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 출신(?) 배우들의 정극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먼저 윤시윤은 '지붕킥'에서의 순수한 준혁 학생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 역할로 한층 강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부평초처럼 세상을 떠돌던 김탁구가 유일한 단서인 바람개비 문신의 사나이 진구(박성웅)를 만나 오열하는 장면은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윤시윤의 연기는 아직까지는 섬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악에 받친 모습으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연기만으로는 김탁구라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열정만큼은 높게 사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 시트콤에서의 가벼움을 벗어던지고 살아 움직이는 정극에서의 눈빛을 가진 것은 가장 큰 성과다. 조금 더 발산하는 연기에서 안으로 응축하는 연기를 덧붙인다면 앞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배우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붕킥'에서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가장 완벽하게 변신을 보인 연기자는 정보석이다. '자이언트'에서 군부 출신으로 정계를 노리는 조필연으로 등장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모습을 연기하는 정보석은 그가 정말 그 '지붕킥'에서의 찌질남이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목적을 위해서는 자식까지 정략결혼을 시킬 정도로 냉혹한 조필연이라는 캐릭터를 정보석은 100% 이상 잘 표현해내고 있다.

한편 '자이언트'로 정극 연기에 도전한 황정음은 아직까지 시트콤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대사를 할 때 자꾸만 '지붕킥'에서의 황대장이 떠오르는 것은 그 시트콤에서의 이미지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차츰 황정음도 정극 연기에 적응을 해내가는 중이다. 특히 31빌딩 앞에서 오빠 강모(이범수)와의 재회신은 황정음의 정극 연기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될 듯 하다.

'지붕킥'에서 광수라는 이름을 알린 이광수는 현재 '동이'에서 확고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이'에서 그의 역할은 감초.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시트콤에서 보여준 것 같은 과장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동이'에서 보여주는 과장연기는 '지붕킥'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장악원 악공 역할을 연기하는 이광수는 이희도와 콤비를 이루면서 '앉으나 서나 동이 생각'하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대장금'의 임현식에서부터 '선덕여왕'의 이문식 같은 일련의 감초 연기의 대가들 속으로 이광수는 자신만의 궤적을 남길 전망이다.

'지붕킥' 출신 배우들의 정극에서 연기변신은 물론 그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다. 이것은 배우들이 가진 역량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시트콤이나 정극이나 연기에 있어서는 그다지 경중의 차이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흔히들 시트콤 하면 어딘지 낮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만, 지금 그 틀 밖으로 나와 보란 듯이 정극에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은 그 시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이순재씨의 말대로 시트콤이나 정극이나 연기는 마찬가지다.

사극과 시대극 천하, 드라마는 과거를 추억 중

흔히 사극은 장르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 이전을 역사적인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그 후의 역사, 즉 구한말 이후의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를 우리는 시대극이라 지칭한다. 물론 장르적으로는 약간씩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거에 있던 역사를 가져와 현재를 말한다는 점에서 사극이나 시대극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자세히 분석해보면 시대극들은 거의 사극의 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이언트’는 공간을 강남땅으로, 시간을 7,80년대로 잡고 있지만 그 땅 위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와 치열한 복마전은 사극과 거의 유사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근간으로 하지만, 버려졌다가 다시 거성식품이라는 왕국으로 귀환해 왕좌를 노리는 김탁구(윤시윤)의 성장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금의 퓨전사극을 그대로 닮아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지 60년이 지난 것을 기화로 제작된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도 마찬가지다. 이 치열한 전쟁의 풍경은 사극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처절한 산악 전투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이 사극의 구조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월화에는 실제로 ‘동이’가 그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이언트’가 그 뒤를 좇고 있으며, 수목에는 ‘제빵왕 김탁구’가 앞서가고 ‘로드 넘버원’이 그 뒤를 좇는다. 주말 밤에는 새로 편성된 ‘전우’가 17%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존 동일 시간대의 드라마들보다 훨씬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떤 요소가 이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걸까.

그 해답은 다시 사극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옛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그 극적 상상력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과장을 허용한다. 따라서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 ‘자이언트’의 강모(이범수) 가족이 겪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구성되어 있어 우연의 요소들이 많지만, 그것은 시대극이라는 옛이야기의 틀로 들어가면서 시대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허용된다. 강모는 개발시대의 입지전적인 인물을, 성모(박상민)는 중정으로 표상되는 당대의 권력을, 미주(황정음)는 그 시대를 버텨내고 은막에 오른 스타를 대표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가진 자극적이고 막장적인 요소들은 그 시대가 가졌던 가부장제 하의 몰상식한 일들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된다.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가 다루는 한국전쟁이라는 소재는 전쟁이 으레 그러하듯이 비윤리적인고 폭력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되며 때로는 생존 앞에 놓인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이해된다.

