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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어디까지 갈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까.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올 한 해 드라마의 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만난 멜로다. tvN <또 오해영>이 사랑하는 여자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고, MBC <W>는 웹툰 속 주인공을 사랑한 여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으며, JTBC <마녀보감>이나 tvN <싸우자 귀신아>는 마녀, 귀신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대미를 인어가 등장하는 SBS <푸른바다의 전설>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장식하고 있다는 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멜로드라마가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등장시켜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하게된 건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성이 점점 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웹툰 같은 현재 드라마의 원천적 소스가 되고 있는 장르는 드라마가 이러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성을 극대화하게 된 기폭제가 되고 있고, 여기에 훨씬 좋아진 CG 기술은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를 허용한 건 시청자들이다. 이미 드라마 경험이 풍부해진 우리네 시청자들은 이런 판타지를 용인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결국 판타지라는 걸 공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판타지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저 비현실적인 허황된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 <W> 같은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수용한 건 그 이야기가 마치 우화적인 느낌으로 에둘러 현실을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현실을 갖고 현실을 얘기하는 방식. 초현실적 판타지가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는 바로 이 우화적 기능이 그래서 중요해졌다. <W>가 제시한 작가와 작품 속 캐릭터의 문제는 신과 인간의 철학적인 질문은 물론이고, 독자의 개입으로 작가 개념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현재의 변화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 이야기를 현대로까지 끌어오게 된 건 인어라는 백지 상태의 리트머스지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보기 위함이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어가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 <도깨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는 과연 행복할까. 죽음은 과연 불행일까.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은 사랑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결국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에 빠져든다는 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픈 욕망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채워보려는 안간힘. 그런 관점에서 보면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나 <도깨비>의 도깨비가 우리의 어떤 갈증들을 채워주는가가 드러난다. 인어가 순수한 사랑같은 조금은 추상적인 갈증을 추구한다면, 도깨비는 우리네 설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욕망들, 이를테면 부에 대한 욕망이나 영생에 대한 욕망 혹은 초능력에 대한 욕망들을 건드린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촉발시킨 이질적 존재와의 로맨스는 그래서 이들 작품들로 이어지며 다양한 욕망들을 수용하는 중이다. 답답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꿔주는 존재에 대한 희구. 그건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판타지가 유독 올해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 그저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다는 반증은 아닐는지. 그 답답한 현실은 그래서 인어에 도깨비까지를 현재로 소환하는 중이다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주인공 캐릭터의 문제, 카메오가 신선해진 이유

 

역시 조정석은 잠깐 등장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캐릭터로 그가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지금껏 그 캐릭터가 회자되고 있는 건 결국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빛났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남자 인어로 등장해 아직 인간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낯선 청이(전지현)에게 갖가지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저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승민(이제훈)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광고 문구들이 사실은 물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번 카메오에서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푸른바다의 전설>이 갖고 있는 비극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인어가 인간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인어라는 존재가 가진 비극성은 조정석 같은 카메오가 아니라 주인공인 청이가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이 청이라는 캐릭터에 순수함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그 비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은 백지 상태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 웃음이 존재 자체의 비극과 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인어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인형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면 조금은 허망하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 웃음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을 때 캐릭터가 가진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이 캐릭터보다는 조정석이 잠깐 등장해 보여준 인어 캐릭터가 훨씬 더 그런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는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것이 그 이면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가 <별에서 온 그대>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합당한 지적이다. 외계인이나 인어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네 삶의 현실들이 우화처럼 드러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단지 유사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남녀주인공인 허준재(이민호)와 심청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적 상황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그저 코미디로 끝날 때는 자칫 깊이를 상실할 수 있다. 특히 판타지물의 경우, 코미디를 너무 가볍게 사용하면 이야기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경우,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다. 시청자들은 빵빵 터지지만 동시에 그 인물은 굉장한 비극 속에서 실제로 펑펑 우는 장면이 가능한 그런 연기자.

 

<푸른바다의 전설>이 가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이 가볍게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날아가는 판타지를 땅으로 끌어내려 어떤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의 희비극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자의 공력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페이소스를 주는 인물들은 그래서 초반에 강남거지로 등장해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홍진경이나 인어로 등장해 드라마에 어떤 쓸쓸한 정조를 남기고 가버린 조정석 같은 카메오다. 이 드라마가 살기 위해서는 카메오들이 갖고 있는 이런 희비극적 요소들을 남녀 주인공이 오히려 가져야 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인어의 바다와 대비되는 인간의 바다

 

왜 하필 바다일까. 또 기억, 약속 같은 것들이 떠올리는 것은. 시국이 시국이어서인지 어떤 장면이나 대사들마저 그저 드라마의 한 대목으로 여겨지지가 않는다. 물론 드라마 제작자들이 이 모든 것들을 의도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나라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공기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을 보다보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남다르게 다가오는 바다와 기억 그리고 약속 같은 단어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푸른 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를 가져온 것처럼 담령과 인어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알게 되어 사랑하게 된 담령과 인어지만 사람은 뭍에서 살아야 하고 인어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 그 다른 삶의 방식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바다는 그래서 이중적인 의미다.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어린 담령에게는 죽음이지만, 그런 담령에게 다가와 그를 구해준 인어에게는 생명이다. 인어를 사랑하게 된 담령이 억지로 치른 혼사 첫날 밤 말을 달려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건 그래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는 인어가 그를 구해줄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인어는 그를 구해주었다.

