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산으로 간 <사냥>, 그럼에도 돋보인 안성기

 

그 산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영화 <사냥>의 포스터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엉뚱하게도 이 영화의 뒤늦은 후회처럼 들린다. <사냥>의 이야기가 엉뚱하다는 의미로 산으로 갔기때문이다.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말 그대로 사냥에 비유한 이야기다. 인간의 사냥과 동물의 사냥 그 차이를.

 

사진출처:영화<사냥>

갱도가 무너져 죽을 위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살아남은 문노인(안성기)은 산에서 우연히 금맥을 발견하고 그걸 캐러 들어온 엽사들과 비교된다. 그 질문은 단 한 가지다. 사냥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동물의 사냥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지만, 인간의 사냥은 생존과 무관한 욕망 때문이다.

 

문노인과 엽사들의 대결은 그래서 이 두 가지 차원의 사냥이 중첩된다. 문노인의 사냥은 지켜야할 목숨들을 위한 것이지만, 엽사들의 사냥은 금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명쾌할 수 있는 대결구도지만 영화는 어찌 된 일인지 자꾸만 곁가지를 덧붙인다. 무너진 갱도에서 벌어진 일들까지야 이야기의 전제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전의 가족관계 이야기까지 괜스레 파고들어 본격 스릴러와 추격전이 갖는 밀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문노인에게 숨겨진 비밀스런 설정 역시 인간과 동물의 사냥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으로 보면 문노인의 이러한 비밀은 너무나 과한 느낌이다. 그것이 그려내는 상징적인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의도로 인해 장르가 어떤 기대감을 채워주기보다는 널뛰는 느낌을 만든 건 감독의 지나친 의욕의 결과다.

 

훨씬 더 단순화했어야 했다. 산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더 집중했다면 저 <최종병기 활>이 보여줬던 긴박한 재미들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이라는 의미 부여를 과도하게 하려던 결과, 본연의 스릴러 장르의 재미들은 상쇄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보이는 가족코드 또한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가족 코드를 가져와 문노인의 절박함을 더하려는 의도 역시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굳이 출생의 비밀같은 틀에 박힌 설정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아귀를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열어놓고 추격전의 디테일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최근 <시그널>로 주목받은 조진웅 같은 배우를 데려다놓고 굳이 쌍둥이 설정까지 했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쌍둥이라면 그 설정이 주는 특별한 재미요소들이 있어야 했지만 <사냥>에서는 그걸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렇게 연기 잘하는 조진웅의 연기 역시 영화는 잘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결함들이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든 건 안성기의 독보적인 연기력이다. 65세의 나이에 람보 영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을 뛰어다니며 액션 연기를 선보이고, 한없이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의 결함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일관되게 채워 넣는 그 저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마치 <사냥>이라는 요령부득의 연기 미션 속에서 홀로 그걸 수행해내는 듯한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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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정글북>, 타자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최근 개봉된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는 CG 기술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한 예견을 가능케 한다. 블라자드의 게임을 영화화한 야심작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과 월트디즈니의 <정글북>이 그 영화들이다.

 

