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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폭발력 커지는 <무도> 가요제의 비밀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무한도전> 가요제는 강변북로 가요제(2007)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2009),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를 거쳐 이번 자유로 가요제(2013)가 무려 네 번째다. 그런데 이처럼 회를 거듭하면서도 그 폭발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자유로 가요제는 일단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3만5천여 명이 운집한 공연장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단 하루 게릴라식으로 치러지는 가요제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어엿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의미와 가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음악들이 주목된다. 유재석이 댄스곡을 고집한다거나 박명수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반복했다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가요제였다. 하지만 유재석이 부르는 R&B는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프라이머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레트로 힙합을 박명수가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첫 무대에 올랐던 김C와 정준하의 실험적인 무대는 실로 압권이었다. 정제되면서도 세련되고 또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 놓음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퍼포먼스가 좋았던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무대, 노홍철과 장미여관 그리고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선보인 파워 넘치는 록 스피릿, 그리고 보아와 길이 보여준 춤의 경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 멤버와 아티스트들의 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도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러 차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함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가수들의 풀이 넓어진 것은 음악적인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메인 게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게스트에만도 이소라, 다이나믹 듀오, 김조한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정도가 아닌가.

 

자유로 가요제에는 지드래곤이나 보아처럼 국내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미여관 같은 이제 막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인디밴드가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미여관의 육중완의 옥탑방에서 노홍철이 YG 사옥을 가리키며 게찜을 먹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점심을 먹는 YG 식당을 급습하는 장면도 말이다.

 

여기에 유희열이나 김C 같은 이미 예능을 통해 믿고 보는 캐릭터들의 가세는 자유로 가요제의 예능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특히 감성변태 유희열과 유재석이 곡 선정을 하면서 서로 댄스와 R&B를 고집하다가 <100분토론>(?)까지 하는 이야기나, 제주도를 여행하며 김C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정준하의 이야기, 그리고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퀴어코드를 활용해 마치 연인처럼 밀당을 하는 이야기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발표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 시즌제를 하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빠지는 늪이 바로 이 반복과 패턴화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감일 것이다. 제 아무리 파괴력을 보여준 소재라도 반복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 과거 <남자의 자격>이 했던 하모니편은 단적인 사례이고,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한도전> 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 특유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보통 시즌제 프로그램이 작게는 몇 달마다 길게는 1년 정도를 두고 반복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휴지기가 2년이다. 그만큼 이전의 열기가 충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에서 휴지기가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기대감을 상대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속에도 들어있다. 보통의 가요제라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자들이 방송국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리허설 등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가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다. 멤버들은 가수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한없이 기대감을 뺀다. “과연 저렇게 해서 노래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서 보듯이, 막상 무대에서 발표된 곡들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토리텔링은 예능적으로 접근하고(기대감을 낮추고) 무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이야기까지 가사로 녹여진다면 웃음과 즐거움을 넘어 감동까지 주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방송에 있어서 비슷한 소재를 갖고 회를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가요제 형식의 <무한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게다. 이것은 또한 무수한 시즌제를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에게도 분명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형식 도전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무도> 가요제, 지드래곤 특히 주목되는 이유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감은 이미 대박을 치고도 남았다. 대충 설렁설렁 조합을 만들고 작곡 작사도 전혀 진지한 모습은 별로 없고 그저 즐기고 노는 모습만 가득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를 포착해내면서도 음악을 배려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한 마디로 허허실실이다. 믿고 보는 <무한도전> 가요제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모든 힘은 그간 반복된 가요제 경험이 그 바탕이 됐을 게다. 멤버들이 가진 각각의 캐릭터와 음악적 취향은 그들과 조합을 이룬 가수들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었다. 멤버와 가수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케미(화학작용)는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노래에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부여한다. 단언컨대 여기서 나오는 노래들은 한 바탕 음원차트를 흔들어댈 것이 분명하다.

 

유재석과 유희열, 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만담 콤비를 보라. 유희열의 캐릭터가 그대로 묻어나는 끈적끈적한 R&B(물론 이것은 예능적인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음악적 취향이 아니라.)와 ‘자가자가자가’ 하며 끊어주는 비트의 댄스 중독자 유재석이 서로 부딪치며 주고받는 대화들은 웬만한 콤비 코미디언의 조합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군이다. 외모에서부터 음악적 취향까지 사사건건 부딪치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결국 표절에 가깝지만 그래도 댄스곡을 억지로 준비해온 유희열과, 반대로 R&B곡으로 결정하는 유재석의 이야기로 결말이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매끄러운 밀당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런 조합에서 뽑아져 나오는 궁금증과 기대감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길과 보아의 조합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사람의 친분이 전면에 내세워지면서 보이는 보아의 털털한 매력이다. 짜장면을 먹는 보아의 모습을 어디서 보겠는가. 한편 보아의 강권으로 SM식의 댄스를 선보여야할 길의 도전 역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코믹일까 아니면 진짜 길의 캐릭터에 맞는 괜찮은 크럼프일까.

