민 PD의 말도 그렇다. 이렇게 드라마에 대한 논쟁이 오고갈 때, 시청자들에게 묘한 착각이 생겨난다. 그것은 자신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바깥에 서 있다는 착각이다.

이것은 믿지 못할 드라마를 믿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트릭이다. 재미있는 건 이경민 PD가 서영은 작가에게 “왜 작가가 배우에게 그렇게 의존하려고 하죠”하고 말할 때, 그렇게 말하는 이경민 PD는 실상 박용하라는 배우라는 점이다. 배우가 배우를 비판하는 순간, 거기에 배우라는 박용하는 사라지고 PD로서의 이경민이 생생히 부각된다. 이것은 이 드라마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이 드라마가 드라마를 비판하면서 비로소 존재감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 번째 창, 카메오라는 현실의 창
그런데 이 두 번째 창은 진짜 현실이 아니다. 그것 역시 드라마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은 카메오라는 현실의 틈입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온에어’에서 카메오라는 장치는 그저 이벤트적인 속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이중의 창으로 혼동되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적당한 현실감각을 시청자에게 부여해주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온에어’ 자체에 현실감을 강화해주기도 한다.

즉 이서진이 등장해 “이번 일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곧 결혼 예정인 그의 현실상황을 끌어들였을 때, 그것은 ‘온에어’가 진짜 같다는 리얼리티를 부여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게 진짜 현실”이라는 자각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이서진이라는 카메오를 극중의 인물로서 활용하지 않고 현실의 이서진을 상황 속에 끼워 넣는 장면은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연예뉴스’와 다를 것이 없다. 실로 이 드라마에서 카메오는 이러한 현실 개입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창을 활용하는 ‘온에어’의 트릭은 드라마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효과적이다.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단지 등장인물들의 대립이나 서서히 생겨나고 있는 멜로 라인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감이 있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들이 좀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몰입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트릭 어떻게 쓰이고 있나
중요한 것은 이 트릭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로서 새로운 드라마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쓰여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온에어’는 그 이상은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몰입된 상태에서의 재미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트렌디한 드라마로 굴러가면서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로서의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트릭들은 이 드라마의 마케팅에 더 잘 활용되고 있다. PPL 문제를 비판하면서 그 장소 자체를 PPL하고, 해외로케를 비판하면서 한 회 분량을 온전히 대만관광 홍보로 꾸밀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트릭에서 비롯된다. 이런 장면들은 마치 이 드라마 자체도 포함해 자기비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트릭을 통해 논란을 피해나가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혐의가 짙다.

이것은 드라마라는 장치가 가진 한계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허구성을 깨는 그 순간, 드라마는 드라마이기를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 상업적인 드라마는 현실 자체보다는 판타지에, 자각보다는 몰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준다. 어쨌든 이 ‘온에어’가 취하는 다중창의 전략은 작금의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멀티미디어 사회, 디지털 사회 속에서 하나의 창으로서의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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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배우 뒤에 숨겨진 진짜 문제들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 ‘온에어’의 한 장면. 작가 서영은(송윤아)과 배우 오승아(김하늘)가 언쟁을 벌인다. 작가 서영은이 “우리나라 배우들은 연기 못해도 CF 많이 찍으면 스타인 줄 알지만, 미국 배우들은 쓰지도 않는 제품 홍보하는 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자 여기에 맞받아 오승아가 이렇게 말한다. “그러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

‘온에어’는 확실히 이런 우리네 드라마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끄집어내는 대사들이 많다. 서영은 작가와 이경민(박용하)PD가 벌인 시청률과 진정성 논쟁도 그 중 하나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이경민이 말하자 “드라마의 반이 구성이라면 나머지 반은 대사다. 95%의 상투성에 5%의 신선함만 있으면 된다.”고 서영은은 반박한다. 그대로 토론 프로그램에 올려놓아도 될만한 이야기들이다.

분명히 과거에는 없던 소재이고, 대사들이다. 무엇보다 액자소설처럼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라는 점이 흥미를 끈다. ‘온에어’의 기획의도를 인터넷을 통해 보면 이 드라마는 천편일률적인 기획과 내용으로 이제는 ‘공산품이 되어버린’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비판적인 발전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문제의 원인제공자로서 작가, PD, 배우, 그리고 스텝들(매니저를 포함한 연예계 관계자들까지)이다.

이경민 PD는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경민 PD의 캐릭터는 대사 속에서 등장하듯이, 대충 시청률을 의식해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드라마가 아니라, 진정성이 살아있고 통일성이 있으며 메시지가 일관되어 결과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장기준(이범수)이란 매니저는 결과적으로 이경민 PD를 드라마 밖에서 지원하는 인물이다. 그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를 키워내고 싶은 매니저다.

