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의 중계 제약은 어떻게 기회가 될까

'남자의 자격'은 남아공에 가서 과연 무엇을 찍어올까. 과거 이경규가 '일밤'에서 월드컵 경기장을 무시로 드나들던 시절이라면 이런 질문은 전혀 의미 없는 우문이었을 게다. 게다가 이건 사실상 '남자의 자격'판 '이경규가 간다'가 아닌가. 예능의 새로운 핵으로 떠오른 '남자의 자격'에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예능의 지존, 이경규가 만났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하지만 SBS가 월드컵을 단독중계하게 된 현 상황에서 이 질문은 꽤 의미심장하다. 경기장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경기 장면을 찍어서 방영할 수 없는 상황. 스포츠가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선수들과 그걸 응원하는 관객들 사이의 교감에서 그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볼 때, 월드컵을 소재로 한 '남자의 자격'이 경기장의 선수들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은 말 없이 예능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남자의 자격'은 남아공까지 날아가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남자의 자격'의 이명한 프로듀서는 먼저 이런 상황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러한 제약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경기장을 직접 찍으며 동시에 보여줄 수 없는 상황,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중계의 어려움이 오히려 예능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장에서는 경기장면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멤버들이 예능식으로 해설을 하고, 그것을 국내에서 이용수 해설위원이 따로 경기장면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을 붙이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시간 경기 해설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라디오 방식에 이원방송으로 제약을 넘어보겠다는 것. 분명 이 방식은 꽤 괜찮은 우회의 방법이지만 그래도 어떤 불편함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이 불편함 자체를 리얼하게 소화해내면 그것은 예상 밖의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스포츠 중계가 될 필요는 없다. 어쨌든 SBS의 단독중계권으로 인해 MBC와 KBS는 사실상 월드컵 중계방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제약은 중계방송 같은 스포츠 프로그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SBS가 2분 분량의 영상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타 방송사들은 월드컵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남자의 자격'이 시도하는 이 우회 방식의 월드컵 프로그램은 예능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약을 기회로 삼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남자의 자격'이 남아공으로 날아간 것은 거기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템이 그 중계의 제약이 주는 불편함을 기본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은 어쩌면 이 코너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한 프로듀서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열심히 응원을 하는 아저씨들을 통해 그들의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어려운 상황이 주는 불편함을 시청자들과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만일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남자의 자격'은 어쩌면 일거양득 그 이상의 결과를 남아공에서 가져올 지도 모를 일이다.

기부 프로그램의 새로운 실험, '올리브'

"비둘기는 저녁 때가 되어 되돌아왔는데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있었다. 그제야 노아는 물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홍수로 배 위에서 절망적인 나날을 버텨내던 그들은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올리브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기부 프로그램 '올리브'에는 그 비둘기와 그 올리브가 모두 존재한다. 비둘기가 기부자라면 올리브는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닿는 곳은 지금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사연 하나씩을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출연자들이 직접 필요한 금액을 적어보이는 모습은 조금은 직설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어떤 진실에 가까워보인다. 이것은 힘겨운 현실에 처한 이들을 그저 말로 위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누군가는 고상하게 '돈'이라는 말을 피하겠지만, 사실 이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돈이다.

하지만 돈을 적어내고 그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드러내고 그 사연을 들어주는 이가 있으며, 거기에 선선히 돈을 쾌척하는 기부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부의 선순환을 희망하게 만드는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올리브'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출연진들이 전해주는 사연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낮은 곳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날치기범을 잡은 자율방범대원이지만, 바로 그 일 때문에 오른쪽 어깨 인대 파열을 입고 손을 사용할 수 없어 횟집을 2년 여간 방치해오다 왼손으로 다시 칼을 잡게 된 이도 있고, 두석장을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나무조차 살 수 없게 된 이도 있으며, 고2 때 아들을 낳아 이제 갓 스물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통해 힘겨운 삶의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에게 물어다 준다.

