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는 멜로와 장르물을 제대로 엮을 것인가

 

MBC <W>의 방영으로 수목드라마 대전이 새롭게 시작됐다.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격 멜로로 MBC <운빨로맨스>의 말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면, 그 후속으로 등장한 <W>는 또다시 <함부로 애틋하게>와의 일전을 예고하고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운빨로맨스>가 멜로 대 멜로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본격 스릴러 장르물인 SBS <원티드>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었다. 시청률이 7%대를 줄곧 유지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W>의 등장은 <원티드>의 시청률에 적신호를 울리게 했다.

 

'W(사진출처:MBC)'

<W>의 첫 회 시청률은 8.6%(닐슨 코리아). <함부로 애틋하게>가 오히려 12.9%로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고 대신 <원티드>5.4%로 하강곡선을 그린 건, 다른 말로 하면 <W>의 방영이 <원티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즉 애초에 이종석과 한효주 캐스팅에 멜로 구도가 강할 것으로 여겨졌던 <W>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의문의 살인사건과 이를 파헤치려는 주인공의 스릴러적 요소들이 더 많이 보인 장르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본격 장르물을 그리고 있는 <원티드><W>의 대결구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W>의 첫 회가 장르물의 성격을 띠며 <원티드>와의 대결을 예고하고 있지만 계속 이 흐름이 유지될 것 같지는 않다. <W>는 첫 회에 이미 밑밥을 깔아 놓은 것처럼 웹툰 속 주인공 강철(이종석)과 웹툰 바깥의 의사인 오연주(한효주)의 멜로 역시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수목 드라마의 삼자 구도의 색깔이 흥미롭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격 멜로물이고 <원티드>가 본격 장르물이라면 <W>는 장르와 멜로가 섞인 복합 장르적 성격을 띠고 있다.

 

<W>가 가진 강점은 그래서 멜로와 장르물의 묘미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어필하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원티드>는 확실히 매 회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바로 이 점은 새로운 시청자들의 유입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중간부터 보면 그만한 몰입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과 수지라는 캐스팅의 힘이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이야기가 너무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비판적인 시선들도 존재한다. 너무 익숙한 설정들이 반복되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게다가 너무 드라마가 무겁다는 반응은 요즘처럼 답답한 현실에 정서적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끌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보면 <W>는 확실히 타 방송사 두 드라마의 중간 정도 위치에 서 있어 잘만 장르를 운용한다면 괜찮은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W>의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웹툰이라는 가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판타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작품이 판타지를 통해 어떤 현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장르의 혼합은 좀 더 지켜봐야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스릴러적인 요소들이 주는 쫄깃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밀고 당기는 멜로가 균형 있게 그려질 수 있을지에 따라 그 성패가 갈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굿와이프>, 아내와 변호사 넘나드는 전도연의 클래스

 

역시 전도연이다. tvN의 새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은 아내이자 변호사인 김혜경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사실 아내와 변호사라는 두 캐릭터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아내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고, 변호사라는 직업 역시 장르물의 견고한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하지만 <굿와이프>는 다르다. 이 드라마가 짚어내고 있는 핵심적인 포인트는 아내이자 변호사라는 김혜경의 위치다. 그녀는 남편 이태준(유지태)이 불륜스캔들에 휘말려 아내로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해 무려 15년 동안 헌신했던 가정을 박차고 나와 변호사로서 자신을 세워야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맡게 된 변호가 불륜 사실 때문에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가진 한 아이의 엄마라는 건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진 의뢰인에 대해 그녀는 동병상련의 깊은 공감을 통해 더 변호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국 이길 수 있었다.

 

즉 김혜경이 해온 15년 간의 아내로서의 삶은 남편의 배신 때문에 허탈한 시간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삶을 통해 접하게 된 여성들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제 변호에 있어서도 그것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굿와이프>가 여타의 아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나,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혜경이 다시 변호사로 돌아와 첫 번째 사건을 이기는 그 과정은 그래서 아내로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김혜경이라는 본인으로서 서게 됐을 때의 그 성취감. 그런 것들이 첫 번째 승소를 하고 법정을 나오는 김혜경의 기쁜 얼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굿와이프>는 이렇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홀로 독립해 서게 되는 김혜경이라는 여성의 성장스토리를 다루지만, 의외로 숨겨놓은 반전 요소들도 들어 있어 훨씬 극적 재미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억울하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녀의 남편 이태준이 아내인 김혜경을 통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 드라마의 주요 포인트지만, 그 뒤에는 또한 이태준의 욕망이 어른거린다. 이 부분은 단순해 보이는 성장드라마가 다양한 이야기들로 변주될 있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 그리고 아내로서의 모습과 변호사라는 직업으로서의 면면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굿와이프>에 대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법정극이 그려내는 반전에 반전의 이야기와 아내에서 독립해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성장해가는 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은 온전히 전도연이라는 든든한 배우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싶다.

