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스캔들’, 노윤서 사고가 불러일으킬 파장

일타 스캔들

달달했던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에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청자들은 남행선(전도연)과 최치열(정경호)의 꿀 떨어지는 멜로에 빠져들었다가, 이를 위협하는 범죄의 그림자에 긴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명 ‘쇠구슬’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밤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길고양이를 죽이고 학원 학생을 건물에서 밀어 추락사시키고, 학원 강사 역시 쇠구슬을 쏴 살해하는 상황들이 조금씩 등장했기 때문이다. 

 

애초 드라마는 장서진(장영남)의 아들로 은둔형 외톨이인 이희재(김태정)가 범인인 것처럼 몰아갔지만 그건 트릭이었다. 진범은 진짜 정체를 숨긴 채 최치열 밑으로 들어와 그의 매니저를 자처했던 지동희(신재하). 최치열에 집착하는 지동희는 그 주변 사람들을 공격해왔고, 이제 최치열과 가까워진 남행선과 그 가족들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남해이(노윤서)가 지동희에 납치됐고 도망치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일타 스캔들>이 굳이 후반부에 이르러 범죄의 그림자를 넣은 건 드라마적으로 보면 느슨해질 수 있는 긴장감을 계속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효과적인 측면에서만 범죄가 들어간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타 스캔들>이 갖고 있는 무게감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바로 이 범죄 설정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지동희가 그런 연쇄 살인범에 스토커가 된 이유는 부모의 학대 때문이었다.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는 엄마는 급기야 시험지를 유출해오는 범죄까지 저지를 정도로 지동희의 누나를 압박하고 결국 누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러자 그 엄마의 집착은 다시 지동희에게 이어지고, 압박을 못 버티던 그는 엄마를 베란다에서 밀어 죽이는 존속살해를 저지른다. 즉 지동희 역시 입시 과열 경쟁과 그 속에서 제정신이 아닌 엄마에 의해 탄생한 괴물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장서진의 집에서도 마치 평행이론처럼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 이희재는 압박에 못 견뎌 시험을 포기하고 방안으로 숨어들었고, 동생인 이선재(이채민)도 급기야 엄마가 유출해온 시험지 때문에 멘탈이 붕괴되어 간다. 그게 유출된 시험지인지 모르고 좋은 마음으로 남해이에게 그 시험지를 줌으로써 그에게까지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과 엄마에 대한 분노, 죄를 저지른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미칠 지경이 되어간다. 

 

입시 경쟁 속에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른들의 압박은 선을 넘는다. 남해이가 지동희에게 납치되고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상황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참다못한 아이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해이의 사고를 죄책감에 의한 자살 시도로 오인한 이선재는 미칠 듯한 마음에 자신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자살 시도를 하려할 때 다행히 서건후(이민재)가 이를 막아주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 이 답답한 새끼야. 뭔지 모르겠지만 해결을 해라 해결을. 피하지 말고. 야, 너 이러는 거 해이가 봤어 봐. 해이가 일어나고 싶겠냐?” 이선재는 결국 담임을 찾아가 시험지 유출을 솔직히 고백한다. 

 

“아 걔는 강단이 있어 보인던데 생각보다 멘탈이 약한가 봐.” 남해이의 사고에 대해 입방아를 찢으며 수다를 떠는 조수희(김선영)에게 딸 방수아(강나언)는 유리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외친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어.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고!” 아이들의 외침에 어른들은 깜짝 노라고 있는 중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 하는 게 뭐가 어렵냐고 말하며 몰아세웠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간 일종의 입시 학대를 받았다는 걸 이제 깨달아야 하는 시간에 이르렀다. 

 

이제 2화를 남긴 <일타 스캔들>이 남행선과 최치열의 달달한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일은 그 멜로만이 아니다. 어른들이 펼쳐놓은 이 지옥 같은 입시 경쟁의 세계 속에서 질식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들 역시 진정한 삶의 행복을 향해 나갈 권리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해요? 엄마는 좋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하냐구요?” 선재가 엄마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무겁게 들어야 한다. 

