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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KBS 대하드라마가 부활하려면

<2018 KBS 연기대상>에서 김명민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한 유동근은 “분에 넘치는 상”을 받았다고 재차 말했다. KBS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를 이끈 건 자신이 아니라 상대역이었던 장미희였다는 것. 장미희는 이 날 최우수상을 받았다.

유동근은 대상 수상에 대한 감사함과 과분함을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언급했다. “그래도 올해는 대하드라마가 제발 부활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멋진 연기도 부러웠지만 그 드라마를 보고 의병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이제 시청자 여러분께서 열기와 열정과 성원을 해주시면 대하드라마가 반드시 부활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지상파의 연기대상에서 그것도 대상수상자가 어째서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까지 언급한 걸까. 거기에는 꽤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 그 첫 번째는 KBS라는 플랫폼에 가장 어울리는 드라마 장르라고 생각되는 대하드라마가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사실 공영방송에서 대하드라마는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방송의 의무가 될 수 있다. NHK 같은 일본 공영방송이 대하드라마를 지난 1963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방영하고 있는 건 그런 의미를 갖는다.

KBS에서 대하드라마가 사라지게 된 건 시청률 하락이 그 원인이다. 지난 2012년 방영됐던 <대왕의 꿈>은 평균 10%대(닐슨 코리아) 시청률에 머물렀고, 2016년 24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장영실>은 평균 11%대(닐슨 코리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끝을 맺었다. 대하드라마는 규모가 큰 만큼 만만찮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성적은 드라마국 전체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됐다. 결국 대하드라마 제작의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던 것.

생각해보면 <미스터 션샤인>은 무려 430억 원의 제작비가 든 드라마였다. 지상파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제작 규모라 결국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넘어갔고, 넷플릭스의 투자를 통해 비로소 드라마화가 가능해졌다. 430억 원의 제작비는 단지 규모가 큰 대하드라마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만한 제작비가 있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그래야 지금의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겨우 맞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상파 드라마들이 가진 제작 여건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유동근은 대하드라마 부활을 꿈꾸며 <미스터 션샤인>을 언급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는 제작 방식이 보다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지금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그나마 KBS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는 부분은 다소 보수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주말드라마와 대하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가족 판타지에 대한 여전한 소구층이 존재하고, 역사드라마에 대한 갈증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하드라마가 기획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이 실현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과연 유동근의 바람처럼 올해는 KBS가 대하드라마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여건들이 선결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 드라마 제작의 중대한 이슈가 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문제는 대하드라마처럼 노동 강도가 높은 드라마에 선결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단지 제작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만한 완성도를 갖춰야 시청자들의 호응까지 얻어낼 수 있을 게다. 이 모든 선결조건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드라마의 제작방식이나 여건도 우선적으로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쓸신잡2’가 보여준 역사의 묘미

사실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tvN <알쓸신잡2>가 천안에서 펼친 수다 속에 등장하는 박문수의 이야기는 어쩐지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단지 수업을 통해 배우는 역사가 아닌 수다로 들려주는 역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역사 이야기에서도 현재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시각이 덧붙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사라는 직종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감시’라는 관점에서 장동선 박사가 질문을 하자 유시민이 ‘보고하는 자’가 ‘보고받는 자’를 콘트롤하면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사례를 소비에트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고, 유현준 교수가 ‘권력’의 기제가 ‘나를 숨기고 다른 사람을 훔쳐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와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가 그만큼 멀리 있는 것까지 들여다본다는 권력을 얘기하는 대목이 그렇다. 

