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셰프 임윤아, 폭군 이채민도 시청자도 사로잡았다

폭군의 셰프

‘이 식감 이 맛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 ‘고기가 씹히는 게 아니라 녹네..’ ‘입안 가득 담기는 육즙과 이 양념 맛은 대체 뭐란 말인가.’ 먹어보지도 않고 고기 몇 점 올라온 소반의 음식을 보고 대접이 소홀하다는 둥 일부러 트집을 잡는 채홍사 부자 임송재(오의식)와 임서홍(남경읍)은 일단 먹어보고 평가해달라는 연지영(임윤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 점 고기를 입에 넣고는 그 맛에 절로 눈이 커진다. 

 

<대장금> 같은 사극 배경에 쿡방과 먹방이 결합한 전형적인 요리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만, 이 요리를 만든 연지영이 그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말들은 어딘가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표고버섯의 구아닐산, 멸치의 이노신산, 그리고 새우젓의 글루탐산, 각기 다른 계열의 아미노산 성분을 특정한 비율로 배합하면 감칠맛이 수십 배까지 증폭된다. 이른바 감칠맛 폭탄. MSG. 현대의 합성조미료와 같다.’ 

 

사극 배경에 들어간 이 현대적인 어투의 대사는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타임리프 판타지라는 걸 보여준다. 연지영은 프랑스에서 열린 요리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후 귀국하던 차에 ‘망운록’이라는 신비스런 고서를 열고 조선시대로 타임리프 됐다. 어쩌다 폭군 이헌(이채민)과 악연으로 연결되고, 살아남아 다시 현재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연지영은 그 곳에서는 집도 절도 없고 신분도 미약한 무력한 존재지만 요리 실력 하나로 생존해 나간다. 

 

판타지 설정이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건, 현대 요리 과학의 정수를 꿰뚫고 있는 연지영이 그 실력으로 조선의 입맛을 좌지우지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해 보여서다. MSG 개념의 감칠맛을 만들어낼 줄 아는 요리사라면 조선에서 그 누구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할까. 그런데 하필이면 연지영이 붙잡은 자가 이헌이라는 왕이고, 그가 역사에 잘 알려진 폭군 중의 폭군이라는 사실이다. 연지영은 폭군의 입맛을 사로잡고 그 마음까지 돌려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이른바 ‘혐관 로맨스’가 트렌드라면 <폭군의 셰프>는 거기 딱 맞는 판타지 사극 버전의 혐관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이헌은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거기 연루된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폭군 행세를 한다. 일부러 전국의 여자들을 붙잡아가는 채홍사를 파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자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려 한다. 

 

폭주하는 이헌의 이 불타는 복수심은 과연 잠재워질 수 있을까. <폭군의 셰프>는 연지영의 요리로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 한다. 어쩌다 연지영이 만들어준 고추장 버터 비빔밥을 맛본 이헌은 어머니 폐비 연씨가 어려서 밥을 입에 넣어주던 때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수비드로 부드럽게 만든 소고기와 감칠맛이 나는 조미료를 더한 음식을 맛본 이헌은 “어쩐지 그리운 맛이 나는 게 참으로 오랜만에 음식맛이 만족스러웠다.”고 말한다. 그 그리움이란 도대체 뭘까. 그건 결국 무참하게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아닐까. 

 

<폭군의 셰프>는 그래서 타임리프 판타지와 요리를 만들고 먹는 장면들로 문을 열지만, 결국 이를 통해 이헌이라는 폭군의 마음을 여는 연지영의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건 또한 폭주하던 그 마음을 음식으로 사로잡음으로써 폭정을 바꿔 제대로 된 정치로 되돌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심플한 기획이면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초반부터 꽉 쥐어버리는 이 작품만의 강력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현대에서 조선으로 날아간 셰프 역할을 맡은 임윤아는 그간 필모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왔던 코미디 연기가 제대로 물이 오른 모습이다. 영화 <엑시트>로 조정석과 함께 9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경험한 임윤아는 그 후 <킹더랜드>에서는 이준호와 합을 맞춰 달달하면서도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줬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에서는 새벽이 되면 악마로 변신하는 1인2역 역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폭군의 셰프>는 사극 버전의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도 이제 척척 해내는 임윤아표 코미디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홍천기>에서 <밤에 피는 꽃>을 거쳐 <폭군의 셰프>로 돌아온 장태유 감독의 연출도 이 작품이 2회만에 6.6%(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경쟁작인 KBS <트웰브(5.9%)>를 따라잡는데 일조했다. 코믹하게 처리해 판타지를 납득가게 하면서 이헌과 연지영의 혐관로맨스를 적절한 긴장과 이완으로 풀어나가는 장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마동석에 박형식, 서인국, 성동일 등등 쟁쟁한 출연진으로 무장한 <트웰브>를 2회만에 압도해버린 <폭군의 셰프>. 벌써부터 심상찮은 모습이다. (사진:tvN)

