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어른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오는가

 

어르신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나오게 될까.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코린토스로 가는 버스터미널까지 가려고 오른 택시에서 작은 사고가 생겼다. 택시 뒷자석 맨 안쪽으로 최지우가 타고 가운데 이순재가 그리고 마지막에 신구가 타면서 문을 닫는 순간 갑자기 이순재가 고통을 호소한 것. 이순재의 손이 택시 문에 끼인 채 닫힌 것이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급히 문을 열고 손을 빼냈지만 신구와 최지우는 어쩔 줄 모르고 이순재의 손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괜찮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며 애써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일부러 지어보이며 심지어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해 보이는 모습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그에게 배어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의 모습은 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꽃할배들의 맏형이지만 그는 한 번도 동생들을 불편하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차를 타도 가장 불편한 맨 뒷좌석에 오르면서 아무 데나 앉으면 어때하고 얘기하는 데서는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택시에서의 사고도 자신이 굳이 불편한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이순재는 특히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서진이 알아서 척척 다 하는 유능한 짐꾼(?)이라는 걸 그간 경험해온 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순재도 최지우가 홀로 가이드로 나선 코린토스 여행에서는 늘 그녀의 옆에 자리해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길을 잃을까봐 미리 나서서 버스 타는 곳까지를 챙기고 버스 티켓을 끊을 때도 마치 딸을 챙기는 심정으로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최지우가 앞에서 하는 것을 뒤에서 남모르게 도와주려는 그런 모습. 그것은 부모의 마음 그대로였다. 스스로 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도 늘 뒤편에서 지지해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느껴졌을까. 최지우는 인터뷰를 통해 이순재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표시했다. “예전부터 너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왜 모든 후배, 선배들이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런 그녀에 대해 이순재는 딸 같다는 살가운 마음을 드러내주었다.

 

사실 그저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일 수는 없다.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이에 기대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깊어진 한숨은 그래서 진정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어른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은 배려심에서 나온다. 그 많은 세월동안 쌓여진 삶의 경륜들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한 배려로 이어질 때, 그것은 어른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어른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맏형이지만 드러내려 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이순재에게서는 분명 이 시대 대중들이 희구하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꽃할배>가 담아내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아이고 최지희가 마흔을 넘겼어?” 박근형은 이름이 가물가물한 듯 최지우를 최지희로 착각했다. 하지만 박근형이 하려고 한 말에서 묻어나는 건 최지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현장 어디에선가 만났을 최지우는 훨씬 더 젊은 시절의 그녀였으리라. 그러니 박근형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통해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최지우를 통해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을 게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그리스로 가는 경유지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아침 일찍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나누는 박근형과 신구의 대화 속에는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난다. “학교 같은 덴 안 가실 생각이우?” 갑자기 박근형이 신구에게 향후 계획 같은 걸 묻는다. 그러자 신구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현장에 있는 게 제일 나아.”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지만 여전히 그 말 속에는 일에 대한 열정 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던지는 쓸쓸한 몇 마디. “근데 우리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섭외가 없어. 거의- 지금 불암이 하고... 그리고는 없나? 70대에.” 그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꽃보다 할배>PD는 거기에 이런 자막을 붙여 넣는다. ‘동년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현역에서 왕성히 뛰고 있는 배우들이 어디 흔할까. 그나마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4인방이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동년배들일 것이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하고 말 꼬리를 흐리는 신구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한없이 느껴진다. 여전히 청년 같은 박근형은 그 아쉬움에 덧붙여져 이런 세태에 대한 쓴 소리가 나온다. “나이 먹은 배우들이 자꾸 없어지니까. 많아야 그냥 쓸래도 야 그 양반 나이 높으니 무시하면 안돼, 이렇게 하지. 에 됐어 됐어. 냄새 나.” 최고의 어르신들이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헛헛함이 있게 마련일 것이다. 우리네 현장이 어디 나이를 챙기던가.

 

그러자 신구는 박근형을 다독이며 애써 긍정한다. “나이 80에 또 뭘 바라.” <꽃보다 할배>의 배낭여행을 통해 술 한 잔 걸치고 그토록 흥에 겨운 모습을 보여주던 신구의 마음 한 자락이 슬쩍 느껴진다. 어쩌면 어르신들은 그렇게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애써 나이 들어가며 점점 사라져가는 동료들과 점점 젊은 친구들에게 밀려나는 듯한 그 기분을 달래셨을 지도 모르겠다.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적어지는 서운함.’ 자막이 말해주듯 그 서운함은 나이 들어가며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일 게다.

 

<꽃보다 할배>가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이 서운함을 담아낼 줄 아는 예의에서 비롯되는 일일 것이다. 이 어르신들의 배낭여행을 담는 프로그램은 그렇게 두바이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 나눈 소소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그들의 삶과 소회를 담아낸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긍정 또한 담겨져 있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삶을 이들의 여행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동료들이 주는 서운함과 아쉬움은 그래서 더더욱 놓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을 끄집어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들의 미래일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속 해서 보여지기를. 우리의 마음이 서운해지지 않게.