 

<일타 스캔들>에 드리워진 범죄의 그림자는 그래서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에는 일관되게 닿아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1조원의 남자’같은 수치로 계산되어 성공을 매기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도 성적이라는 숫자로 강요되는 현실을 가져와, 그것이 진짜 행복일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밥 한 끼 따뜻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다움이 결국 행복일 수 있지 않냐고 말하고 있다.  (사진:tvN)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 전도연이 그리는 새로운 여성상

길복순

도대체 전도연의 한계는 어디인가.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남행선(전도연)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길복순(전도연)도 모두 싱글맘이지만, 두 캐릭터가 보여주는 색깔은 극에서 극이다. 남행선은 반찬가게 사장님으로 조카를 딸 삼아 키워 온 싱글맘(실은 싱글)이지만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과 더할 나위 없이 달달한 멜로를 보여준다. 반면 길복순 역시 10대 딸 길재영(김시아)을 둔 싱글맘이지만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로 <킬빌> 우마 서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액션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두 캐릭터 모두 싱글맘이라는 건 흥미롭다. 한 명은 진짜 싱글이지만 조카를 위해 엄마가 되어준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기에는 별 관심도 없는 싱글맘이다. 멜로와 액션으로 장르가 갈라질 정도로 보여주는 결은 다르지만, 두 캐릭터가 모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 역할을 한다는 점이나, 그 아이가 모두 딸로서 두 서사 모두에 여성들의 삶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깔아 놓은 건 우연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겹쳐지는 면이 있다. 

 

이건 아마도 현재 드라마든 영화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요구하고 있는 ‘여성 서사’의 요소들이 부지불식간에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전도연이 두 역할을 맡았고, 두 인물 모두 평범한 여성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엄마들, 특히 싱글맘이라면 더더욱 전형화되어 있는 캐릭터에서 두 엄마들은 확연히 비껴나 있다. 

 

모두가 자식 교육을 위해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에 휘말려 있을 때, ‘밥의 가치’를 믿고 조카도 딸 그 이상으로 챙기는 남행선이라는 인물은 나아가 스캔들에서 로맨스로 극적 전환을 이루는 멜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엄마(싱글이라도)의 사랑은 자식에게만 한정될 거라는 그런 틀에서 이 엄마는 그 자신으로서의 사랑을 하고 사랑 받는다. 그리고 딸(조카)은 그런 엄마를 지지한다. 

 

<길복순>은 마치 어엿한 회사의 형태를 갖춘 데다, 의뢰받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청부살인업체와 업계가 등장한다. 그러니 시작부터 칼과 도끼가 난무하고 피가 튀는 액션이 펼쳐진다. 하지만 <길복순>이 저 <킬빌> 같은 작품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건, 이러한 청부살인을 하는 액션을 치열하게 일터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을 은유하는 방식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포스터 속에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장 본 봉지를 안고 있는 장면이나 ‘길복순’이라는 제목에 피가 튄 듯한 빨간 색이 그어져 ‘킬복순’으로 보이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액션과 삶의 이중주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길복순이 찾아가는 청부살인업자들이 오는 술집의 풍경은 그래서 하루의 피로를 술 한 잔과 회사 상사 욕을 하며 푸는 샐러리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거기서 연봉을 얘기하듯 의뢰받아 청부살인을 하고 받는 수입을 비교한다. 최고 등급인 길복순이 처리하는 청부살인 하나가 등급이 낮은 자들이 7명은 처리해야 얻을 수 있는 수입에 달한다. 게다가 길복순은 이러한 일(?)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 길재영을 돌보는 육아가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길복순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딸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속이며 살아가는 길복순과 성 정체성 때문에 갈등하고 이를 숨기고 지냈던 딸이 서로에 대해 그것이 ‘다른 삶’이지만 그렇다고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며 등을 두드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순투성이의 세상에서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피하지 않고 부딪치는 삶에 대한 긍정이 이 액션 가득한 작품에 색다른 감성을 더해준다. “떳떳하고 싶었어. 나한테”라는 딸에게 “멋있네. 내 딸”하고 말해주는 엄마는 확실히 우리가 전형적으로 봐왔던 그런 엄마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도연은 어언 50줄의 나이에 들어섰다. 이제 멜로 퀸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애매해진 나이처럼 보이고, 나아가 화려한 액션 히어로는 더더욱 애매해 보이지만, 전도연은 그것이 그저 편견일 뿐이라고 이 두 작품을 통해 선을 긋고 있다. 이러한 다소 도발적인 캐릭터들 때문일까. 전도연이 하는 멜로와 액션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멜로에 있어서는 나이가 갖는 현실적인 면모들과 더불어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액션에 있어서도 그 치열함과 비정함 이면에 더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진다. 뭘 해도 되는 배우 전도연은 그렇게 2023년이 그의 해라는 걸 알리듯 두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사진:넷플릭스)

