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 간 줄 알았던 멜로, 어떻게 대세가 됐나

 

멜로의 부활이 심상찮다. 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치즈 인 더 트랩>은 케이블 채널로서는 이례적으로 매회 시청률이 상승해 겨우 4회만에 6%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 새로 시작한 KBS <무림학교>보다도 높은 시청률 수치다. <무림학교>는 무협과 학원물을 퓨전한 장르물로서 애초에 기대가 높았지만 완성도의 부실을 드러내며 첫 회에 5.1%(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더니 자신 있다던 2회에서는 아예 4%로 내려앉았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멜로는 한 물 갔다? 최근 몇 년 간 멜로라는 단일 장르로서는 그리 선전한 작품이 많지 않다. 물론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가 빠진 드라마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장르와 결합된 형태였기 때문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사정은 확실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 말 MBC <그녀는 예뻤다>가 보인 기록은 실로 놀라웠다. 첫 회 4.8%로 시작했던 이 드라마는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최고 1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올해 초 KBS <오 마이 비너스>가 보인 기록도 놀라운 일이었다. 너무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서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 드라마는 줄곧 8,9%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괜찮은 성적을 냈다. 물론 이야기가 좀 더 신선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지만 소지섭과 신민아가 보여주는 달달한 멜로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쏙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제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이어지고 있다. 4회에 이 정도의 기록을 내고 있으니 잘 하면 두 자릿수까지 넘볼만하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럴만한 것이 스토리면 스토리, 연출이면 연출 게다가 원작 싱크로율의 논란까지 잠재워버린 박해진과 김고은의 연기까지 더해져 벌써부터 월요병을 치유해준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온전한 멜로드라마의 부활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의 멜로드라마와 달리 현실적인 사안들을 더 리얼하게 끌어안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즉 신데렐라 여주인공에 왕자님 남주인공이 나오던 그저 그런 성장 멜로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보기에 너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마당에, 게다가 재벌2세들은 왕자님이 아니라 부정적인 갑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지금 이런 구도는 비현실을 넘어서 정서적으로도 공감 받지 못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녀는 예뻤다>는 물론이고 <치즈 인 더 트랩>의 멜로 구도는 확실히 다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그저 신데렐라가 아니라 더 치열하게 현실에서 뛰는 미생에 가깝다.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황정음)이 그렇고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김고은)이 그렇다. 그들은 연애라는 것 자체가 배부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도 반납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한다.

 

이러한 공감 가는 현실 바탕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물론 남자 주인공들도 과거의 왕자님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녀는 예뻤다>의 지성준(박서준)은 본인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그들의 멜로에는 빈부 차이가 만들어내는(특히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백화점에 데려가 옷을 사주는 시퀀스로 자주 나오는) 갖는 막연한 판타지가 없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유정(박해진)은 집안, 외모, 학벌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인물이지만 그 조건이 그의 판타지를 만드는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그 미스테리한 모습이 그의 진짜 판타지다. 결국 최근의 멜로드라마가 추구하는 건 막연한 판타지라기보다는 여주인공의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라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멜로드라마가 추락했던 건 그 장르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비슷한 공식과 캐릭터들을 버무려 냈던 그 매너리즘이 한계였을 뿐. 새로운 공감 가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처한 공감 가는 현실이 멜로와 엮어질 때 그것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걸 작금의 멜로드라마들은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지상파 드라마, 왜 연애를 버리지 못할까

 

MBC <오만과 편견>은 검사들이 주인공이다. 소위 말하는 나쁜 놈들때려잡는 검사들의 이야기.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이 하드보일드 할 것만 같은 드라마에 남녀 주인공 간의 미묘한 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열무(백진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힘겹게 검사가 되어 굳이 구동치(최진혁)가 있는 지검으로 자청해 들어온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들은 과거 서로 사귀던 사이였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헤어졌다. 그들이 다시 만나 생겨나는 묘한 연애의 기류. 왜 이 검사들의 나쁜 놈들과의 전쟁 이야기에 연애가 들어 있는 걸까.

 