또한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이 선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옛이야기가 가지는 극성이 현대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현대극에서 갈등이라고 하면 주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정도가 되지만, 이 옛이야기 속에서 갈등은 종종 그 대상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힘이 강하다. ‘동이’ 같은 사극은 물론이고 ‘자이언트’나 ‘제빵왕 김탁구’ 같은 시대극에서도 인물의 죽음은 현대극에 비해 현저하게 빈번하다. 물론 전쟁을 다루는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는 말할 것도 없다.

세 번째는 이들 과거를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 내재한 성장드라마의 요소다. 이 성장 드라마는 사극의 기본 패턴으로 이제 자리하고 있는 것인데, 시대극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는 개발시대의 비극 속에서 강모의 가족이 생존해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것은 또한 강모 가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불륜과 치정이 난무하는 막장의 시대를 살아내고 성장하는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물론 전쟁 드라마들을 성장드라마로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은 거기에도 존재한다.

사극이 가지는 옛이야기의 힘, 강력한 극성, 성장 드라마적 요소는 작금의 시대극들이 왜 선전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어찌 보면 이것은 사극의 확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시대극은 특정한 시대나 인물을 찬양한다는 논란으로 시들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대극이라면 늘 떠올리는 개발시대의 성공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쉬 닿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극은 현재의 사극들이 계속 추구해왔던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를 소재로 한 현재의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청자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과거라는 시간대가 하나의 강력한 장애요소가 되고, 그걸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 그 장애를 넘어서는 인물들에 천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 시대극은 그 과거의 시간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적인 간극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자이언트', '야망의 세월'이 아니라 '대조영'을 닮았다

'자이언트'는 지금껏 우리가 개발시대를 다루던 시대극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던 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자이언트'를 '에덴의 동쪽'이나 '야망의 세월'의 연장선으로 바라봤던, 그래서 이 시대극이 국책성 드라마가 아닌가 하던 그 의구심은 전혀 다른 드라마 진행으로 인해 봄날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자이언트'가 닮은 것은 '야망의 세월'이 아니라 오히려 장영철 작가의 전작인 '대조영'에 가깝다. 하나의 땅덩어리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음모와 암투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도 모를 정도의 복마전으로 벌어지는 세계. 그것이 '자이언트'다.

사극 속의 영토는 이 시대극으로 와서는 강남땅으로 바뀌었다. 개발을 앞두고 누가 그 땅의 개발권을 차지하느냐가 이 개발 시대에 벌어진 전투이고, 또 그 개발예정지를 땅값이 오르기 전에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가 이 전투의 승리를 가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 공사권을 대륙건설에 빼앗긴 후 절치부심하던 조민우(주상욱)가 지도를 보면서 노선을 바꾸는 것으로 역세권의 땅을 매입해온 대륙건설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사극 속 전투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 강남땅에서는 때론 조폭들을 앞세운 분쟁지에서의 실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고, 이 영토 전쟁에서의 장군 격인 건설사 대표들과 참모들의 끝없는 음모가 자행되기도 한다. 정치인들과 건설사 대표들 간에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로비와 정보전은 그러나 이 전쟁이 그 땅에 살아갈 우리네 민초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전쟁을 벌일 뿐, 국민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 오랜 세월동안 벌어졌던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듯이.

장영철 작가가 생각하는 전쟁이란 우리가 그저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다 말려든 싸움 속에서 끝없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고,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똑같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초반부 황태섭(이덕화)이 매립지 공사를 사이에 두고 대륙건설의 홍기표(손병호)와 대결구도를 벌일 때, 마치 황태섭이 선이고 홍기표가 악인 것처럼 드라마가 흘러가던 것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후에 홍기표가 이미주(황정음)를 돌보는 인물임이 드러나고, 황태섭 역시 이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못할 것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선악 구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것은 악의 화신인 조필연(정보석)과 민홍기 국장(이기영)이 벌이는 대결구도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한 때 '대조영'이 보여주었던 그 '양파 껍질 같은 대결구도'의 현대판이다. 당장에는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껍질 하나를 벗겨내면 그 구도가 180도 바뀌고 또 벗겨내면.... 이 집요한 진흙탕 싸움은 굉장한 극적 재미를 만들어주는 것인 동시에, 이 시대극이 말하려는 '화려한 강남의 마천루가 얼마나 더럽고 피가 철철 흐르는 복마전을 통해 세워진 것인가'를 잘 드러내주는 요소들이다. 그 진흙탕 싸움 위에 원치 않게 생존을 위해 서게 된 강모(이범수)와 성모(박상민) 그리고 미주는 이 욕망의 싸움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과장되지도 미화되지도 않은, 그저 그 싸움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가족의 한 표상일 뿐이다.

