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어가는 지역의 위기 속, ‘어쩌다 사장2’의 가치

어쩌다 사장2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그 곳에 유일한 할인마트가 그 진원지다. 그 마트에 따뜻한 캔 커피를 사러 온 근처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갑자기 얼어붙어 버린다. 저 앞에 조인성이 서 있어서다. 물론 계산대에는 차태현이 있다. 조인성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여성은 “진짜 잘생기셨다”며 “퇴근하고 또 오고 싶다”고 말한다. 왜 아닐까. 세상 따뜻하게 손님을 맞아주는 차태현에 그저 옆에서 미소만 지어줘도 설레는 조인성이 있으니. 

 

tvN <어쩌다 사장2>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 시즌1에서 화천의 작은 마을, 아담한 슈퍼를 배경으로 너무나 따뜻한 시골마을의 정을 전해줬던 프로그램.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 채워진 슈퍼의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주 간의 피로를 풀어줬던 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시즌2는 그 배경을 나주시 공산면으로 옮겼고, 슈퍼에서 살짝 규모를 키운(?) 할인마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어쩌다 사장2>는 일단 예능프로그램이니만큼 웃음을 주는 본분에 충실하다. 시즌1처럼 자그마한 시골 슈퍼인 줄 알았는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규모의 할인마트 앞에서 황당해하고 아연실색하는 차태현과 조인성의 넋 나간 모습이 그것이다. 식료품은 물론이고 문구, 공산품 나아가 정육점까지 직접 운영해야 하는데다, 하나의 독립적인 식당이라 해도 될 법한 분식집에서 찾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시즌1에서 슈퍼를 겪으며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경험치는 이 커진 규모 앞에서 거의 다시 시작하는 단계로 차태현과 조인성을 기죽인다. 포스 이용하는 법도 다시 익혀야 하고 바코드가 찍히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 앞에서 진땀 흘리며 따로 적어둔 가격표를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걸려오는 전화 주문에 맞춰 물건들을 준비해 배달도 가야되고, 고기 부위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 일일이 고기를 찾아 썰어 내줘야 하는 정육점 장사 앞에 멘붕을 겪어야 한다. 

 

규모가 커진 만큼 아르바이트생들의 수도 늘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많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예능을 아는 차태현과 조인성은 동료 배우들을 부르며 아주 작은 슈퍼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킨다. 자신들이 아마 당했을 거짓말이 그것이었을 게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그들도 마트 앞에 오자마자 “사기 당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임주환, 이광수, 김우빈이다. 마스크까지 쓴 터라 시골마을에서는 잘 알아보지도 못해 아이돌이라며 BBS라고 소개해도 그러려니 하는 상황. 심지어 김우빈은 오랜만에 ‘테레비’에 나온다고 잔뜩 꾸미고 왔는데 오자마자 앞치마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투덜대면서도 받아들인다. 

 

<어쩌다 사장2>의 초반 웃음 포인트는 시즌1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데서 오는 멘붕 상황은 마트에서의 스토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인근 음식점에 음료수를 배달하러 가는 이야기만으로도 색다른데, 이 마트는 사장님 부부가 얘기한 것처럼 직접 트럭을 몰고 가 팔 물품을 싸게 구매해 와야 하는 미션도 주어졌다. 물론 시즌1에서 중요한 재미 포인트로 잡혔던 음식 장사도 빠지지 않는다. 시즌1에서 도움을 줬던 고성의 어부 후배가 찾아와 이번에는 우동에 욕심을 내는 조인성에게 갖가지 신선한 재료들을 공수해준다. 

