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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바이 마마’가 그리는 유족의 눈물, 떠난 자의 눈물

 

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나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살아있었다면 함께 갔을 수 있는 여름캠프의 무정한 예약 알림이 더 허전하게 다가오고, 생일만 오면 여전히 남아있는 떠난 자의 SNS에 그리움의 마음을 꾹꾹 눌러 적는다. ‘내 친구, 내 마음의 언덕, 나의 차유리, 유리야... 유리야... 보고 싶어.’

 

그러면서도 살아가기 위해서 그 아픔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괜스레 거울을 닦고 욕조를 청소하며 안하던 고스톱 게임을 한다. 주방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마치 기억을 지워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그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tvN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는 바로 이 부분에서 기획된 드라마일 게다.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보겠다는 것.

 

그 위로의 방식이 독특하다. <하이바이 마마>에는 겹쳐질 수 없는 두 세계가 겹쳐져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산자와 죽은 자들이 겹쳐져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에는 산 자들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자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건 남은 이들에 대한 걱정과 회한 때문이다.

 

오래도록 회장님 운전기사로 일하다 죽게 된 한 아버지는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떠나지 못했다. 오랜 병환으로 사망한 한 어머니는 딸 또한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앞에서 죽어서도 발을 동동 굴린다. 차유리(김태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딸 서우(서우진)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죽음을 맞이한 유리는 남은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을 본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떠난 자들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식이 다가와도 평생을 힘겹게만 살다 간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픔이 더 커진다. 투병하는 딸은 통증에도 진통제 없이 잘도 버틴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어머니가 힘들게 버티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스스로 내리는 벌 같다. 그는 통증이 올 때마다 엄마는 더 한 것도 버텼을 것이라며 버텨낸다. 유리가 떠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려 애썼던 남편 강화(이규형)는 차 안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다. 유리의 엄마 은숙(김미경)은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유리의 아빠 무풍(박수영)은 장례식장에서 한 밤 중 애끓는 슬픔에 통곡한다.

 

그런데 그냥 봐도 슬픈 이 장면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떠난 자들이 지켜본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숨겨진 내밀한 아픔을 뒤에서 우연히 듣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슬픔이다. 아마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색다른 이 드라마만의 설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장면은 마치 눈물 뽑아내려는 신파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눈물을 뽑아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산자의 눈물과 죽은 자의 눈물을 교차해 그 소통의 과정을 통해 남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려는 것일 뿐.

 

결혼식을 앞두고 점점 슬퍼하는 딸을 보며 먼저 떠나간 아빠는 마음이 아파진다. 그래서 차유리에게 부탁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 속에서 아빠는 평소 하던 대로 “괜찮아,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고생스러웠지만 그 삶 속에서도 아빠는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안쓰러운 아빠가 아닌 파이팅 넘치는 아빠로 기억해달라며, 딸이 해줬던 임플란트를 잘 지니고 떠난다고 말한다.

 

그 소통의 지점에 <하이바이 마마>가 굳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공존시키는 판타지의 목적이 담겨진다. 외면하려 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버텨보려 해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무력할 수밖에 없다. 다만 떠난 자도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위로하며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하이바미 마마>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된 건 유족의 눈물만이 아닌 떠난 자의 눈물까지 같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 서로의 눈물이 연결해주는 소통의 지점을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담아내고 있어서다. 그리고 그건 무력한 이별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별에 대한 위로로.(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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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바이 마마’가 김태희를 부활시켜 전하려는 위로와 깨달음

 

“내 딸. 사랑하는 내 딸. 듣고 있지?” 딸 유리(김태희)를 먼저 보낸 엄마 은숙(김미경)은 딸이 살아있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죽은 딸이 은숙을 살포시 뒤에서 껴안고 말한다. “응. 나도 사랑해. 엄마도 듣고 있지?”

 

tvN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 잠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유족들은 망자의 방을 생전 그대로 유지하고 마치 지금도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유지하고 때로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져 있어 남은 자들은 떠난 이들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다.

 

그건 떠난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떠날 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졸지에 그렇게 된 후에야 남을 후회를 좀체 생각하지 못한다. <하이바이 마마>가 죽은 자를 되살려 49일 간 ‘육신의 시간’을 허락하는 판타지를 굳이 끌어온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보낸 사람도 떠난 사람도 그제서야 깨닫게 된 소중한 것들을 가상의 판타지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으니.

