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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죽을 듯한 삶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밥 더 줄까? 밥 갖고 온다. 점심때도 밥 먹으러와 점심 때 오면 나가 초코 샤샤 만들어 줄테니께. 나도 요리사여. 배고프면 아무 때나 와. 돈 없어도 되니께. 아무 걱정 말고.” 배고픈 소녀에게 상다리 부러지게 밥 한 상 차려 준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밥을 제대로 못먹게 한 엄마 때문에 배가 고팠던 소녀는 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바로 그 소녀가 먹었고 소년이 챙겨줬던 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한 끼가 줬던 행복감을 잊지 못하던 소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엄마를 잃고 자신 또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요리사가 됐다. 요리사가 된 문차영(하지원)은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자신이 그 밥 한 끼를 통해 가졌던 큰 위로와 행복감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다.

 

소녀를 위해 팔을 데여가면서까지 초코 샤샤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거성재단 한용설(강부자) 이사장의 손자가 되어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성병원 뇌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른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거성재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를 내치려는 이준(장승조)의 부모들 때문에 심지어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던 이강(윤계상)은 그 전쟁터에서 한 아이가 폭탄이 터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문차영은 요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강은 거성재단 이사장의 손자로 거성병원의 의사가 됐지만 그건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거성가로 들어온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허망하게 사망했다. 이강 역시 엄마와 꿈이 같았었지만 이제 거성가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가 되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간다.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향후 일어날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것들이다.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이 문차영이 밥 한 끼로 위로 받았듯이 이제는 그가 차려주는 한 끼로 치열하게 살아오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삶을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게다. 또 어쩌면 상처 가득한 이강은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문차영을 삶의 의사로서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게다.

 

저 편에 거성재단 같은 거대한 성공의 신기루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강과 문차영이 선택하는 건 그런 거대한 성공이 아니다. 그 거창함이 동반하는 아픔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상처 입은 존재들은 그래서 이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고 또 누군가와 그걸 나누는 것이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며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문차영처럼.

 

<초콜릿>은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도 충분히 훈훈함과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때론 강렬한 맛의 반찬들이 놓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안이 든든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드라마.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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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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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계속 힘들테지만... ‘같이 펀딩’, 버텨온 노포들이 준 긍정

 

MBC 예능 <같이 펀딩>의 노홍철이 추진하고 있는 소모임 프로젝트는 왜 을지로 노포를 찾아갔을까. 어찌 보면 그건 또 하나의 ‘먹방’처럼 보인다. 무려 4차에 걸친 노포 탐방과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는 먹방의 향연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오래된 옛 다방에서 만나 추억 돋는 차를 마시고 노포 전문가로 통하는 최정윤 셰프의 가이드를 받아 출발한 ‘힙지로(Hip + 을지로)’ 노포 투어. 대패삼겹살을 1차로 하고, 그 유명한 노가리 골목에 가서는 직접 노가리를 패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2차를 한 후, 이름도 특이한 물갈비집에서 갈비와 장인 수준의 볶음밥을 3차로 맛본 후 마지막으로 시장 안 인심 넘치는 대폿집에서 4차를 하는 과정은 보기 힘들 정도로 침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같이 펀딩>의 노홍철 소모임 프로젝트가 을지로 노포를 찾은 건 단지 먹방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소모임 프로젝트가 추구하고 있는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가치가 투영되어 있었다. 저마다의 현실과 사연을 안고 온 참가자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자신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이 날 <같이 펀딩>에서 특이했던 건 양재웅 정신과의사가 스튜디오에 함께 자리를 했던 것. 그가 여기 앉게 된 건 이 소모임 프로젝트가 그 자체로 갖는 남다른 의미와 가치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함께 모여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과정이 정신과 치료에 있어 아직까지 문턱이 높은 병원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고,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는 공동체가 주는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이 노포 투어의 한 참가자는 어머니가 일찍이 치매에 루게릭병까지 앓으셔서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아픈 사연을 털어놨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이 참가자는 이런 이야기를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해본 적이 없다며,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소모임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말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노포투어의 마지막 장소였던 시장통 대폿집에서는 그래서 노포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힘겨운 하루를 버텨낸 이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최정윤 셰프는 자신이 거기서 가장 나이가 많다며, 40세를 넘기면 덜 힘들거라 생각했던 게 실제로 겪으니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로 아픈 사연을 털어놓은 참가자를 위로했다. 장도연은 “어차피 계속 힘들 거야”라는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고 했다.

