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2’, 본격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적인 귀환

 

JTBC 드라마 <보좌관>이 시즌2로 돌아왔다.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10부작으로 시즌1을 끝낸 후 어언 4개월 만이다. 이미 미드 같은 시즌제 드라마들을 우리네 시청자들도 경험하고 있지만,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본격 시즌제를 운영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 게 다가온다. 특히 지난 시즌 이 드라마는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을 거듭하다 10회에 드디어 5.3%(닐슨 코리아)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런 흐름을 뚝 끊고 시즌2로 넘어간다는 건 여러모로 제작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난 시즌 마지막회에서는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이 그토록 마음으로 따랐던 이성민(정진영) 의원의 자살을 눈앞에서 보고 그 이면에 송희섭(김갑수)의 모략과 압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법무부장관이 된 송희섭에게 무릎을 꿇어 결국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 그의 오랜 친구인 고석만(임원희)은 차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강선영(신민아) 의원은 그의 선택에 분노한다.

 

이 정도면 고구마 엔딩이 아닐 수 없다. 애초 꿈꿨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장태준의 꿈은 날아가 버렸고 존경하던 선배 의원과 친한 친구는 송희섭이라는 적폐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사랑했던 연인은 돌아서 버렸다. 그럼에도 장태준은 그 적폐 밑으로 들어가 금배지를 단다. 이런 너무나 처절한 현실적인 시즌1의 엔딩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시즌1을 끝낸다는 것이 무리수처럼 보일 정도로.

 

하지만 시즌2로 돌아온 <보좌관>은 이런 우려를 첫 회부터 한 방에 날려버렸다. 시즌1의 충격적인 엔딩이 남긴 강렬한 여운은 시즌2의 첫 회로 그대로 이어졌다. 꽉꽉 눌러놓은 감정이 오히려 시즌2의 시작점부터 폭발력을 만들었다고 보인다. 강렬한 오프닝과 함께 시작된 시즌2 첫 회는 4.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끈 건 시즌2의 짧지만 압축적인 오프닝이었다. 일단의 무리들에게 두드려 맞고 피 흘리는 장태준의 모습은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일처럼 보였지만, 그건 또한 시즌1의 마지막의 그 처참한 장태준의 모습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칼까지 맞고 장태준이 굴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현수막은 그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당한 어떤 힘들에 대항하기 위해 누군가 들거나 세워졌을 그 현수막은 장태준처럼 무력에 의해 버려졌다.

 

하지만 장태준은 그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오르고 또 오른다. 드라마는 이 인고의 과정을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펴려는 곤충에 비유한다. 그렇지만 드디어 꼭대기에 올라 그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려 할 때 보호막이 사라져버린 ‘먹잇감’이 될 위기에 처한다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차량을 통해 보여준다.

 

이건 장태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의해 가능해진 서사다. 보통의 정치드라마들은 대부분 선악을 구분해 이편과 저편의 진영을 갖춰 싸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 드라마는 정치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란 걸 이 껍질의 비유를 통해 또 장태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낸다. 민심을 위한 정치를 꿈꾸지만,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손을 더럽히기도 해야 하는 그 이전투구의 장이 정치라는 걸 장태준은 보여준다. 껍질을 깨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는 날개조차 펼 수 없는 정치 현실의 실상을.

 

그래서 <보좌관2>는 시즌1의 바통을 첫 회 강렬한 오프닝만으로도 제대로 이어받는다. 장태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그가 이제 손에 피를 묻혀가며 해나갈 일들을 예고한다. 그건 가깝게는 송희섭이라는 뿌리 깊은 고목을 제거해가는 일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자신의 껍질을 벗고 온 몸으로 정치 현실과 부딪치며 성장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뻔한 선악 구도가 아닌, 현실정치의 처절함을 드러내는 장태준이란 캐릭터가 있어 <보좌관2>의 정치이야기는 더 실감나고 기대된다.(사진:JTBC)

‘보좌관’ 정진영의 투신에서 우리네 정치 현실이 느껴지는 건

 

결국 이성민 의원(정진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투신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불법 선거자금 수수 혐의로 사무실은 물론이고 집까지 그는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를 보좌했던 장태준(이정재)이 끌어온 선거자금이었고 이성민 의원은 그 사실조차 잘 몰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비리 정치인의 오명을 뒤집어쓴 데다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장태준마저 그 사건으로 위기에 몰리게 되자 그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는다.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 국회 앞에서 외쳤던 이성민 의원은 그렇게 장태준의 눈앞에서 떨어져 내렸다.