어사 박문수에 관한 일화들을 들은 적은 있지만 어사라는 직종이 가진 권력의 구조를 풀어서 이야기하고, 거기서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풀어냈던 파놉티콘의 감시구조를 끄집어내 암행어사라는 직종이 가진 효과가 일종의 파놉티콘 감시구조와 같다는 걸 유추해낸다. 실제로는 어사들이 많이 활동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시체계가 기능했다는 것. 여기서 유시민은 당시 어사들이 몇 백 명씩 있었지만 알려진 인물이 박문수 정도인 이유일 수 있다고 추론했다.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에서 권력과 감시의 기제까지 풀어나가는 <알쓸신잡2>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읽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봐야 하고 또 그것이 현재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생각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아마도 우리는 이 불운한 가족사를 대부분 알고 있지만 <알쓸신잡2>는 여기에 부모 자식 간의 교육적인 관점과 가족이 만들어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감성적인 이야기를 덧붙인다. 

영괴대를 다녀온 유현준 교수가 그 짠한 마음을 전하면서 꺼내놓은 사도세자의 이야기에서 유시민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훈육했던 방식은 너무 지나쳤다는 걸 지적했다. 하고픈 걸 못하게 하고 과도한 요구를 함으로써 자식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는 것. 결국 파행을 저지르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그 상황을 통해 유시민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지금의 부모 자식 간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당대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홍대용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사실 세종대의 장영실 같은 놀라운 과학자의 성취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후대에 거의 사라져버린 사실에서 유시민은 조선이 “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한탄했다. 그것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천대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장영실의 사후에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마지막 기록으로 남았던 가마가 망가져 장 100대를 맞았다는 그 기록의 미스터리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만큼 과학자를 천시하는 분위기였다는 것. 이 이야기에서는 실리적인 학문에 대한 천시 같은 시대착오적 생각들이 한 나라를 망하게도 할 수 있다는 현재적인 울림이 느껴졌다.

<알쓸신잡2>를 보다 보면 과연 우리의 역사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저 역사의 기록만을 적시하고 그것을 암기해 시험문제를 푸는 것으로서 역사교육을 가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 역사 교육이라면 이처럼 사료로 남은 몇 줄의 글귀 속에서도,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도 새로운 현재적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흥미진진한 <알쓸신잡2>의 역사이야기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사극의 새 역사 쓴 <육룡이 나르샤>

 

SBS 월화 사극 <육룡이 나르샤>가 이제 종영한다. 50부작에 이르는 긴 여정의 드라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어느 정도 흐르고 나면 늘어지기 마련인 장편 드라마들 속에서 <육룡이 나르샤>는 확실히 다른 밀도를 보여줬다. 마치 한 회 한 회가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긴장감이라니. 이 사극이 50부작이었다는 게 실로 믿기지 않는 건 그래서일 게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정통사극, 퓨전사극, 판타지사극, 장르사극 등등. 사극은 역사와 상상력이라는 두 날개를 갖고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왔다. 정통사극이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면 퓨전사극부터 장르사극까지는 서서히 상상력쪽으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해왔다. 하지만 상상력의 끝단이 만들어낸 결과는 역사라는 사실의 진중함이 결여된 허구라는 문제를 양산했다.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으로의 회귀는 사극이 지나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다.

 

사극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상상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역사로 회귀할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육룡이 나르샤>는 이 둘을 다시 껴안고 나가는 제 3의 길을 제시했다. 역사적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결합하고, 역사적 인물의 사실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허구의 인물들이 그려내는 상상력 또한 포기하지 않는 길. 이것은 <육룡이 나르샤>가 누구나 다 아는 여말선초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흥미진진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상상력을 무한히 펼치면서도 허구의 가벼움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육룡이 나르샤>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건 MBC <화정>KBS <징비록>, <장영실>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MBC는 이병훈 PD에서부터 만들어낸 퓨전사극의 전통 이후, <빛나거나 미치거나>, <화정>처럼 상상력에 더 치중하는 사극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선택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화정>은 심지어 지나친 역사왜곡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률도 곤두박질치는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다.

 

정통사극으로 회귀한 KBS 역시 마찬가지다. <정도전>은 좋은 평가와 시청률을 가져갔지만 이어진 <징비록>은 그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장영실>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위인전기를 보는 듯한 이야기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기 어려워진 것. 여러모로 <육룡이 나르샤>와는 비교되는 결과다.

