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백선생', 갈비 요리 꿀팁보다 중요한 것

 

명절이면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 내준 양념갈비에 갈비찜에 갈비탕 같은 걸 한 번쯤은 누구나 먹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맛있을 수 없는 명절 갈비의 맛. 하지만 일일이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에 재우고 끓이면서도 뜨는 기름을 제거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면 얼마나 그 갈비 요리에 정성이 담겨지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이 하나라도 더 먹여 보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나.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이 갈비를 주제로 한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그저 주는 대로 맛있게만 먹었지 그 과정이 어떤가를 전혀 몰랐던 남자들이 그 정성을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백종원이 알려주는 꿀 팁을 활용해 한번쯤은 스스로 가족을 위해 명절에 갈비 요리를 해보는 건 어떤가 하는 제안이다.

 

명절에 남자와 여자를 모두 스트레스 받게 하는 건 그 놈의 역할 구분이다. 여자들은 쉴 틈 없이 요리하고 일하는데 남자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저 뒤에서 뒹굴뒹굴 대는 풍경은 남녀 모두를 스트레스 받게 한다. 여자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다면, 그 여자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명절 증후군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요리는 여자들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집밥 백선생>이 추구하는 것도 이 편견을 깨는 일이다. 남성 요리 무식자들이 요리의 세계가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하나씩 깨우쳐주는 일. 그래서 백종원이 가르쳐준 대로 손쉽게 만능양념을 만들어 양념갈비도 해먹고, 갈비찜에 갈비탕, 그리고 갈비탕 고기를 이용해 단 5분 만에 뚝딱 차려내는 매운 갈비찜까지 슥슥 해보는 것이다.

 

백종원이 알려주는 갈비요리들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요리는 아니다. 물론 어머니들의 요리 노하우가 쉽다는 건 아니지만 백종원은 일단 기본적인 것들을 충실히 알려준다. 만능간장이 그렇듯이 갈비 요리를 위한 만능양념을 알려주는 건 누구나 쉽게 요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세상이 만능이 어딨겠나. 하지만 만능이라고 표현하면 일단 그 요리가 너무나 친근하고 쉽게 다가오는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다.

 

일단 요리에 대한 성별 역할 구분의 편견을 깨고 나면 명절의 풍경은 확 달라지지 않을까. 사실 명절의 풍성함의 이면에는 명절이 지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마련인 어머니의 노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노구를 쉴 새 없이 재게도 움직이시며 요리를 차려내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명절을 대하는 남자들의 자세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요리보다 더 중요한 건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남자가 요리를 하면 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저 무수하게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쿡방 속에서 그 많은 남자들이 이런 저런 요리들을 해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집밥 백선생>이 추석을 맞아 갈비 요리 레시피를 선보이고, 후속으로 추석의 남은 음식을 이용한 요리를 준비하는 건 그래서 단지 요리 꿀팁만을 위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갈비찜 하나로라도 명절의 풍경을 바꿔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아마도 <집밥 백선생>이 명절을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마리텔>, 백종원과는 사뭇 다른 오세득의 매력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제 궤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은 역시 백종원이다. 그는 쿡방을 통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 꿀팁을 알려주면서 특유의 적극적인 소통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초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백종원 천하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잠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떠난 그 빈자리에 자리한 오세득 셰프에게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그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쿡방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대신 독특한 오세득만의 아재개그가 의외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말을 갖다 붙여 툭툭 던지는 말장난에 어이없어 하던 시청자들도 차츰 그 아재개그가 중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방송물좀 마신다며 물을 마시고, 새우를 건네며 여기 있새우라고 말하는 식의 개그는 처음 들으면 오글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아재개그의 융단폭격 속에서 시청자와 오세득 사이에 기묘한 밀당이 생겨난다. 아재개그라고 하면 어딘지 상사 밑에서 억지로 웃어주는 부하직원의 그림이 떠올라 웃지 말아야할 것 같은데 의외로 이 개그가 웃길 때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웃지 말아야 하는데 웃기다는 그 포인트 때문에 점점 그 개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오세득의 아재개그에 크롱셰프 이찬오는 과할 정도의 리액션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도 안 웃을 것 같은 그 개그에 빵빵 터지고 심지어 숨을 못 쉴 정도로 웃는 이찬오의 리액션은 마치 상사 앞에서 웃어주는 부하직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터지는 웃음이라는 것이 조금씩 발견되면서 시청자들 역시 그에게 동화되어 간다.