 

어차피 계속 힘들 것이니, 지금의 힘겨움도 결국은 버텨내고 지나갈 거라는 그 이야기는 노포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으며 버텨내온 노포가 우리네 삶을 그대로 닮아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게 버텨내니 그 곳을 알아주는 이들이 찾아오지 않던가.

 

게다가 그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건 결국 그런 노포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누군가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노포와 소모임이 보여준 먹방 투어는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늘 힘겨운 삶 속에서 어쩌면 우린 누군가 옆에 있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같이 펀딩>이 노포 먹방을 통해 전해준 귀한 메시지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와 함께 노포에서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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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중간들에게 던지는 강하늘의 돈키호테식 위로

 

“엄마는 오락기가 원래 없는 게 좋을 것 같아? 쓰다 뺐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쓰다 뺐기면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아. 잠도 안 올 거 같아. 근데 원래 없다고 치면 마음이... 중간이야. 충재네집은 이혼해갖고 걔네 아빠 서울 갔대. 나는 충재보다 내가 나은 것 같기도 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빠 없이 큰 아들에게 아빠가 궁금하지 않냐고 묻는 동백에게 하는 필구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그 말에 위로를 얻는 동백은 말한다. “그래 우리 중간이야 그치? 중간.”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있는, 아니 어쩌면 중간이라고 애써 우기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드라마다. 미혼모에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네 여인들이 동백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론 괴롭히는 이유다. 그건 동백의 아들 필구도 마찬가지다. 필구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과, 엄마가 술집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마저 마구 이야기하는 사실이 괴롭다.

 

그런 동백과 필구 앞에 편견이나 선입견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 것 같은 순백의 영혼을 가진 황용식(강하늘)이 나타난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들이 있으면 몸부터 뛰어드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경찰들보다 더 범인은 많이 잡아 순경이 된다. 그런 돈키호테 앞에 돌시네아처럼 동백이 나타난다.

 

엄마를 함부로 말하는 친구들과 한판 붙는 걸 도와주고 함께 오락실에 간 동백은 필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네가 ‘나 아빠 없어요’ 했을 때 너를 짠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아주 촌스런 사람들이여. 그런 사람들은 그냥 네가 짠하게 봐주면 되야.”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서 있다 우기는 이들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다. 황용식의 말처럼 그건 아주 촌스런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동정이나 연민은커녕 낮춰보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천지다. 남편이 동백이네 술집에 자주 간다는 이유로 동백이나 그 집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를 술집 작부나 마담 취급하는 이들이 그렇다.

 

“술집 작부나 마담이나 엎어지나 메치나지. 야 똑같이 하루 세 끼 먹는다고 똑같은 사람인지 아니? 오죽하면 이러고 살까. 인생이 불쌍해가지고 사람취급 해줬더니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아?” 그렇게 따지고 드는 시장 아주머니에게 그러나 동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무슨 은혜요? 제가 뭘 그렇게 신세를 졌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나 아무 짓도 안했어요. 저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 근데 다 왜 맨날 다 제 탓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좀 살 게 놔두세요. 저 좀 놔주세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라는 동백의 말이 아프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인데, 함부로 무시하고 죄인 취급하는 세상의 편견 앞에 중간 정도의 위치라고 우기며 사는 이들은 얼마나 힘겨울까. 그 때 마침 동백의 아들 필구가 나타나 엄마를 괴롭히는 준기엄마들에게 마구 대들며 엄포를 놓는다.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면요, 나 준기 맨날 맨날 때릴 거예요. 주먹으로 코 깨고요 발로 막 찰 거예요. 내가 하나 못하나 봐봐요.”

