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쇼에 웃음만큼 필요한 진정성

흔히들 무정형, 무개념, 무의미로 정의하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 이 정의는 재미만이 오락 프로그램의 지상과제가 된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리얼리티쇼에서 무정형은 이해가 되지만 무개념과 무의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의 개념과 의미를 갖기 마련이며, 그것을 상실한 재미추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무한도전’이 한 때 인기도가 주춤했던 것은 바로 재미추구에만 몰두하면서 드러난 한없는 무의미, 무개념에 조금씩 지쳐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댄스스포츠 특집’편은 이 무의미와 무개념을 일거에 날려버리면서 다시금 ‘무한도전’의 상승세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이 특집이 그간 무의미와 무개념으로 보이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이면에 숨겨졌던 진정성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가끔은 마음을 보여주세요
‘무한도전’, 독주 체제에 뛰어든 ‘라인업’과 ‘1박2일’은 처음 기획단계부터 이 부분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인업’이 주창하는 ‘생계 버라이어티’는 그 자체로 개그맨들의 진정성을 담보한다. 프로그램 안에서의 경쟁은 물론 과장된 부분들이 있지만 실제 개그맨들 사이에서의 경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경민이 보여준 뜻밖의 눈물은 실제상황의 진정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리얼리티쇼의 신뢰성을 부가시킨다.

하지만 ‘라인업’의 생계를 위협하는 장본인은 말 그대로 ‘무한도전’ 자체이기 때문에 ‘라인업’은 초반부, ‘무한도전’에 대한 과도한 경쟁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종잡기가 어려웠다. ‘무한도전 따라하기’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은 그 경쟁의식으로 인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무거운 생계와 ‘무한도전식’의 가벼운 재미가 겉돌았기 때문이다.

‘라인업’이 ‘태안봉사활동’을 통해 방향성을 재미보다는 진정성에 맞춘 것은 따라서 적절한 것이라 여겨진다. 태안기름유출사고 현장이나, 군인들에게서조차 오지로 인식되는 최전방, 그리고 그 자체로 숭고함을 가진 일터로 달려가 말 그대로의 ‘체험 삶의 현장’을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이경규식의 공익적 개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경규의 개그세계는 ‘양심냉장고’와 함께 빛을 발했던 경험이 있다.

때론 따뜻함을 전해주세요
한편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의미를 내포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국내 여행지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산천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이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오지로 달려가기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지역에 대한 따뜻한 조명의 의미를 갖게 된다. ‘독도편’에서 그 곳을 지키는 분들에게 자장면을 손수 만들어준다거나, ‘가거도편’에서 오지 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피자를 만들어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프로그램에 의미를 부가해준다.

이것은 비단 오지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시골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 따뜻함을 전해주는 ‘1박2일’의 멤버들은 때론 거기서 역시 시골에 계실 자신들의 부모님의 자화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멤버들과 어르신들의 공감대는 때론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고, 계층을 아우르며, 세대를 끌어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때론 그 힘을 의미 있는 곳에 써주세요
최근 들어 ‘무한도전’이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김태호 PD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요즘,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 인기도를 타 프로그램과 접목시켜 시너지를 얻으려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이러한 무한노출이 가져오는 이미지의 과잉소비가 자칫 생명을 단축시키지나 않을까 애청자로서 저어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무한도전’만이 가지는 무한재미의 추구는 피로도를 더 깊게 만든다. 재미란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조금 떨어지는 재미에 대해 그만큼 가혹한 평가를 받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무한도전’도 웃음과 재미에 대한 강박을 조금 벗어내도 좋을 것이다. ‘라인업’이 ‘체험 삶의 현장’에서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내려 하는 것처럼, ‘무한도전’은 ‘도전 지구탐험대’같은 ‘도전하는 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어쨌든 캐릭터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황이기에, 이제는 무얼 해도 큰 웃음을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만큼, 그 힘을 조금은 의미 있는 쪽에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왕’을 좀더 재미있게 보는 법

“한 꺼풀 벗겨내면 또 다른 의문이 증폭된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만 같다.” 드라마 ‘마왕’이 주는 새로운 재미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낯선 시청자들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지루하고 복잡하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매니아 드라마’라는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억울한 느낌이 있다. ‘다르다’는 것이 외면의 사유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확실히 여타의 우리네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재미를 주는 요소도 다르고 재미를 전달하는 방법도 다르다. 좀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없을까.

첫 번째 - 기본구도로 사심 없이 바라보기
무언가 긴박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카메라는 현장을 훑어내면서 많은 추측과 단서들을 쏟아낸다. 12년 전 사이코메트러(물건에 기록되어 있는 잔상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자) 해인(신민아)은 현장에 떨어진 물건들을 통해 한 고등학생이 칼에 찔려 살해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 사건은 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드라마가 하려는 얘기가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의 12년 후이기 때문이다.

