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녀’, 부유층의 위선을 들여다보는 재미란

저들의 모습은 과연 품위일까 아니면 위선일까. JTBC 새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도발적이다. 강남을 전면에 내세우고 초재벌은 아니지만 준재벌에 가까운 부유층의 삶을 들여다본다. 패션쇼에나 어울릴 법한 옷을 걸치고 한정판 명품백으로 치장한 강남의 사모님들이 브런치를 하는 모습은 꽤 있어 보이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품위하고는 거리가 멀다. 19금 유머는 물론이고 불륜에 대해서도 그다지 윤리의식 같은 건 없어 보이는 대화들이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리고 그것은 그저 대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 중에는 같은 자리에 있는 이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이가 존재한다. 강남에 산다는 것에 대한 특권의식 역시 대단해 함께 자리하고 있는 학원을 운영하는 선생에게 “아무나 받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화제가 아이들 교육문제나 남편 관리 게다가 성형 같은 수준에 머물고 돈 자랑은 그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야깃거리인 양 시종일관 등장한다. 

그 속에 앉아 있는 우아진(김희선)은 그들과는 어딘가 달라 보이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남편이 외도를 할 운명이라는 타로점집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걸 막기 위해 눈썹 성형을 실제로 시키는 인물이고, 아이 교육에서도 은근히 상류층의 의식을 드러내며 이것저것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또 디자인을 전공해 갖고 있는 안목이라고 팝 아트를 하는 예술가를 후원하지만 진정한 예술에 대한 후원이라기보다는 돈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처럼 <품위있는 그녀>는 겉으로 품위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위선을 떨고 있는 강남의 부유층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드라마는 박복자(김선아)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위선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우아진의 시아버지인 안태동(김용건)회장의 간병인으로 들어온 인물이다. 우아진 앞에서는 어딘지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사투리를 쓰지만 돌아서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진 인물. 우아진이나 박복자나 위선을 떨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품위 있어 보이려 하거나 혹은 한껏 자신을 낮추고 있거나.

우아진과 박복자의 위선 그 밑바탕에서 꿈틀대는 건 욕망이다. 우아진은 이 부유층의 삶에 자신을 동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그 특권을 누리고 싶어한다. 박복자는 그것이 위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세상이 태어날 때부터 그어놓은 선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넘으려 한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안태동을 유혹하고 그를 뒷배로 삼아 이 부유층의 삶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물론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품위있는 그녀>가 가진 흥미로움은 상류층의 삶을 들여다보는 수준이 아니라, 그 삶이 갖고 있는 가식들을 들춰내는데서 나온다. 박복자라는 인물은 그걸 들춰내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결국 살해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저들의 위선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우아진은 이름처럼 끝까지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박복자에 의해 뒤틀어진 삶은 어느 순간 우아진 역시 그녀와 똑같이 욕망에 휘둘린 인물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을까. 첫 방송에서부터 <품위있는 그녀>가 끄집어내고 있는 기대감은 바로 그 ‘폭로’의 쾌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착한 의사에서 속물 의사로, <용팔이>가 그리는 세상

 

역시 주원은 의사가운이 잘 어울린다. <굿닥터>에서 자폐를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시온 역할에서 주원은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착한 의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착한 의사라는 존재는 그래서 거꾸로 병원 조직에까지 스며든 권력 시스템을 에둘러 비판하는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 의사가운을 입은 <용팔이>에서 주원이 연기하는 김태현은 이런 착한 의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돈을 준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다.

 


'용팔이(사진출처:SBS)'

용한 돌팔이’. 이것이 조폭들 사이에서 김태현이 용팔이로 불리는 이유다. 칼부림과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조폭 세계. 하지만 병원은 갈 수 없는 그들을 위해 용팔이는 어디든 왕진을 간다. 조폭들도 고귀한 생명이니 하는 의사 윤리의식 따위는 거기에 없다. 용팔이가 그 위험한 왕진을 감행하는 이유는 하나, 바로 돈이다.

 

일반외과 레지던트 3년차지만 대단한 수술 실력을 가진 덕분에 병원 과장들의 구원투수로 불려 다닌다. 그들이 잘못 해놓은 수술 때문에 죽게 생긴 환자들을 수두룩 살려내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의학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존경어린 시선이나 선배 의사들의 칭찬 따위는 없다. 그는 오로지 과장들의 승률을 높여주는 구원투수로서만 취급된다. 김태현 역시 그런 걸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그는 VIP 환자 가족으로부터 사례를 받는 걸 당연시 한다.

 

의사라고 하면 생명을 살리는 직업으로서 그려지기 마련인 의학드라마에서 용팔이는 그 모든 행위를 거래관계로 바꿔놓는다. 돈이 오고가면 어디든 왕진을 가고, 누군가를 살려내면 거기에 합당한 돈을 받는다. 그걸 갖고 의사의 윤리 운운하는 과장에게 그는 당당하다. 과장 역시 VIP병동에서는 사례비를 받기 때문이다.