 

<육룡이 나르샤>가 이전 사극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점은 인물에서도 나타난다. 보통의 사극이 한 사람의 영웅담이나 성장담을 그려내고 있는 기존의 사극의 패턴과 비교해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여섯 명의 인물을 동등한 위치에서 그려내면서 그들이 서로 관계하고 대립하는 과정들을 흥미롭게 다뤘다.

 

즉 누구 한 사람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사극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도전(김명민)의 입장과 이방원(유아인)의 입장이 서로 부딪치는 장면을 보면 우리는 양자의 입장을 이해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사극이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재단하지 않고 여러 입장을 드러내 궁극의 판단은 시청자에게 남기는 것. 그것이 지금의 역사를 보는 달라진 시각에 맞는 사극이 아닐까.

 

또한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그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사극으로서 그 사극만의 어떤 패턴이나 유형들을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밀본이나 무명같은 조직이 그렇고, 척사광(한예리)이나 무휼(윤균상), 이방지(변요한)가 그려가는 무협적 요소들, 게다가 분이(신세경)를 통해 그려진 반촌이라는 역사적 공간까지 <육룡이 나르샤>는 새로운 사극의 전통이 될 만한 요소들을 잘 그려냈다.

 

사극은 역사를 보는 관점을 담는다는 점에서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이방원의 이야기를 다룬 그 무수한 사극들과 <육룡이 나르샤>가 같은 역사라도 다른 이야기와 관점을 보여주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무수한 진화들 속에서 그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육룡이 나르샤>가 디딘 이 첫발은 그래서 새로운 사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더키앙

<장영실>, 어째서 이 좋은 소재가 이렇게 그려질까

 

KBS 주말사극 <장영실>은 충분히 이 시대에도 의미가 있는 소재다. 장영실(송일국)이란 청춘이 가진 처지가 현실과 맞닿아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천출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재능이 있어도 출사하지 못하는 처지가 그렇다. 결국 조선을 떠나겠다고까지 마음먹었던 장영실이 아니던가.

 


'장영실(사진출처:KBS)'

그런데 초반 <장영실>의 이런 흥미로운 설정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매력이 떨어져간다. 그 흙수저로 태어난 장영실에 대한 공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를 알아봐주는 세종(김상경)이나 마치 형처럼 그를 허물없이 대해주고 밀어주는 이천(김도현) 같은 인물들이 일찌감치 그를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지어 소현옹주(박선영)와 장영실은 신분을 뛰어넘어 연정을 가진 관계로까지 그려진다. 이건 역사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멜로 설정까지 집어넣는 건 흙수저로 태어나 가진 게 없었던 장영실을 사실상 모든 걸 다 가진 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

 

장영실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이야기는 그가 명나라에 가서 주태강(임동진)의 집에 있는 전설의 물시계 수운의상대를 재현하는 데에도 등장한다. 그는 얘기만 들었지 한 번도 실제 본적이 없는 수운의상대를 척척 재현해낸다. 그런 장영실을 주태강은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장영실이 조선으로 돌아올 때 주태강은 심지어 조선의 과학이 명나라를 앞지르고 있다는 얘기까지 꺼내놓는다. 제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이런 식의 극단적인 찬양은 <장영실>이라는 사극에 마치 군대에서 만드는 정훈 영상물 같은 느낌을 덧씌운다. <장영실>은 왜 이 특별한 인물에 대한 현재적인 재해석은 보이지 않고 찬양만 가득할까.

 

이와 상반된 느낌을 주는 작품은 SBS <육룡이 나르샤>.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몽주(김의성)와 이방원(유아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워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드라마는 이 인물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놓았다. 정몽주가 그래도 고려를 지키려는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면 이방원은 신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모두가 못하는 것들을 실행해 옮기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이방원을 완벽한 인물로 그리는 건 아니지만 확연히 현재의 관점이 투영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극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룬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즉 과거의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그 역사를 굳이 지금 현재 들춰본다는 건 그 관점이 현재에 맞춰져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장영실>은 어떨까. 장영실이라는 인물을 이 사극은 모든 걸 다 갖춘 과학자로 그려낸다. 그는 천문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천출이라고 해도 청춘의 그림자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왜 이토록 현재와 호응하지 못하는 걸까.