 

그날 밤 어른들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며 그래서 네가 ‘쌈닭’이라 불리는 거라고 하는 동백의 말에 필구가 하는 말이 또 한 번 가슴에 와 박힌다. “내가 왜 쌈닭이 됐는지 알기나 알아? 엄마, 엄마 땜에. 내가 왜 엄마를 지켜야 돼? 엄마가 나를 지켜줘야지. 나는 일학년인데 일학년이 왜 엄마를 지켜? 나도 귀찮아. 근데 내가 엄마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싫어하니까. 세상에서 엄마 좋아하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나 다 알아. 사람들이 다 엄마 싫어하고 괴롭히잖아. 그니까 내가 야구도 못하고 계속 계속 지켜줘야 된다고. 어떨 때는 나도 막 피곤해. 막 화가 나.”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와 황용식은 그렇게 동백을 지키는 돈키호테로 등장한다. 사실은 힘겨워도 중간 정도라 스스로 치부하며 애써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필구와 황용식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먹먹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게다. 가만 놔두면 “울까 봐” 자꾸 뒤를 따라가게 된다는 황용식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생판 남이 우는 데 내가 막 승질이 납디다.”

 

에너지 보충을 하겠다며 역전으로 간 동백은 꿈이 뭐냐는 황용식의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 그 곳에 있는 ‘분실물 센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 곳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것.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사랑한다는 얘기하고,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는 고맙다고는 안 해요. 아무도 나한테는 그 말을 안 해요. 저 분실물 센터에서는 저분이 최고 천사고 최고 은인이에요.”

 

돌아오는 길 황용식은 조심스럽게 동백에게 묻는다. “우리 쩌어그 해요... 쩌어그 친구요. 우리 친구 좀 해봐요.” 그러자 동백이 말한다. “나한테 친구하자는 사람은 또 처음인 거 같은데.” 그리고 황용식이 하는 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친구해요. 친구하면은 나 동백씨랑 필구편 대놓고 들어도 되죠? 작정하고 편파적으로 해도 되는 거죠?”

 

아직 피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는 스스로를 ‘필 무렵’이라 치부하며 살아가는 그 중간의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황용식과 필구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닿는 순간은 기분좋은 뭉클함과 먹먹함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뭉클함과 먹먹함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참으로 오랜 만에 볼만한 괜찮은 드라마가 나타났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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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현실 위로하는 '호텔 델루나'의 독특한 판타지

 

과연 구찬성(여진구)은 장만월(이지은)을 구원할 것인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삶과 죽음을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는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묶여버린 채, 천년 넘게 죽지 못하고 살아왔다. 물론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삶이라 부르기 어렵다. 오래 전 그가 사랑했던 고청명(이도현)이 오기를 그는 기다린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목이 되어 잎 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그래서 장만월 자신이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세워진 호텔 델루나 역시 장만월의 모습 그대로다. 그 곳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찾는 곳이다. 장만월은 그들을 ‘힐링’시키고 그렇게 이승의 원을 지워준 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곳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걸쳐져 있는 곳.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죽어 있지만 살아있는 건, 고목이나 호텔 델루나나 장만월이나 마찬가지다.

 

그 곳에 구찬성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장만월이 그에게 일종의 저주를 내린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끔찍하게 죽은 귀신들의 형상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구찬성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호텔 델루나나 그 곳을 그대로 닮은 장만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고목 또한 구찬성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찬성은 그 평범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으로 그 공포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 곳을 찾는 원귀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 그 너머에 담겨진 저마다의 사연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다. 두 눈이 없는 원귀는 그래서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가 살아생전에는 차츰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는 연민의 존재로 바뀐다.

