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무한 시즌제 드라마로서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인다

서초동

종영했지만 드라마 <서초동>이 남긴 잔잔한 여운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변호사 버전 같은 느낌으로 등장할 때부터 어딘가 심상찮았다. 극적인 서사가 있지만 자극적이지는 않고, 갈등이 존재하지만 파국 같은 과장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제목이 그러한 것처럼 서초동이라는 법조인들이 모여 지내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을(물론 드라마틱한 법정 스토리를 더해) 담은 작품이랄까. 

 

이 작품이 특이한 건 시작할 때만 해도 이종석 원탑의 드라마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 엔딩에 이르러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안주형(이종석)과 강희지(문가영)의 로맨스가 전반적으로 강조되긴 했고, 법정 스토리에서도 안주형의 이야기가 초반에 주목을 끌기는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조창원(강유석), 배문정(류혜영), 하상기(임성재) 등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는 원탑 드라마가 아닌 이들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인지되었다. 

 

이런 방식은 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애초에 보여줬던 것이기도 하다.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고, 그들만의 갈등 서사들을 꺼내놓고 직업적 사건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느 한 사람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고 균질하게 초점이 배분되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누군가를 이종석을 중심으로 보지만, 누군가는 임성재를 중심으로 보고 또 누군가는 문가영, 강유석, 류혜영을 중심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드라마의 끝에서 임성재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갈수록 무게감을 갖게 되는 지점에서 <서초동>이라는 드라마의 진짜 저력이 드러난다. 그저 일 열심히 하는 변호사로만 보였던 하상기가 가난했던 자신이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게 드러나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려 하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이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높여 놓았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 속 깊은 모습이 주는 매력이 쌓여갈 때, 대표인 김류진(김지현)과의 로맨스 또한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으니, 이 캐릭터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알 수 있다. 

 

좋은 작품이 좋은 캐릭터에 달려 있다는 건 상식이지만, 그런 캐릭터들이 줄줄이 많은 드라마라는 건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랬지만 <서초동>도 그런 캐릭터들을 줄줄이 만들어 놓아, 특별히 전체 서사를 끌고 가는 메인 사건이 없어도 시청자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사건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자꾸만 그 인물들이 계속 보고 싶어서 찾아보게 된다고나 할까. 

 

정반대로 말하면 극적 서사가 약했다고 볼 수 있지만, 대신 매회 꽉 채워진 디테일한 법정 사건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 사건들과 연결되는 매력적인 변호사들의 서사가 존재했다. 이건 아무래도 실제 변호사인 이승현 작가의 독특한 ‘경계인’의 위치가 만들어낸 장점일 게다. 실제 변호사와 드라마 속 변호사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작가 사이에 선 그 중간자적 위치가, 지나치게 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밋밋하지도 않은 현실적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무한한 시즌제의 확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목부터가 <서초동>이다. 서초동에 위치한 아무 변호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새로운 매력을 가진 변호사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사건들을 배치해 시즌제를 이어가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전작과 새 시즌의 연결고리 정도로 한두 명의 동일한 배우가 출연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별 문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서초동>이 보여준 톤 앤 매너를 유지함으로써 그것만으로도 시즌2라는 걸 누구나 인지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최근 들어 실제 그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작가로 데뷔해 쓴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라고 하면 어딘가 극적인 장르물을 떠올리곤 했지만, 이제 이들의 등장은 진짜 리얼한 전문직의 세계를 기대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국 사건 그 자체보다(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은 당연히 그 리얼한 사건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어떻게하면 매력적인 인물을 창출해내는가이다. 임성재 같은 매력적인 배우가 재발견될 수 있는 작품인가 아닌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사진:tvN)

'싸인'의 그 많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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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사진출처:SBS)

'싸인'의 시청률이 드디어 20%를 넘어섰다. 초반 승승장구했지만 차츰 고개를 숙인 '마이 프린세스'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일련의 용두사미 드라마들, 즉 초반에 기선을 잡았다가 중반부터 힘이 달려 시청률이 떨어지던 드라마들 속에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인'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빠져들게 하는 걸까.

무엇보다 '싸인'의 풍부한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인'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소개되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스타의 죽음을 다룬 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느 기업에서 벌어지는 연쇄 의문사 사건이 이어지는 식이다.

연속극에 익숙한 우리나라 드라마 시청 패턴 상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를 가진 드라마는 한계를 가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인'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병렬적인 스토리들을 박신양과 김아중, 전광렬, 엄지원, 정겨운 같은 굵직한 배우들이 캐릭터를 통해 촘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벌어진 윤지훈(박신양)의 아버지와 정병도(송재호) 사이에 벌어진 소견 조작 사건은, 20년 후 윤지훈이 맞게 되는 연쇄 독살사건과 연결된다. 각각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주인공과 연결시킴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연결이 끊기지 않는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바뀐다. 보다 풍부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이 프린세스'와 대적할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어준다. 지지부진한 진행, 반복적인 스토리에 인물들 간의 멜로만 부각되는 '마이 프린세스'와, 멜로가 약하지만 매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싸인'은 확실히 대비된다.