 

KBS <고백부부>를 통해서도 그러했듯이 권혜주 작가는 판타지를 통해 현재와 현실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이바이 마마>에서도 하고 있다. <고백부부>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를 통해 현실 부부의 일상을 다시금 보게 만들었던 것처럼, <하이바이 마마>는 죽었던 아내이자 딸 그리고 엄마인 유리가 육신을 가진 존재로 49일 간 살아가는 판타지를 통해 역시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귀신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들이 떠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은, 이러한 드라마가 전하려는 진정성을 담아내면서 유쾌하면서도 짠하고 또한 우리네 삶을 다시금 반추하게 하는 색다른 가족극이자 휴먼드라마의 색깔을 더하게 된다. 딸 서우(서우진)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사고로 사망한 유리는 다시 육신을 가진 존재로 살아남으로써 그간 지나쳤던 자잘한 일상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었는가를 절감한다.

 

사랑하는 딸 서우를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부모를 위해 건강에 좋은 선물을 챙기고, 생일날이면 떠난 친구를 위해 어김없이 치킨에 맥주를 놓아주는 절친 고현정(신동미)에게 안주를 선물로 주는 일이 그렇다. 물론 한 밤 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TV를 보며 치맥을 하거나,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는 그런 일들 또한 소중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이바이 마마>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가져오지만 권혜주 작가 특유의 코미디적 발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우리가 봐왔던 무시무시하거나 슬프기만 한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와 별다를 것 없이 가족을 걱정하고 잘 되기를 빌고 또 먹고 싶은 것 앞에서 군침을 흘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발랄한 귀신이었다 육신을 갖게 된 유리라는 캐릭터는 물론이고 이를 연기하는 김태희가 매력을 드러내는 건 이런 색다른 지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차유리를 부활시킨 것처럼 김태희 또한 연기자로서의 진정성 또한 부활시킨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그렇게 한바탕 부활한 육신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소동이 몰아친 이후, 드라마는 슬쩍 김태희의 목소리를 통해 이런 상상을 하게 된 속내를 끄집어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고마운 이에게 고맙다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받기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미안한 일들인지 나는 죽고 나서야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알았다.”

 

죽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그것은 실제로는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이 드라마는 판타지로 그걸 보여주려 한다. 또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된 많은 분들에게 드라마는 자그마한 위로를 건넨다. “내 딸. 사랑하는 내 딸. 듣고 있지?” “응. 나도 사랑해. 엄마도 듣고 있지?”라고.(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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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가 야구를 빌어 전한 약자로서 잘 싸우는 법

 

“그 날 드림즈는 7연패 중이었는데 하필 타이탄즈 투수가 지금 강두기 선수 같은 국가대표 1선발 최소원 선수를 내보낸 거예요. 모든 팀들이 드림즈한테는 3승을 따내려고 오히려 좋은 선발 투수들을 다 내보냈거든요.” 텅빈 야구경기장에서 이세영(박은빈) 운영팀장은 이제 드림즈를 떠나게 된 백승수(남궁민) 단장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아빠와 드림즈 경기를 보러오던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야구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약자에게 더 강한 상대들이 몰리게 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백승수는 “약체팀을 확실하게 이기는 건 비겁하긴 해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그 현실을 수긍했다. 하지만 이세영이 백승수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그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아저씨들은 감독 자르라고 막 소리도 지르고 정말 난리였죠. 근데 그때 엄상구 선수가 3점짜리 홈런을 쳤어요. 감독 자르라고 욕하던 아저씨들도 우리 아빠도 홈런 하나에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울었어요. 다 큰 어른들이.” 그 이야기에 백승수는 한 마디를 더했다. “좋은 경기였네요.”

 

아마도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종영을 맞아 하고픈 이야기가 바로 이 ‘좋은 경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해체될 위기에 놓였던 드림즈는 백승수와 이세영의 노력으로 IT회사 PF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PF 대표 이제훈은 백승수가 요구한 전원 고용 승계와 연고지 유지 그리고 팀명을 드림즈로 가져간다는데 모두 합의했지만, 보수적인 이사진들 때문에 백승수까지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결국 드림즈는 살아났지만 백승수는 떠나게 됐다.

 

백승수는 이렇게 떠나는 일이 자신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자신이 “떠나는 곳이 폐허가 되지 않은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힘이 많이 날 거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스토브리그>가 백승수라는 리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승패보다 ‘좋은 경기’를 했다는 것.