 

그리고 그 눈이 없는 원귀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손길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자 구찬성은 자신의 손을 빌려 그 손길을 준 사람을 찾아준다. 하지만 장만월은 그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기억일 뿐, 실상은 살려 달라 내민 손을 뿌리친 뺑소니범의 손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귀가 그 뺑소니범을 해코지하려 할 때 구찬성은 자신을 던져 그걸 막아준다. 그런 복수가 결국 원귀를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뺑소니범을 뒤늦게 경찰에 넘기고 구찬성이 하는 이야기다. 원귀가 그 뺑소니범이 뿌리친 손길을 애써 ‘따뜻한 손길’로 기억하려 했던 건 바로 그 원귀 자신의 따뜻한 심성 때문이었다는 것. 현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존재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그 억울함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구찬성 같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호텔 델루나>는 죽은 공간에 피어나는 잎과 꽃을 이야기한다.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원망과 아픔만을 떠안은 죽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판타지란 결국 현실의 결핍 위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적 존재로 서있는 건 그래서 장만월이 아니라 구찬성이다. 구찬성은 그 죽음 같은 현실 위에 따뜻한 온기를 하나씩 던져 넣는다.

 

고목에 잎이 피어나고, 장만월의 사막 같은 마음에 조금씩 촉촉함이 생겨나며, 호텔 델루나가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밝은 삶의 에너지가 더해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기묘한 힐링 포인트다. 처음에는 공포의 존재로 귀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만 했던 구찬성이 이제 그 귀신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깨지고 망가진 형상을 가진 귀신들은 그래서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대신 현실에서 어떤 억울한 사연들을 갖고 찾아온 아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우울한 현실에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이라면 그 아픈 존재들에 이입할 수 있을 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 존재들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구찬성이 구원의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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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오래도록 연기자 김혜자를 기억하게 할 드라마

“눈 쓸어요. 눈이 오잖아요. 우리 아들이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 가야 될 텐데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혜자(김혜자)는 눈을 쓸고 있었다. 혹여나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미끄러져 넘어질까봐. 아마도 그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일 게다. “아들은 몰라요. 그거.” 그 사실을 아들(안내상)은 평생 모르고 있었다. 그것 역시 세상 모든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몰라도 돼요. 우리 아들만 안 미끄러지면 돼요.”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머니 혜자. 어릴 적 사고를 당해 다리 한 쪽을 의족에 의지하며 살아온 아들. 뭐 하나 빛날 것 없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지고 살아온 두 인생이 서로 포개진다. 아들은 그토록 자신을 엄하게 내몰았던 엄마의 진심을 그제야 알아채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제 그만 쓰셔도 되요.” “아니에요. 눈이 계속 오잖아요.” 아들은 평생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진다. “아드님 한 번도 안 넘어졌대요. 눈 오는 날 내내 한 번도 넘어진 적 없대요.” 그러자 어머니의 환하게 펴진 주름진 얼굴에 기쁨이 번져간다. “정말이에요? 다행이네요.” 아들은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 “엄마였어. 평생 내 앞의 눈을 쓸어준 게 엄마였어.”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종영했다. 12부작의 짧은 드라마로 순식간에 끝나버렸지만, 우리는 이 드라마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처럼 지나간 드라마 한 편이 마치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은 먹먹함을 안겨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한 우리네 삶을 압축해 보여줬기 때문이며,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보통의 평범한 삶이라도 얼마나 그 삶이 눈이 부신가를 이 드라마가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는 장치를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고안해낸 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건 사랑했고 결혼해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지만 폭력적인 시대를 맞아 한 줌의 재로 돌아왔던 남편 준하(남주혁)를 되살려 다시금 청춘의 나날에 만나 사랑하고픈 그 마음이 담겨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웠던 사람. 하지만 혜자를 만나 아들을 낳고 그 평생의 어둠을 비로소 떨쳐낼 수 있었던 사람. 그는 시대의 아픔 속에 사라졌지만, 혜자의 기억 속에는 눈이 부신 날의 아름다운 청춘으로 평생 남아 있었다.