 

<장영실>이라는 사극이 그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창조 경제같은 구호로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장영실>은 어째서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같은 신선한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심지어 옹주와 사랑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까지 집어넣어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일까. 장영실처럼 노력하면 지금의 청춘들도 출사해 성공할 수 있다고? 글쎄. 거기에 호응하는 현재의 청춘들이 몇이나 될까.

Posted by 더키앙

<장영실>에서 떠오르는 헬조선과 탈조선

 

장영실은 별에 미친 조선의 노비 놈이다.” 장영실(송일국)은 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친다. 그 자조 섞인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조선에서 별을 본다는 것. 아니 조선에서 노비로 태어나 별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그의 사촌인 양반 장희제(이지훈)는 일찍이 이 현실을 장영실에게 뼛속까지 느끼게 해준 바 있다. “노비는 아무 것도 몰라야 한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것이야.” 그것이 별에 미친 조선의 노비 놈의 운명이다.

 


'장영실(사진출처:KBS)'

하늘에는 귀천이 없다. 별에도 귀천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그저 자연의 법칙일 뿐 그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별을 바라보는 이들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때론 그 의미는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깝다. 형제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오른 태종(김영철)이 일식과 월식을 통한 구식례(일식과 월식을 맞는 예식)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떨쳐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디 하늘의 움직임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까. 일어나지 않는 일식과 월식을 두 차례나 허망하게 맞이한 왕은 하늘에 사죄를 올린다.

 

조선에서 과학이란 이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다. 하늘의 운행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달이 세성(목성)을 가렸다는 과학적 사실은 임금이 백성을 상대로 수탈을 일삼는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세성은 다름 아닌 복과 덕을 책임지는 별로 의미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운관 제조 유택상(임혁)달과 별은 임금과 백성의 관계와 같다고 말하며 세성을 범한 달이 의미하듯 태종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간언한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해도 중국의 과학이다.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장영실은 아버지 장성휘(김명수)와 관기인 은월(김애란) 사이에서 태어나 관노가 된 노비다. 하루 종일 고단한 노비의 삶을 살면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하늘의 별들이다. 그는 노동 속에서도 해의 변화를 보며 과학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의 평생의 친구인 석구(강성진)는 장영실이 산에 지어놓은 일종의 관측소에서 별을 보여주자 그에게 말한다. “영실아. 고마워. 하늘보고 살게 해줘서.” 땅만 죽어라 파며 살아야 하는 노비 신세에 하늘을 보고 산다는 의미는 그렇게 크다. “죽을 듯이 힘든데 이렇게 하늘보고 살 수 있어서 좋구나.”

 

하늘을 쳐다보는 것에 귀천이 없을진대, 조선은 심지어 그 하늘을 보는 것마저 귀천을 따진다. “있잖아. 난 저 하늘의 별들이 매달려 있는 이치만 알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 근데 조선 땅에서 노비로 사는 한 그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목숨 걸고 조선을 떠나야 해. 반드시.” 순수하게 학문의 뜻을 펴는 일은 노비인 장영실에게는 조선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을 떠나고 싶어 한다.

 

<장영실>이라는 사극은 역사 과학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거기서 솔솔 피어나는 문구는 이 정부가 그토록 주창하는 창의 융합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다. 그래서 <장영실>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장영실>은 그 첫 주 방영분을 통해 그가 왜 조선을 떠나고 싶어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처럼 던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는 제 아무리 하늘의 이치를 들여다보고 싶어 해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아마도 장영실이라는 청춘에게 딱 어울리는 현실이었을 게다.