월화 <육룡>, 수목 <태후>, 금토 <시그널>

 

드라마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월화에 SBS <육룡이 나르샤>가 있다면 수목에는 KBS <태양의 후예>가 있고 금토에는 tvN <시그널>이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오는 얘기. 어떻게 일주일을 또 기다리느냐는 얘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만큼 완성도도 높고 몰입감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명품드라마들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들 명품드라마들은 확실히 과거의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육룡이 나르샤>는 사극이지만 이전의 사극이 아니며, <태양의 후예>는 멜로드라마지만 그저 그랬던 과거의 멜로가 아니다. <시그널>은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와 깊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들이 화제성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과거의 경우 드라마는 막연하게 성공 공식 같은 것들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를 종합선물세트로 차려놓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률을 가져간 게 막장드라마들이다. 또한 지상파는 그 주시청층이 정해져 있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도(어쩌면 그것이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한 마디로 적당(?)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의 후예>처럼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담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6회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는 것이 그렇고, <시그널>처럼 멜로도 없는 본격 장르물(그것도 형사물은 시청률에서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이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가져갔다는 것도 그렇다. 무려 50부작에 이르는 사극이지만 한 회 한 회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육룡이 나르샤>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확언하긴 어렵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드라마의 시청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40대 드라마 시청층은 30대부터 우리네 드라마와 미드, 일드를 함께 즐기며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키워왔던 세대다. 이들은 기성의 드라마 주시청층이 좋아하던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 복수극을 담은 막장드라마 같은 공식적인 드라마도 보지만 동시에 본격 장르물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시청층이다. 그 누구보다 막장드라마를 개탄해하고 완성도 높은 명품드라마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온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막장드라마 논란을 일으킨 MBC <내 딸 금사월>에 관계자 징계와 주의라는 법정 제재 같은 이례적인 조치를 내린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미 막장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방심위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청률이면 얼토당토않은 개연성에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던 막장드라마는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의 새로운 판도가 열리고 있다. 변화의 시점에 그 헤게모니를 누가 잡는가는 방송사들의 사활을 건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쟁의 방식이 과거처럼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막장드라마 경쟁 같은 퇴행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제 아무리 시청률을 가져간다고 해도 대중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바 있고, 또 새로움을 요구하는 시청층을 잡지 않으면 광고 매출 같은 직접적인 수익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때는 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던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이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명품드라마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풍경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기를.

<시그널>이 보내는 향후 드라마 판도의 시그널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이미 알려진 대로 지상파에서 먼저 편성이 거론됐던 작품이다. 드라마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와 여러 작품을 해왔던 SBS는 물론이고 지상파 3사가 모두 이 드라마의 편성을 고민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이 드라마를 포기했고 tvN이 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 그림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재작년에 tvN에서 방영됐던 <미생>과 완전히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생>이 지상파에서 거부됐던 건 멜로의 부재 때문이었다. 지상파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멜로를 추가하기를 요구했지만 원작자인 윤태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tvN이 이를 받아들여 제작하게 됐고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이었다.

 

당시 이 <미생>의 성공은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미생>의 성공이 말해주는 의미들, 이를 테면 완성도 높은 작품에서 굳이 멜로를 끼워 넣지 않아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식의 자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그널>의 사례는 이러한 자성도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왜 지상파는 <시그널>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이미 여러 보도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본격 장르물에 대한 부담때문이다. 적절한 장르와 지상파에 친숙한 코드들(이를테면 멜로나 가족 같은)이 버무려진 복합 장르물은 그나마 지상파가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괜찮은 장르물의 외형에 익숙한 드라마적 코드들을 넣음으로써 지상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과 장르물을 선호하는 시청층을 모두 끌어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시그널>은 김은희 작가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본격 장르물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멜로구도가 들어가 있지도 않고, 드라마의 전개도 본격 추리물과 스릴러처럼 촘촘하게 꾸며진데다 그 속도도 만만찮게 빠르다.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지만 지상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꽤 높을 수밖에 없다. 잠깐 놓치면 이야기 전개가 이해되지 않는 드라마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지만 그건 또한 더 깊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시그널>tvN에서 방영되어 이처럼 성공하고 있는 걸 보는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이 대단히 아쉬워할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방영됐기 때문에 그만한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즉 지상파를 보는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과 케이블을 보는 그것이 사뭇 다르다는 것. 보편적으로 틀어 놓는 지상파와는 달리 선택적 시청을 통해 지금의 위상이 만들어진 tvN은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청 패턴의 차이는 <미생>에 이어 <시그널>처럼 멜로 없는 본격 장르물로도 tvN 드라마들이 성공적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tvN은 훨씬 더 영화처럼 드라마를 찍어낸다. <미생>도 그랬지만 <시그널> 역시 김원석 감독은 드라마라기보다는 거의 영화에 가까운 디테일과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경향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지상파에서 거부한 작품이 케이블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해서 그걸로 지상파가 배 아파할 것이라는 시각은 너무 이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불안감이 지상파에 드리워져 있다. 그건 지상파 드라마의 제작패턴보다 점점 더 케이블 드라마의 제작패턴에 미래의 드라마가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현재의 콘텐츠 시대에 케이블 플랫폼이 지상파 플랫폼보다 훨씬 유리한 지점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시그널>의 성공이 보내는 향후 드라마 판도의 시그널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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