 

‘특정 인물과 상관없다’고 드라마 시작과 함께 밝히고 있지만 <보좌관> 이성민 의원은 우리네 현실 정치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몇몇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소신 있게 앞장서왔던 정치인. 하지만 몇 천 만 원의 뇌물 수수 의혹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정치인. 왜 그런 선택까지 했을까 하다가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유일한 자산이 ‘도덕성’일 수밖에 없다는 걸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인물. <보좌관>의 이성민 의원의 투신은 그 정치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극화된 이야기들이겠지만, 자본과 결탁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면들이 있지 않던가. 마치 당장이라도 자신의 지역구를 내줄 것처럼 부려먹다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몰리게 되자 꼬리 자르기 하듯 장태준을 토사구팽하는 송희섭(김갑수) 의원의 냉혹함이 그렇다.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얼굴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현실 정치란 어쩌면 순간순간 유리한 선택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비정한 세계일 지도 모른다.

 

법무부장관이 되려는 송희섭 의원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거래하고 손을 잡으며, 배척하는 이들은 끝까지 쫓아가 숨통을 끊어놓는 인물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국가가 어떻고 국민이 어떠하며 정의를 운운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제 욕망에 불타는 괴물이다. 그는 자신을 밀어주는 사모임에서 이성민 의원을 비난한다. “건더기를 먹든 국물을 떠먹든 먹은 건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까 자신들은 “건더기만 먹자”고 외치며 건배를 한다.

 

송희섭 의원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건 지켜야할 정치적 소신 같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뭐든 경계를 넘어간다. 심지어 가장 측근에 있던 인물조차 이용하고 버린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게 많은 이성민 의원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소신이 꺾이고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으면 설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현실 정치의 결과는 늘 비관적이다. 이성민 의원의 투신과 송희섭 의원의 코웃음이 교차하는 지점을 우리는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자주 봐왔던가.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보좌관>이라는 드라마 속 이성민 의원의 투신을 보며 한 정치인의 안타까운 선택을 우리는 여전히 떠올리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있어서 그 역학구조를 이해하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 놀음인가를 분별하는 눈. 그래서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는 우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가 <보좌관> 속 한 정치인의 투신은 보여주는 것만 같다. 세상을 진짜로 바꾸는 건 그런 대중들의 관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 테니.(사진:JTBC)

‘스케치’, 정해진 미래와 그 미래를 깨려는 사람들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일종의 두뇌게임 같은 드라마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그려진 스케치라는 판타지 설정은 이 두뇌게임의 판을 제공한다. 그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며 그 그림이 어디서 누구에게 언제 벌어진 것인가를 찾아내고,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뛰고 또 뛰는 나비 프로젝트팀이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벌어질 사건’과 그 ‘사건을 막으려는 이들’의 단순한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 범죄자에게 아내를 잃고 폭주하는 김도진(이동건)과, 그를 회유해 미래에 사건을 저지를 인물을 사전에 제거해나가는 장태준(정진영)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 그리고 김도진에 의해 아내를 잃은 강동수(정지훈) 형사 같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욕망이 뒤얽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신약을 출시하려 하는 제약회사 대표 남선우(김형묵)를 김도진은 사전에 제거하려하지만, 남선우는 오히려 김도진의 아내를 죽인 강간범 정일수(박두식)를 감옥에 빼내고 그를 미끼삼아 김도진을 납치한다. 

남선우는 또한 제약회사의 신약 부작용 자료를 갖고 있는 오박사(박성근)를 제거하고 강동수에게 그 살인누명을 씌우려 계획한다. 하지만 스케치를 통해 오박사의 심장약이 바꿔치기 될 것을 알게 된 강동수는 마치 남선우의 계획대로 속는 척 하면서 김도진을 찾아내려 한다. 모든 게 강동수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일인지 장태준이 남선우에게 전화를 해 그가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알려준 것. 결국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선우는 장소를 바꿔 강동수와 김도진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 정도의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사실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여기에 스케치로 그려진 그림들은 단서이면서 동시에 보는 이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트릭처럼 활용된다.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갑자기 어느 한 인물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방향을 틀어버린다. 시청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그 깨진 스토리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청자가 갖는 예상치를 어느 지점에서 깨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틀어진 이야기도 또 어느 정도 흘러가서는 다시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시청자가 예상한 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맥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두뇌게임의 연속은 그 이야기 속에 처음부터 깊이 발을 디딘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지만,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된 새로운 시청자들에게는 엄청난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초에 이 드라마가 ‘인과율’이라는 치밀한 논리 게임으로 짜여지고, 그 인과율을 깨는 변수들에 의해 또 다른 인과율이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요한 기폭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두뇌게임은 어느 정도 그 게임판에 익숙해져야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스케치>가 가진 남다른 묘미인 동시에 한계가 겹쳐지는 부분이다. 

