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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정 작가가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둔 까닭

역대급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사실 쉽게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도현정 작가가 아동학대라는 이 특수한 범죄를 그리 쉬운 방식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장 흔한 스릴러의 문법으로 아동학대를 당하는 피해자가 등장하고, 그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이어지는 그 고전적인 방식을 도현정 작가는 쉽게 취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가 선택한 건 미로였다. 의문의 사건들이 터지고, 각각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동일한 패턴이 담긴다. 그것은 살해된 자가 있는 곳에 시가 있고 아이가 있다는 공통점이다. 보통 스릴러는 병렬적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에 집중하거나, 범인과 형사 간의 끝없이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담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각각의 사건들이 관련 없는 듯 터지고, 작가도 쉽게 그 전말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볼수록 미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여기에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으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는 차우경(김선아)과 이 사건을 추적하는 강지헌(이이경) 형사의 시점이 더해지면서 이 미로는 더 복잡해진다. 차우경은 녹색 옷을 입은 소녀를 계속해서 환영으로 보게 되고, 그 소녀가 이끄는 곳에서 연쇄적으로 터지는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흔한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복잡한 미로 방식의 전개다. 

하지만 이 미로는 기묘하게도 시청자들을 잡아 끌어당긴다. 그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아동학대와 관련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그 뒤에 붉은 울음이라는 조종자에 의해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기서도 복잡한 감정에 휘말린다. 그것은 범인이라고 하면 응당 잡혀야할 악역이어야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 악역은 범인이 아니라 범인에게 살해당하는 어른들이다. 그들은 끔찍한 아동학대를 해왔고, 결국 붉은 울음에 의해 응징되는 것. 

한울센터에서 일하던 이은호(차학연)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고 차우경에게 총을 겨눠 결국 강지헌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그 감정은 복잡해진다. 범인을 잡아 통쾌하기는커녕 차우경과 강지헌이 그러하듯이 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태주(주석태)가 이은호의 형이었고 그가 당한 지옥 같은 학대를 듣고는 붉은 울음이 되어 저 비정한 어른들을 응징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형사 강지헌이 윤태주가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 “용서 못했을 것”이라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 또한 공감하는 대목이다. 

어느새 시청자들은 이 미로를 헤매며 여러 사건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벅찬 책임감’이라는 걸 실감한 강지헌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응징하지는 않는다”는 강지헌의 이야기는 또한, 차우경이 기억을 되찾고 새엄마인 허진옥(나영희)이 죽게 한 친동생이 바로 녹색 옷을 입은 소녀라는 걸 알고도 응징하지 않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차우경이 격분하여 허진옥을 향해 망치를 들었을 때,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끌어안아 이를 막은 건 바로 그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환영이었다. 

사이다도 없고 그렇다고 고구마도 아니다. 다만 미로 속에서 헤매다 그 미로의 구조를 다 알게 된 마지막에 이르러 그걸 설계한 도현정 작가의 진심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이 작가가 얼마나 아동학대 문제가 야기하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들의 지옥을 깊이 들여다보려 했고, 한 마디로 표현해낼 수 없는 그 복잡한 감정을 미로를 통해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껴보게 하려 애썼는가가 느껴지는 데서 오는 뭉클함이다. 작가는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뒀고,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 미로에 빠져들었다. 도현정 작가에 입덕했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허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껴지게 하는 드라마였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붉은 달 푸른 해’, 아동학대자들에 대한 응징 그 양가감정

누가 봐도 아동학대를 해온 부모라는 게 뻔해 보이지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그 광경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학대를 당해온 하나를 친딸이라며 개장수 고성환(백현진)이 굳이 데려가는 그 모습을 보는 차우경(김선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위험할 때 누르면 자신이 찾아가겠다며 아이의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채워주며, 고성환에게 자신들이 항상 주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장면은 <붉은 달 푸른 해>라는 문제작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동학대는 그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는 가해사실을 부인하기도 하고, 그걸 은폐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그 부모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과연 이런 부모들을 부모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를 차에 태우고 가는 길에 고성환은 “그걸 말했냐”고 물었고, 아이는 얘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했냐고 되묻는 고성환에게 아이는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린다”는 끔찍한 말을 했다. 아이가 당한 학대와 그걸 숨기려던 이유가 이 대화 속에는 들어 있었다. 

하나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이터에서 놀다 아이들이 발견한 죽은 새를 하나가 묻어주는 장면은 그 학대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예감하게 해준다. 하나는 죽은 무언가를 묻어주었거나 묻는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죽은 새를 그렇게 묻어줬던 게 아닐까. 