‘눈물의 여왕’으로 돌아온, 별에서 온 그대

눈물의 여왕

“나 그때 왜 그랬지? 왜 귀여웠지? 왜 막 귀엽고 필살기 쓰고 홍해인 설레게 만들고 그래 가지고 내 팔자를 내가... 꼬았지? 안 귀여웠으면 이런 결혼도 안 했을 텐데, 내가.”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김수현이 술에 취해 울면서 던지는 그 대사는 이 배우가 그간 쌓아온 연기 공력을 실감케 한다. 그건 울면서 하는 자기 자랑이고 그래서 그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의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합을 이뤄 시청자들에게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다. 울면서 웃겨야 하고, 찌질하게 보이면서 귀엽게 느껴지게 해야 한다. 그것도 술에 취한 상태로 진지하게. 그 장면 하나에 상당히 많은 감정표현들이 겹쳐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장면은 김수현이 만들어낸 김지원의 오마주가 더해진 애드리브다. 이 드라마의 이희원 감독은 유부남들의 짠함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했고, 김수현은 애드리브로 술주정 연기를 보였는데, 압권은 김지원이 과거 출연했던 ‘쌈마이웨이’에서 박서준에게 했던 애교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란 사실이다. “나 예쁜 척 하면 재수없지? 근데 나도 진짜 곤란하다. 나는 예쁜 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예쁘게 태어난 건데...” 귀를 넘기며 툭 던지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 박서준이 들고 있던 외투를 툭 떨어뜨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김수현은 그 애교를 자기 버전으로 바꿔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는 장면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소년 같은 얼굴이라 지금 고등학생 역할을 한다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만 같은 최강 동안을 가진 김수현은 이와는 상반되는 묵직한 느낌의 중후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냥 보면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밝은 이미지의 발랄함이 느껴지는데, 그런 그가 대사를 던지면 그 가벼움을 땅바닥에 단단히 붙잡아줄 것 같은 든든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흔히들 김수현을 ‘갭차이’가 확연한 배우로 이야기하는 이유다. ‘별애서 온 그대’를 연출했던 장태유 감독은 김수현의 이런 이미지에 대해 “소년의 얼굴, 사내의 목소리, 연인의 눈빛을 지녔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갭차이는 그저 외모와 목소리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내면과 내공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연기로 호평받았던 건 온전히 그의 실력 덕분이었다. 당시 아역을 맡은 여진구가 큰 인기를 끌면서 그 성인역을 맡았던 김수현은 자칫 연기력 논란을 맞을 수도 있었다. 김수현은 그 우려를 호평으로 반전시켰다. 

 

이런 갭차이에서 내면의 묵직함을 가장 극점으로 보여줬던 건 다름 아닌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다. 외계인으로 지구에 와 무려 400년을 산 이 인물은 외적으로는 연인 관계가 되는 천송이(전지현)보다 어린 모습이지만, 내면적 깊이는 400살의 내공을 가져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수현은 이 인물이 가졌을 무심함(400년을 살았으니 어찌 쉽게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 있으랴!)을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과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 설렘 따위는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인물이 천송이를 만나면서 생겨나는 감정적 변화를 조금씩 표정이 나타나는 얼굴로 보여줌으로써 그 감정의 파고를 극대화했다. 결국 “같이 있고 싶다”며 감정을 터트리고 눈물을 흘리는 도민준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의 감정 몰입 역시 폭발할 수 있었던 건 김수현의 이 ‘갭차이’가 분명한 연기 덕분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의 큰 성공과 함께 박지은 작가의 페르소나로서 ‘프로듀사’ 같은 다소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했던 김수현은 또다시 박지은 작가와 ‘눈물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고 그 중에서도 코미디를 잘 그려내는 박지은 작가의 색깔에 맞게 김수현은 울면서도 웃기고, 웃으면서도 울리며 때론 의지하고픈 단단한 모습과 때론 안아주고픈 연민의 모습까지를 오가는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지방에 소가 30마리 넘는 유지의 아들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름 부자인 백현우는 또한 시골 청년의 풋풋함과 도시남의 세련됨이 공존하는 인물인데 여기에도 김수현 특유의 갭차이 나는 두 이미지의 공존이 효력을 발휘한다. 김수현은 순수한 시골 소년 같은 이미지와 카리스마 넘치는 차도남의 이미지가 동시에 느껴지는 배우이기도 하다.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눈물의 여왕’ 역시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웃음과 설렘이 가득한 가벼움으로 문을 열지만, 뒤로 갈수록 제목에 걸맞는 애절함과 애틋함을 더하며 무게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희극과 비극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가의 필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갭차이의 효과를 확실히 낼 줄 아는 김수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김수현의 애드리브가 울면서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 후반부로 가면 김수현의 웃어도 눈물이 나는 희비극의 감정적 폭발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걸 이르는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시쳇말로 ‘갭차이’라 부르는 효과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생겨나는 건 아닐까 싶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효과라고나 할까. 그래서 삶에서 누군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갭차이’의 효과는 그가 평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갖추느냐에 따라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김수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기와 볼링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연기가 마치 볼링처럼 “볼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믿고 던지는 것”이라며 “결국 연기도 캐릭터에 내가 얼마만큼 몰입해서, 또 그걸 얼마나 믿고 던지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믿기 위해서 그가 홀로 준비했을 시간들을 간과할 수 있을까. 결국 갭차이의 반전은 거기서 생겨났을 테니 말이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장태유 감독이 부여한 ‘밤피꽃’의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톤 