 

<스토브리그>는 섣부른 판타지를 말하기보다는 현실적이며 능동적인 선택을 이야기했다. 즉 자본과 권력의 힘이 팀 하나를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 현실의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말라는 것. 말 잘 듣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는 것. 결국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들과 맞서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야구로 표현하면 단지 승패가 아닌 ‘좋은 경기’를 해야 한다고 <스토브리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온다는 걸 드림즈의 2020년 코리안시리즈 진출이라는 해피엔딩에 담았다. 또한 백승수 단장이 드림즈를 나가 또 다른 종목에 도전한다는 사실은 비록 어느 한 분야의 도전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더라도 좋은 경기를 하는 사람은 계속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러한 메시지는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가 거둔 도전과 그 성과의 스토리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애초 야구 소재에 신인작가의 드라마가 이만한 성과를 서둘 것이라 그 누가 생각했을까. 마치 이 드라마는 드림즈 같았다. 하지만 꼼꼼한 취재를 통한 리얼리티와 백승수 같은 판타지 캐릭터를 통한 시원한 한방의 스토리텔링은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이신화 작가가 드라마를 런칭하기 위한 저만의 ‘스토브리그’를 해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게다.

 

무엇보다 이신화 작가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야구 같은 특정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이를 보편적인 오피스드라마나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은유하고 확장하는 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지만, 이신화 작가는 야구를 통해 약자들이라고 해도 잘 싸울 수 있고 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했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드라마 엔딩과 함께 마지막으로 써진 이 한 줄의 자막은 그래서 드림즈에 대한 것이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것이며 나아가 힘겨워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나며 버텨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위로와 지지가 담겨 있었다. 약하다 해도 좋은 경기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도울 거라는.(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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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하지원과 윤계상의 음식을 통한 마음 특히 먹먹한 이유

 

바다식당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문차영이 찾아왔던 그 곳에서 이강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쏟았다. 늘 열쇠가 놓여있던 곳에서 열쇠를 찾아 식당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이강(윤계상)의 기억에도 불이 켜졌다.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맛나게도 먹었던 기억.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문차영(하지원)에게도 추억이 돋아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이강의 말에 그 어린 시절 행복했던 맛이 떠올랐을 수도.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바다식당에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차영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미각을 잃은 상태였다.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문차영은 그러나 마치 미각을 다시 찾기나 했다는 듯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이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동생한테서 MRI사진이랑 진료기록 받았어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그냥 데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말에는 이강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문차영은 다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문차영에게 이강은 어렸을 때 그랬듯이 휴지를 건넸고, 문차영은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라고 그 어린 시절 했던 그 말은 다시 했다. 그 말은 이강에게 오래도록 지워져 있던 기억 하나를 끌어올렸다. 문차영에게 바다식당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고 자신을 아냐고 물었다. 문차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쩌면 <초콜릿>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었다. 어린 시절 첫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시 재회했지만 그를 알아차리는 문차영과 달리 기억을 못하는 이강. 그렇게 서로 엇나간 운명 속에서 지내다 결국 다시 그 첫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떠올린 기억.

 

이것은 <초콜릿>이 다루고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와도 딱 맞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가 아닐 수 없다. 그걸 매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비록 배고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바다식당을 떠나 저 현실을 떠돌며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들을 겪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이강은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가 건네준 초콜릿으로 문차영은 살아남았지만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들어 다시 이강을 만났지만 그의 친구 권민성(유태오)의 구애로 운명이 엇나갔고 권민성은 사망했다. 문차영은 그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동 식당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듯.

 

이강은 거성재단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후계를 두고 벌어지는 이준(장승조)과의 대결과 그를 밀어내려는 이준의 부모들 속에서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다식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행복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이강은 손까지 떨리게 되자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좌천되어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현실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다시 바다식당에서 음식을 마주한 채 서로를 기억해낸다는 설정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미각조차 잃어버린 요리사 문차영이 이강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음식이 그저 맛과 같은 감각 그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음식을 통해 그는 이강의 마음을 느낀 것이고 그 마음이 너무 행복했던 것.