이런 게 스캔들이 되는 볼썽사나운 사교육 현실(‘일타스캔들’)

일타 스캔들

“설마, 따로 봐준다고? 남해이를 최치열이?” 결국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이 남행선(전도연)의 딸 남해이(노윤서)의 ‘비밀과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 조수희(김선영)의 딸 방수아(강나언)가 남해이의 가방에서 나온 최치열의 교재를 의심했고, 거기 적힌 빨간 펜 글씨들이 최치열의 글씨라는 걸 확인하게 되면서다. 조수희는 도저히 이 일을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결국 흥신소 사람까지 써서 최치열을 미행 추적하게 한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은 달달하고 빵빵 터지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색깔이 강하지만, 이 드라마 뒤편에는 사교육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사교육 현실이 깔려 있다. 일타강사가 7명만을 뽑아 가르치는 특별반을 운영하는 것도 그렇지만, 거기 들어가기 위해 난리를 치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도를 넘는다. 시험을 봐서 합격한 남해이를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 내쫓더니, 그 자리에 떡 하니 부유층 자제가 낙하산처럼 내려앉는다. 

 

게다가 아이들을 대하는 학부모들은 정상이 아니다. 누가 부모이고 누가 아이인지 뒤바뀐 듯한 선재(이채민)네 집을 보면, 그의 엄마 장서진(장영남)은 술에 취해 아들에게 너 밖에 없다며 너마저 잘못되면 엄마는 진짜 죽는다고까지 말한다. 여기서 잘못된다는 건, 진짜 무슨 죄를 짓거나 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엄마에게는 잘못된 일이다. 

 

장서진이 “너마저 잘못되면”이라고 말하는 건 이미 그의 형이 부모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엇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압력을 못 버텨낸 선재의 형 희재(김태정)는 입시 당일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신 방으로 숨어버린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것.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한 부모들은 그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실상 그는 밤이면 슬쩍 집을 나와 의심스런 행동들을 한다. 그는 잘못되었다. 엄마가 ‘잘못됐다’고 하는 순간 진짜로. 

 

조수희의 딸 방수아 역시 ‘잘못되는 중’이다. 그는 상당히 자발적으로 이 입시 경쟁 속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앞서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아가 그의 엄마 조수희도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자발성이란 부모의 내 자식만 생각하는 그 태도가 당연한 듯 수용되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자식이 그처럼 지나친 경쟁의식을 갖는다면 이를 풀어줘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이상한 엄마는 특별반 7인 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오로지 ‘내 새끼’만을 생각한다. “난 이럴수록 휴강은 아니라고 봐. 어차피 애들도 다 알 텐데 얼마나 놀랍고 무섭겠어요? 근데 수업까지 안해? 그럼 우리 애들 멘탈 더 흔들려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죽어도 내 아이의 멘탈이 더 중요하다는 이런 생각은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상상해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 드라마 속에서 ‘열혈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엄마들은 사실 한 발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이미 그 현실 속에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엄마들을 ‘돼지 엄마’니 ‘강남 엄마’니 하며 그러려니 보고 있지만, 만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외국에서 이를 접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학원 선생이 이른바 ‘일타강사’로 불리며 연봉 수백억을 받는 스타가 되는 현실이나, 단 7명만 모아서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원이나 거기서 자료가 유출되는 것조차 마치 범죄나 되는 듯이 생각하며, 나아가 그 일타강사가 누군가의 과외를 하는 일에 이른바 ‘열혈맘’들이 나서서 분개하는 일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우리 바깥에서 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처럼 보일 게다. 