밤에 피는 꽃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대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사건전개가 펼쳐지는 그 밑그림이 분명하게 그려져야 그 위에 연출이든 연기든 힘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가만큼 중요해진 건 연출자의 몫이다. 그건 최근작들이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 사극이면 사극처럼 분명한 한 장르에 머물기보다는 그 장르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건 다양한 장르들이 튀지 않게 조율하며 전체 드라마의 톤을 맞춰내는 일이다. 

 

무려 18.4%(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MBC <밤에 피는 꽃>은 그 다양한 장르들의 겹침이 많은 작품이다. 낮과 밤이 다른 수절과부 조여화(이하늬)라는 인물의 설정 자체가 그렇다. 낮에는 과부로서 수절하며 살아가는 열녀의 길이 강요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복면을 하고 담을 넘어 저잣거리로 나와 홍길동 같은 의적 활동을 벌이는 인물이다. 낮이 보수적인 조선 사회를 담은 고전 사극의 장르적 색깔을 갖는다면 밤은 그 사극의 틀을 깨는 액션과 활극이 펼쳐지는 히어로물의 색깔이 펼쳐진다. 

 

또 수절과부의 이 이중적인 생활은 이 인물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그 진실을 찾아나가는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그 사건은 선대왕의 의문사와 연결되어 있어 시아버지 석지성(김상중)과 왕 이소(허정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극의 색깔도 갖고 있다. 물론 사건을 수사하면서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와 조여화가 엮어지는 멜로도 빠지지 않는다. 박윤학(이기우)과 연선(박세현)의 서브 멜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사극의 톤에 현대극적인 히어로물의 색깔을 얹고 그 안에 코미디와 멜로를 풀어가면서 추리극과 정치극까지 엮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울 수 없다. 만일 제대로 엮어지지 않으면 작품은 이도 저도 아닌 지리멸렬한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구슬들을 하나로 꿰어 일관된 톤을 만들어내는 것이 작품의 관건이 되는 이유다.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장태유 감독은 그 중심을 잡아주는 톤이 중요했다며 “코미디와 액션”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수절과부이고, 그렇게 된 것 역시 석지성이라는 인물의 무서운 계략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밤에 피는 꽃>의 색깔을 무겁고 어두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태유 감독은 끝내 풀어지는 사건의 결말만이 아니라 그 과정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드라마는 그래서 여러 코미디적 상황들이 전체 서사의 줄거리들 사이에 꽉 채워져 있었는데, 이를테면 조여화가 시어머니 유금옥(김미경)에 의해 가마에서 내리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대목이 그렇다.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던 그 장면은 진지한 시어머니의 면면을 놓치지 않는 김미경의 연기와 이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이하늬의 연기 톤이 마주하면서 생겨나는 부조화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었다. 

 

또 호판 염흥집(김형묵)이 애지중지하던 산중백호도는 드라마 속 사건들 중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데, 조여화가 그 그림을 우스꽝스런 그림으로 바꿔치기하는 장면이 코미디로 그려졌다. 그런데 장태유 감독은 그 바꿔치기한 그림의 우스운 톤을 살려내기 위해 직접 그 그림을 며칠에 걸쳐 그렸다고 한다. 장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얼마나 코미디에 진심이었는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장태유 감독이 깔아 놓은 드라마 전체의 이 톤 위에서 이하늬는 펄펄 날았다. 장 감독 역시 자신이 바랐던 코미디와 액션의 톤을 이하늬가 제대로 소화해냄으로써 작품의 색깔이 완성됐다고 했다. 이하늬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드라마의 다양한 결들이 그 주변 인물들의 색깔에 따라 펼쳐질 수 있었다. 이를테면 석지성 앞에서는 추리물과 정치극의 색깔이, 박수호 앞에서는 짝패 액션과 더불어 달달한 멜로의 색깔이 그려졌고, 다양한 주변인물들 이를테면 연선과 봉말댁(남미정), 비찬(정용주)과 황치달(김광규) 같은 인물들의 자잘한 코미디 상황극들이 채워졌다. 