 

하지만 역시 <어쩌다 사장>만의 진짜 묘미는 누가 봐도 도드라지게 반짝이는 이 배우들이 나주의 이 작은 마을에 들어와 그 곳 사람들과 교감하며 전하는 그 따뜻한 온기들이다. 마트 운영이 익숙하지 않아 물건 하나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 물건이 어디 있다는 걸 알려줄 정도로 마트에 친숙한 손님들을 그 마을이 가진 도시와는 다른 끈끈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연예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존재들이라 볼 순 없겠지만 어쨌든 이 작은 마을에 이들이 찾아와 열흘 간 마트를 운영하는 일은 이 곳의 작지 않은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마트를 중심으로 마을이 활기를 띤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과의 이야기들이 전파를 타고 화제가 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차태현이나 조인성 같은 먼저 다가와 친숙한 손을 내미는 출연자들의 면면이고, 이를 따뜻한 이야기로 포착해내는 유호진 PD 같은 연출자의 섬세한 시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지만, <어쩌다 사장2>가 전하는 이 곳의 풍경들은 요즘처럼 도시화로 인해 심지어 ‘소멸 위기’까지 느끼고 있는 지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남다른 가치를 전한다. 차태현과 조인성이 한 작은 마을에서 벌이는 마트 경험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유호진 PD가 진짜 담으려는 건 그 작은 마을 사람들이 차태현과 조인성과의 만남들을 통해 전하는 따뜻한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 카메라의 시선들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그 시선 속에서 우리가 도시로만 모여 들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사진:tvN)

'어쩌다'라는 수식어가 참 어울리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tvN 예능 <어쩌다 사장>은 어쩌다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 슈퍼를 맡아 열흘 간 운영하게 된 차태현과 조인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시골마을 슈퍼에 뭐 그리 많은 사건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싶지만,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다채로운 관전 포인트들을 제공한다. 어쩌다가... 어부가 되어 <극한직업> 혹은 <도시어부>를 찍고 있는 조인성의 모습까지 확장되어 나가고 있으니.

 

<어쩌다 사장>에서 슈퍼를 운영한 지 5일차 되는 날, 조인성은 새벽부터 일어나 속초의 한 항구를 찾아간다. 벌써부터 내리기 시작한 촉촉한 비가 어딘가 불길한 예감을 드리운 가운데, 친구 찬스로 오게 된 박병은과 남주혁 그리고 그 곳의 어부인 장일석과 함께 배를 타고 파도가 예사롭지 않은 바다로 나간다.

 

<극한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넘실거리는 파도와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 속에서 출렁대는 배와 그 위에서 가자미 낚시를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간 <어쩌다 사장>이 보여줬던 한적한 마을 슈퍼의 편안한 광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자타공인 연예인 어부로 불리는 박병은조차 호기롭게 가자미 50마리를 잡는다고 했다가 그 바다 한 가운데 서자 50마리커녕 5마리도 쉽지 않겠다고 꼬리를 내리는 그 극한의 풍경은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과는 사뭇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이처럼 다소 센 장면들(?)과 <어쩌다 사장> 본연의 평화로운 슈퍼의 풍경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실시간 조업현황(?)을 배 위에서 알려주고, 그것을 마치 스포츠경기 스코어 적듯 슈퍼에 마련해 놓은 벽보에 기록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그 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쩌다 어부'가 된 이유가 마을주민들을 위해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서기 위해서라는 걸 강조한다. 매일 대게라면만 끓여주다 보니 이제 좀 질릴 수 있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는 것.

 

사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한적한 시골 슈퍼와 파도가 넘실대는 극한의 배를 오가는 영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다 사장>은 처음부터 '대게라면'을 메뉴로 넣으며 고성의 어부친구 장일석을 복선처럼 소개한 바 있고, 그 메뉴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가게 되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슈퍼의 이야기가 다소 정적이었다면, 이제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의 중간 지점에 왔을 때 바다 조업의 동적인 장면을 넣는다는 건 여러모로 전략적인 포석이 아닐 수 없다.

 

유호진 PD가 <어쩌다 사장>을 통해 보여주는 다채로운 맛은 그가 시골슈퍼라는 한 공간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얼마나 섬세하게 다양한 재미요소들을 찾아내는가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슈퍼에 적응하는 과정이 주는 재미를 보여주고, 그 과정 속에서 그 곳을 오래도록 운영해온 슈퍼 사장님을 공감하게 되는 정서적 푸근함을 선사한다.