 

정형돈과 지드래곤은 이 조합의 묘가 만들어낸 밀당 상황극의 끝판이다. 음악을 함께 만드는 동료라기보다는 마치 퀴어 연애를 하는 듯한 병맛 코드의 이 조합은 거만한 정형돈과 그를 추종하는 지드래곤의 반전 관계로부터 시작해, 차츰 정형돈이 지드래곤의 매력을 알아가는 단계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여기에 힙합비둘기 데프콘은 이 역전된 관계에 확실한 감초역할까지 더해주었다.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동묘시장에서 의상을 구입하고 ‘삐딱하게’ 뮤직비디오를 재해석한 것은 지금껏 <무도>가 해왔던 병맛 패러디의 매력을 제대로 재현했다.

 

예능에는 아직 약한 프라이머리에게 연실 면박을 주며 예능 포인트를 살려내는 박명수의 조합이 만들어낼 세련된 힙합도 기대되지만, 제주도까지 달려가 <개콘>의 오성과 한음을 재현해내며 그 풍광이 주는 힐링의 느낌을 음악으로 풀어내줄 정준하와 김C의 조합 역시 흥미롭다. 뜬금없이 YG 식당으로 달려가 ‘시식로드’를 즉석에서 만든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가 만들어낼 자유분방한 밴드 음악과, 서민적인 냄새 가득한 장미여관과 그들을 붐업시켜줄 에너지의 노홍철이 선사할 들썩들썩할 무대 역시 기대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이 조합들이 이미 저마다의 재미와 음악적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담 콤비 유재석과 유희열의 R&B, 길과 보아가 보여줄 SM식 음악과 힙합 소울의 조합,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선사할 개가수에 가까운 B급 코드가 섞인 힙합, 박명수의 강한 캐릭터가 조화된 프라이머리의 음악, 정준하와 김C의 조금은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로 편안해질 힐링 뮤직,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의 신나는 밴드 뮤직, 그리고 어딘지 마음으로부터 지지하게 되는 장미여관과 그의 응원자 같은 노홍철의 신나는 무대. 실로 조합만으로도 성공이 보장된 게임이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과 스토리와 음악이 있으니 이제 이들은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고 더 허허실실해졌다. 프로들에게는 흔히들 어깨에 힘을 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에게 <무도> 가요제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특히 보아나 지드래곤 같은 국내를 대표하는 기획사의 가수들이 포진해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미 국제가수가 된 싸이가 <무도> 가요제에 상당부분의 지분을 빚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어쩌면 훗날 보아나 지드래곤이 싸이가 걸어간 길 위에 서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도> 가요제는 그만큼 부지불식간에 현 가요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여겨진다.

Posted by 더키앙

인디문화는 어떻게 대중들과 만났나

누구나 싸구려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달달한 맛이 제 아무리 맛좋다는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강한 중독성이 단지 싸구려 커피가 가진 설탕물에 가까운 달달함 때문만일까. 아니다. 싸구려 커피는 어느덧 하나의 문화 감성이 되어 있다. 거기에는 서민들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대중들의 노곤한 감성이 들어있고, 단 몇 백 원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여유가 들어있다. 장기하가 부르는 ‘싸구려 커피’에는 우리가 흔히 대중문화라고 불러왔던 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좀 더 본질, 진정성에 가까운 대중의 감성이 녹아 들어있다.