결국 개장수 아빠와 집으로 가게 된 하나는 그 날 밤 끔찍한 소리를 듣고는 차우경에게 전화를 건다. 차우경은 아이가 또 학대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 밤에 차를 몰아 하나의 집까지 달려오지만, 아이가 들은 소리는 개장수 아빠가 끔찍한 응징을 당하는 소리였다. 그걸 보게 된 차우경 또한 그 응징자에 의해 납치됐다. 강지헌은 과연 차우경과 하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와 그 부모를 응징하는 누군가를 보는 감정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그런 부모도 부모냐며 공분을 일으키지만 그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시원하다기보다는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을 들여다볼 때 느끼게 되는 양가감정이다. 심지어 죽이고픈 살의까지 느껴지는 분노가 피어오르지만, 그런 살의가 갖는 불편함 또한 느껴지기 마련이다.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보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붉어서 해인 줄 알았는데 달이었다는 것이고, 푸르러서 달인 줄 알았는데 해였다는 의미. 부모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이었고, 반대로 잔혹한 연쇄살인범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들을 처단하고 아이를 구해내려는 이였다는 것. 차우경은 과연 어느 쪽일까. 또 미스터리한 인물인 이은호(차학연)는?(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문제작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서 느끼는 끔찍한 현실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미궁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안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고, 또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오랜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이를 문제작이라고 말하는 건,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색다른 길을 찾아감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그 미궁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미궁 속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의 독특한 힘 때문이다.

드라마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한 여러 개의 살인사건들을 시작부터 툭툭 던져놓는다.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형을 살고 나온 박지혜(하주희)가 폐놀이공원에 세워진 자동차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고, 그를 죽인 범인은 그의 범죄를 혐오하던 의사로 역시 자해 끝에 자살하고 만다. 두 번째 사건은 평소 아내와 아이를 학대해오던 김동숙(김여진)의 남편이 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남편을 죽인 걸로 의심받던 김동숙은 ‘붉은 울음’이라는 인물이 남편 살해 방법을 알려줬다고 증언한다. 세 번째 사건은 주인공인 차우경(김선아)이 일하는 한울 아동센터 창고에서 미라가 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 미라가 된 여자에게는 호적 신고가 되지 않은 딸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

사건들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 사건들이 동일한 키워드들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그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건 죽음과 아이 그리고 시다. 첫 번째 사건의 희생자인 박지혜의 집에서는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인 ‘보리밭에 달 뜨면’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었고, 자동차 변사사건에서 죽은 남자가 갖고 있었던 300만원이 말려진 신문에는 ‘짐승스런 울음은 울음같이 달더라’라는 싯구가 발견되며, 또 미라가 된 여인의 뒷벽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의 무게’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그래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차우경의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점점 믿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이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어찌 보면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차우경이라는 점이다. 차우경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아마도 어린 시절 비슷한 학대를 경험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이 인물은 어느 날 한 낮에 몰고 가던 차에 치어 아이가 죽는 사고를 겪은 후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눈앞에 환시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실 죽은 건 사내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라고 생각하는 차우경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 소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소녀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살인사건들의 실마리 속으로 그를 인도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제각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어째서 연결되어 있고, 그 배후에 있는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차우경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누구일까. 그리고 차우경이 이 소녀의 환시를 계속 볼 정도로 겪게 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살인사건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배후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차우경의 읽어버린 기억 속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추적한다. 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역학구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즉 차우경은 어린 시절 겪은 어떤 일 때문에 학대받는 아이들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고, 바로 그런 집착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주인공이 움직이게 되는 동력으로 자신의 트라우마가 작용한다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다.

사건은 아직 제대로 드러난 게 없기 때문에 분명한 전말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차우경이 갖고 있고 그래서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생겨나게 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도 미치도록 궁금하고 거기 어디선가 학대를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차우경처럼 구해내고 싶어진다. 심지어는 그 냉혹한 어른들을 단죄하고 싶어진다. 이건 아마도 작가는 사건의 전말을 쉽게 알려주지 않고 그 끔찍하지만 앞뒤를 구분하기 힘든 미로 속에 시청자들을 헤매게 만든 이유일 게다. 적어도 우리는 그 미로를 헤매는 동안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르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고 경각심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너무 많은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다보니 이제는 점점 둔감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나 부모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학대 사건도 그 때는 끔찍했다가 차츰 잊히기 일쑤다. 그러니 이 비정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미로 속에 잠시간 빠뜨리는 것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해님달님’으로 알려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하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잔혹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짜 어른이 잡혀 먹히고 아이들마저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비정한 세상을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참을 보다보면 차우경이 그러한 것처럼 나라도 나서서 동아줄을 내려주고픈 분노와 죄책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와이키키’가 얻은 것, 배우, 시트콤의 가능성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종영했다. 최고 시청률은 2%(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은 1%대에 머물렀다. 애초에 큰 시청률을 기대하지도 또 기대할 수 있는 작품도 아니었다. 거의 전 출연자가 신인들이었고, 작품도 드라마라기보다는 시트콤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이런 드라마를 시도하게 됐던 것일까.