낚시를 하고 있는 강남의 큰 손에게 홍기표가 돈을 빌리러 오는 장면은 그래서 이 시대극이 말하려는 대부분을 간략하게 축약해낸다.

"오늘따라 입질이 없구나."는 큰 손의 푸념. 그러자 이어지는 홍기표의 말.
"썩은 물에서 고기가 나올 리가 없죠. 예전엔 이곳에서 고기가 제일 잘 잡혔었는데.."
"이렇게 만든 게 당신들이잖소. 강남을 개발하면서 가장 먼저 망가진 게 바로 이 한강이니까."하고 말하는 큰 손. 그러자 신념에 찬 듯 말하는 홍기표.
"강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도 개발밖에는 없습니다." 거기에 반박하는 큰 손.
"그건 당신들 생각이지. 사람들 마음까지 혼탁해진 건 어떡하고."

이 대사들이 마치 개발시대의 한 시점에서 오고간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일어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바로 이 부분은 이 시대극이 현재와 조우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막장의 시대를 그린 '김탁구'와 '자이언트', 막장이 아닌 이유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가난과 비뚤어진 욕망들이 꿈틀대던 막장의 시대는 오히려 극적인 상황을 요하는 드라마로서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빵 한 조각을 놓고 가족을 생각하는 눈물겨운 가족애가 있고, 살기 위해 길바닥에서 뭐든 해야 했던 그 처절함이 있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여전한 신분의 차이가 주는 강력한 계급의식이 있다. '자이언트'와 '제빵왕 김탁구'는 그 막장의 시대를 추억하는 드라마다.

막장의 시대를 추억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막장인 것은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초반 '하녀' 컨셉트의 치정극처럼 시작했다. 거성가의 회장인 구일중(전광렬)이 보모이자 간호사인 김미순(전미선)과 하룻밤의 인연으로 김탁구(윤시윤)를 낳고, 반발하듯 구일중의 아내인 서인숙(전인화)이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 마준(주원)을 구일중의 아이처럼 숨기며 키운다. 거기에 한승재가 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김탁구와 김미순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파에 치정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막장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은 그 속도감 때문이다. 이런 신파적인 요소나 치정극적인 요소들을 이 드라마는 하나의 자극적인 요소로 끄집어냈다가 재빠르게 정리해버린다. 김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면 출생의 비밀 코드로 넘어갈 텐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이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야기는 김탁구와 마준을 전면에 세운 대결구도의 드라마로 흘러간다. 선악구도는 아니지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행복을 묻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실로 건전하다. 막장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의 시대의 이야기를 가족사적인 틀에서 풀어냈다면, '자이언트'는 좀 더 시대적인 틀에서 이 시대를 다루고 있다. 7,80년대라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그 군사정권 시절의 무법천지는, 이 드라마를 시대의 모험극으로 만들어낸다. 뭐 하나 상식적이지 않은 막장의 시대 위에서 가족애와 인간애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드라마는 묻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조필연(정보석)이 당대 군부시절의 사생아를 대변한다면, 맨 주먹으로 성공의 길을 열어내는 황태섭(이덕화)은 당대 사업가의 비뚤어진 초상을 대변한다.

그 시대 속에서 이강모(여진구)의 가족은 풍지박산이 난다.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의 붕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형과 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 불행한 강모의 가족사는 이 막장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을 표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뿔뿔이 흩어놓은 가족이 다시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 가족으로 뭉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태는 시대극이고 그 속에 강력한 가족극이 숨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이언트'는 시대극이면서도 지극히 사극이 갖는 극적 재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를 그저 국책성 드라마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대결구도의 양상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강모의 성장담에 집중하는 만큼,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조필연의 성장담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가 모두 '눈물 젖은 빵'의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아마도 그 막장의 시대가 가진 극적인 요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하게 되는 그 시대의 공기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로 들어가면 상황은 막장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행복을 말해주는가 이 드라마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막장의 시대를 다루는 '제빵왕 김탁구'와 '자이언트'가 막장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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