사진출처 : 영화 <정글북>

<정글북>은 이미 수차례 애니메이션, 영화화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정글에 버려진 아이 모글리가 늑대들에 의해 키워지면서 이를 반대하는 호랑이 쉬어 칸과 함께 공존하려는 무리들(늑대들과 곰 발루, 흑표범 바기라 등)이 대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정글에서 인간 모글리와 공존할 것인가 아니면 정글은 정글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결국 인간에게서 불을 가져온 모글리는 쉬어 칸 같은 맹수들을 물리치고 정글의 평화를 이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 이야기가 영화로 재현되고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끈 데는 CG 기술이 큰 몫을 차지했다. 모글리를 빼놓고 정글까지 온통 CG로 완성한 작품은 한 마디로 애니메이션 기술의 총아를 보는 듯하다. 이야기의 성격 상 아이와 맹수들이 정글에서 함께 뒤엉키는 장면들은 결국 CG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월트디즈니는 이 작품을 통해 이제 자신들이 세워놓은 상상력의 제국에 날개를 단 셈이다. <정글북>은 기존의 월트디즈니 만화 애니메이션들이 이제 실사 애니메이션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한편 블리자드사의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유명한 게임을 영화화했다. 게임 원작 영화들은 물론 이전에도 <툼레이더><레지던트 이블>, <페르시아의 왕자> 등등 많았다. 하지만 <워크래프트>는 마치 영화가 판타지물을 끌어안게 됐던 <반지의 제왕>처럼 영화가 게임을 끌어안은 신기원으로 여겨진다. 물론 <반지의 제왕>만큼의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워크래프트>의 성취는 이후 블리자드를 비롯한 많은 게임사들의 영화화 러시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워크래프트>는 게임 원작이기 때문에 그 스토리가 게임을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른바 덕후라면 이 영화에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오크족의 행성이 황폐해지자 인간의 행성으로 와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는 오크들과 이와 맞서는 인간과 마법사 등의 대결이 그 스토리다. 오크족의 듀로탄은 이 영화의 화자이자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정글북>의 세계관과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너무나 상이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글북>이 키플링에 의해 소설로 나왔던 19세기 말과 <워크래프트>가 게임화된 20세기 말, 1세기가 변화해온 세계관의 영향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알다시피 <정글북>은 근대의 제국주의의 시선이 정글과 인간이라는 대립구도를 통해 담겨져 있다. 야만을 대변하는 맹수를 무너뜨리고 정글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공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이 정글에서는 이방인에 해당하는 인간의 시점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덧씌운다. 물론 영화는 흑표범 바기라의 내레이션으로 흘러가지만 그것은 모글리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것이다.

 

반면 <워크래프트>는 인간이 아닌 오크족의 듀로탄이라는 영웅을 내세움으로써 이러한 시선의 중심이 해체된다. 오크족도 인간들도 서로 싸우게 되는 건 그들 자체가 반목해서가 아니라 그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진짜 적들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워크래프트>는 오크족과 인간들의 대결 이면에 오크족 내부와 인간 내부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물론 오락영화로서 <정글북><워크래프트>CG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의 영화를 가늠할 정도로 흥미롭다. 하지만 그 화려한 스펙터클 이면에 깔려 있는 너무나 다른 세계관은 역시 CG가 제아무리 화려한 미래의 영화라고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오히려 잘 드러내준다.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놀라운 CG 기술의 영화지만 <정글북>이 어딘지 구시대적이고, <워크래프트>가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는 건 바로 이런 세계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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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 넘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약한 메시지

 

사실 배트맨이니 슈퍼맨이니 하는 슈퍼히어로들에게 대단한 세계관과 메시지를 요구하는 건 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왕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으로 그려냈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세계가 슈퍼히어로물이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심지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의 세계일 수 있다는 게 드러난 마당에, 꼭 이런 세계관과 메시지에 대한 요구는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닌 게 되었다.

 


사진출처:영화<배트맨 대 슈퍼맨>

하도 오랫동안 예고편을 통해 떡밥을 던져놔서인지 <배트맨 대 슈퍼맨>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제목대로만 보면 배트맨과 슈퍼맨이 대결하는 이 구도가 마치 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슈퍼히어로물에 대해 철학적 세계관을 투영시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 지금, 이 대결구도는 다양한 의미와 메시지의 도출을 기대하게 만든다.

 

알다시피 배트맨은 인간이고 슈퍼맨은 외계인이다. 아니 슈퍼맨은 그저 외계인이 아니고 배트맨과 비교하면 거의 신적인 존재다. 그러니 이 대결은 인간과 신의 대결로 보일 수 있고, 나아가 인간과 이종족이라는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배트맨 대 슈퍼맨>은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신격화되어 있는 슈퍼맨은 과연 인간을 보호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위협하는 존재인가. 슈퍼맨과 그를 쫓아 지구를 침공한 조드 장군과 일당과의 대결로 초토화되어버린 도시 속에서 배트맨은 그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과연 슈퍼맨은 믿을만한 존재인가. 아니 인간이 아닌 신은 과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인가.