그건 시청률과 상관없이 이런 소품 드라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 작품의 소득으로 눈에 띄는 건 배우들이다. 이이경이야 본래부터 주목받던 신예였지만 김정현이나 손승원, 정인선, 고원희, 이주우 같은 배우들이 이 드라마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사실 쉽게 보여도 가장 어려운 연기가 코미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얼굴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나는 이이경, 김정현, 손승원의 연기는 꽤 괜찮았다고 보인다. 캐릭터에 확실히 녹아 들어있어 향후 작품을 하게 되면 그 이미지의 잔상이 떠오를 정도로. 

정인선의 싱글맘 역할 연기도 괜찮았고, 수염이 자라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한껏 망가지는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은 고원희의 연기도 좋았으며, 후반에 가서 엉뚱한 패션 디자이너 신출내기 역할로 빵빵 터트렸던 이주우의 연기도 볼만 했다. 요즘처럼 신인 연기자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시기에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이들에게 제대로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분명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드라마라고 하기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이야기의 골격이 부족했다. 그래서 드라마라는 외피를 씌웠지만 실제로는 시트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한 회 1시간 분량에 30분 정도씩 끊어서 두 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시트콤에 적절한 분량배분이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드라마가 아니라 차라리 시트콤을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와 시트콤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드라마가 갖는 어떤 긴장감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시트콤적인 코미디가 엉뚱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만약 시트콤의 코미디를 표방하고, 그걸 기대하고 본 시청자라면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웃음의 강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시트콤보다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최근 들어 시트콤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가 되어버린 걸까. 사실상 시트콤이지만 드라마로 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된 건 여전히 시트콤을 바라보는 낮은 시선이 존재하는데다, 시트콤은 일일방송이라는 이상한 관습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은 작품 형식이지만 낮게 바라보는 인식이 있어 시트콤이 아니라 드라마로 포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통해 이런 방식의 시트콤(일주일에 1시간짜리 두 편이 방영되는)은 분명 가능성이 있는 형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유명 배우들 중 상당수가 과거 시트콤으로부터 신인 데뷔를 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요즘처럼 웃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시트콤 같은 장르는 어쩌면 더더욱 시청자들이 갈증을 느끼는 장르일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이 두 가지 면에서 확실히 얻은 바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힘겨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가즈아!”를 외치며 힘을 내던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청춘들처럼, 우리에게 ‘으라차차’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시트콤을 또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시즌2가 기대되는 이유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와이키키’, 부족해도 순수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으라차차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다.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드라마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시트콤에 가깝다. 하지만 시트콤이라고 해서 드라마보다 격이 낮거나 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웃음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얘기다. 

실로 이 드라마는 아예 작정한 듯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단역배우인 이준기(이이경)가 영화에 캐스팅되어 나간 현장에서 영화계의 전설 김희자(김서형)의 상대역이 되어 겪는 고충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배역에 몰입해 사정없이 상대역이 이준기를 패고, 눈물과 함께 떨어지는 김희자의 콧물이 이준기의 입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식의 원초적인 코미디는 이미 강동구(김정현)가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도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코미디 속에 이 드라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애원했던 헤어진 연인을 만난 동구가 화장실이 급해 할 이야기를 못하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현장에서 김희자의 과도한 몰입 때문에 심하게 두드려 맞은 이준기가 애초에 영화 캐스팅에 가졌던 그 설렘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다음 장면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그 상황의 반전으로 웃음을 준다. 당하는 코미디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는 이이경의 연기는 이 장면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는 원초적인 웃음 뒤에 이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웃픈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배역 하나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준기가 김희자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유명한 배우인 그의 아버지 이덕화가 뒤에서 힘을 써준 덕분이었던 것. 이준기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서야 떳떳할 것 같다며 영화 감독과 김희자에게도 사죄한다. 결국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김희자가 이준기가 아침드라마에 나올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흐뭇한 광경은 백도 줄도 아닌 실력으로 올곧이 서려 안간힘을 쓰는 이 순수한 청춘에 ‘으라차차’ 응원을 보내게 만든다.

이런 점은 언론사 서류전형을 간신히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간 강서진(고원희)의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과 부딪쳐 하얀 블라우스에 묻은 커피를 지우느라 정신없던 강서진이 너무 급해 블라우스를 입지 않고 정장만 겉에 걸치고 나간 면접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은 우습기 그지없다. 