 

우리에게 바다란 그 의미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낭만적인 어떤 곳이고, 생명과 풍요의 의미였던 바다가 아닌가. 하지만 참사 이후 바다는 잿빛의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구해줄 것이라 믿었던 그 신뢰들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통곡의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된 건 사랑이니 믿음이니 하는 순수한 언어들이 그걸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인어 같은 존재가 실제로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그럼에도 어우야담 같은 전설로나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고 그걸 잊지 않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까닭은 인어이야기가 주는 그 순수나 사랑, 믿음 같은 좋은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을 게다. 그저 포획되는 물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바다가 그저 착취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을 살려주는 대지모 같은 곳으로 믿으려는 그 마음.

 

<푸른 바다의 전설>은 여기에 기억을 지우는 장치 하나를 더했다. 인어가 사람에게 키스를 하면 그 사람의 기억에서 인어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지만 동시에 망각하는 존재다. 그래서 아픈 기억들은 지워내려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죽음의 선을 넘어서 아픈 기억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 망각의 기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인어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 아픈 기억들까지 모두 다. 그리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먼 바다를 헤엄쳐온다. 사람은 점점 아픈 기억이 지워져 가지만 바다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왜 최첨단의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인어 같은 동화적 존재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인어라는 순수의 존재를 세워둠으로써 이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을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돈을 뜯어내는 여고생들을 보며 그걸 똑같이 따라하는 인어가 오히려 어린 꼬마 아이에게 훈계를 듣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인어란 존재가 우리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인어의 바다와 인간의 바다가 다르다. 인어의 바다는 풍요롭고 모든 걸 품어주는 곳이지만 인간의 바다는 탐욕으로 피폐해진 곳이다. 인어의 바다는 기억하지만 인간의 바다는 망각한다. 인어의 바다는 약속을 지키지만 인간의 바다는 약속을 저버린다. 이런 대비효과는 아마도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란 존재를 굳이 도시 한 복판에 세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해준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건 분명 과잉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네 대중들의 기억의 트라우마 속에서 바다만 쳐다봐도 떠오르는 잔상을 지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바다와 기억과 약속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런 남다른 의미들로 다가온다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왜 하필 어우야담의 인어이야기일까

 

넌 좋은 사람이야. 내 손 놓고 갈 수 있었는데 잡았잖아 여러 번.” 인어 심청(전지현)의 한 마디에 순간 허준재(이민호)의 눈빛이 흔들린다. 늘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놓는 머리 좋은 사기꾼 허준재는 여자에게도 진심보다는 허세와 너스레만 늘어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달콤한 거짓말에 넘어가던 여자들과는 달리, 심청의 말은 너무 진심이라 오히려 그를 뜨끔하게 만든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이 굳이 어우야담에 수록된 담령과 인어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런 전설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현재에 새로운 인어이야기를 이어가려한 이유는 뭘까. 그건 어째서 동서양을 망라해 어디서든 인어의 전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왔고 그 전설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어란 인간과 바다의 경계에 선 존재다. 거기에는 인간의 세계와 바다의 세계가 교차한다. 인어 전설이 말하는 것은 바다가 가진 자연 그 자체의 순수함과 대비되는 인간 세계의 욕망이고 그 부딪침과 상생의 길이다. ‘어우야담에 기록된 담령의 이야기에서도 나오듯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를 잡은 양씨(성동일)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무척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는다날이 갈수록 부패하여 냄새를 풍기는 고래 기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연을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욕망을 채워줄 물질로 바라보는 시각.

 

그래서 인어 전설에 등장하는 인간과 인어의 사랑은 어찌 보면 단순한 연애담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을 묻는 심청에게 허준재는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그건 항복이고 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욕망 자체가 없는 순수한 영혼의 심청에게 이기고 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녀는 바로 허준재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 말이 또 허준재의 가슴을 파고든다.

 

거짓말만 늘어놓지만 그 때마다 툭툭 던지는 심청의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를 흔들어 놓는다. 즉 허준재라는 사기꾼이 이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의 방식이라면, 자연을 대변하는 존재로 나타난 심청은 그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진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짐으로써 그 삶의 방식이 어딘지 잘못되었다고 알려준다.

 

요즘 같은 시국이 보여주듯이 말이라는 것은 진심을 담기보다는 진실을 가리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처음 등장한 심청이 말을 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게다. 그녀의 말 없는 진심은 허준재라는 사기꾼의 말 많은 거짓과 대립한다. 그러면서도 이 심청이란 존재는 허준재의 속 깊은 곳은 아직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믿고 그걸 끄집어낸다.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주고는 도망치려 했던 허준재의 발길을 돌려놓은 건 다름 아닌 그의 기억 속에 담겨진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세상의 끝에서 자신에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 그 아픈 기억은 그에게 세상의 끝같은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소한 간다는 말이라도 해주기 위해 심청에게 돌아온 허준재의 그 마음 한 자락은 그래서 그 거짓으로 포장된 그에게 남아있는 순수한 한 지점을 드러낸다.

 

심청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허준재의 장면은 그래서 자연을 대변하는 인어가 가진 순수의 세계와 거기서 떠나왔던 인간의 세계가 손을 맞잡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허준재에게는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삶이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세상의 시작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는 육지의 끝이 인어가 사는 바다의 시작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푸른바다의 전설>1600년대에 쓰인 어우야담의 한 대목을 가져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 엮어놓은 작품이다. 그래서 인어의 순수함은 바보스러움이거나 늑대처녀같은 말들로 표현되며 웃음을 주지만, 순간순간 그 인어가 꺼내놓는 진심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건 이 작품이 웃음 이면에 숨겨놓은 진지함이 그럴 때마다 슬쩍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의 시대, 욕망의 시대 그리고 상실의 시대.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순수함이란 전설로나 불리는 어떤 것이 되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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