혜자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또 한 이유는 바로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이었다. 알츠하이머의 기억 속에서 그 아들은 혜자의 아빠가 되었다. 사고를 당한 아빠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또 돌렸던 혜자. 아마도 그건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안고 살아온 혜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간절함이었을 게다. 그래서 한 순간에 늙어버렸다는 설정은 그래서 보기만 해도 아픈 아들 앞의 눈을 평생 쓸어온 어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눈이 부시게>의 혜자나 준하의 삶이나, 혜자의 아들과 그 며느리(이정은)의 삶 어느 것 하나 대단한 삶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삶은 고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의족을 떼어놓고 잠시 쉬는 아들과, 독한 염색약에 손이 다 갈라져버린 며느리. 눈이 부시기보다는 빛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살아온 것만 같았다. 과연 이런 고단한 삶에도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평생 아들 앞의 눈을 쓸어 오신 어머니에게 아들이 묻는다. “대단한 날은 아니구.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 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 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 때가.”

아주 평범한 어느 하루가 평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말은 그만큼 삶이 고단했다는 걸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고단한 삶에도 남다른 행복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담아낸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조작은 그래서 불행이면서도 동시에 행복이 된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계신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담은 그 어떤 드라마가 이런 통찰을 보여줬던가.

<눈이 부시게>가 한 사람의 인생을, 그 한 평생의 기억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먹먹하게 만들었다면, 그 한 사람의 인생을 주름 하나까지 감동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연기자 김혜자다. 한지민이 이 드라마는 “김혜자 선생님을 위한 헌사”라고 한 이야기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안내상이나 이정은의 깊이 있는 연기와, 한지민, 남주혁은 물론이고 손호준, 김가은, 송상은 같은 젊은 배우들의 호연, 여기에 김희원이나 우현 그리고 요양원 어르신 역할을 했던 모든 중견배우들의 연기가 눈부실 수 있었던 건 그 중심에 김혜자가 있어서다. 아마도 오래도록 우리는 연기자 김혜자를 이 드라마로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마지막에 깔린 내레이션은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인 혜자이자 인생 선배인 김혜자가 동시에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위로가 되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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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윌 눈물 통해 다시 드러난 '히든싱어' 비장의 무기

“제 노래로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뭉클하다. 이렇게 애정해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 JTBC 예능 <히든싱어5>에 나온 케이윌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모창능력자들이 케이윌의 열렬한 팬이었고, 무엇보다 그의 노래로 꿈을 키워 왔으며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케이윌은 자신의 노래를 그렇게 열렬히 불러주는 팬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이번 <히든싱어5>의 케이윌편은 1라운드부터 패널들과 관객들을 멘붕에 빠뜨릴 만큼 누가 케이윌이고 누가 모창능력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무대가 펼쳐졌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노래할 때 내는 특유의 습관까지도 모창능력자들은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케이윌로서는 한편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1라운드는 잘 넘어갔지만 2라운드는 2표 차이로 간신히 탈락을 면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이 기분 좋은 팬심을 만나는 순간으로 바뀌면서 케이윌은 깊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똑같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한 모창능력자들의 팬심이 전해지면서다. 

본래 모창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좋아하지 않으면 그토록 똑같이 따라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세심하게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불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케이윌과 구분이 되지 않고, 패널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듯 어떤 면에서는 더 잘 부르는 모창능력자의 진심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정성껏 불러주는 그 노래 속에 이미 그들의 진심이 담겨 있으니.

케이윌을 더욱 울컥하게 한 건 그가 걸어온 길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가수로 데뷔한 케이윌의 행보는 여타의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아이돌로 채워진 가요계에서 발라드 가수로서 주목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케이윌은 노래하는 무대는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원하면 언제든 출연해 즐거움을 주는 가수와 예능인의 일을 병행했다.