 

나영석 PD의 연결고리, 이유 없는 출연은 없다

 

시청자분들이 프로그램에 누가 나올 때는 당연히 심리적인 장벽 같은 걸 느끼기 마련이죠. 그래서 왜 그 사람이 나왔는가를 공감하게 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오랜만에 만난 나영석 PD에게 그가 가진 캐스팅의 노하우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굳이 캐스팅 노하우를 묻게 됐던 건 그가 지금껏 프로그램을 통해 보인 출연자들의 면면이 실로 놀랍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사진출처:tvN)

그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라는 지금껏 예능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던 어르신들을 젊은 세대들도 좋아하는 친근한 인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서진이라는 나영석 PD의 페르소나(?)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툭탁대는 재미에 이 프로그램을 본다는 시청자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 연결고리는 <삼시세끼>로 이어졌다. <꽃보다 할배>에서 요리 프로그램 운운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가게 된 이서진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서진은 <참 좋은 시절>에서 함께 출연했던 옥택연과 함께 전원의 유기농라이프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옥택연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삼시세끼>에 안착했다.

 

<삼시세끼> 강원도편은 이후 게스트로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참 좋은 시절>에 함께 했던 배우들, 윤여정에서부터 최화정, 류승수, 김지호, 김광규까지 줄줄이 프로그램에 합류시켰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으로 관계를 맺게 된 손호준도 이때 등장했고, <12>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최지우도 <삼시세끼>에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손호준은 <삼시세끼> 어촌편으로 또 최지우는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으로 이어졌다.

 

나영석 PD의 캐스팅 노하우를 보면 이렇게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걸 알 수 있다. 즉 거기 생뚱맞게 갑자기 등장한 인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심지어 밍키라는 <삼시세끼> 강원도편에 등장했던 강아지가 어촌편의 산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즉 밍키는 이웃주민이 키우는 강아지로 자연스럽게 강원도편에 들어왔다. 만일 뜬금없이 들어온 강아지였다면 시청자들로서는 심리적인 장벽을 느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 밍키의 자연스러운 등장은 어촌편에서 갑자기 산체가 등장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삼시세끼>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을 충분히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영석 PD는 낯가림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에 그리 쉽게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보통의 대중들이 갖는 타인에 대한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심리적 저지선은 나영석 PD의 캐스팅에 있어서 하나의 넘어야할 산처럼 다가오는 면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시청자들도 생뚱맞은 인물의 갑작스런 출연을 피하고 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최지우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나영석 PD의 캐스팅 노하우가 투영된 결과다. 최지우는 이미 <삼시세끼> 강원도편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꽤 괜찮은 싹싹한 면을 보여준 바 있다. 여기에 이서진과의 밀고 당기는 썸 같은 분위기도 한 몫을 차지했다. 그러니 그녀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로서는 심리적 저항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일 게다.

 

나영석 PD가 말하는 이 캐스팅에 있어서의 연결고리들은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를 섭외하는데 있어서 참고할만한 일이다. 이제 낯선 출연자들의 틈입을 시청자들은 그냥 바라봐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 대한 간파는 나영석 PD의 승승장구의 상당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착하지>, KBS가 발견한 새로운 성공 방정식

 

결국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수목극을 평정했다. 다중인격의 캐릭터들이 현빈과 지성이라는 연기자의 몸을 빌어 수목극 경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슬며시 들어온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이 드라마의 시작은 아주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마치 하나의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왜 이런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주말이나 일일이 아닌 주중에 포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하고도 신선한 실험을 예감케 했다.

 

또 놀라운 점은 이 평이해 보이는 드라마의 대단한 캐스팅이다.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 채시라, 이하나도 모자라 손창민, 박혁권, 서이숙 같은 쟁쟁한 중견들이 포진하고 여기에 김지석이나 송재림 같은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받는 배우까지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전세대를 다 커버하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건 여러모로 김인영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에 대한 배우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로 김인영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닌 대담한 실험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가족드라마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는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특별함들을 극적으로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그저 나쁜 여자들이 아니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인가에서도 드러난다.

 

나쁜 여자착하지 않은 여자는 같은 말 같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착하지 않은 여자착하다라는 표현이 반어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은 착하지만 여러 사정과 환경에 의해 착하지 않게 된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이 많은 캐릭터들에 주목시키는 방식은 이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깨는 방식과 유사하다. 드라마 초반 김현숙(채시라)은 엄마 강순옥(김혜자)이 평생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먹고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수배되는 입장에까지 처한다. 이 때만 해도 김현숙은 가족드라마가 흔히 그려내는 민폐 캐릭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츰 이 착하지 않은 여자의 학창시절 선생님 때문에 당했던 왕따와 퇴학 이야기가 나오고, 때론 대책 없이 정의로운 정 많은 심성이 드러나면서 이런 선입견은 깨져버린다.

 

강순옥은 절망한 김현숙이 죽은 아빠의 무덤 앞에서 자살기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모란(장미희)이 과거 남편의 내연녀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발로 가슴을 차 기절시킨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순옥은 꽤 모진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깨어난 장모란을 강순옥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지내려고 한다. 겉으로는 모진 척 하지만 그녀 역시 남다른 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 같은 외피를 갖고 있어 연령대가 높은 세대들을 보다 쉽게 끌어들이면서도 그 안에 미니시리즈의 극적 스토리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어 젊은 세대들까지 포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조용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수목극 평정은 KBS라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틀을 가져오면서도 거기에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사실 KBS의 주중 드라마들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것은 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장르 드라마 실험을 그저 비슷하게 따라하다 보니 채널의 특성과 부딪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쩌면 KBS가 찾아낸 주중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은 아닐까 싶다. 꼭 장르를 해야 세련된 것이 아니고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구태의연한 것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착하지 않아 보이던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이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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