 

이건 그간 <초콜릿>이 담아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음식을 매개로 하고 있는 이유를 드러낸다. 너무나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 건넨 음식 하나가 어떤 위로와 위안을 넘어 힘을 줄 수 있는 건 단지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거기 담긴 음식 만드는 이의 마음 때문이라는 걸 <초콜릿>은 음식을 마주한 두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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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09 09:44 blue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게 리뷰 쓰셨네요 ㅠ 감동

‘초콜릿’ 하지원의 생일과 윤계상의 기일에 담긴 뜻

 

“엄마 제사는 늘 민성이가 준비해줬는데, 이젠 민성이가 없어. 그냥 우리끼리 한 잔 해. 엄마 좋아하는 새우깡 안주 해서. 좀 답답할 거 같아서 야외로 나왔는데 괜찮지?” 이강(윤계상)은 엄마의 기일에 어느 다리 위에 앉아 소주를 따라놓는다. 무덤조차 하다못해 납골묘조차 남기지 않은 거성재단 사람들 때문에 이강은 엄마의 기일에 찾아갈 곳이 없다. 그나마 친구였던 민성(유태오)이 늘 제사를 챙겨줬지만, 그 역시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렸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덩그러니 남아 술잔을 채우는 그 마음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를 발견한 문차영(하지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자 이강은 일 끝났으면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한다. 술잔이 놓인 쪽에 문차영이 앉으려 하자 이강은 “여긴 우리 엄마자리”라며 반대쪽 옆에 앉으라 한다. 몸도 안 좋은데 오늘은 물을 마시라며 물을 따라준 이강은 문차영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다신 아프지 말아요. 특히 생일엔.”이라 말한다. 카메라는 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왼편에는 생일을 맞은 문차영이, 오른쪽에는 기일을 맞은 윤계상이 그리고 그 오른 쪽에는 엄마의 술잔이 놓여있다.

 

이 한 장면에는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문차영의 생일과 이강이 맞은 기일이 같은 건, 그들이 같은 날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강의 어머니는 그 날 사망했고, 생일을 맞아 그 곳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사고를 당한 문차영은 이강의 어머니가 준 초콜릿 하나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 날은 이강에게도 문차영에게도 상처로 남은 날이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생일날 맞은 비극으로 문차영은 그 날만 되면 그 때의 상처와 고통이 떠오르고, 기일이지만 찾아갈 무덤조차 없어 이강은 아무 곳에서나 소주잔을 채운다.

 

그런데 모두 같은 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바로 그 상처 때문에 타인의 상처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이강은 의사로서 어떻게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거성재단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사지로 내몰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결국 손을 떨게 된 이강은 지방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좌천되어 내려온다. 문차영은 요리사가 되어 자신의 요리를 통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주려 애쓴다. 자식에게 짜장면집에서 버려져 매번 그 곳을 찾아가는 할아버지에게 번번이 짜장면을 사주고, 자식까지 버리고 재가해 불행하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생일이라며 편지에 선물을 전하려 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아이를 보듬어준다. 그들은 아프고 상처 입었지만, 그래서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건 그 상처 입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버려져 매번 짜장면집을 찾아갔던 할아버지는 죽으면서도 자식을 걱정한다. 자기는 너무 행복하게 잘 지냈다며 죄책감 같은 것 같지 말고 살라고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그 엄마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한다. 정작 아이는 얼마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픈 이들이 상처 입은 이들은 위로한다는 건 그들이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여기는 그들은 그래서 그 고통 앞에서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을 돕고 그것으로 자신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강의 사람을 고치는 의사로서의 삶도 문차영의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서의 삶도 그런 의미를 갖는다.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상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살아간다. 사랑이란 결국 그런 상처들을 서로 보듬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네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이강과 문차영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술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두 사람을 엮어주는 이강의 엄마가 받아놓은 빈 잔이 놓여 있다. 이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이상하게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파문 같은 걸 만드는 건 그 한 장면에 우리네 삶의 비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 상처, 사랑, 위로 같은.(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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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죽을 듯한 삶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밥 더 줄까? 밥 갖고 온다. 점심때도 밥 먹으러와 점심 때 오면 나가 초코 샤샤 만들어 줄테니께. 나도 요리사여. 배고프면 아무 때나 와. 돈 없어도 되니께. 아무 걱정 말고.” 배고픈 소녀에게 상다리 부러지게 밥 한 상 차려 준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밥을 제대로 못먹게 한 엄마 때문에 배가 고팠던 소녀는 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바로 그 소녀가 먹었고 소년이 챙겨줬던 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한 끼가 줬던 행복감을 잊지 못하던 소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엄마를 잃고 자신 또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요리사가 됐다. 요리사가 된 문차영(하지원)은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자신이 그 밥 한 끼를 통해 가졌던 큰 위로와 행복감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다.