“저는 늘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치열한 가요계에서 주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장르적으로 더 많은 노래에 도전했다. 뭐든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에게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해왔다.” 그의 말처럼 그는 주류는 아니지만, 발라드에서 확고한 자기 영역을 만들었다. 그건 독보적인 가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히든싱어>에 절친인 휘성이 나왔을 때 패널로 출연해 농담처럼 투덜댔던 것이 그저 농담만은 아니었을 게다. 거기에는 부러운 마음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역대급으로 똑같이 따라 부르는 팬들과 함께. 그러니 눈물이 나올 수밖에.

이번 케이윌편을 보니 어째서 <히든싱어>가 시즌5까지 오면서도 그 뜨거움을 잃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건 단순히 모창대결이 아니라, 그 모창으로 전해지는 팬심 때문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저 노래만 들어도 느껴지는 마음. 가수로서는 그 팬심을 읽어내고 다시 초심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이것들은 <히든싱어>가 모창대결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가 아닐 수 없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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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11 10:47 신고 BlogIcon 바다모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나저씨’, 우리에게 이런 퇴근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네 가게에는 이제 일터에서 퇴근한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술판이 벌어진다. 일터에서 겪은 스트레스들을 그 퇴근길 술 한 잔으로 풀어낸다. 왁자한 분위기에 술기운에 내놓는 과장된 이야기들은 그래서 어딘지 쓸쓸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퇴근길이 그나마 주는 위로다. 

하지만 정작 정희네 가게를 운영하는 정희(오나라)는 퇴근이 없다. 1층이 주점이고 2층이 집이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의 일과다. 모두가 돌아가는 밤 시간, 정희는 퇴근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신도 퇴근하겠다고 그들을 따라나선다. 퇴근 기분을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정희의 발길 역시 쓸쓸하다. 

정희네 가게가 문을 내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들과, 그 아저씨들을 따라나선 정희 는 이제 퇴근하고 돌아오는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이지은)을 만난다. 박동훈은 바람을 피운 아내 때문에 퇴근길이 고역이 되었고, 이지안은 늘 그랬듯 휴식보다는 챙겨야할 것들이 더 많은 퇴근길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저씨들과 정희 그리고 박동훈과 이지안이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퇴근하는 그 길이 달라보인다.

수다쟁이 아저씨 제철(박수영)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직원을 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고, 그의 이야기에 그만큼 직장 상사가 싫은 거라며 그의 친구가 대꾸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직장 여직원의 퇴근길을 함께 하는 박동훈이 눈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하릴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훈훈하다. 제철은 세상의 모든 부장놈들은 “미친 놈, 개놈, 죽일 놈들”이라며 굳이 혼자 가도 된다는데 오버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정희는 갑자기 살갑게 이지안에게 자신들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다며 이렇게 나이들 거 생각하니까 끔찍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지안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한다.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이지안의 그 말에 정희도 아저씨들도 자못 진지해진다.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하던 아저씨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이 20대 같지 않은 이지안을 바라본다. 그 의미심장한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눈치다.

계단을 올라 이지안의 집 앞까지 가는 길. 늘 혼자 외롭게 혼자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는다. 집 앞은 이지안에게는 상처가 떠오르는 곳이다. 빚독촉을 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두드려 맞기도 했던 곳. 그래서 늘 불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 도착한 그 곳은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은 갑자기 그 집 앞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창을 향해 누군가를 부른다. 동네 아는 동생이 창문을 열자, 상훈은 그에게 이 집에 사는 이지안의 안전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잘 자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정희와 아저씨들 뒤로 이지안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훈은 “잘 자요.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지안에게 정희는 “우리 가게 놀러오라”고 말한다. 박동훈은 들어가라며 “문단속 잘하고” 무슨 일 있으면 아까 봤던 이웃집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돌아가는 그들을 이지안은 오래도록 문 앞에 서서 바라본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퇴근길. 그 흔한 퇴근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아저씨>가 그려낸 이 퇴근길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거라는 것. 그건 나이 들어 이제 퇴직을 앞둔 중년들이나,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춘들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아저씨>는 그 퇴근길 풍경 하나 속에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있는 힘겨운 현실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퇴근길 하나가 주는 위안을 담아낸다. 