한편 기부자를 통해 도움을 받은 그들은 자신들 또한 자신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한다. 다친 오른손 때문에 서툴게 왼손으로 회를 썰며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던 남자는 다음날 새벽 3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시장에 나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왔던 곳인데 어제와 오늘이 달라 보입니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연봉 1천5백만 원도 안 되는 자신의 일을 선뜻 아들에게 권하지 못한 중요무형문화재 두석장 보유자는 다음 날 신바람 나게 목재상을 찾아간다. 그것은 희망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다.

프로그램 시작에 MC 이경규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건 예술"이라고.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것을 직접 목도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건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힘이다. 의외로 공감의 힘은 강하다. 어떤 사연을 가진 이에게, 또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이에게 공감할 때, 이미 사회는 그 변화가 시작됐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주 위에서 비둘기가 물어다 준 올리브를 보며 느꼈던 그 희망이 다시 삶을 살아가게 해주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의 올리브였던 적이 있느냐고.

'남자의 자격', 사랑받을 자격을 얻은 아저씨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어디서든 거침없이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는 이경규. 저질 체력으로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하는 김태원. 그런 모습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달라붙는 자막. '아! 아저씨...!' 이 짧은 장면과 자막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아저씨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이 자막은 다른 의미 하나를 더 덧붙인다. 그것은 그저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아저씨가 아니라, 스스로 나이 들어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귀여운 솔직함과 그러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긍정적인 아저씨의 이미지다.

물론 1년 전, 이들은 그저 아저씨였다. 이경규는 여전히 버럭 대면서 독주하려 했고, 몇몇 토크쇼를 통해 예능감을 선보였던 김태원은 남다른 토크 센스를 과시했지만, 체력이 필수인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거의 시체 수준이었다. 김태원이 국민할매로 등극하면서 국민약골 이윤석은 묻혀버렸고, 김국진은 이경규 잡는 역할을 시도했으나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김성민은 아직 그 4차원 캐릭터가 이해되지 못했고, 윤형빈은 쟁쟁한 선배들 아래서 기를 펴지 못했으며, 이정진은 아예 캐릭터가 없었다. 그러니 이 캐릭터와 팀워크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아저씨들의 매력은 쉽게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들이 24시간 감금(?)되어 금연을 시도하고, 해병대에서 안 되는 몸을 굴리고, 무엇보다 뜨거운 남자의 눈물을 선보이면서 그 매력은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 위에서 서로의 이름을 외치고, 굳어진 몸으로 청춘들과 소통하고자 2PM의 춤을 연습하며, 하나로 연결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그들의 형제 같은 팀워크가 빛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웨이크 보드를 타면서 새로운 취미를 도전하며, 신입사원으로 돌아가 그 고단함을 통해 청춘의 꿈을 되새겼고, 그 아저씨들의 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고, 감동적인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며,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더 이상 그저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물론 여전히 모이면 17대1의 전설을 논하고, 때론 건강검진을 무슨 공포체험처럼 여기는 입만 열면 허풍에 겁 많은 전형적인 아저씨들이지만, 때론 젊은이들과 함께 걸 그룹에 열광하기도 하며, 때론 만학의 꿈을 꾸기도 하는 젊음을 잊지 않은 아저씨들이기도 하다. 이 수많은 아저씨들의 모습을 1년 동안의 갖가지 도전과제를 통해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막연하고 전형적인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다. 세월이 청춘을 깎아냈어도 아저씨들 역시 현실에 힘겨워하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하는 남자들이었다.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남자.

'남자의 자격' 1년이 가진 의미는 거기 출연하는 일곱 명의 남자들이 아저씨 그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며 우리의 가슴 속에 들어왔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아가 현실에 치이고, 세월에 치여 이제는 단단한 돌멩이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여전히 가녀리고 따뜻한 우리네 실제 아저씨들의 이미지를 되찾아준 것에 진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가족과 사회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아저씨들이 여전히 꿈을 향해 달려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가 '사랑받을 자격'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데 그 가치가 있다. 그러니 1년을 통해 자격 있는 남자가 된 아저씨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남자의 자격' 1년, 우리 주변의 아저씨들, 그들은 모두 자격 있는 남자가 되었다.