 

<밤에 피는 꽃>의 성공은 그래서 좋은 대본과 연기자들의 호연과 더불어 장태유 감독의 전체 작품의 톤을 맞춰낸 균형잡힌 연출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리고 더더욱 복합적인 장르들이 많아지는 현 추세에 이러한 감독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떤 톤으로 중심을 잡느냐가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진:MBC)

‘밤에 피는 꽃’의 성공이 MBC 사극에 갖는 의미와 가치

밤에 피는 꽃

결국 조여화(이하늬)는 자신의 오라비가 시아버지인 좌상 석지성(김상중)에 의해 죽었다는 걸 알게 됐고, 왕 이소(허정도) 또한 선왕의 죽음이 석지성이 사주한 독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밤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꽃이 고개를 드는 중이고, 이제 그 꽃은 마지막 서사를 향해 꽃피울 참이다.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 단 한 회만을 남기고 있다. 최종 빌런 석지성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또 조여화가 이 수절과부의 굴레를 벗어나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와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갈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미 어느 정도 결말이 예상되는 가운데, <밤에 피는 꽃>이 거둔 성취가 MBC 사극에 갖는 의미와 가치가 새삼스럽다. 

 

사실 MBC 사극은 저 이병훈 감독이 이끈 일련의 사극들로 확고한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허준>, <상도>, <대장금> 같은 작품이 퓨전사극을 이끌었고 그 열풍은 <주몽>, <선덕여왕>, <해를 품은 달>까지 이어지며 ‘MBC 사극’이라는 표현이 그저 지칭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독특한 특색으로 규정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MBC 드라마의 위상이 떨어질 정도로 큰 위기를 겪었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편수도 줄이면서 MBC 드라마의 존재감 자체가 흐려졌던 게 사실이다. 그걸 깨고 다시금 MBC 드라마가 부활의 신호탄을 날린 작품이 바로 2021년 방영된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사극이었다. 이산 정조와 성덕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실제 역사와 인물들을 가져오되 여성서사가 전면에 등장하는 현재적 관점이 담긴 해석으로 과거 MBC에서 제작됐던 <이산>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MBC 사극의 이 흐름은 작년 <연인>으로 이어졌다. <연인> 역시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여기에 인조나 소현세자 같은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적 가치관을 담은 이장현(남궁민), 유길채(안은진) 같은 허구적 인물들의 새로운 서사로 채워졌다. 지상파 드라마 편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들 정도로 지상파 전체가 어려운 현실을 맞이했지만 MBC 사극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흐름을 이어받은 <밤에 피는 꽃>의 성공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완전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사극이었다. 조선사회를 시공간으로 가져왔지만, 그 상상력은 현대적이었고 수절과부가 밤이면 담을 넘어 ‘전설의 미담’으로 활약한다는 과감한 이야기를 펼쳤다. 어찌 보면 적절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퓨전사극들보다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역사를 벗어나 마음껏 상상력을 피워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서 한껏 가벼워질 수 있는 부분들을 어떻게 눌러주고 무게감을 갖게 하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밤에 피는 꽃>은 다소 무거운 선왕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조여화와 박수호의 가족도 연관된)을 밑그림으로 깔아놓는 반면, 매회의 그 흐름은 ‘활극’의 경쾌함과 유쾌함으로 톤을 잡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코믹한 연기들을 채워넣어 상상으로 구축된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조여화 역할의 이하늬는 바로 이 코믹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활극이 펼쳐지고 또 박수호와의 달달한 멜로를 그려가면서도 진실에 다가가는 무게감도 균형있게 가져가는 연기를 펼쳤다. 그가 가진 색깔이 <밤에 피는 꽃>이라는 사극의 색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작품의 메시지나 색깔은 인물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세영, <연인>의 안은진의 연기가 주목받았던 건 그것이 그 작품이 하려는 메시지와 색깔을 분명히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 바톤을 이어받은 이하늬의 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밤에 피는 꽃>까지 성공함으로써 MBC 사극이라는 브랜드가 다시금 활짝 꽃 피게 되는 상황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또한 <별에서 온 그대>로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지만,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홍천기> 그리고 <밤에 피는 꽃>까지 사극 연출에도 갈수록 일가를 만들어가는 장태유 감독의 성취 또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하이에나> 같은 현대극에도 많은 성공작을 내놓은 감독이지만 일련의 사극들에서도 분명한 성적을 내고 있으니. (사진:M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