 

그토록 반복되어온 의학드라마라고 해도 <용팔이>가 그리는 의사는 다르게 다가온다. <용팔이>는 의사를 성인으로도, 존경받는 인물로도, 그렇다고 오로지 병원 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야심가로도 그러지 않는다. 용팔이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그래서 거래다. 제대로 된 물적 대가를 받는 것으로 꿈이나 이상 혹은 포부를 접으며 살아가는 인물이 바로 용팔이다.

 

물론 의사라는 특정한 직업인으로서 그려지고 있지만 용팔이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여러모로 현재의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미 태생부터 결정되는 삶의 양태는 결코 노력한다고 해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된 지 오래다. 제 아무리 용쓰고 노력해도 가난하게 태어난 이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 우리네 사회의 불행한 구조이지 않은가. 그러니 포기하고 현실적이고 때로는 속물적이라고 부르는 삶을 사는 것이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물론 용팔이의 그런 속물적인 삶의 선택 이면에는 평생 투석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자신의 여동생이 있다. 그 만만찮은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돈을 벌어야 한다. 아니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조차 죽을 수도 없는 인물이다. 자신의 죽음은 여동생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속물화된 세상 속에서도 그 순수함을 지켜내던 <굿닥터>가 이제는 대놓고 속물을 선언하고 나선 <용팔이>로 돌아왔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속물의사 용팔이가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꽤 공감 가는 인물로서 받아들여지는 건 그 짧은 몇 년 사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더 절망적인 청춘들을 낳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용팔이>는 그래서 의사가운처럼 잘 차려입은 옷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지고 있지만 사실은 위선 가득한 세상에 일침을 날리는 존재로 다가온다.



'나쁜 남자', 위선적인 세상을 뒤집다

세상은 얼마나 위선적일까. 가진 자들은 뭐든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불필요하다면 언제든 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돈으로 산 세계에 진심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행복한 척 웃고 있지만 사실은 거래에 가까운 삶을 그저 버티고 있을 뿐. 그렇다면 '나쁜 남자'가 그려내는 못 가진 자들은 어떤가. 늘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순박한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못 가진 걸 갖기 위해 가진 자들 앞에서 가면의 사랑을 서슴없이 하는 존재들이다. '나쁜 남자'는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가진 자들의 품속에 억지로 던져져 홍태성이란 이름으로 살 뻔했으나, 곧 버려지면서 심건욱(김남길)이란 괴물이 탄생했다. 심건욱이 누군가의 위험한 대역을 대신하며 살아가는 스턴트맨이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심건욱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버린 해신그룹 홍회장(전국환)의 가족들에게 접근해서 하려는 복수극이 남다르다. 그는 폭력으로 물리적인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그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면의 사랑'이다. 그는 해신그룹의 막내딸인 홍모네(정소민)의 마음을 뒤흔들고, 동시에 장녀인 홍태라(오연수)에게 접근한다. 심건욱이 그토록 쉽게 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위선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홍모네는 이 돈 냄새와는 상관없는(관심이 없는) 야성적인 남자에게 빠져들고, 홍태라는 정략결혼이라는 진심 없는 삶 속에서 이 거침없는 남자에게 흔들린다.

한편 심건욱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홍태성(김재욱)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상황에 갑자기 이들 사이에 나타난 문재인(한가인)이 의도적으로 홍태성(사실은 심건욱)에게 접근할 정도의 속물근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심건욱이 진짜 홍태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의 진심에 끌린다. 하지만 유리가면을 구하기 위해 간 일본 출장에서 진짜 홍태성을 만나게 되면서 문재인의 마음은 갈등을 일으킨다. 가난한 진심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위선이라도 화려함을 택할 것인가. 이 양 갈래 사이에 놓인 이 드라마의 멜로는 따라서 심건욱이 하려는 복수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그녀가 돈이 아닌 진심을 선택하는 순간, 심건욱은 어쩌면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지도.

유리가면을 홍태성이 제 어머니 앞에서 복수하듯 집어던져 깨뜨릴 때, 순간 이 모든 가면의 상황들을 깨져버리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 홍태성에게 "네가 그렇게 깨뜨릴 물건이 아냐"하고 대드는 문재인에게 오히려 뺨을 올려 부치며 "네가 뭔데, 선을 넘어오는 거야?"하고 말하는 신여사(김혜옥). 그만큼 위선의 세계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던지면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가면처럼 약하기 그지없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인 것은 이 자본 위에 세워놓은 세계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이 심건욱이라는 사내가 적나라하게 헤집어놓는 통쾌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끈이 떨어진 자신의 백을 맨 채, 명품 백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VVIP고객을 위한 홍보용 콜렉션인지도 모르고 신여사에게 선물로 받은 옷을 돈 때문에 환불하는 장면에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부에 대한 선망과 속물근성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있다.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진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속물근성의 하나인가. '나쁜 남자'는 지금 이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가 '나쁜 남자'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없는 척 쓰고 있는 유리가면을 그가 거침없이 벗겨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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