이지안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정희가 문득 입을 연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인생 다 산 것처럼 자신들만 힘들다 생각했던 이 중년들은 문득 청춘들의 힘겨움도 만만찮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가게에 놀러오라는 정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적어도 퇴근길에서의 작은 위로 정도라도 함께 나누자는. 그래야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테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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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자들의 연대 ‘나저씨’, 괜찮다고 진짜 괜찮은 걸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치되어 있다. 그 한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도 서슴없이 하는 회사. 왕전무(전국환) 측이 박동훈을 상무로 올리려는 것도 반대파인 도준영(김영민) 대표 측과 대결하기 위함이다. 심사를 대비해 왕전무의 측근들은 박동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지안(이지은)과의 관계를 미리 추궁한다. 그들에게 사실관계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이지안을 잘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 관계를 설명할 그럴 듯한 스토리를 짜서 박동훈에게 대비하라고 한다.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회사지만, 이 회사의 내부는 무너질 듯 불안하다. 경영진들이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살길에만 더 몰두하고 있어서다. 도준영파와 왕전무파의 정치대결은 상대방에게 미행을 붙일 정도로 극에 달해있다.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정치 싸움 속에서 회사가 하는 안전진단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다. 건물주들의 뒷돈을 받아 대충 안전하다 서류를 만들기도 하고, 제대로 안전진단을 한 박동훈 같은 사람을 앞뒤 꽉 막힌 인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 세계에 가치 따위는 없다. 오로지 돈과 권력이 가치가 되는 세계다. 

하지만 박동훈의 앞에는 또 다른 한 세계가 있다. 그건 정희네 선술집이다. 그 곳에는 ‘망가진 자들’ 혹은 ‘끝난 자들’이 모여든다. 그 술집을 운영하는 정희(오나라)가 그렇다. 그는 스님이 된 겸덕(박해준)과 연인 사이였지만, 이젠 그렇게 홀로 남아 선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일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고, 모두가 돌아갈 집이 있지만 자신은 그 일터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괜스레 퇴근을 해보기도 하고, 빨래와 세수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아직은 “괜찮은 삶”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찾는 아저씨들은 한 때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지위까지 있었던 인물들이지만 지금은 한 마디로 ‘망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 망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술판을 벌이는 그 곳은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다. 세상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그런 세상 밖에 세상이다. 연기력이 없어 늘 구박받고 살아가는 최유라(나라)가 그 곳을 찾아 아저씨들이 “망가진 게 너무 좋다”거나 “끝난 사람들이라 부럽다”거나 하는 건 그래서다. 망가졌어도 끝났어도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 망가진 자들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저 이전투구의 세상에 발을 디딘 자다. 세상의 더러운 일들이 벌어져도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도저히 희생이라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아내 윤희(이지아)가 도준영 대표와 바람을 피운 일이다. 그는 친구인 겸덕을 찾아가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겸덕은 말한다. 희생 말고 좀 이기적이라도 먼저 행복해지라고. 

박동훈이 힘겨운 건 모두가 포기하며 살아가는 가치를 지켜내며 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적당히 타협하고 가진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면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에게는 ‘정희네’ 사람들이 가진 그 ‘망가진 자들’을 이해하고 때론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춘대(이영석)가 이지안을 보살펴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존경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지안이 할머니 봉애(손숙)를 보살피며 사는 모습을 보고는 “착하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불이익들을 그는 감수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해고하라고 하지만 박동훈은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 그 누가 이렇게 홀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알아봐 줄까. 또 망가진 자들이 한 때는 저마다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그 누가 말해줄까.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세상이 버린 가치를 지키다 망가져간 이들을 위한 헌사를 담고 있다. 이지안에게 봉애가 박동훈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그는 박동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윤희가 한 불륜이 “넌 이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며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박동훈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지안의 눈물은 그들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담고 있다. 왜 우냐는 봉애의 질문에 이지안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갑질 세상 속에서 그 가치를 봐주는 이가 있다는 위로만큼 큰 게 있을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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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누나’가 소박하게 담아낸 여성들에 대한 위로

이 정도면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연일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야기다. 거기 등장하는 ‘예쁜 누나’ 손예진 이야기이고, 그의 상대역인 ‘밥 사주고 싶은 동생’ 정해인 이야기다. 수다 자리에서 “그거 봤어?”하고 말하게 되는 그런 드라마가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인 걸까.