 

이찬오의 아내인 김새롬이 방송을 함께 하면서 이 오세득의 아재개그에 빵빵 터지는 이 방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만든다. 그것은 일종의 그들만의 동료의식같은 재미다.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웃음의 코드 속에 저희들끼리 키득키득대는 그 웃음은 그 자체로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놀라운 건 오세득의 쿡방에서 요리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쿡방을 하고는 있지만 그 레시피를 백종원 만큼 맛깔나게 전해줄 수는 없다. 대신 그가 가진 장기는 요리 만담이다. 그는 요리하면서 끝없이 개그를 던지고 그걸로 시청자들과 독특한 친밀감을 형성한다. ‘알고 보면 먹방이라는 누군가의 댓글은 그러고 보면 적확한 표현이다. 개그의 끝에 어느새 만들어진 요리를 맛나게 먹는 모습. 그것이 오세득의 쿡방의 특징이다.

 

결국 이렇게 자기만의 색깔로 백종원의 빈자리를 채운 오세득의 쿡방이 말해주는 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청자들과의 유대관계라는 점이다. 마치 나와 직접 얘기하고 있는 듯한 친밀감과 그들 사이에만 통하는 아재개그 같은 코드의 공유. 타인은 이해 못하는 웃음 속에서 더 끈끈해지는 관계는 오세득이라는 인물이 단 한 달여만에 확실한 자기 위치를 갖게 만들었다. 백종원과는 사뭇 다른 소통의 성공이다



<삼시세끼>의 한 끼가 그저 재미에 머물지 않는 까닭

 

<삼시세끼>의 오프닝은 여지없이 세끼 하우스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청보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올봄 그 텅 빈 밭을 갈아 업고 뿌려놓은 청보리는 이제 훌쩍 자라서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며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만든다. 꽃을 열심히 기어오르는 개미 한 마리를 따라가면서 카메라는 묻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르고 있냐고. 카메라가 다시 답한다. 그것은 아마도 삼시세끼때문일 거라고.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지난 가을에서 겨울까지 <삼시세끼>가 좀체 보여주지 못했던 장면들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보여지고 있다. 이 장면들은 <삼시세끼>가 진짜 보여주고픈 것들이었을 것이다. <12> 같은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결코 잡을 수 없었던 장면들. 그저 지나치는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 자연과 생명이 가진 힘. 시간의 흐름에 담겨진 마법 같은 순간들이다.

 

<삼시세끼>가 그저 시골에 내려가 한 끼의 요리를 해 먹는 그런 예능에 머물지 않게 된 것은 바로 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들을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무수한 야외 예능 프로그램의 밥 해먹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하지만 <삼시세끼>는 강원도 정선의 한 집에 오래도록 카메라를 세워두고 그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우리가 지나칠 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은 자연의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다.

 

훌쩍 자란 청보리와 불쑥불쑥 자라 올라 풍성한 텃밭을 이루고 있는 이른 봄에 심어 두었던 갖가지 야채와 채소들. 한 때는 이서진 바라기로만 보였던 잭슨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느 날 불쑥 세끼 하우스로 들어왔던 그 작고 귀여운 밍키가 어느새 훌쩍 자라 새끼들을 낳았다.

 

이런 자연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도 변화한다. 이서진은 시골 살이의 모든 게 귀찮았던 투덜이 차도남에서 이제는 제법 시골에 정착한 사람마냥 익숙하게 일을 해낸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귀찮아도 챙겨야할 식구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만 놔두면 잡초들이 지배하는 밭도 돌봐야 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대접을 위해 음식도 그럴 듯하게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꼬인 줄 때문에 메에- 하고 울어대는 잭슨의 아이들을 살펴야 하고 아기를 가진 밍키를 위해서는 기꺼이 집을 사주고 울타리도 쳐주어야 한다.

 

밍키가 그 누구보다 각별한 옥택연은 입맛을 통 잃어버린 밍키를 위해 닭 가슴살을 삶아 먹여주고, 요리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김하늘 같은 게스트들을 위해 때로는 충실한 주방 보조가 되어주기도 한다. 도시를 벗어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삼시세끼 챙겨먹겠다는 마음으로 세끼 하우스로 들어왔지만 차츰 일은 늘어난다. 그런데 그 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던 도시에서의 일과는 사뭇 다르다. 일은 일인데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일이다.