‘싸구려 커피’같은 비주류로 취급되던 인디 감성의 문화가, 주류를 치고 들어오는 현상은 단지 불황을 맞은 탓만은 아니다. 즉 경제적인 논리로 보자면 인디 문화가 가진 저투자 고효율은 불황이 요구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단지 대중문화를 숫자적인 관점, 즉 양적 잣대로만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이다. ‘싸구려 커피’의 주류 진입 성공의 이유는 오히려 질적인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류가 가진 상업적인 접근은 자본으로부터 생겨나고 자본이란 투여되는 순간부터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품’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쓰게된다. 개성은 이 잣대로 보면 때로는 리스크가 된다. 바로 이 부분은 왜 주류문화가 대부분 비슷비슷한 마치 대량생산된 통조림 같은 맛을 내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자본에서 독립되어 개성을 리스크가 아닌 무기로 장착한 ‘싸구려 커피’는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오는’ 맛이지만 좀더 진심에 가까운 맛을 낸다. ‘싸구려 커피’의 성공을 불황 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불황이 오히려 진정성을 더 요구하는 시대적 정황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싸구려 커피’같은 인디 문화들이 주류로 치고 들어오는 풍경을 적지 않게 목도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기적(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이다)이 그저 하나의 예외적 사례로 남지 않는 것은 그 뒤를 충분히 이을만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같은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셋집까지 뺀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 투자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본이 들어오면 그간 함께 일해오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만일 그 때 투자를 받았다면 똥파리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하고, 영화 연출도 어쩌면 익숙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지금 같은 ‘똥파리’만의 아우라를 갖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독립영화의 시험대로 불리고 있는 이 영화가 실제로 관객몰이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인디문화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제 인디 문화가 더 이상 싸구려라는 오명으로 불려지는 시대는 지났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잣대가 자본의 양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질적인 판단을 유보한다. 싸구려라는 말은 적은 돈(오히려 이 성격이 다른 돈이 질을 만들기도 한다)이 들어갔다는 의미로서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 대중들은 ‘워낭소리’나 ‘똥파리’,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밴드를 통해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 예능, 음반에 드리워진 88만원 세대의 그림자

그들은 오로지 대학만이 모든 것을 이뤄줄 것이란 이야기를 들어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낭만이란 말은 뒤로 접어둔 채, 일찌감치 취업준비로만 전전해왔다. 그리고 사회에 버려지자마자 바늘구멍 뚫기만큼 힘들다는 취업전선에서 다시 경쟁해야 했고, 그렇게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그들도 그러나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몇 개월 간의 치열한 노동의 경쟁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정당한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그들. 한때 사회현상처럼 대중문화에서 조명되었던 백수세대는 이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내조의 여왕’, 온달수의 인턴시대
‘내조의 여왕’의 온달수는 나이도 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까지 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88만원 세대의 그것을 그대로 닮았다. 굴지의 대기업인 퀸즈푸드에 입사하려는 온달수는 면접에서부터 인사부장을 친척으로 두고 있는 상대와의 경쟁에서 혈연으로 밀린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가 허락되지만 반쪽 짜리. 인턴 3개월을 거쳐야 하는 입장이다. 조직은 실력과는 상관없이 연줄과 권력(돈)의 힘으로 굴러가고 그 앞에 선 온달수가 가진 것은 열정과 내조를 위해 친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는 아내뿐이다.

이 온달수가 처한 상황은 아내와 관련된 부분만 떼 놓고 보면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는 88만원 세대들이 겪는 것과 꼭 같다. 이미 굳건하게 저들만의 리그가 결정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 누구나 무릎을 꿇고 처세를 해야 하지만, 온달수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을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주부들 눈높이로 맞춰놓은 것만 같다. 이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여성층을 겨냥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남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 그 여왕이 내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이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개그콘서트’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분장실의 강 선생님’. 이 코너는 개그맨 사회를 분장실로 축소해 그 모습을 통해 우리네 조직문화를 풍자한다. 여기서 강 선생님은 최고참인 강유미지만 이 코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중간고참인 안영미다. 안영미는 강유미 앞에서는 굽실대면서, 신참들인 정경미, 김경아 위에는 군림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안영미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신참들을 괴롭히면서도 습관적으로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하고 외친다.

여기서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이것들’에 해당되는 정경미와 김경아는 바로 88만원 세대의 분신이다. 그들은 감기에 걸려도 허락 받고 걸려야 하는 처지. 하지만 맥락을 좀더 넓혀보면 88만원 세대는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모두 여성으로서는 수치스러울 수 있는 분장을 하고 있고, 그것은 웃겨야 살 수 있다는 처절한 현실을 반영한다. 안영미가 신참들을 괴롭히고 고참에 아부하면서도 그것이 밉상이 아닌 것은 그녀가 가장 독한 골룸 분장을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코너는 88만원 세대의 개그맨 버전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임금조차 없이 꿈 하나만으로 버텨오던 그들이지만, 막상 무대가 생겨도(코너를 잡아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들은 온 몸의 분장으로 보여준다.