 

<일타스캔들>은 일타강사가 반찬가게 딸의 수학을 과외 하는 일이 ‘스캔들’이 되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풍경을 밑그림으로 삼아 그려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잘 만들어 설렘과 웃음이 시종일관 멈추지 않는 이 웰메이드 드라마는 그래서 그 사랑이야기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찾게 한다. 결국 이 이상하게 치열한 경쟁의 피 냄새와 음습한 돈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위에 설렘과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밥 냄새’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대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tvN)

‘일타 스캔들’, 공감 가는 로맨틱 코미디 만든 연출의 비결

일타스캔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때론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 혹은 지나치는 역할조차 연기 공백이 없어 보이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조연들이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건 이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거의 단역처럼 보이는 이들조차 진짜 현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줄 때 시청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마에 보다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디테일한 밑그림이 그 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도 보다 리얼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바로 그런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은 역시 타이틀 롤인 전직 핸드볼 선수였다가 지금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전도연)과 자칭 타칭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수학 일타강가 최치열(정경호)이다. 자문 관련한 논란과 잡음들이 생겨났지만, 정경호의 최치열이라는 일타강사 연기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공감 가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하는 강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 듯한 대본도 그렇지만, 특유의 끼가 넘치는 강의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준 점이 먼저 리얼한 공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정경호는 지나치게 넘치는 프라이드와 더불어 어딘가 빈 구석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을 통해, 본인은 진지하지만 보는 이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코미디 연기를 더해줬다. <일타 스캔들>이 강남 학원가를 둘러싼 사교육 문제 등을 풍자하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그 결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정경호는 첫 회 만에 분명히 보여줬다.

 

여기에 전도연의 연기가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어졌다. 물론 <프라하의 연인>처럼 전도연 역사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지만 그간 영화에 주력하면서 다소 무거운 연기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반찬 가게를 하며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딸처럼 키운 남행선이라는 인물의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그래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최치열과의 달달하고 코믹한 연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남행선의 딸 같은 조카 남해이 역할의 노윤서는 <우리들의 블루스>로 익숙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똑 부러지는 자기주도형 고등학생 역할을 선보인다. 이모지만 엄마 같은 남행선이 짊어지고 있는 버거운 짐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은 짐이 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제 신인이지만 연달아 괜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타 스캔들>이 웰메이드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주변 인물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다. 남행선의 절친 김영주 역할의 이봉련은 대사 하나하나를 찰떡같은 연기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유쾌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최치열의 매니저이자 기획자인 지동희 역할의 신재하도 일에 있어서는 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치 형 동생 관계 같은 끈끈함을 잘 표현하고 있고, 저마다 개성이 톡톡 튀는 학부모를 연기하는 장영남, 김선영, 황보라의 찰진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는 “엄마가 진짜 너무하셨다. 조금만 밀어주면 전교 1등 할 애를 어떻게 이렇게 방치를...” 같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사를 치는 학원 실장이나, 이미 학원에서 선행을 해 자신의 수업은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그 현실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전종렬(김다흰) 같은 담임선생님은 물론이고 그런 선생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우리도 경각심이 필요하긴 해. 학원강사들만큼 연구 안 하잖아요, 솔직히.”라는 대사를 툭 던지는 다른 선생님까지 빈틈이 없다. 

 

사실 이처럼 주조연은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역할들까지 리얼한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공감 가는 대사를 채워 넣는 대본과 더불어 그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파고들어 연기지도를 하는 연출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그 하나하나의 공들임이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작품의 질감을 달리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다소 가볍게 웃고 달달해하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면서, 그 이면에 깔린 풍자적 요소들까지 공감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웰메이드란 이런 데 쓰는 말이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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