'남자의 자격'이 걸어온 일 년

1. 남자 그리고 두 번 결혼하기 : 김태원의 두 번째 결혼식. 이외수 멘토로 출연
2. 금연 : 24시간 감금(?) 버라이어티 시도
3. 해병대 병영체험 : 적극적인 김성민, 약골 이윤석 넘는 국민할매 김태원
4. 남자 그리고 육아체험 
5. 남자 그리고 꽃중년 되기
6. 남자 그리고 남자의 눈물 : 눈물도 리얼로 승화한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시도
7. 스피치 훈련
8. 일곱 남자들의 아이큐가 궁금하다
9. 남자, 1대100에 출연하다
10. 남자 그리고 하늘을 날다 : 김성민, 도움 없이 혼자 패러글라이딩 성공
11. 남자 그리고 아르바이트의 추억 : 이경규 중국집 아줌마에게 굴욕
12. 남자 그리고 젊은 그대 : 2PM 춤 연습, 이게 춤인지 뭔지...
13. 남자 그리고 자전거 여행
14.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남자들의 자세 : 17대1의 전설. 남자들의 허풍
15. 남자들의 아지트 : 아지트를 짓기 위한 못질 버라이어티
16. 수상스포츠에 도전하다 : 끝없이 쓰러지면서 포기 않은 이경규의 웨이크 보드 도전
17. 신입사원 도전기 : 엉뚱한 아저씨들의 신입사원 체험기
18. 동갑내기 이성친구 : 여자의 자격?
19. 남자의 자격표 위대한 밥상 : 어머니표 밥상 차리기
20. 남자 하늘을 날다2 : 전투기 조종사 체험. 쓰러진 이윤석, 하늘 난 김성민, 김국진
21. 남자 그리고 아내가 사라졌다 : 남자들의 살림하기
22. 남자 그리고 09학번 : 만학의 꿈
23. 남자 달리다 : 마라톤으로 보여준 아저씨들의 마이웨이
24. 남자의 자격증 : 1년 프로젝트 시작
25. 송년의 밤 : 일일찻집
26. 장수만세 : 공포의 건강검진
27. 남자 지리산을 가다 : 설경까지 선사한 지리산 등반 도전
28. 1980년 그때를 아십니까 : 추억의 시간여행 속으로
29. 남자 그리고 자동차 : 자동차 정비
30. 체험 삶의 현장 : 현장에서 먼지 덮인 밥 먹기. 땀방울의 현장
31. 남자 그리고 아마추어 : 남자의 자격 밴드 이야기
32. 남자 열광하라 : 아저씨들 소녀시대와 카라를 외치다
33. 널 위해 준비했어 : 선물
34. 단식24시 혹은 이경규 몰래카메라

이경규, 칼날이 아닌 칼자루가 되어야

'남자의 자격' 초반부에서부터 이경규는 확실한 보검이었다. 한동안 위기설을 겪고 난 후여서인지 그는 프로그램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남달랐다. 새로운 예능의 형식으로 자리한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적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늘 전면에 서서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의 방식을 버리려 노력했다. 김국진 앞에서 이경규는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고, 지나치게 열성적인 모습으로 이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연령들에게 피해를 주는 김성민에게 당하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주었다.