 

게스트들은 오는 이들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어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박보영처럼 그 곳에서 몇 년 간 알바를 했을 것처럼 똑부러지는 모습이 주는 흐뭇함이 있다면, 윤경호처럼 자기도 모르게 계속 일을 찾아 하면서 퇴근하지 못하는 알바생의 마음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물론 신승환처럼 남다른 '식욕'으로 '먹방'의 재미를 보여주는 게스트도 있고, 박병은과 남주혁처럼 <극한직업>의 살풍경 속에서도 남다른 의리를 보게 해주는 게스트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게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색다른 이야기와 더불어, 차태현과 조인성이 그 곳 마을에 동화되어가는 즐거움 또한 <어쩌다 사장>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조인성이 보건소를 찾아 슈퍼를 찾았던 한의사에게 침을 맞고, 슈퍼집 반려견 검둥이와 함께 마을 산책을 나선 차태현은 슈퍼에서 만났던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단 며칠 전만 해도 전혀 모르는 남남이었던 그들이 이웃처럼 느껴지는 그 변화가 주는 흡족함이라니.

 

시골 슈퍼 사장에서부터 어쩌다 어부까지 되어버린 출연자들의 체험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진다. <어쩌다 사장>이라는 제목의 '어쩌다'라는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작은 시골슈퍼에서 그런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잘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됐다는 걸 담고 있다. 차태현과 조인성에 빙의되어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시청자들도 '어쩌다' 그 곳의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단지 노동의 체험이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는 정서적 체험까지 포함하고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사진:tvN)

리얼 버라이어티 그 후, 언리얼과 탐험 예능

도대체 이 낯선 예능 프로그램들은 뭘까. 지상파 예능들 속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두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두니아>와 KBS <거기가 어딘데>다. 이게 과연 지상파 예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두 프로그램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물론 그 낯설음 때문에 지상파 시청률로는 낮은 3%대(닐슨 코리아)를 유지하고 있지만, 화제성과 반응은 뜨겁다. 그 도전이 현재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두니아>와 <거기가 어딘데>의 연출자들이 각각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을 풍미한 MBC <무한도전>과 KBS <1박2일>에서 잔뼈가 굵은 PD들이라는 점이다. <두니아>의 박진경, 이재석 PD는 우리에게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유전자의 뿌리는 <무한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들이다. <거기가 어딘데>의 유호진 PD는 <1박2일>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 PD이기도 하다.

이들을 뿌리를 들여다보면 지금 이들이 실험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도전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두니아>는 아예 대놓고 ‘언리얼 버라이어티’라고 새로운 프로그램 형식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건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현재, 새로운 대안으로서 ‘언리얼’의 세계를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게임의 세계로 익숙한 ‘가상현실’ 세계다. 게임의 공간 같은 두니아라는 ‘언리얼’ 세계를 던져놓았기 때문에(그 곳은 그래서 공룡이 출몰하는 곳이다) 출연자들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애매한 지대에 놓이게 된다. 일정 부분은 대본을 통한 가상 연기를 보여주지만 다른 부분은 진짜 이 낯선 섬에서의 생존과정을 담아낸다. 그래서 한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유노윤호가 순간 두니아라는 섬으로 워프하면서 그 곳에서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자전거가 그와 같이 정글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그 자전거의 바퀴를 불 위에 올려놓고 조리판처럼 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던 예능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새로운 경험들이 두니아라는 세계에서는 가능해진다.

<거기가 어딘데>를 통해 유호진 PD가 하필이면 오만의 아라비아 사막을 찾아가게 된 건 그 곳이 아직까지 예능 프로그램이 가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박2일>이 국내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어 시도하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꿈꾸고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난 사이에 너무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외 곳곳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은 사막 탐험을 시도하게 됐다는 것.

사막이라는 낯선 공간을 선택한다는 건 다만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예능 프로그램이니만큼 새로운 예능 문법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는 독특한 자막과 편집을 통해 웃음은 물론이고 의미까지도 잡아내는 색다른 예능의 방식을 끌어낸다. 이것은 <두니아>가 언리얼이라는 가상현실 공간을 사용하기 때문에 게임적인 편집과 자막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두니아>와 <거기가 어딘데>는 물론 지상파로서는 성공했다 말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고 있지만, 그 시도가 포스트 <무한도전>과 <1박2일>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당장의 시청률보다는 이제는 지나가버린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 그 후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사진:KBS)


‘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