‘싸구려 커피’마시며, ‘별 일 없이 산다’ 왜?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가요계에 벌어진 큰 사건 중 하나는 장기하라는 감성의 발견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싸구려 커피’를 들고 나오는 순간, ‘88만원 세대’의 정서는 음악이 되어 대중들의 축 처진 어깨를 두드렸다. 그 노래에는 장기불황에 직면해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 마냥 그냥 썩어 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는’ 청춘들의 정서가 녹아있다. 거기에는 좌절과 포기를 넘어서 마치 자기 일이 아닌 것 마냥 그 자체를 희화화시킬 정도로 둔감해진 고통이 숨겨져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패배의식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1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별 일 없이 산다’에서는 바로 이 일이 없어 별 일 없이 사는 그들이, 거꾸로 그래서 ‘별 일(고민) 없이 산다’는 역설을 끌어낸다. 이것은 승자독식 구조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을 그 누구에게 ‘깜짝 놀랄 만한 얘기’면서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로 변모한다. 그런데 이 장기하 감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서는 청춘들뿐만 아니라 중ㆍ장년층에게도 그대로 어필된다. 그네들 역시 시스템 속에 앉아있지만 마치 저 안영미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처절한 조직의 삶에 마찬가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 대중문화 속에는 88만원 세대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것은 현재 우리네 청년들이 처한 슬프고도 암담하며 답답한 현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포착하는 88만원 세대의 정서는 청년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한 때의 망각을 꿈꾸는 주부의 감성 속에도 묻어나고, 개그맨의 처절한 현실을 보며 통쾌한 웃음으로 잠시 자신의 현실을 잊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피어나며, 노래 한 자락에 위안을 삼아보려는 중ㆍ장년들의 정서 속에서도 피어난다. 이것은 어쩌면 ‘88만원 세대’를 낳은 시스템의 문제가 우리네 사회 전체가 처한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불황기 문화풍경을 바꾼 비주류의 전복

불황기를 맞아 늘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 같은 화려하고 세련된 음악적 감성들이 어딘지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렸던 분들이라면,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하고 외쳤을 때 무릎을 탁 쳤을 만도 하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오는 그 ‘싸구려 커피’의 감성은 홍대 클럽에서는 익숙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처음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전파를 탔을 때는 날카로운 B급 감성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충격이 되었다. 그 낯선 노래가 가진 천진함에 가까운 솔직함은 불황을 맞아 오히려 화려하고 세련된 음악들의 수사를 낯선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단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비주류의 감성에 머물지 않고 주류로 떠올랐다. 지난 27일 발표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정규앨범 ‘별 일 없이 산다’는 초판 8천 장이 예약으로 모두 팔려나가 급히 1만 장을 새로 찍었다고 한다. 장기하에 대한 폭발적인 대중들의 반응은 물론 그 음악의 독특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항간에는 산울림과 송골매의 재림이라고 부를 정도로 ‘장기하와 얼굴들’음악적 뿌리를 포크 록의 계보에서 찾고 있다. 장기하는 포크가 가진 메시지성에 B급 감성을 노래에 장착해, 장기 불황과 취업 전쟁에 내몰린 청춘들의 암담함을 거꾸로 뒤집는다.

‘별 일 없이 산다’는, 이 기가 막힌 중의적 의미를 가진 제목의 노래는 ‘일 없이 사는 자’가 그로 인해 ‘별 고민 없이 산다’고 말하는 노래다. 이 일 없는 자가 일을 좇지 않고 일 없음을 즐기는 태도는 실로 (아마도 일이 있는 자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면서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로 전복된다. 장기하는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바로 이 ‘일 없는 상태’가 즐겁고 신나고 재밌다고 말함으로써, 먼저 상황을 뒤집고 그런 상황을 만든 그 누군가의 의도가 실패했음을 통쾌하게 역설한다.

B급 감성이 주류로 편입되는 현상은 장기하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워낭소리’이후 갑자기 관심을 갖게 된 독립영화에서도 B급 감성은 도드라진다. 고작 제작비 1천만 원으로 무려 3만 명의 관객을 향해 가고 있는 ‘낮술’이 대표적이다. 여자친구와 실연을 당하고 친구들의 부추김으로 떠난 정선 여행길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비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청춘들의 감성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음침한 주점 한 구석에서 소주를 마시며 술기운을 빌려 한바탕 호기를 부리는 그 낮술의 광경은, ‘장기하 감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이 시대 청춘들의 좌절과 그럼에도 절대로 고개 숙이지는 않는 자존감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상황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불황이다. 투자는 전체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줄어든 투자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가 불황기 생존법이 되었다. 대규모 투자로 대규모의 수익을 얻어가던 주류는 이 시기에 오히려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투자상황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불황을 맞아 달라지게 되는 대중 정서의 변화다. 심각한 불황기에는 비주류 정서가 주류가 되기 마련이다. 이른바 ‘장기하 감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의 자양분으로 피어난 이 시대 청춘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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