 

아이를 낳은 잭슨과 아기를 가진 밍키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재게 손발을 놀리는 이서진이나 옥택연을 보다보면 우리가 바쁜 도시의 삶을 살면서 잊고 있던 삶의 비밀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그 마음들이 이끄는 것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을 자라나게 하고 변화하게 하는 힘이다. 잭슨과 밍키를 자라게 한 것도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게스트들이 모여 관계를 맺으며 살게 하는 것도 바로 삼시세끼가 부린 마법이 아닌가. 그래서 한 때 삼시세끼를 같이 해먹으며 기분 좋은 기억을 공유했던 최지우가 다시 찾아오면 반가운 일일 게다. 그것은 관계의 성장이고 축적인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사람에게서 시간의 변화를 우리는 잘 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훌쩍 자란 밍키와 잭슨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과 삼시세끼가 빚어내는 그 놀라운 힘들을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있다. 게스트들의 왁자지껄한 한 때나 또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 장면들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저 그런 재밋거리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도 모르게 자라난 청보리와 밍키와 잭슨처럼 그들을 성장시킬 소중한 삼시세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황교익의 비평도 백종원의 저변도 필요한 까닭

 

많은 이들이 뉴스화된 이야기로 많은 것들을 속단한다. 당연한 일이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그나마 그 정보를 끄집어내 주목시키는 몇몇 뉴스로 많은 걸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헤드라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뉴스의 정보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는다.

 


'수요미식회와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 갖고 있는 소신을 얘기했을 뿐인데, 이를 일부만 잘라내 붙여 보여주면 마치 누가 누구를 개인적으로 디스하는 것처럼 읽히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어떤 뉴스는 그런 싸움을 붙여놓고 장사만 할뿐 그들이 진짜 하려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와 백주부’, ‘백선생으로 불리는 백종원 사이에 벌어지는 논란이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백종원씨는 전형적 외식 사업가다. 그가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업소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 만드는 건 쉽다. 백종원 식당 음식은 다 그 정도다.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짠맛, 이 두 개의 밸런스만 맞으면 인간은 맛있다 착각한다. 싸구려 식재료로 맛낼 수 있는 방법을 외식업체들은 다 안다.”

 

황교익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진술한 백종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 부분이 발췌되어 무수한 뉴스로 재생산됐다. 선정적인 제목들은 황교익이 백종원을 디스했다는 식으로 아예 붙여지기도 했다. 이어 백종원이 가진 대중적인 지지를 의식한 글들이 오히려 황교익을 비판했다. 미식 비평을 마치 부르주아의 일처럼 오도하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황교익의 인터뷰 내용을 전부 다 읽어보면 이 제멋대로 확대 재생산된 뉴스들이 상당히 사실들을 왜곡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황교익은 백종원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얘기했을 뿐, 디스한 건 아니다. ‘먹을 만한 음식’,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짠맛같은 표현들이 물론 비평적 관점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건 결코 비난이 아니다.

 

실제로 백종원이 그의 쿡방에서 얘기한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면 황교익의 이야기가 그리 틀리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단맛과 짠맛의 강한 자극은 우리의 입맛을 둔화시키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황교익이 맛에 대해 갖고 있는 기준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황교익은 식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리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그 기준에서 보면 백종원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 단맛과 짠맛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 백종원 스스로도 고개를 끄덕인 바 있다. 지난 8일 파주 탄현의 <집밥 백선생>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백종원은 자신이 제시한 레시피는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를 하는 이들의 시발점 역할을 할 뿐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즉 그대로 해봤는데 너무 달고 너무 짜다면 거기부터 각자의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아가 설탕이 아니라 다른 걸로 맛을 대치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일반인들이 해 나가야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대로라면 백종원은 맛의 정답을 제시하는 셰프가 아니라 이제 요리에 관심이 없던 이들을 요리의 세계로 일단 발을 딛게 만드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백종원이 운영하는 음식점의 음식 맛이 맛있다 맛없다는 건 황교익이 했던 것처럼 객관적으로 비평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쿡방 열풍의 이면에서 사회적 스트레스를 발견하며 그 대체제로서의 음식 포르노의 역할을 쿡방이 하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한 일이다. 그것은 비평가가 응당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종원이 운영하는 음식점의 음식 맛이 어떻든 상관없이 그의 방송이 가진 효용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값싼 재료로 연명하는 피폐된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그의 방송은 적잖은 위로를 주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만들어가는 요리에 대한 저변확대는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황교익은 위로는 종교가 할 일이지 비평이 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비평은 비판을 통해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의 맛의 입장을 찾아내고 그 균형을 잡는 일과 함께 음식과 요리에 대한 저변을 넓히는 일도 중요하다. 아무래도 뭐든 돈 주고 사먹기만 하는 문화보다는 싸구려 재료라도 직접 해먹는 문화가 음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더 갖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가 제대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깊이도 중요하고 넓이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열리고 있는 음식 문화에 있어 황교익과 백종원은 각각 다른 위치에서 다른 입장으로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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