 

소녀를 위해 팔을 데여가면서까지 초코 샤샤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거성재단 한용설(강부자) 이사장의 손자가 되어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성병원 뇌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른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거성재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를 내치려는 이준(장승조)의 부모들 때문에 심지어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던 이강(윤계상)은 그 전쟁터에서 한 아이가 폭탄이 터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문차영은 요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강은 거성재단 이사장의 손자로 거성병원의 의사가 됐지만 그건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거성가로 들어온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허망하게 사망했다. 이강 역시 엄마와 꿈이 같았었지만 이제 거성가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가 되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간다.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향후 일어날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것들이다.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이 문차영이 밥 한 끼로 위로 받았듯이 이제는 그가 차려주는 한 끼로 치열하게 살아오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삶을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게다. 또 어쩌면 상처 가득한 이강은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문차영을 삶의 의사로서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게다.

 

저 편에 거성재단 같은 거대한 성공의 신기루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강과 문차영이 선택하는 건 그런 거대한 성공이 아니다. 그 거창함이 동반하는 아픔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상처 입은 존재들은 그래서 이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고 또 누군가와 그걸 나누는 것이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며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문차영처럼.

 

<초콜릿>은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도 충분히 훈훈함과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때론 강렬한 맛의 반찬들이 놓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안이 든든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드라마.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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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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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계속 힘들테지만... ‘같이 펀딩’, 버텨온 노포들이 준 긍정

 

MBC 예능 <같이 펀딩>의 노홍철이 추진하고 있는 소모임 프로젝트는 왜 을지로 노포를 찾아갔을까. 어찌 보면 그건 또 하나의 ‘먹방’처럼 보인다. 무려 4차에 걸친 노포 탐방과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는 먹방의 향연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오래된 옛 다방에서 만나 추억 돋는 차를 마시고 노포 전문가로 통하는 최정윤 셰프의 가이드를 받아 출발한 ‘힙지로(Hip + 을지로)’ 노포 투어. 대패삼겹살을 1차로 하고, 그 유명한 노가리 골목에 가서는 직접 노가리를 패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2차를 한 후, 이름도 특이한 물갈비집에서 갈비와 장인 수준의 볶음밥을 3차로 맛본 후 마지막으로 시장 안 인심 넘치는 대폿집에서 4차를 하는 과정은 보기 힘들 정도로 침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같이 펀딩>의 노홍철 소모임 프로젝트가 을지로 노포를 찾은 건 단지 먹방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소모임 프로젝트가 추구하고 있는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가치가 투영되어 있었다. 저마다의 현실과 사연을 안고 온 참가자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자신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이 날 <같이 펀딩>에서 특이했던 건 양재웅 정신과의사가 스튜디오에 함께 자리를 했던 것. 그가 여기 앉게 된 건 이 소모임 프로젝트가 그 자체로 갖는 남다른 의미와 가치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함께 모여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과정이 정신과 치료에 있어 아직까지 문턱이 높은 병원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고,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는 공동체가 주는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이 노포 투어의 한 참가자는 어머니가 일찍이 치매에 루게릭병까지 앓으셔서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아픈 사연을 털어놨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이 참가자는 이런 이야기를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해본 적이 없다며,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소모임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말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노포투어의 마지막 장소였던 시장통 대폿집에서는 그래서 노포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힘겨운 하루를 버텨낸 이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최정윤 셰프는 자신이 거기서 가장 나이가 많다며, 40세를 넘기면 덜 힘들거라 생각했던 게 실제로 겪으니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로 아픈 사연을 털어놓은 참가자를 위로했다. 장도연은 “어차피 계속 힘들 거야”라는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고 했다.

 

어차피 계속 힘들 것이니, 지금의 힘겨움도 결국은 버텨내고 지나갈 거라는 그 이야기는 노포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으며 버텨내온 노포가 우리네 삶을 그대로 닮아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게 버텨내니 그 곳을 알아주는 이들이 찾아오지 않던가.