하지만 고깃집에서 하는 특이한 면접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다른 여성 지원자에게 성희롱을 하는 면접관에게 강서진이 돼지갈비로 싸대기를 날리는 사이다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성희롱을 당한 그 여성 지원자는 강서진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이 살기 위해 면접관을 오히려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 씁쓸함을 안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성희롱까지도 감수해내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으라차차 와이키키> 특유의 웃픈 상황으로 담아낸 것.

이이경과 고원희는 이 웃음 가득한 드라마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배우다. 이이경은 매회 갖가지 웃픈 상황 속에서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선사하고, 고원희는 심지어 수염 나는 여자라는 캐릭터까지 소화해내며 웃음을 준다. 청춘의 왁자한 웃음이 가득한 드라마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짠내까지 물씬 느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잘 살아나는 건 이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덕분이 아닐까. 면접을 위해서든 연기를 위해서든 열정을 다하는 드라마 속 청춘들의 이야기와 이들 신인배우들의 면면은 그래서 어딘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와이키키’, 갑갑한 현실 시트콤급 웃음이 못내 그리웠다면

JTBC 새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벌써 제목부터가 시끌벅적하다. 드라마는 와이키키의 햇살 찬란한 해변에서 서핑을 하며 즐겁게 노니는 외국의 청춘들을 담아내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쑥 빠져나오면 그 곳은 동구(김정현)와 준기(이이경) 그리고 두식(손승원)이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망할 위기에 처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다.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지 못해 수도가 끊기고 전기마저 끊길 위기에 처한 곳.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이 상황을 시트콤적인 웃음으로 보여준다. 물이 끊겨 머리를 감다 비누거품이 가득한 채 투덜대는 청춘들 앞에 누군가 놓고 간 아기가 울어댄다. 왜 우는 지 살피다 손에 똥이 묻어 화들짝 놀라는 청춘들이 기저귀를 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 주는 웃음. 마침 동구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여자친구 수아(이주우) 앞에서 호기롭게 커플링을 던져버렸지만 한 푼이 아까워 그걸 다시 찾아갔다 들켜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나, 영화촬영장에서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얘기하는 대배우 박성웅이 얼굴에 붙은 밥알을 떼 내라는 포즈를 잘못 이해해 뽀뽀를 하는 준기의 굴욕 또한 웃음을 준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아기 엄마 싱글맘 윤아(정인선)는 모유 수유를 위해 불쑥 가슴을 내놓는 바람에 이 청춘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고, 젖이 나오지 않아 울어대는 아기를 위해 유축기를 사러 간 청춘들의 당황스런 상황들이 이어진다. 동구의 여동생 서진(고원희)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온 윤아와 하룻밤 동침을 하게 되고, 마치 <하얀거탑>의 의사들처럼 비장한 얼굴로 윤아의 나오지 않는 젖을 마사지하는 일을 겪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들과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웃음은 우리가 시트콤에서 익숙한 것들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김기호, 송지은, 송미소 같은 작가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안녕 프란체스카>나 <푸른거탑>,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같은 시트콤에서 활약해온 이들이다. 물론 시트콤만이 아닌 <모던파머>나 <프로듀사>, <뱀파이어 탐정> 같은 드라마를 쓰기도 했었지만, 워낙 웃음 만드는 일에 이력이 난 작가들이라는 것.

그러니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가진 기획의도가 분명해진다. 이 작품은 웃을 일 없는 현실에 한바탕 휴식 같은 웃음을 던져보겠다는 의도로 제작된 드라마다. 사실 현실이 고구마다 보니 그것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시원한 사이다로 풀어보려는 작품도 많고, 차라리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넘어서려는 작품도 있지만, 이렇게 메시지보다는 재미로 똘똘 뭉쳐 웃음 그 자체가 주는 한 시간의 유쾌함을 제공하는 작품 역시 그 자체로 의미 있을 게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이 드라마가 소품인 만큼 신인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김정현, 이이경, 손승원, 이주우, 정인선, 고원희가 그들이다. 아직까지는 시청자들에게 낯선 배우들이지만 첫 회만으로도 이들이 가진 풋풋한 매력과 개성은 이미 전해지고도 남았다. JTBC가 <청춘시대>를 통해 작품으로서도 성공했지만 신인연기자 발굴로서 큰 역할을 해냈던 것처럼, <으라차차 와이키키> 또한 그걸 잇는 드라마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그런데 왜 하필 <으라차차 와이키키>라는 제목일까. 그것은 첫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청춘하면 당연히 와이키키 같은 낭만이 먼저 떠올라야 하지만, 실제로는 망할 위기에 처한 게스트하우스로 다가오는 현실을 담는 것일 게다. 그런 굴욕과 힘겨움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애써 ‘으라차차’ 힘을 내자고 제안한다. 한바탕 웃음으로 그걸 넘어서보자고. 그것이 어쩌면 청춘의 특권이기도 하니 말이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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