 

사극이 장영실이라는 인물을 다루게 된 것은 그가 다룬 과학과 그가 처한 현실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장영실은 그 신분과 태생이라는 현실을 깨치고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지금에도 통용될까. 과연 꿈을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것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장영실이 그 낮은 신분에도 세상에 이름 석 자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이 가능했던 건 그의 가치를 보고 인정해준 세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는 세종 같은 인물이 있을까. 나아가 장영실 같은 존재의 가능성은?



Posted by 더키앙

<장영실>, 송일국으로서도 KBS로서도 중대한 도전인 이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송일국과 삼둥이 부자다. 애초에 예능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송일국이지만 삼둥이 앞에서 남다른 교육방식으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서 오히려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다. 관찰카메라의 특성상 예능을 잘 모르는 편이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삼둥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송일국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영실(사진출처:KBS)'

그 송일국과 삼둥이가 이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한다고 밝혔다. 여러 차례 하차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입장 번복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하차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노동 강도가 높은 사극이라면 더더욱.

 

이미 캐스팅이 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는 결정된 사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KBS 입장에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여겼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잘못 하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송일국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포기하고 <장영실>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예능이 아닌 드라마를 선택한 것이고, 본인의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이 선택에서 송일국이 소기의 성과를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예능에서의 송일국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송일국으로서 그 가능성은 어떨까.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송일국은 <주몽>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연기자로서 그다지 주목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건 작품이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바람의 나라>도 사극이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심지어 그 막장스러움에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본인은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웃기는 드라마가 되었다.

 

이런 사정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그가 연쇄살인범으로 나왔던 영화 <타투>는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일국의 연기자로서의 성취는 사실상 약 10년 전 사극인 <해신><주몽>에 있을 뿐, 그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연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송일국이 작품을 보는 눈이 없다고들 말한다.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눈도 연기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본다면 송일국의 연기자로서의 능력은 그다지 출중해 보인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나마 사극이 현대극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점이 그가 <장영실>을 선택한 것에 어떤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장영실>은 송일국에게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장영실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대중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그의 이번 작품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다만 남은 건 그 인물을 얼마나 연기로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송일국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KBS로서도 중요한 일이 된다. 만일 <장영실>을 통해 송일국이 어떤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KBS로서는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하차가 좋은 선택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Posted by 더키앙

논란만 가중시킨 <슈퍼맨><장영실>의 콜라보

 

송일국이 KBS 대하사극 <장영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가 이미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을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보통의 드라마라면 모를까 <장영실>은 사극이다. 사극은 그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고 때로는 산 속에 들어가 며칠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그래도 KBS로서는 송일국을 <장영실>에서도 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게다. 송일국은 <주몽> 이후에 이렇다 할 연기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몽>에서 보여줬던 그 저력은 여전히 사극에서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사실상 송일국과 삼둥이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하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KBS가 생각해낸 건 이 둘을 엮어보려는 것이었나 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고 그걸 잘 모른다고 하자 배우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 건 다분히 <장영실>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아빠 송일국의 <장영실> 촬영현장을 찾은 삼둥이의 모습이 스틸로 공개됐다. 그 사진 속에서 삼둥이는 거지 분장을 한 채 흙바닥에서 장난을 치고 송일국이 태워주는 수레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장영실>을 찍으면서 송일국은 그렇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간간히 그 비하인드를 삼둥이와 함께 보여줄 수 있다. 그건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홍보효과가 거꾸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사진 몇 장이 공개된 것뿐이지만 금수저 논란까지 가세되는 모양새다. 배우인 아빠를 둔 아이들이 촬영현장에 가서 분장도 하고 사극을 체험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오자 항간에는 흙수저 흉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다만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정서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과 삼둥이에게 만들어지고 있는 금수저 이미지<장영실>이라는 사극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장영실이 누구인가. 천출로 태어나 평생을 노비로 살아갈 뻔한 인물이다. 그러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때만 되면 화보모델처럼 단장하고 나와 사진을 찍고 그것이 화제가 되는 집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의 만남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낼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방송에 노출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 괴리감에 불편함도 호소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우려와 불편함이 <장영실>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데에도 어떤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후폭풍은 송일국이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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