 

게다가 그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건 결국 그런 노포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누군가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노포와 소모임이 보여준 먹방 투어는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늘 힘겨운 삶 속에서 어쩌면 우린 누군가 옆에 있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같이 펀딩>이 노포 먹방을 통해 전해준 귀한 메시지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와 함께 노포에서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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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중간들에게 던지는 강하늘의 돈키호테식 위로

 

“엄마는 오락기가 원래 없는 게 좋을 것 같아? 쓰다 뺐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쓰다 뺐기면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아. 잠도 안 올 거 같아. 근데 원래 없다고 치면 마음이... 중간이야. 충재네집은 이혼해갖고 걔네 아빠 서울 갔대. 나는 충재보다 내가 나은 것 같기도 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빠 없이 큰 아들에게 아빠가 궁금하지 않냐고 묻는 동백에게 하는 필구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그 말에 위로를 얻는 동백은 말한다. “그래 우리 중간이야 그치? 중간.”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있는, 아니 어쩌면 중간이라고 애써 우기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드라마다. 미혼모에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네 여인들이 동백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론 괴롭히는 이유다. 그건 동백의 아들 필구도 마찬가지다. 필구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과, 엄마가 술집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마저 마구 이야기하는 사실이 괴롭다.

 

그런 동백과 필구 앞에 편견이나 선입견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 것 같은 순백의 영혼을 가진 황용식(강하늘)이 나타난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들이 있으면 몸부터 뛰어드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경찰들보다 더 범인은 많이 잡아 순경이 된다. 그런 돈키호테 앞에 돌시네아처럼 동백이 나타난다.

 

엄마를 함부로 말하는 친구들과 한판 붙는 걸 도와주고 함께 오락실에 간 동백은 필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네가 ‘나 아빠 없어요’ 했을 때 너를 짠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아주 촌스런 사람들이여. 그런 사람들은 그냥 네가 짠하게 봐주면 되야.”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중간의 위치에 서 있다 우기는 이들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다. 황용식의 말처럼 그건 아주 촌스런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동정이나 연민은커녕 낮춰보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천지다. 남편이 동백이네 술집에 자주 간다는 이유로 동백이나 그 집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를 술집 작부나 마담 취급하는 이들이 그렇다.

 

“술집 작부나 마담이나 엎어지나 메치나지. 야 똑같이 하루 세 끼 먹는다고 똑같은 사람인지 아니? 오죽하면 이러고 살까. 인생이 불쌍해가지고 사람취급 해줬더니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아?” 그렇게 따지고 드는 시장 아주머니에게 그러나 동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무슨 은혜요? 제가 뭘 그렇게 신세를 졌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나 아무 짓도 안했어요. 저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 근데 다 왜 맨날 다 제 탓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좀 살 게 놔두세요. 저 좀 놔주세요.”

 

“그냥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밖에 안 해요”라는 동백의 말이 아프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인데, 함부로 무시하고 죄인 취급하는 세상의 편견 앞에 중간 정도의 위치라고 우기며 사는 이들은 얼마나 힘겨울까. 그 때 마침 동백의 아들 필구가 나타나 엄마를 괴롭히는 준기엄마들에게 마구 대들며 엄포를 놓는다.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면요, 나 준기 맨날 맨날 때릴 거예요. 주먹으로 코 깨고요 발로 막 찰 거예요. 내가 하나 못하나 봐봐요.”

 

그날 밤 어른들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며 그래서 네가 ‘쌈닭’이라 불리는 거라고 하는 동백의 말에 필구가 하는 말이 또 한 번 가슴에 와 박힌다. “내가 왜 쌈닭이 됐는지 알기나 알아? 엄마, 엄마 땜에. 내가 왜 엄마를 지켜야 돼? 엄마가 나를 지켜줘야지. 나는 일학년인데 일학년이 왜 엄마를 지켜? 나도 귀찮아. 근데 내가 엄마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싫어하니까. 세상에서 엄마 좋아하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나 다 알아. 사람들이 다 엄마 싫어하고 괴롭히잖아. 그니까 내가 야구도 못하고 계속 계속 지켜줘야 된다고. 어떨 때는 나도 막 피곤해. 막 화가 나.”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와 황용식은 그렇게 동백을 지키는 돈키호테로 등장한다. 사실은 힘겨워도 중간 정도라 스스로 치부하며 애써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필구와 황용식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먹먹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게다. 가만 놔두면 “울까 봐” 자꾸 뒤를 따라가게 된다는 황용식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생판 남이 우는 데 내가 막 승질이 납디다.”