어찌 보면 이것은 이질적인 요소처럼 보인다. 첫 회에서 <오만과 편견>이 다룬 것은 아동 성추행범을 검거해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한열무와 구동치의 밀당은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에 어찌 어찌해 성추행범들을 검거한 후에 한열무가 구동치에게 보내는 시선은 연애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2회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범인들을 잡고는 한열무가 구동치와 강수(이태환)가 함께 기거하는 숙소로 들어오는 내용이 담겼다. 숙직실에서 지내는 한열무에게 자기가 마음이 불편하다며 호텔에서 자라는 구동치의 말에 그의 숙수로 들어온 것. 첫 회에서도 살짝 보인 것이지만 한열무, 구동치, 강수는 전형적인 삼각 멜로의 구도를 보인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검사들의 범인 잡는 장르물에 굳이 멜로가 들어간 이유는 명백하다. 지상파 드라마의 불문율로 자리하고 있는 멜로 없이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로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 해도 너무 멀리 해도 안되는 어떤 것이다. 너무 멜로에만 매몰되다 보면 그저 그런 식상한 드라마로 전락하고, 그렇다고 아예 빼버리면 대중성이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멜로가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SBS <비밀의 문>은 아예 멜로 구도 자체를 만들어내지 않고 영조(한석규)와 사도세자(이제훈)의 맹의를 둘러싼 대결구도에만 천착하고 있다. 드라마는 흥미진진하지만 시청률은 낮다. 멜로라는 일종의 윤활유가 빠져버린 탓이다. 한편 KBS <내일도 칸타빌레>는 클래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메인은 차유진(주원)과 설내일(심은경)의 청춘 멜로가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어떤 현실적인 사회성이 들어 있지 않은 이 멜로는 그 결과로 시청률이 낮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만과 편견>의 사회성과 멜로를 적절히 섞은 선택은 현재의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 패턴 속에서는 옳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청률 같은 대중성을 잣대로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즉 어찌 보면 억지로 엮은 듯한 멜로는 지상파 드라마의 필요악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케이블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tvN <미생>OCN <나쁜 녀석들>은 오히려 멜로가 없어서 잘 된 작품들이다.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이후 쏟아져 나온 tvN표 드라마들이 계속 로맨틱 코미디의 언저리를 방황하다가 추락하게 됐던 사실과, 최근 멜로 없는 <미생>의 성공은 그래서 케이블 드라마를 찾아보는 시청자의 시청패턴이 지상파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케이블이 보다 높은 완성도와 리얼리티를 위해 멜로를 과감히 배제하고 있는 반면, 지상파는 괜찮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을 위해 어디나 멜로를 끼워 넣으려 한다. 지상파의 이른바 보편적 시청층이라는 타깃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케이블은 지상파가 시도할 수 있는 보편적 타깃을 부러워 하지만.

 

<오만과 편견>이 보여주고 있는 장르물의 성격과 멜로의 퓨전은 그래서 지금 현재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혹자는 이 드라마의 연애가 장르물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여길 것이고, 혹자는 바로 그 연애가 있어 장르물의 딱딱함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별에서 온 그대>처럼 복합 퓨전 장르물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독특한 우리네 드라마의 색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멜로라는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드라마의 한계일 수도 있다. 당장의 시청률에는 득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되는.

 

모든 드라마의 악역, 돈으로 귀결되는 까닭

 

결국은 돈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대부분이 추악한 돈의 문제를 다룬다. 새롭게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 김석주(김명민)는 돈이 된다면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됐던 분들의 고통도 나 몰라라 하고 일본 기업의 편에 서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법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돈 있는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나갈까만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로펌을 이끌고 있는 차영우(김상중)는 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죄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야. 그가 죄가 있어도 죄를 입증시키지 못했다는 뜻이지.” 이 드라마 속 변호사들은 결국 돈의 생리를 따라간다.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고 없으면 유죄가 되는 것. <개과천선>은 그 대표격인 김석주라는 변호사의 말 그대로의 개과천선을 다루는 드라마. 세상에서 필요한 건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라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드라마다.

 

KBS <골든크로스>는 경제를 움직이는 0.001%의 집단이 벌이는 추악한 범죄를 다룬다. 마치 과거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드라마는, 돈이 된다면 멀쩡한 은행도 부실로 만들어 헐값에 외자에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고위 경제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이야기 한다. 이 과정에서 강도윤(김강우)의 집안은 파탄이 나 버린다. 여동생은 살해당하고 그 여동생 살해의 용의자로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이른바 골든 크로스라는 집단이고 그 뒤에는 결국 돈이라는 절대 악역이 자리해 있다.

 

SBS <쓰리데이즈> 역시 남북 간의 긴장관계를 만들어 그걸 통해 무기거래 같은 이익을 보려는 팔콘이라는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팔콘의 개가 된 김도진(최원영)은 이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조차 무감하게 받아들인다. 또 이를 막으려는 이들을 한 명 한 명 제거하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제거하려 한다. 팔콘이라는 조직이 뒤에 놓여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본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돈이면 전쟁도 불사하는 그들이다.

 

KBS에서 월화드라마로 새로 시작한 <빅맨> 역시 이 자본이 가진 더러운 본질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고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살던 김지혁(강지환)이 갑자기 재벌가 2세가 되는 이면에는 그의 심장을 필요로 하는 재벌가 자제가 숨겨져 있다. 결국 심장이식을 위해 숨겨진 자식인 척 가장하는 것. 이 이야기에는 돈이면 사람 생명도 제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자본의 무시무시한 자만이 들어가 있다.

 

최근 드라마들이 다양한 장르물들을 시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절대 악역으로서 등장하는 자본의 문제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이야기는 어째서 이토록 대중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양극화가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이들 드라마들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게다. “난 무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쓴 게 그게 죄냐?”하고 말하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처럼, 지금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은 스스로를 무죄라고 말 할 만큼 뻔뻔해져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듯 돈의 문제는 인명 앞에서조차 이제 모든 걸 결정하는 최종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비통한 상황이다. 하지만 돈이면 과연 다 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는 선택은 과연 온전한 무죄일까. 나의 선택이 타인의 고통이 되지는 않을까. 지금 드라마들이 자본을 절대 악역으로 출연시켜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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