우리네 드라마의 문제가 도출되는 것은 작가 서영은과 배우 오승아를 통해서다. 그들은 이른바 속된 말로 뜰대로 뜬 인물들이다. 아쉬울 것 없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드라마가 한류바람을 타고 활개를 칠 때의 그 의기양양함을 닮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지금 우리 드라마들의 문제점도 똑같이 닮았다. 이 드라마에서 제시되는 이들의 문제는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서영은도 그렇고 오승아도 그렇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이들이 초심을 찾아가는, 그래서 본래 열정이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네 드라마의 문제가 작가나 PD, 혹은 배우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하는 점이다. 과연 그들이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드라마의 문제가 생겨난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잘못된 시스템이 초래한 문제가 아닐까. 쪽대본이 난무하고, PPL로 도배되고, 시청률만 되면 다 된다는 식의 드라마들은 사실, 사전제작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친 규제중심의 광고제한으로 오히려 편법광고를 만들고, 시대에 잘 맞지 않는 시청률조사 시스템에 경도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오히려 작가나 PD 혹은 배우는 그 희생자가 아닐까.

여기서 처음 언급했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 무분별한 PPL을 비판하는 대사가 나오는 그 장소(아마도 떡으로 삼겹살을 싸먹는 음식점)조차 여러 번 대사나 장면을 통해 홍보된 곳이란 점이다. 이 아이러니는 우연한 것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우연한 것이라면 드라마를 비판하는 이 드라마조차 그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 된다. 반대로 그것은 어쩌면 작가나 PD에 의해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이런 시스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저항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라고 자기 작품이 상품으로 도배되는 걸 바라겠는가.

혹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민감한 기자들을 낚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드라마들은 논란 또한 관심으로 전이시키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되고 홍보되는 시스템은 참 견고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글조차 그 특정 장소를 더 홍보해주는 꼴이 되니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온에어’, 자기비판 통한 성장 이룰까

새롭게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온에어’는 드라마에 관한 드라마다. 즉 드라마의 관계자인 PD, 작가, 배우, 매니저를 주축으로 해서 벌어지는 연예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를 제작해나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라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거기 출연하는 배우는 물론이고 작가나 PD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있는 상황이며, 제작현장은 더더욱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연예계에 대한 뒷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이미 반 이상은 거두고 시작한 셈이다.

우리가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드라마의 외관이 아니라, 이른바 드라마의 속살을 본다는 리얼리티적인 요소는 드라마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첫 회부터 ‘온에어’는 드라마계 혹은 연예계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나눠주기식의 연말시상식에 수상거부를 선언하는 오승아(김하늘), 그를 두고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스타권력에 휘둘리는 방송사, 배우보다는 스타가 되려는 연예인들의 세태, 키워놓은 배우 빼가는 대형기획사 등등 많은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보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드라마 제작의 현실이다. 오승아가 작가 서영은(송윤아)과 미드에 대해 나누는 대사가 흥미롭다. “미드는 그런 것 없이도 잘 되는데 왜 당신 작품엔 늘 신데렐라냐”는 오승아의 비판에 서영은은 “미드에도 신데렐라 설정은 있지만 거기에는 진짜 같이 하는 연기자들이 있다”고 맞서는 장면은 우리네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첫 회를 통해 보여지는 작가와 배우 그리고 PD, 매니저까지의 면면을 보면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우리네 드라마가 만들어져왔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정작 작품에 대한 논의는 없고 PD와 작가, 그리고 배우들의 신경전만 난무하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시도보다는 되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적당히 되는 소재를 잡아 넣으면 된다는 식의 제작자 마인드에, 진정한 배우의 길보다는 손쉬운 스타의 길을 찾아가는 배우들의 세태는 우리네 드라마가 왜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왔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방송사고라 할만한 연예대상에서의 수상거부 사태에 대해서조차 시청률 잣대로 판단하는 방송사의 태도나, 서영은의 첫 작품이 낮은 시청률이지만 작품이 좋았다는 말에 오승하가 시청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률 지상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그런데 ‘온에어’가 이런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을 속속 드러내는 이유에는, 결국 이 사분오열된 제작팀들이 다시 뭉쳐 이 문제들을 넘어서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드라마가 가진 문제점의 인식 위에서 그 문제를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좋은 의도를 가진 드라마가 그들 스스로 비판하는 트렌디의 틀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몇몇 디테일들이 등장하다가 점차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트렌디한 멜로구조로 따라간다면 이 드라마는 그 자체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앞서는 것은 수많은 좋은 기획의도를 가진 드라마들이 중간에 가서 어떤 이유에선지 그 의도를 버리고 편안한 시청률 올리기 공식으로 돌입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이다. 부디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 전체에 대한 어떤 발전적인 대안이나 상을 제시하는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시청률은 당연히 따라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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