ㅁ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김도진이나 강동수 같은 주요인물들이 가진 감정과 정서에 시청자들을 깊이 이입시키는 일이다.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같은 사건 속에서 적어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물들이 갖는 감정선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케치>는 따라가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김도진과 강동수의 이야기에 이어 이제는 유시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거기에는 다시 나비 팀을 이끌고 있는 문재현(강신일)과의 관계도 얽혀있다. 여기에 유시현의 오빠인 유시준(이승주)까지 등장하면서 인물들은 더 복잡해졌다. 장태준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도 빼놓을 수 없고.

두뇌게임의 묘미를 안겨주는 이야기 전개의 재미는 물론 충분하지만, 좀 더 상황을 정리해줄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 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이제라도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이들을 위해서는 이 게임판과 인물들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사진:JTBC)

‘스케치’의 미래예측, 어째서 현실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할까

사실 현실성을 잣대로 대면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미래를 그린다’는 그 설정 자체가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일단 드라마적 장치로 인정하고 봐야 <스케치>는 그 독특한 작가와 시청자 사이의 밀고 당기는 두뇌 게임에 빠져들 수 있다. 

굳이 ‘두뇌 게임’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건, <스케치>의 그림으로 그려지는 미래라는 판타지 설정이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사건의 단서를 미리 제공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청자를 엉뚱한 방향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일종의 떡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약혼자의 죽음에 광분한 강동수 형사(정지훈)가 총을 겨누고 있고 바닥에 쓰러진 김도진(이동건)이 머리 뒤쪽으로 피를 흘리는 듯한 미래를 그린 그림은, 강동수가 김도진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 머리 뒤쪽의 어두운 액체는 피가 아니라 물감이었다는 게 밝혀진다는 반전이 그렇다.

시청자들은 강동수가 살인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이 ‘스케치팀’이 이를 막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그 미래를 그리는 그림은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된다. 물론 그건 일종의 트릭이다. 드라마에 좀 더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이런 트릭은 성범죄자들에 의해 비극을 맞게 되는 김도진의 아내와 또 김도진에 의해 살해되는 강동수의 아내의 이야기 속에서도 활용된다. 스케치에 들어간 시간이 어느 날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인지 오인하게 만들고 그래서 어떤 일이 먼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이 벌어졌는지 인과관계의 순서가 바뀌면서 생겨나는 혼선들이 이 추격전을 더 쫄깃하게 만든다. 

즉 보통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들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긴장감을 높이는 반면, <스케치>는 미리 그림으로 예고된 살인을 본 후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높인다. 그래서 스케치로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 결국 자신이 죽는 장면을 그리는 방식의 설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죽는다는 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현실성을 찾기가 어려운 판타지지만, 그래서 더더욱 중요해지는 건 이 판타지를 갖고 도대체 어떤 현실의 지점들을 이야기하려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벌어진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우연적인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부터 누적되어온 어떤 엇나감이 축적되어 생겨난 결과였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처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우리는 과연 바꿔낼 수 있을까. 

유시현과 스케치팀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미래에 벌어질 비극을 막으려 안간힘을 쓴다. 피해자가 당할 위험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하지만 장태준(정진영)과 김도진(이동건)은 가해자가 밝혀지고 붙잡힌다 해도 이미 벌어진 피해자들의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미래에 사건을 저지를 가해자를 사전에 살해하려 한다. 강동수는 그 중간에 끼어 있다. 살해당한 약혼녀의 복수를 위해 김도진을 추적하지만 또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나는 걸 막으려 노력한다. 그는 미래에 벌어질 살인자를 처단한다는 김도진의 선택에 어떤 결정을 할까. 

자신은 이미 약혼녀가 죽었을 때 죽었다고 말하는 강동수에게 상처란 이미 벌어지면 치유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김도진의 선택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건 또한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응징’으로서 그저 ‘살인’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즉 약혼녀가 죽은 것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가 앞으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예측 때문이었다. 그러니 강동수는 김도진 앞에 어떤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스케치>는 미래를 그린다는 판타지를 통해 스릴러가 갖는 긴장감을 새로운 방식으로 높여놓았다. 거기에 사용된 적당한 트릭들은 그림의 진짜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 또한 높여준다. 그리고 그 미래를 미리 안다는 사실 앞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제약회사가 만들어낼 신약으로 무수한 어린이들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고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건 마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굳이 스케치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예고될 수 있었던 사건은 아니었을까. 그걸 어느 정도 알았다면 어째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걸까. 강동수든 김도진이든 유시현과 스케치팀이든 자기 방식으로 미래를 바꾸려 애쓰는 모습은 그래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원인으로 방치되어 후에 사건이나 사고로 이어질 일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처럼 보인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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