50대 이경규의 이런 자세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음악으로 치면 독주보다는 합주를 해야 하는 형식이며, 그 합주에서 함께 출연하는 출연진들과의 적절한 토크 배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열이나 개그의 공력으로 독보적인 이경규라는 보검은 자칫 잘못하면 같은 아군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당하고 낮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경규의 노력은 그 자체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의 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것을 위해 '남자의 자격' 제작진 역시 초반부에 어떤 장치를 마련하려 했던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멘토로서 이외수나 남진 같은 대선배를 세워두었던 점이다. 이 멘토들은 외부에 서서 '남자의 자격' 팀원들이 비교적 공정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경규는 이들 멘토들에게도 서슴없이 속내를 끄집어내는 공력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무너지고 초라한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프로그램의 팀워크를 살렸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은 어느 순간부터 멘토가 등장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이런 균형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경규는 다시 프로그램의 중심부에 섰다. 그와 형 동생하며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김태원의 캐릭터는 도드라졌고, 그와 마치 톰과 제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김성민의 캐릭터도 부각되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의 체력에 몰려 지쳐있는 모습과 늘 상반되는 자세를 보여주는 김성민은 이 프로그램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반면 본래부터 수비형 토크가 장기지만, 유독 '남자의 자격'에서만은 이경규를 향한 공격형 토크를 했던 김국진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허약 캐릭터이자 이경규의 집사 캐릭터인 이윤석은, 시체 캐릭터이자 새로운 이경규의 오른팔이 된 김태원 앞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윤형빈은 왕비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선배님들의 개그에 리액션을 하는 캐릭터로 굳어져갔다. 이정진은 웃기지 못하는 예능인으로서의 캐릭터도 걸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물론 캐릭터는 그렇게 쉽게 잡히는 것도 아니고,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런 모습들이 앞으로도 그대로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는 '남자의 자격'의 도드라진 캐릭터들, 즉 이경규와 김태원, 김성민이 다른 캐릭터들의 빈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다. 2PM의 춤을 배워 UCC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면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얼마나 이 프로그램의 동력이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삶이 그대로 묻어난 캐릭터에서 나오는 김태원의 촌철살인, 뭐든 열심히 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김성민의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이경규의 예능감은 '남자의 자격'의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균형감각이다. 이 존재감이 너무나 드러나는 캐릭터들과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나머지 캐릭터들 사이의 균형감각. 이것은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대변되는 달라진 예능의 환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집단 MC체제가 성립된 이유는 그만큼 다양하게 시청자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시청자들은 늘 전면에 나서서 웃기는 자만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묵묵히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고 받아주는 캐릭터 역시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김C가 현재 예능의 블루칩으로 부상한 것은 그의 탁월한 예능감 때문이 아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처럼 지속적으로 봐야하는 프로그램에서 캐릭터는 예능감보다 우선적인 것이 인간적인 매력이다. 인간적인 매력의 캐릭터는 마치 밥 같아서 예능감으로 무장한 맛깔난 반찬 같은 캐릭터들보다 더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예능적인 존재감이 덜 하더라도 그 캐릭터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 부각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캐릭터들 간의 균형 감각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이 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경규는 실로 혼자 버라이어티쇼를 해도 풍부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혼자 선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죽음과 같다. 미약하지만 같은 팀원의 모습들 속에서 캐릭터를 발견해주고 뽑아내주는 역할 또한 그의 몫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발현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 스스로 가장 낮은 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도 살리고 프로그램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일일 아르바이트 체험에서 이경규가 중국집 주인아주머니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패러글라이딩처럼 그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몸소 보여줄 때 이경규라는 개그맨은 위대해 보인다. 나이 오십에서도 여전히 청년의 정열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 예능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고, 지금도 그 획을 계속 긋고 있는 진행형 개그맨이다. 하지만 대단한 개그맨이 위대한 개그맨이 되려면, 그 높은 곳에서 늘 바닥으로 걸어 내려와야 한다. 이경규라는 보검은 무엇이든 자를 수 있기에, 그 스스로가 칼날을 쥐고 다른 이들이 칼자루를 쥐게 해주어야 빛이 난다. '남자의 자격'은 그런 면에서 이경규에게는 '위대한 개그맨의 자격'을 묻는 시험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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