게다가 '싸인'이 가져온 사건들이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계속해서 연상시킨다는 점도 시청률 상승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가수 고 김성재군의 의문사 사건이라든지, 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매 값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들까지 이 드라마는 화제로 끌어들인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어떤 대리만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멜로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과거 멜로는 '싸인' 같은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의 독이 되는 경향이 짙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건과 그 속에 잘 어우러지는 멜로의 조화는 오히려 드라마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전문직의 사건들만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멜로가 적절히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멜로에 빠져 사건이 지지부진해진다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싸인'은 기존 드라마 관행 속에서 여러 약점들, 예를 들면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나 멜로의 부재 같은 것들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것을 거꾸로 강점을 잘 바꿔놓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박신양과 전광렬의 팽팽한 연기대결, 그리고 송재호의 관록과 김아중의 발랄함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점도 시청자들을 끄는 요인이다.

'파스타'는 불평등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 남자가 꽤 감성적이고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행동할 것 같은 자상함을 가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틀렸다. 요리하는 남자라고 꼭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요리사라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요리는 어쩌면 전쟁과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파스타라는 요리를 소재로 삼는 드라마 '파스타'는 이런 편견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 트릭에 동원된 배우는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격인 이선균이다. 그러니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터져버린 비닐봉지에서 떨어진 금붕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유경(공효진)의 두 손을 모아 그 위에 금붕어로 놓고 물을 부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최현욱(이선균)은, 바로 그런 요리하는 남자가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상함과 감성을 지닌 존재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한껏 푸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남자. 절대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남녀평등? 그런 건 자신의 주방에서는 꺼내지도 못하게 할 위인이다. 그렇게 부드럽게 보였던 이 남자는 이제 막 개점 시간이 되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마초적이고 제멋대로인 남자로 돌변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가 나왔을 때는 거침없이 접시째로 깨버린다.

처음에는 이 부드러운 쉐프가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조화로울 것이라 착각했지만, 점차 그 장면은 군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행동처럼 변모한다. 그는 요리를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몇 분만 더 지체되면 야수로 돌변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맞춰 척척 대응해내지 못하면 곧 죽을 것 같은 자세로 요리하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감성보다는 신속함을 담보해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이 전쟁터에 여성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그는 연인이자 라이벌이었던 성공한 요리사 오세영(이하늬)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요리사라는 자리를 그에게서 빼앗은 오세영은, 그에게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했고, 최고요리사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방에 여성이란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법적으로도 위배되는 사항이고, 명백하게 심각한 성차별이다. 맞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애초부터 겉으로는 부드러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마초가 맞다. 오세영의 배신은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남자가 봐도 참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끝으로 몬다. 특히 여성인 서유경에게 하는 짓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최현욱이란 캐릭터에게서 시청자들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마초적인 인간에게서 심지어 여성들마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것이 짐승 같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소리 지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마초라고 불리는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다. 마초라고 하면 늘 남성우월주의에 차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성희롱을 자행할 것 같지만, 그것은 상상속의 그림일 뿐이다. 마초도 부족하지만 인간이다. 아직 여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전쟁으로만 여기는 그래서 싸워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불쌍한 인간.

최현욱은 주방을 나서는 그 순간, 즉 요리라는 일과 떨어지는 순간, 마초에서 보통의 남자로 돌아간다. 그는 일의 세계 속에서 비뚤어져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평범해진다. 이것은 어떤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의 존재가 여성성을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말단 요리사인 서유경의 성장드라마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최현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또한 최현욱의 마초적인 모습은 물론 여성들을 모두 주방에서 내몰았지만, 거기 남아있는 남성들이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넘어서 한 조직 내에서의 상사와 조직원 간의 관계로 확장된다. 조직의 그런 권위적인 상사에 대한 경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갖고 있는 것들이다. 남성 시청자가 서유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남녀평등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에 여전히 존재하는 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서유경이 바로 그 권위적인 모습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 우리는 남녀를 떠나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일찍이 전문직과 멜로드라마가 만났을 때, 불평등이 다루어지던 방식이다. 불평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투쟁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 그리고 투쟁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는 바로 이 '파스타'와 연결고리를 갖는 드라마들이다. 그들은 모두 각각의 전문직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지만 모두 여성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멜로를 통해 여성성을 알아가는 존재로 변모해간다.