그 장소에는 오수(엄태웅)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고, 오수에게 칼을 맞은 승하(주지훈)의 형이 있었다. 승하는 죽어 가는 형을 위해 긴박하게 구조를 요청하고, 뒤늦게 현장의 잔상을 통해 해인은 그 장면들을 보게 된다. 관계는 이 장면 하나로 명확해진다. 12년 후 변호사가 된 승하가 형사가 된 오수와 그의 친구들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날릴 거라는 것. 이 대결구도는 너무나 명확해 심지어 맥이 빠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도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가 앞으로 끌고 들어갈 미궁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할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 미궁을 즐기기
막상 이런 설정을 갖고 보면서도 복잡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 대결구도에 장애물들을 수없이 설치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직업이다. 오수는 자신의 말대로 ‘나쁜 놈 잡는 형사’이지 자신이 나쁜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객관적으로 ‘나쁜 놈들’이다. 오수의 형인 강희수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비서로 일하는 석진(김영재)은 희수의 처와 바람을 피운다. 윤대식(한정수)은 해결사에 가까운 사채업자이고 김순기(오용)는 절도, 폭력 전과자이다.

오수라는 털털한 인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칼잡이를 싫어한다”는 대사는 ‘칼쓰는 나쁜 놈들’을 싫어한다는 말이지만, 동시에 12년 전의 악몽과 연관되면서 ‘그랬던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로도 중첩된다. 여기에 변호사로 등장하는 승하는 상황을 더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억울한 사람을 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살인자를 구원하기도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양면성이 활용되면서 승하라는 인물이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오수의 집안은 무언가 범죄의 냄새를 풍긴다. 드라마의 첫 희생자인 권현태(이도련) 변호사는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보이는 오수의 아버지 강동현(정동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그 집안의 문제들을 덮어왔다. 그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12년 전 오수의 사건에서도 그가 진실을 덮어버리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추리하게 만든다. 그의 살인범으로 승하가 아닌 조동섭이 자수를 하지만 조동섭의 대리역으로 승하가 변론을 맡는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여전히 승하와 관련을 짓는다.

재미있는 것은 승하가 오수의 친구인 김순기를 변론해 풀려나게 해주면서도,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조동섭의 대리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수에게 승하라는 존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승하는 살해된 권현태 변호사를 ‘스승 같은 인물’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장치로 보인다. ‘스승’이란 늘 좋은 것만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우리네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어쩌면 승하가 말한 스승이란 ‘진실을 덮는’ 권현태 변호사로부터 뼈저린 상처를 통해 배웠고 그래서 변호사가 된 자신도 그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려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단순했던 대결구도는 직업과 주변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 단단히 최초의 실마리를 잡고 나가야 한다. 이 야누스처럼 변하는 인물들이 주는 미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추측해야 한다. 그 추측이 맞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배가 될 것이다. 틀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전의 의미로서 쾌감을 줄 것이다.

세 번째 - 작가와의 두뇌게임
여기서 한 차원 더 나간다면 이젠 작가와 한 판 두뇌게임을 벌여보는 것이다. 작가와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가려놓은 수많은 장애물들을 하나씩 들춰보는 재미를 가져보는 것. 그 첫 번째 단서는 사이코메트러라는 독특한 능력자가 왜 등장하느냐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오수와 승하의 대결구도와 그 속에서 말하려는 선악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꼭 사이코메트러 같은 평범하지 않는 인물이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녀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작가와 연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능력’은 이 드라마의 의도가 보여주는 ‘진실은 무엇인가’에 적합하다. 그런데 과연 그녀는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물론 후반에 가서는 좀더 명확한 진실에 근접할 것이지만, 초반부인 지금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거나 추측을 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그러니 그녀가 보는 비전에 너무 의미를 두다가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드라마 상 사이코메트러인 해인이 이 사건에 끌어들여지는 것이 과연 형사들의 수사를 위한 것이냐는 점이다. ‘예전에 그녀의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은 그녀가 마치 수사를 돕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를 사건으로 끌어낸 것은 형사가 아니라 그녀가 만든 타로카드가 살해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카드를 놓거나 택배로 보낸 인물은 처음부터 그녀를 사건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형사가 아닌 살인자가 그녀를 불러낸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역할은 사건해결이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살인자가 살인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 진실로, 12년 전 그 장소에 있던 인물들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왕’이 단순한 범죄물이나 형사물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는 범인을 잡는 드라마가 아니라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이것은 승하가 오수에게 던지는 대사 속에 집약되어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제각기 다르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유리한대로 조금씩 거짓말을 합니다. 나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대사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기억’, ‘거짓말’,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작가는 왜 이다지도 시청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현실생활에서 혹은 드라마적 관습에서 굳게 믿고 있는 편견들을 효과적으로 부수기 위함이다. 형사와 변호사의 역할, 선악구도에 대한 편견 같은 것 말이다. 사실 혼란에 빠진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편견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마왕’은 좀더 작가와의 즐거운 두뇌게임을 요구한다. 그것이 즐거울수록 견고했던 편견들이 깨져나가는 카타르시스의 깊이는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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