 

에너지 보충을 하겠다며 역전으로 간 동백은 꿈이 뭐냐는 황용식의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 그 곳에 있는 ‘분실물 센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 곳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것.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사랑한다는 얘기하고,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는 고맙다고는 안 해요. 아무도 나한테는 그 말을 안 해요. 저 분실물 센터에서는 저분이 최고 천사고 최고 은인이에요.”

 

돌아오는 길 황용식은 조심스럽게 동백에게 묻는다. “우리 쩌어그 해요... 쩌어그 친구요. 우리 친구 좀 해봐요.” 그러자 동백이 말한다. “나한테 친구하자는 사람은 또 처음인 거 같은데.” 그리고 황용식이 하는 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친구해요. 친구하면은 나 동백씨랑 필구편 대놓고 들어도 되죠? 작정하고 편파적으로 해도 되는 거죠?”

 

아직 피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도 않는 스스로를 ‘필 무렵’이라 치부하며 살아가는 그 중간의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황용식과 필구 같은 돈키호테식 위로가 닿는 순간은 기분좋은 뭉클함과 먹먹함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뭉클함과 먹먹함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참으로 오랜 만에 볼만한 괜찮은 드라마가 나타났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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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현실 위로하는 '호텔 델루나'의 독특한 판타지

 

과연 구찬성(여진구)은 장만월(이지은)을 구원할 것인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삶과 죽음을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는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묶여버린 채, 천년 넘게 죽지 못하고 살아왔다. 물론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삶이라 부르기 어렵다. 오래 전 그가 사랑했던 고청명(이도현)이 오기를 그는 기다린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목이 되어 잎 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그래서 장만월 자신이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세워진 호텔 델루나 역시 장만월의 모습 그대로다. 그 곳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찾는 곳이다. 장만월은 그들을 ‘힐링’시키고 그렇게 이승의 원을 지워준 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곳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걸쳐져 있는 곳.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죽어 있지만 살아있는 건, 고목이나 호텔 델루나나 장만월이나 마찬가지다.

 

그 곳에 구찬성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장만월이 그에게 일종의 저주를 내린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끔찍하게 죽은 귀신들의 형상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구찬성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호텔 델루나나 그 곳을 그대로 닮은 장만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고목 또한 구찬성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찬성은 그 평범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으로 그 공포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 곳을 찾는 원귀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 그 너머에 담겨진 저마다의 사연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다. 두 눈이 없는 원귀는 그래서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가 살아생전에는 차츰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는 연민의 존재로 바뀐다.

 

그리고 그 눈이 없는 원귀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손길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자 구찬성은 자신의 손을 빌려 그 손길을 준 사람을 찾아준다. 하지만 장만월은 그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기억일 뿐, 실상은 살려 달라 내민 손을 뿌리친 뺑소니범의 손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귀가 그 뺑소니범을 해코지하려 할 때 구찬성은 자신을 던져 그걸 막아준다. 그런 복수가 결국 원귀를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뺑소니범을 뒤늦게 경찰에 넘기고 구찬성이 하는 이야기다. 원귀가 그 뺑소니범이 뿌리친 손길을 애써 ‘따뜻한 손길’로 기억하려 했던 건 바로 그 원귀 자신의 따뜻한 심성 때문이었다는 것. 현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존재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그 억울함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구찬성 같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호텔 델루나>는 죽은 공간에 피어나는 잎과 꽃을 이야기한다.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원망과 아픔만을 떠안은 죽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판타지란 결국 현실의 결핍 위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적 존재로 서있는 건 그래서 장만월이 아니라 구찬성이다. 구찬성은 그 죽음 같은 현실 위에 따뜻한 온기를 하나씩 던져 넣는다.

 

고목에 잎이 피어나고, 장만월의 사막 같은 마음에 조금씩 촉촉함이 생겨나며, 호텔 델루나가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밝은 삶의 에너지가 더해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기묘한 힐링 포인트다. 처음에는 공포의 존재로 귀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만 했던 구찬성이 이제 그 귀신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깨지고 망가진 형상을 가진 귀신들은 그래서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대신 현실에서 어떤 억울한 사연들을 갖고 찾아온 아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우울한 현실에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이라면 그 아픈 존재들에 이입할 수 있을 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 존재들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구찬성이 구원의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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