물론 이것은 분명 전문직과 함께 멜로를 다루는 드라마가 갖는 한계일 것이다. 왜 그들은 꼭 멜로로 그 마초적인 남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데 만족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또한 멜로라는 장르로서는 그나마 평등이라는 가치를 생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는 본래 남과 여 사이에 끼어들어 이를 방해하는 사회적 관습을 다루고, 그 관습을 뛰어넘어 남과 여가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이 목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그 관습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것이 남자가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관 혹은 세계관이다. '파스타'도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온에어’와 ‘티켓투더문’ 사이의 거리

드라마 작가 서영은(송윤아)이 보조작가 다정(강주형)에게 시청률을 묻는다. 아무리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했지만 그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모양. 다정은 시청률이 소폭 올랐다며 “착한 드라마래요. 은영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운대요.”하고 시청자 반응을 말하고, 서영은은 감동한 듯, “나 미쳤나봐. 55.5%도 넘겨봤는데 15.5%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하고 말한다. ‘온에어’ 속에 등장하는 착한 드라마, ‘티켓투더문’이 15.5%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방송이 나가던 날, ‘온에어’의 시청률은 21.9%(AGB닐슨)였다. 최근 사극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다.

‘티켓투더문’, ‘온에어’가 꿈꾸는 환타지
착한 드라마, ‘티켓투더문’에 시청률 15.5%를 준 것은 어쩌면 ‘온에어’가 꿈꾸는 드라마의 환타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극적이지 않고 볼거리에 치중하지도 않으면서 잔잔한 감동과 메시지만을 진심으로 담아 승부하는 착한 드라마들이 이만한 시청률을 거두기는 현실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고맙습니다’ 정도가 예외가 될 뿐, 대부분은 10%도 넘기지 못하고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끝나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티켓투더문’같은 착한 드라마를 꿈꾸는 ‘온에어’는 착한 드라마일까. 그렇지 않다. ‘온에어’는 꿈꾸는 드라마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인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하고 오승아(김하늘)의 입을 통해 PPL의 문제를 꺼내놓으면서도 심지어 그 대사를 하고 있는 장소조차 PPL로 활용한다. “작가가 왜 작품으로 승부하지 배우에 기대느냐”는 이경민 PD(박용하)의 대사를 빌어 스타배우에 기대는 작금의 드라마 제작 행태를 비판하지만, 이 ‘온에어’라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네 명의 스타배우들의 파워와 그네들의 혼신을 불태운 연기에 기댄 점이 분명 존재한다.

“왜 불필요한 해외로케를 하느냐”는 대사를 통해 홍보 이벤트성 해외로케의 문제를 꼬집지만 사실상 한 회분 전체를 해외 로케의 홍보로 활용하는 과감성도 보인다. 이경민 PD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온에어’라는 작품은 진정성 하나를 무기로 전장에 나선 착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드라마 제작과 마케팅 홍보에 있어서 능수 능란한 프로의 손길이 느껴진다.

문제의식이 멜로로 바뀔 때
따라서 ‘온에어’가 꿈꾸는 드라마, ‘티켓투더문’에서 마지막 16부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실제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영은 작가는 극중 은영의 성장을 단순히 에이든과의 사랑을 통한 멜로의 성장으로만 그려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꾸자는 내용 속에 포함되는 것은 은영의 사회적인 성장이다. 즉 그저 편안한 해외로의 도피가 아니라 국내로 되돌아와 비슷한 장애를 겪는 이들을 위해 거북이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거북이’라는 이름은 ‘조금 느릴 뿐’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한다. 착한 드라마의 진정성이란 멜로의 진정성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함의까지를 내포한다는 걸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의미로의 확장은 ‘온에어’라는 현실(이것은 ‘티켓투더문’을 드라마 속이라 상정했을 때는 현실이 된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티켓투더문’ 속에서 에이든이 은영에게 “놀라지 말아요”라고 말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은, 사실 장애와 비장애를 뛰어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만, ‘온에어’라는 현실로 나오면 이경민에게 서영은이 받았던 기습키스를 대본의 형태로 이경민에게 되돌려주는 멜로로서만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착한 드라마를 꿈꾸는 ‘온에어’는 ‘티켓투더문’이라는 작품 속에서만 꿈을 꿀뿐, 작품 밖으로 나오면 철저히 시청률의 잣대로 움직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멜로드라마가 된다.

시청률과 꿈꾸기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어쩌면 이것은 만들고 싶은 드라마와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드라마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둘러싼 PD와 작가, 배우와 매니저 사이의 팽팽한 갈등과 긴장감은 착한 드라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냈지만, 현실적으로 이 드라마 자체는 착한 드라마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착한 드라마를 위한 팽팽한 대립은 점차 멜로의 전조로서 작용한 바가 크며, 착한 드라마인 ‘티켓투더문’은 ‘온에어’의 멜로를 위한 표현의 창구로서(동그라미를 치거나 특정 대사를 집어넣거나) 기능한 바가 크다. 그리고 이것은 안타깝게도 작금의 드라마 제작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에어’의 가치는 착한 드라마냐 아니냐의 측면이 아니라, 이 독특한 다중창 전략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 속의 드라마를 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온에어’는 현실적인 시청률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는(극중 드라마를 통해) 장치를 얻어낸 셈이다. ‘티켓투더문’이라는 드라마 속 드라마는‘온에어’라는 차가운 드라마 현실에서 착한 드라마를 꿈꿀 수 있는 티켓이 되어주었다. ‘온에어’는 착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착한 드라마를 꿈꾸었던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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