손예진이 ‘예쁜 누나’라고 불러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만큼 진짜 예쁜 ‘방부제 미모’를 갖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정해인이 어색하게 쓱 웃는 소년 같은 풋풋한 미소를 던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설렘 같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좀 더 사회적인 함의가 담겨있다. 그러니 그 일상적인 모습만으로도 이런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들이 나오는 것일 게다.

무엇이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린 걸까. 가장 큰 건 이 드라마가 담아내는 소박해도 진솔한 여성들에 대한 위로의 시선이다. ‘예쁜 누나’라고 지칭되어 있지만 극중 윤진아(손예진)는 그냥 나이 든 누나다. 그 나이에 변변한 남자친구도 하나 없어 부모가 나서서 배경 좋은 남자를 엮어주려 할 정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배경은 좋을지 몰라도 인성은 꽝이다. 요즘 같으면 극혐으로 불리는 ‘스토커’형 인간이다. 

바람을 피워 그게 들키고도 뻔뻔하게 윤진아 앞에 나타나 널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윤진아는 소유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파렴치한 스토커는 매장까지 찾아와 완력으로 윤진아에게 키스를 하려 한다.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헤어지려 했던 윤진아에게는 처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저런 인간을 한 때 죽자 살자 좋아했던 자신에게조차 자괴감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들은 그를 마치 ‘소유물’ 취급한다. 회사는 그런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이 난무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공간이다. 직속상사는 회식 자리도 업무의 연장이라며 모두 참석하라고 강요하고, 그 자리에서는 마치 습관처럼 성희롱과 성폭력이 벌어진다. 

그래서 모두가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지만 윤진아만은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래서 출장까지 가서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점주와의 회식 자리에 가지 않겠다고 그가 선언하자 상사도 또 그 소식을 들은 동료들도 적이 놀란다. 윤진아가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아왔다는 걸 그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보여준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지만 상사가 잘못한 걸 뒤집어써야 겨우 겨우 직장생활을 연명할 수 있는 처지나, 잘못은 점주가 했지만 직장에서는 그 점주를 관리 못한 그를 질책하는 상황. 그가 기댈 곳이라고는 유일한 친구 경선(장소연)뿐이다. 그만이 윤진아의 진가를 알아준다. 자신의 엄마가 죽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기댈 곳이 없었던 경선 옆에서 끝까지 그를 지지해준 이가 바로 윤진아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윤진아를 나이 들고 만나는 사람도 변변히 없는 데다 많은 걸 포기한 채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는 그런 사람 취급하지만, 드라마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별 내색도 안하고 밝게 살려 애써 웃는 윤진아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준희(정해인)가 윤진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렇다. 경선의 친구인 누나로서 옆자리에서 봐온 윤진아의 진짜 ‘예쁨’을 준희는 일찌감치 알아봐줬다. 

멜로드라마들이 늘 그려왔던 틀이 주도적인 남자와 그로 인해 천거되는 여자의 구도였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틀을 훌쩍 벗어버린다. 그건 멜로드라마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세우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지금의 여성들이 원하는 멜로의 구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훌쩍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멜로가 어째서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던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래서 여전히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소박하지만 강력한 위로를 건넨다. 신데렐라가 되는 엄청난 돈과 지위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대신 ‘밥 한 끼 사주는 것’ 속에 담겨진 소박하지만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사회에 대한 요구들이 시대의 목소리로 등장하고 있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만들어내는 신드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각자 제 위치에서 힘겨워도 버텨내며 살아가는 그들이 진심으로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는 것.(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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