 

<배트맨 대 슈퍼맨>이 그리는 신과 인간의 대결구도가 저 성서의 이야기를 따왔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구를 산산조각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슈퍼맨은 신적 존재이지만 그는 인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 위대한 사랑은 지구로 떨어진 아기를 키워준 어머니로부터 나온다. 이런 인물 캐릭터에서 우리는 성서의 많은 인물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의 구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진지한 질문보다는 간단한 해결과 블록버스터 볼거리에 더 치중한다. 물론 그 볼거리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충분히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끌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향후 쏟아져 나올 DC 코믹스의 히어로들 이야기에 대한 떡밥들도 넘쳐난다. 아마도 이 작품으로 인해 앞으로 나올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 각각의 이야기들 역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입부분의 진중한 메시지가 후반부에서 흐지부지되는 과정은 기대한 만큼 큰 실망감을 남긴다. 그래서 <배트맨 대 슈퍼맨>이 차용한 신과 인간의 이야기 같은 철학적 주제가 앞부분에 강조된 것은 후반부의 말도 안 되게 기막힌 볼거리들을 그저 만화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만일 앞부분의 진중한 질문들이 없었다면 영화 후반부의 많은 장면들은 너무 과도해 실소가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영화는 재밌다. 적당히 진지하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시각적 즐거움이 넘쳐난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 같은 진중한 메시지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큰 기대감 때문일 수 있다. 어차피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면 그만한 메시지를 담아냈어야 한다는 그 기대. 혹평이 쏟아진 건 이제 슈퍼히어로물에서도 철학적 주제를 기대하게 된 그 달라진 시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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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인간은 어째서 인간인가

 

<히말라야>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없는 영화다. 물론 중간에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극화된 부분이 있지만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엄홍길 대장의 휴먼원정대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한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영화가 그려내는 극적인 이야기의 감동을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에 더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면이 있다.

 


사진출처:영화<히말라야>

산에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한 에베레스트 첫 등반자인 영국의 조지 리 맬러리의 유명한 말은 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농담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산에 왜 오르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왜 함께 내려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엄홍길 대장이 실제로 했던 휴먼원정대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거기서 내려오지 못하고 누워있는 우리네 동료들과 함께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 목적이다.

 

이 영화 속에서 정복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엄홍길(황정민) 대장이 극도로 싫어하는 표현이다. 마치 명언을 하는 자신을 과시하듯 농담처럼 표현하지만 그에게 등산은 실제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내준다면 머물다 내려오는 것뿐이다. 아마도 엄홍길 대장이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그럼 내려와야지 거기서 살 순 없는 일 아닙니꺼.” 엄홍길 대장과 함께 4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동료 박무택(정우)은 농담처럼 그런 말을 남겼지만 결국 8000미터 고지에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다. 그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올랐던 동료 박정복(김인권) 역시 돌아오지 못한다. 아마도 엄홍길 대장의 마음속에는 그 8000미터 고지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을 것이다. 그 곳에 누워 있을 동료들이 못내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정상의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건 휴먼원정대의 이야기가 건드리고 있는 건 동료애다. 16좌 등정 같은 대기록이 도전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다룬다면, 휴먼원정대는 함께 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어떤 생존이거나 혹은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온전히 인간이 왜 인간인가에 대한 자기 증명 같은 일이 된다.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특히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팍팍함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점점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잠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고 어찌 보면 동료들이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는 것. 엄홍길 대장과 대원들이 8000미터 고지에 누워 있는 동료를 끝내 찾아내고 온몸에 부상을 입어가면서까지 함께 산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그 몸부림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한 라디오 MC는 엄홍길 대장에게 산에 대해 묻는다. 엄홍길 대장은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없다고 말한다. 대신 단 한 가지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극한의 상황에 서 있으면 현실에서는 여러 가면을 쓰고 있어 몰랐던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고. 엄홍길 대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이들을 끝까지 챙길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의 정상에서 했던 질문은 어쩌면 요즘처럼 혹독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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